사이버백과 고사성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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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침안면 高枕安眠 [높을 고/베개 침/편안할 안/잘 면]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안심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함. [동]고침이와(高枕而臥).
[출전]『戰國策』〈魏策 哀王〉, 『史記』〈張儀列傳〉 [내용] 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 위(魏) 제(齊) 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했다. "전하,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사옵고[高枕安眠]'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목하고 합종을 탈퇘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나라 난왕( 王)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내용] 此臣之所以爲大王患也.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 則楚,韓必不敢動;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전국책(戰國策)>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則<楚>.<韓>必不敢動 ; 無<楚>.<韓>之患,則大王高枕而臥,國必無憂矣.<사기(史記)장의열전(張儀列傳) >
[참고]고침단명(高枕短命)--높은 베게가 수명을 단축시킨다. |
■ 고황지질 膏肓之疾 [염통밑 고/명치끝 황/어조사 지/ 병 질]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 **膏 : 心臟(심장)의 아래. 肓 : 橫隔膜(회경막)과 心臟의 사이.
[내용] 옛날 중국 진후(晉候)가 병을 얻어, 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했더니, 꿈에 병이 든 두 소년으로 나타나서 한 놈이「그는 명의니까 어디로 숨을까」라고 말하니 또 한놈이 답하기를「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가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의원이 와 보고 병은 이미 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참고1]천석고황 泉石膏肓(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
1. 명종 때, 이황 연시조 <도산십이곡> 12수 중 제1곡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믈 며 천석고황(泉石膏황)을 곳쳐 무슴하리.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정철 가사 <관동별곡> 제1행 강호(江湖)에 병이 깁퍼 죽림(竹林)의 누엇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치지 못할 병처럼 되어(세상 일을 잊고), 은거지인 창평에서 한가로이 지내고 있었는데, (임금께서) 800리나 되는 강원도 관찰사의 직분을 맡기시니, 임금님의 은혜야말로 갈수록 그지없다.
[참고2]相思病(상사병)--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강왕은 포악하고 음란하여 미인을 탐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절세미인인 시종 한빙의 아내 하씨를 발견하고는 강제로 후궁을 삼았다. 그후 아내를 빼앗긴 한빙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자, 하씨는“시신을 한빙과 합장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격노한 강왕은 무덤을 서로 보이게는 하되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으나 밤 사이에 두 그루의 노나무가 각각 두 무덤 끝에서 나더니 열흘이 못되 아름들이가 되엇다.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맞닿았다. 그야말로 뜨거운 만남의 표현이었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어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었다.
이 새를 한빙 부부의 넋이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라고 했는데, 相思病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고,새는 원앙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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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 古稀 [옛 고 / 드물 희]
☞70세(인생70이 예로부터 드물었다) [출전] 두보(杜甫)의 『곡강(曲江)二首』 [내용]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조회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잡혀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날마다 곡강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항처유) 몇푼 안되는 술빚은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이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살이 칠십년은 예부터 드문 일이라네. 穿花?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를 맴도는 호랑나비는 보이다 말다 하고 點水??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강물 위를 스치는 물잠자리는 유유히 난다.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賞春(상춘)의 기쁨 나누자.
[註]朝回 조회에서 돌아옴./ 典春衣 봄 옷을 저당 잡힘/. 江頭 강기슭./ 盡醉歸 만취해서 돌아옴/ 尋常 尋(심)과 常(상)은 길이를 뜻하는 단위로 각기 8자, 16자를 뜻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옛날에는 그리 길지 않다는 뜻으로 인식했다.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 穿花 꽃 사이를 뚫고 다니다/?蝶 호랑나비/. 深深見 때로 숨고 때론 나타나는 모양/ ? ? 물잠자리/.款款 유유한 모습/ 風光 봄 경치/. 共 다 함께, 지는 꽃, 호랑나비, 물잠자리, 시인 모두를 가리/ 流轉 빙빙 돌다/相賞 봄 경치와 서로 융화되어 상춘의 기쁨을 누림/ 莫相違 서로 어기지 말자.
[참고]이 詩는 두보가 마흔 일곱 살 때 지은 것이다. 李白(이백)과 더불어 唐詩壇(당시단) 의 쌍벽을 이룬 두보는 나이 47세가 되어서야 左拾遺(좌습유)라는 벼슬자리에 앉아 보았다.그러나 어지러운 政局(정국)과 부패한 관료사회에 실망한 두보는 관직생활보다 詩作(시작)에 더 마음을 두었으며 매일같이 답답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술이나 마시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상대로 시간을 보냈다.
曲江은 수도장안 중심지에 있는 유명한 연못 이름으로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했으며, 특히 봄이면 꽃을 찾 는 사람들로 붐비었다고 한다. 曲江(곡강)가에서 1년간 머물며 몇 편의 시를 남겼 는데 曲江이란 七言律詩(칠언율시) 두 편도 그 때 지은 것이다. 두번째 작품에 '古稀'가 나온다.
시의 뜻은, 요즘은 조정에서 돌아오면 매일 곡강가로 가서 옷을 잡 히고 마냥 술이 취해 돌아오곤 한다. 술꾼이 술 빚을 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 로 내가 가는 술집마다 외상값이 밀려 있다. 하지만 내가 살면 몇 해나 더 살겠느 냐, 예부터 말하 기를 사람은 七十을 살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았더냐 꽃밭사이를 깊숙이 누비며 지나가는 호랑나비도 제철을 만난 듯 즐겁게 보이고, 날개를 물에 적시며, 날아 다니는 잠자리도 제사상을 만난 듯 기운 차 보이기만 한다. 나는 이 약동하는 대자연의 풍광과 소리 없는 말을 주고받는다. 우리 함께 자연과 더불어 흘러가면서 잠시나마 서로 위로하며 즐겨보자 꾸나 하고 말이다.
[해설]「인생칠십고래 희」란 말은 항간에 전해 내려오는 말을 그대로 두보가 시에 옮긴 것이라고도 한 다. 어쨌든 이 말은 두보의 시로 인해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서 古稀라는 말이 나왔지만 작자 자신은 고희와는 거리가 먼 59세로 생을 마감했다 |
[참고1]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지학(志學) : 공자는『논어』에서,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15세를 일컬음. 약관(弱冠) : 남자 나이 20세를 일컬음. 이립(而立) : 공자가『논어』에서, 30세가 되어 인생관이 섰다고 한 데서 나온 말. 30세를 일컬 음. 불혹(不惑) : 공자가『논어』에서, 40세가 되어 사물의 이치에 의문나는 점이 없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40세를 일컬음. 지명(知命) : 공자가『논어』에서, 50세가 되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 50세를 일컬음. 이순(耳順) : 공자가『논어』에서, 60세가 되어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 데 서 나온 말. 60세를 일컬음. 화갑(華甲)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에다 일(一)이 하나 있으므로 61세를 나타내며, 회 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61세를 일컬음. 진갑(進甲) :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란 뜻이다. 62세를 일컬음. 고희(古稀) : 70세를 일컬음. 종심(從心) : 공자가『논어』에서, 70세가 되어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 데서 나온 말. 70세를 일컬음.(從心所欲不踰矩) 희수(喜壽) :「喜(희) 자를 초서로 쓰면 일곱 칠(七) 위에 하나, 아래에 두 개로 모두 세 개가 쓰이므로 喜壽는‘七 + 七’세 즉, 77세를 일컬음. 산수(傘壽) :「산(傘) 자는 초서로 쓰면 여덟 팔(八) 아래에 열 십(十)이 들어가 있으므로‘八 + 十’세 즉, 80세를 일컬음. 미수(米壽) :「미(米)」자를 분해하면‘八十八’이 되기 때문에 米壽는 88세를 일컬음. 졸수(卒壽) :졸(卒)」을 초서로 쓰면 九와 十이 합쳐진 것과 같이 보여 卒壽는‘九十’세, 즉 90세. 백수(白壽)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백(白)」즉 百에서 하나를 빼면 99세가 된다.
[참고2] :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紙婚式(지혼식) : 1주년 藁婚式(고혼식) : 2주년 糖菓婚式(당과혼식) : 3주년 革婚式(혁혼식) : 4주년 木婚式(목혼식) : 5주년 花婚式(화혼식) : 6주년 電氣器具婚式(전기기구혼식) : 8주년 陶器婚式(도기혼식) : 9주년 錫婚式(석혼식) : 10주년 鋼鐵婚式(강철혼식) : 11주년 麻(絹)婚式(마혼식) : 12주년 象牙婚式(상아혼식) : 14주년 銅婚式(동혼식) : 15주년 磁器婚式(자기혼식) : 20주년 銀婚式(은혼식) : 25주년 眞珠婚式(진주혼식) : 30주년 珊瑚婚式(산호혼식) : 35주년 碧玉婚式(벽옥혼식) : 40주년 紅玉婚式(홍옥혼식) : 45주년 金婚式(금혼식) : 50주년 回婚式(회혼식) : 60주년 金剛石婚式(금강석혼식) : 75주년 | |
■ 곡고화과 曲高和寡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곡이 높으면 화답하는 사람이 적다, 사람의 재능이 너무 높으면 따르는 무리들이 더욱 적음
[내용]춘추 전국시대 말엽, 굴원(屈原)과 더불어 대표적인 남방시인으로 손꼽히던 송옥(宋玉)의 문장은 꽤 유명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난해하여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으며, 그의 글을 칭찬하는 사람도 드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초왕(楚王)은 송옥에게 그 연유를 물어보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경(卿)의 문장을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오?"
송옥은 초왕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가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쉬운 통속 노래를 불렀습니다. 주위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여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조금 수준이 있는 노래를 부르자 그를 따라 노래 부르는 사람이 훨씬 적었습니다. 다시 더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불과 십여 명만이 따라 불렀습니다. 나중에 아주 어려운 노래를 부르자 두세 명만이 따라 할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황은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구름 위까지 오르는데, 동네 울타리를 날아다니는 참새가 어찌 하늘의 높음을 알겠으며,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를 어항 속의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는 새 가운데만 봉황이 있고, 물고기 중에만 곤이 있는 것이 아니고 선비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초왕은 송옥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었다. |
■ 곡돌사신 曲突徙薪 [굽을 곡 / 높을 고/화할 화 /적을 과]
☞굴뚝을 구부리고 굴뚝 가까이에 있는 땔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다. 화근을 미리 치움으로써 재앙을 미연에 방지함. 일의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
[출전]『說苑』
[내용]길 가던 어떤 나그네가 한 집을 찾아 들어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나그네는 우연히 방밖을 내다보다가 그 집의 굴뚝이 너무 곧게 세워져 있어 이따금 불길이 새어 나오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게다가 굴뚝 옆에는 땔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그네는 주인에게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큰일 나겠소이다. 얼른 굴뚝을 구부리고 땔나무도 멀리 옮겨 놓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이 날지도 모르오" 그러나 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그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인을 구해내고 큰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었다.
주인은 잔치를 베풀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이웃 사람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었다. 손님들의 좌석도 불을 끌 때 힘쓴 정도에 따라 상석(上席)부터 차례로 배치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는 처음에 굴뚝을 고치고 땔나무를 치우라고 말해준 나그네의 공로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잔치판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어떤 사람이 시 한 수를 썼는데 두 구절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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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학아세 曲學阿世 [굽을 곡 / 배울 학 / 아첨할 아 / 세상 세]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첨한다.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을 굽혀 권세나 시세에 아첨함. [출전]『史記』 [내용]漢나라 경제(景帝)때 齊나라 사람 원고생(轅固生)은 90세의 늙은 신하였으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강직한 성격으로 인하여 헐뜯는 자들이 많았다.
또한 그와 함께 등용된 소장학자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이라는 늙은 신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으나, 원고생은 공손홍에게 태연한 자세로 이르기를,“요즘 學의 도는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네. 그대는 다행히 젊고 好學의 선비라고 들었네. 부디 올바른 학을 열심히 배워 세상을 넓히도록 노력하게.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학설을 굽히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지 않기를 바라네.”공손홍은 원고의 훌륭한 임품과 학식에 감복하여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은 거의 원고의 제자였다고 한다
[원문]<竇太后>好{老子}書, 召<轅固生>問{老子}書.<固>曰: 此是家人言耳. 太后怒曰: 安得司空城旦書乎? 乃使<固>入圈刺豕. <景帝>知太后怒而<固>直言無罪, 乃假<固>利兵, 下圈刺豕, 正中其心, 一刺, 豕應手而倒. 太后默然, 無以復罪, 罷之. 居頃之, <景帝>以<固>爲廉直, 拜爲 <淸河王>太傅. 久之, 病免. 今上初卽位, 復以賢良徵<固>. 諸諛儒多疾毁<固>,曰 <固>老. 罷歸之. 時<固>已九十餘矣. <固>之徵也, <薛>人<公孫弘>亦徵,側目而視<固>.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 自是之後, <齊>言{詩}皆本<轅固生>也. 諸<齊>人以{詩}顯貴, 皆<固>之弟子也.
**歪曲(왜곡).阿附(아부).阿諂(아첨) **淸廉潔白(청렴결백) : 마음이나 행동이 깨끗하고 허울과 재물의 욕심이 없다.
[예문]
▷ 정거장까지 끌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제 말마따나 십 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러리고 온 생각은 아니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오"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현진건,'운수 좋은 날'≫ 中에서
▷ 얼그나저나 총장들을 날파리 잡듯 해 버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학자라는 것들이 그 자리를 냉큼냉큼 차지하고 앉는 꼴이야. 지식인이란 것들이 아무 베알도 없이 허겁지겁 그 꼴들을 하니까 독재자가 더욱 기고만장해지는거야.지금까지 이 정권이 제대한 군바리 천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여기에 빌붙은 지식인들 숫자가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해. 결국 지식인이란 것들이 권력에 기생해 가면서 이 나라 다 망쳐먹고 있는 거야≪조정래 '한강'≫中에서
▷ 상아탑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해야 할 상아 탑이 제 구실을 옳게 다하지 못하는 것이 탈이다. 학문에 진리 탐구 이외의 다른 목적이 섣불리 앞장을 설 때, 그 학문은 자유를 잃고 왜곡(歪曲)될 염려조차 있다. 학문을 악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못한 일을 하는 경우가 얼마 나 많은가? <학문의 목적>
▷ 최근 신문지면을 통해 소설가 이문열씨와 이른바 곡학아세(曲學阿世) 공방을 벌였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25일 "이문열씨의 글에서는 역사와 정의를 찾을 수 없다"고 비판,논쟁이 확산되고 있다.<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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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계지웅 滑稽之雄 [익살스러울 골/헤아릴 계/어조사 지/수컷 웅]
☞천하에 제일 가는 슬기로운 사람.≒麒麟兒. 蓋世之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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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육상쟁 骨肉相爭 [뼈 골/고기 육/서로 상/다툴 쟁]
☞뼈와 살이 서로 다툼.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 [동] 同族相殘(동족상잔) /자두연기 煮豆燃萁 [참고]조조는 훌륭한 무장이자 보기 드문 문학 애호가였다. 동한말 실세가 되어 전권을 휘두르자 그의 문하에는 시인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曹丕(조비)는 후에 漢(한)을 무너뜨리고 魏(위)를 세워 삼국시대를 열게 된다.그도 아버지처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중국 최초로 문학비평을 시도했는가 하면 최초로 7언시를 지었다. 둘째 아들 曹植(조식)도 문학과 무예에서는 형 못지 않았다. 조조는 그런 조식이 더 맘에 들었던지 그를 편애했다. 조비의 눈에는 동생이 눈엣가시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조조가 죽고 조비가 위나라를 세우니 이가 文帝(문제)다.하루는 조식을 해칠 생각으로 말했다. "내가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 한 수를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엄벌을 내리겠다. 조식은 골육상쟁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의 문학적 재능은 이 때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그는 즉석에서 시를 지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萁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 |
이 시를 들은 문제는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고 한다. 이때 조식의 나이 열 살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형제간에 서로 다투는 것을 두고는 흔히 이 고사를 인용하였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은 칠보지재(七步之才)라 불렀으며, 뛰어난 문학 작품을 칠보시라 하였다.
[예문]태조 이성계가 아들 방원의 골육상쟁으로 인하여 함흥이궁으로 행하던 중 심화가 치밀고 노기가 동등하여 조갈이 심히 날 때 차고 맑은 샘물 한 그릇을 진상하였다하여 '진상한 샘 물', '임금님이 잡수신 우물'이라하여 그 물을 '어수물'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어수동이라 전하여 왔다. 이곳 사람들의 주선으로 어수정에다 팔각으로 정자를 짓고 어수정이라하여 기념하고 있다. |
■ 공문십철 孔門十哲 [성씨 공/문하 문/열 십/밝을 철]
☞공자의 문인 중 학덕이 뛰어난 10명의 뛰어난 제자.≒사과십철 四科十哲 곧, 안회,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子路), 자유(子游), 자하(子夏) [출전]≪논어-선진편≫ [내용]공자가 진채(陳蔡)의 들판에서 위난을 당하였을 때 함께 있던 제자들 10명의 이름을 들었다. 그는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伯牛)·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有)·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뛰어나다고 하였다. 또 여기에 나오는 덕행·언어·정사·문학을 사과(四科)라고 한다.<네이버백과> |
■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빌 공/손 수/올 래/빌 공/손 수/갈 거]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空手來空手去是人生(공수래공수거시인생) 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獨一物常獨露(독일물상독로)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여 날 때는 어느 곳에서 왔으며, 갈 때는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죽고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그러나 여기 한 물건이 항상 홀로 드러나 담연이 생사를 따르지 않네
[예문] ▷ "부시 대통령의 직접 대화 의지와 BDA(방코델타아시아) 제재 해제와 관련된 확인된 부시 대통령의 메시지가 없는 한 '공수래 공수거'의 결과만 낳을 것"이라면서 "별로 큰 기대를 할 것이 없다"고 전망했다.<2006 연합뉴스>
▷ 청사초롱에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찾아온다. 공수래는 공수거요 놀아가면서 살아가세. 니나노 닐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사 좋아 얼시구나 좋다. 범나비는 이리저리 훨 훨 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태평가] |
■ 공자왈맹자왈 孔子曰孟子曰
☞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예문] ▷ 여전히 시류를 떠난 도덕군자모양 집안 곳간에 쌀이 얼마나 있는지, 지붕이 왜 새는지조차 모르고 공자왈, 맹자왈만 찾고 있다면 그 집안의 앞날이 정말 심각하지 않겠는가? <2006 대전일보>
▷ 정조 시대 선비 이옥(1760~1815). 성균관 유생 시절 '불온하고 타락한 문체를 쓰는 자'로 몰려 반성문을 써야 했던 인사다. 불온과 타락? 공자왈 맹자왈 하던 엄숙한 정통문학을 거부하고 일상에 기반한 자유로운 문장을 구사했다는 것이 속사정이었다.<2006 중앙일보> |
■ 공자천주 孔子穿珠 [뚫을 천/구슬 주]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 . [동]不恥下問 불치하문 [출전]《조정사원(祖庭事苑)》
[내용]공자(孔子)가 진(陳)나라를 지나갈 때 있었던 일이다. 그는 예전에 어떤 사람한테 구멍이 아홉 굽이나 되는 진귀한 구슬을 얻었는데, 그 구슬을 실로 꿰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문득 바느질을 하는 사람은 쉽게 꿸 수 있을 것 같아 근처의 뽕밭에서 뽕잎을 따고 있던 아낙네에게 물어보니 “차분하게 꿀을 가지고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공자는 나무 밑에서 돌아다니던 개미 한 마리를 붙잡아 허리를 실로 묶어 한쪽 구멍으로 밀어 넣은 뒤 반대쪽 구멍에 꿀을 발라 놓았다. 그러자 개미가 꿀 냄새를 맡고 기어 나와 힘들이지 않고 구슬에 실을 꿸 수 있었다. |
■ 공전절후 空前絶後 [빌 공/앞 전/끊어질 절/뒤 후]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동]前無後無(전무후무) [예문] ▷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점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이효석-메밀꽃 필 무렵≫中
▷ 불사지존 백리극과 마애천불 천뢰선사는 이미 삼천 초(三千招)의 대격전을 벌였다. 그것은 실로 하늘도 땅도 경악할 공전절후의 대 혈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은 실로 막상막하였다. <무협소설>에서 |
■ 공중누각 空中樓閣 [빌 공/가운데 중/집 루/집 각]
☞공중에 누각을 지은 것처럼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신기루 蜃氣樓 , 沙上樓閣 (사상누각) [예문] ▷ 그의 들뜬 맘은 공중누각을 쌓으며 여순의 몸에다 공상의 갖은 치장을 베풀어 본다.≪한설야, 황혼≫
▷ 최후로 믿고 있던 가정이란 보루도 자기에게는 아름다운 신기루로 사라져 가는가 싶어서 구슬펐기 때문이었다.≪염상섭, 남자란 것 여자란 것≫ |
■ 공즉시색 空卽是色 [빌 공/곧 즉/이 시/색 색]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참모습은 공(空)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말. 본성인 공(空)이 바로 색(色), 즉 만물(萬物)이라는 말. 만물의 본성인 공이 연속적인 인연에 의하여 임시로 다양한 만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출전]반야심경(般若心經) : 색즉시공(色卽是空), 색불이공(色不異空) [예문] ▷ 이별은 미의 창조 : 한용운 시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 이별의 미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黃金)과 밤의 올(絲)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영원(永遠)의 생명(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여,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는 이별의 창조입니다. ----------------------- * 감상 : 불교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역설의 논리가 숨어 있다. 짧은 시형 속에 여러 개의 비유를 동원하고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의 세계관을 통해 이별이 있어야만이 다시 만나는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화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주제 : 이별이 지닌 가치의 역설적 찬미 * 출전 : [님의 침묵](1926) <공명철 국어교실> |
■ 과공비례 過恭非禮 [지나칠 과/공손할 공/아닐 비/예도 례]
■ 과유불급 過猶不及 [지날 과/같을 유/아니 불/미칠급]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過不及) [출전] 『논어』, 先進篇
[내용]자공(子貢)이 孔子에게“子張과 子夏 중 누가 현명합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날 자장이 공자에게,“士로서 어떻게 하면 達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그대가 말하는 達이란 무엇인가?”“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본성아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 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이라 할 수 있다.”하고 공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구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자공은 지나쳤고, 자장은 미치지 못하였다.”“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
[원문]子貢問師與商也 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 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예문] ▷ 성인도 과유불급이라 하셨잖소. 너무 깊숙이 파고 들어갈 건 없단 말이에요.≪한무숙, 어둠에 갇힌 불꽃들≫
▷ 게다가 이런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영양 과잉의 문제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음식에서도 과유불급이란 옛말이 딱 들어 맞습니다. 부족한 듯하게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고기보다는 잡곡과 야채를 많이 먹는 게 좋습니다.<2006 소년한국일보>
▷ 주로 음식물로 섭취된 철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을 생성한다. 적정량이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지나칠 때가 문제다. 우리몸은 과도하게 쌓인 잉여 철분을 제거하는 능력이 없다. <2006 매일경제>
▷ 환율이 올라 수출 가격이 하락할 때 수출량이 크게 중가해야만 수출 금액이 종전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수입의 경우에도 수입량이 크게 줄어야 수입 가격이 오른 효과를 상쇄하여 수입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환율이 올라서 수출입 가격이 변화했는데도 수출이나 수입 물량의 반응이 미미하게 나타난다면 국제 수지는 오히려 종전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
■ 과전이하 瓜田李下 [오이 과/밭 전/오얏 리/아래 하]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출전]『文選』樂府篇 [내용]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 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애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예문] ▷ “누구는 누구와 협력하고 있어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등등 근거없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과전이하(瓜田李下)의 세심한 주의와 올바른 처신을 통해 이러한 소문과 오해를 해소하기 바란다. <2006 노컷뉴스>
▷ 국민에게 봉사하는 종(public servant)으로 거듭나겠다고 목청을 돋우니, 이제는 이익추구를 업으로 하는 서비스업계와 별반 차이가 없게 됐다. 짭짤하던 관행도 없애고, 과전이하(瓜田李下)의 마음가짐으로 근신하고. 자칫하다가는 한낱 봉급쟁이로 전락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위한 그 힘든 길을 기꺼이 걷겠단다.<2006 법률신문> |
■ 관도지기 貫道之器 [꿸 관/법도 도/어조사 지/그릇 기]
☞문(文)이란 도(道)를 관철하는 수단이란 의미로, 문장에서 도가 근본이요 수사(修辭)나 기교(技巧)는 말단에 해당된다는 이론. [유사어]재도기지(載道之器) [예문] ▷ 일월성신은 하늘의 문이요, 산천초목은 땅의 문이요, 시서예악은 사람의 문이다. 그런데 하늘의 문은 기로써 되고 땅의 문은 형으로써 되며, 사람의 문은 도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이란 재도지기이다.(日月星辰 天之文也 山川草木 地之文也 詩書禮樂 人之文也 然天以氣 地以形 而人則以道 故曰文者 載道之器)≪삼봉집 도은문집서≫
▷ 성현의 교훈은 육경에 실려 있으니, 육경이란 도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어찌 이것을 녹봉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도가 나타난 것을 일러 문이라 하니, 문이란 도를 꿰는 그릇입니다. 어찌 이것을 문사의 자구나 꾸미는 기교라 하겠습니까?(聖賢之訓 載在六經 六經者 入道之門也 豈期以此爲干祿之具耶 道之顯者 謂之文 文者 貫道之器也 豈期以此爲雕蟲篆刻之巧耶) ≪율곡전서 습유 잡저 문무책≫ |
■ 관중규표 管中窺豹 [대롱 관/가운데 중/엿볼 규/표범 표]
☞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본다는 말로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좁은 식견을 뜻함 [유사어]정중(저)지와(井中(底)之蛙)--우물 안 개구리. 촉견폐일(蜀犬吠日)--촉나라의 개가 해를 보고 짖는다(촉나라는 산이 높고 안개가 짙어 해를 보기가 어려웠음) 월견폐설(越犬吠雪)--월나라의 개가 눈을 보고 짖는다(월나라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음). 尺澤之예(척택지예)-- 작은 못 속의 암고래. 식견이 매우 좁은 사람 以管窺天(이관규천)--대롱으로 하늘보기. 遼東豕(요동시)--: 요동의 어떤 사람의 집에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머리가 흰색이었다. 신 기하여 임금께 바치려고 하동(河東)에 갔는데 그곳의 돼지들이 모두 머리가 희므로 부끄러워 되돌아 왔다는 故事.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안 개구리(정저지와, 井底之蛙)와 같은 좁은 견문.
통관규천(通管窺天) --대롱(管)을 통해(通) 하늘 보기(窺), 견문이 좁은 사람 비유
[내용]진나라의 대표적인 서예가 왕희지에게는 여러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헌지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왕희지의 집 뜰에서 서생들이 모여앉아 노름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을 지나가던 헌지는 노름판을 한참 동안 보다가 패가 잘 풀리지 않는 한 아저씨 에게 이렇게 훈수를 했다.
"남쪽 바람이 굳세지 못하여 형세가 불리하니 힘을 내세요." 어린아이의 훈수에 마음이 상한 아저씨는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 "대롱 속으로 표범을 엿보고 있군."
헌지는 이 말이 자신의 시야가 좁음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서 즉시 이렇게 반박했다. "멀리로는 순봉정(荀奉情)에게 부끄러워하고 가까이로는 유진장(劉眞長)에게 부끄러워 하십시오. 아버지의 친구인 유진장은 노름을 통해 환온의 배반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만일 대롱의 조그만 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게 된다면, 표범의 전체 모습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단지 표범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이것이 바로 표범이구나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쉽다. 이렇듯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판별함에 일부분만으로 한다면 적지 않은 실수를 하게 된다. 총체적으로 관찰하고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
■ 관포지교 管鮑之交 [대롱 관/절인 생선 포/어조사 지/사귈 교]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 없는 교제.
[출전]『史記』 管晏列傳 [내용] 제(齊)나라의 관중(管仲)이 포숙(鮑叔)과 함께 장사할때 이익을 많이 가져도 포숙이 나를 욕심이 많다고 여기지 않았고, 일을 도모하다가 곤궁해져도 어리석다 여기지 않았으며, 세 번 벼슬을 하였다가 세 번 쫓겨나도 못났다고 하지 않았고, 세 번 싸움에 세 번 도망갔으나 포숙은 관중을 겁장이라 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말하기를,「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했다.
[원문]管仲이 曰 吾始困時에 嘗與鮑叔賈할새 分財利에 多自與어늘 鮑叔이 不以我爲貪은 知我貧也요 吾가 嘗爲鮑叔하여 謀事라가 而更窮困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愚는 知時有利不利也요 吾가 嘗三仕하여 三見逐於君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不肖는 知我不遭時요 吾가 嘗三戰三走어늘 鮑叔이 不以我爲怯은 知我有老母也요 公子糾가 敗할새 召忽은 死之하고 吾가 幽囚受辱이어늘 鮑叔이 不以我爲無恥는 知我不羞小節하고 而恥功名이 不顯於天下也라 生我者는 父母요 知我者는 鮑子也라.
[주]嘗(상)일찍이/ 賈(고)장사하다 / 與(여) 주다 / 謀(모) 꾀하다 / 更(갱) 다시- / 見(견)당하다 / 逐(축) 쫓다,몰아내다 / 肖(초) 닮다 *不肖--아버지를 닮지 못해 못나다 / 遭(조) 만나/ 怯(겁) 겁내다 / 幽(유) 그윽하다 / 囚(수) 가두다 / 恥(치) 부끄러워하다 / 羞(수) 부끄러워하다 / 顯(현)드러나다 **更生갱생 更迭 경질 三更 삼경 變更변경 更正경정 **利己이기 有利유리 便利편리 銳利예리 利益이익
[참고]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 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魯)나라와 거( )나라로 망명했다.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 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
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유]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金蘭之交(금란지교)./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
[예문] ▷ 관포지교라고 알려졌던 두 친구의 관계가 여자 문제로 하루아침에 멀어졌다.
▷ 모르의 사진작품과 에세이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된다. 존 버거의 글 군데군데 진하게 배어 있는 두 일흔 노인의 관포지교는 이 책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2006 데일리안>
[참고]
빈교행(貧交行)---< 杜 甫 >
飜手作雲覆手雨 (번수작운 복수우) 紛紛輕薄何須數 (분분경박수수)
君不見官鮑貧時交(군불견관포빈시교) 此道今人棄如土(차도금인기여토)
손 뒤집으면 구름 일게 하고 손엎으면 비 오게 하니 수없이 어지러운 경박함을 어찌 따질 필요 있겠는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관중과 포숙의 가난할 때의 사귐을 이 도리를 지금 사람들은 흙 버리듯 하고있네
[풀이]빈교행(貧交行)의 행(行)은 '노래'와 같다. 따라서 이 제목은 가난한 떄의 교제에 대한 노래라는 뜻이다. 작가가 장안(長安)에서 빈한한 생활을 하면서 사관(仕官)을 구하던 시절의 작품으로 보인다. 작가의 열망(熱望)에도 불구, 조정(朝廷) 사람들은 그에게 냉담해서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냉담한 세상에 노여움과 절망을 느낀 그가 이 시로써 어느 특정한 개인에 대한 분노를 나타낸 것이란 설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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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괄목상대 刮目相對 [눈비빌 괄/눈 목/서로 상/기다릴 대]▶플래시 보기(출처-즐거운학교)
☞눈을 비비고 보며 상대를 대한다. 한동안 못 본 사이에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몰라보게 달라짐. 몰라보게 달라짐, 눈에 띄게 달라짐
[출전]『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주(呂蒙傳注)
[내용] 오(吳)나라 왕 손권(孫權)에게는 부하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몸이 날쇄고 무술이 뛰어나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매우 무식하였다. 어느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할 것을 권했다. 얼마 후 손권의 신하 중에서 학식이 가장 뛰어나며 여몽과 오랜 친구인 노숙(魯肅)이 찾아왔다. 서로 이야기하던 중 여몽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오늘에 이르러 학식이 영특하고 박식하니 온나라 시골 구석에 사는 어리석은 여몽이 아니구려.”라고 말하니 여몽이“선비는 헤어진지 3일이 지나면 곧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네.”라고 대답하였다. [원문] 至於今者 學識莫博 非復吳下 阿夢曰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예문] ▷ 그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 기타 연주 실력이 괄목상대했다.
▷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삼십 년이 못 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나는 확언하는 바이다.≪김구, 백범일지≫
▷ 생활용품과 기초화학으로 시작한 애경은 애경백화점과 AK면세점으로 유통부문에서 선전하고 있고, 올해 항공업(제주항공)에도 진출하는 등 괄목상대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 후기에서만 5승3무2패. 전기 10위. 컵대회 꼴찌(14위)로 추락했던 것을 떠올리면 괄목상대할 성적이다. 인천이 뿜어내는 무서운 뒷심의 중심에는 톱클래스의 전략가로 꼽히는 장외룡 감독의 ‘장풍’이 있다.... <2006 스포츠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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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일미구 曠日彌久[빌 광/날 일/더할 미/오랠 구]
☞오랫동안 쓸데없이 오래 끌고 머물며 세월만 보낸다는 뜻. 쓸데없는 소모전 ≒광일지구(曠日持久), 광구(曠久)
[내용] 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覇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주] 화우지계 :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
■ 광풍제월 光風霽月[빛 광/바람 풍/갤 제/달 월]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 비 갠뒤의 바람과 달,아무거리낌이 없는 맑고 밝은 인품
[출전] 宋書 周敦滯傳 [내용] 유교(儒敎)는 북송(北宋) 중기에 주돈이(周敦滯 : 1017-1073)가 나와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저술했고, 그 뒤에 정호(程顥)와 정이(程滯) 형제가 사서(四書 : 大學 中庸 論語 孟子)를 정하여 성도(聖道)를 밝히었으며, 주자(朱子)가 이것을 집대성(集大成)하여 형이상학(形而上學) 으로서의 경학(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주돈이는 옛사람의 풍도가 있으며, 정사를 베풂에는 도리를 다 밝힌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은 군자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애련설(愛蓮說)> 한 편은 글 안에 도학(道學)의 향기도 풍기지만 그의 인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 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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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괘관 掛冠[걸 괘/갓 관]
☞관직에 있는 자가 제복에 딸린 관(冠)을 벗어 걸어 놓음. 관직을 사임함.
[출전] 후한서(後漢書) '봉맹전(蓬萌傳)'
[내용] 중국 후한(後漢)의 봉맹(逢萌)이 왕망(王莽)에게 자기 아들을 살해당하자 관을 동도(東都:낙양)의 성문에 걸어 놓고 요동(遼東)으로 떠나갔다는 이야기,
후한 사람 봉맹(蓬萌)은 비록 도둑을 잡는 정장(亭長)이었지만 '춘추(春秋)'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전한(前漢)의 12대 왕 애제(哀帝)가 죽고 왕망(王莽)이 평제(平帝)를 세웠지만 왕망은 평제의 어머니인 위희(衛姬)와 그 집안 식구가 도읍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또 그 일을 간한 장남 왕우(王宇) 내외를 죽였다.
이것을 본 봉맹은 친구에게 "삼강(三綱)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도 재앙이 미칠 것이다." 라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벗어 동도문(東都門)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요동(遼東)에서 숨어 지냈다.
봉맹은 왕망이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고 머리에 기와로 만든 분을 올려 놓고 시장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면서 "아! 신(新)나라여, 신(新)나라여(왕망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 라고 말하면서 거리를 지났다. 왕망이 멸망하고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태수(太守)가 억지로 조정에 들어오려 했으나 칙령(勅令)을 내려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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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각살우 矯角殺牛[바로잡을 교/뿔 각/죽일 살/소 우]
☞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동] 矯枉過直(교왕과직/굽을왕/지나칠과)/小貪大失(소탐대실) [속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운다.
[예문] ▷ 한나라당.국민신당 등 야권은 23일 여권의 재벌개혁정책이 무리하게 추진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이한동 (李漢東) 한나라당대표는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재벌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나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측이 너무 서두르면 교각살우 (矯角殺牛) 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고 지적했다.<1998 중앙일보>
▷ 대통령이 언론의 보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무언의 전제 아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에만 동조해 언론개혁을 촉구하는 것은 소를 죽이더라도 쇠뿔을 고치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주문과 다를 바 없다. <중앙일보 김영희 칼럼> |
■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할 교/말씀 언/좋을 령/빛 색] 동영상
☞교묘한 말과 억지로 꾸민 얼굴 빛. 겉치레만 할 뿐 성실하지 못한 태도. [동]아유구용 阿諛苟容
[출전] 《논어(論語)》의 학이편(學而篇),양화편(陽貨篇) [내용]“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는 뜻이다. 즉,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 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된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예문] ▷ 이 밖의 일은 아무리 미사여구, 교언영색으로 장식해도 전부가 거짓이고 사기다.≪이병주, 지리산≫
▷ 권위주의는‘윗사람에게는 복종과 아첨을 일삼으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군림하려 하는 의식 구조와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위계적인 사회 질서 속에서 살아왔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거의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적인 정치 질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힘있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는 복종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생존 방식이고 출세를 위한 처세술이라고 여겨왔다고 생각된다.
▷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임진왜란의 침략사례를 대륙진출로 자구수정을 한다고 해 현실의 불만이 사라지는가. 일본 정부 스스로 속죄의 대상으로 공식발표했고 유엔 인권위원회까지 보상 책임을 명백히 했던 종군위안부 문제를 교과서에서 지운다고 수만명의 여성들을 전쟁의 노리개로 삼았던 그 만행의 과거가 없던 일로 사라질 것인가. 잘못된 지난날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미화하고 위장된 과거를 자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죄악 아닌가. <중앙일보, 권영빈 칼럼>
▷ 요즈음 학자는 우리 학문을 높일 만하다고 하지 않으며, 또 제 몸만 착하게 하려 하지 들지도 않는다. 입으로 지껄인 것과 귀로 듣기만 한 것을 주워 모아, 겉으로 말과 행동을 꾸미는 데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나는 도리를 밝힌다.” “나는 이치를 깊이 공부한다.”고 말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을 어지럽힌다. |
■ 교외별전 敎外別傳 [가르칠 교/바깥 외/다를 별/전할 전]
☞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 [동]以心傳心(이심전심) 心心相印(심심상인) 不立文字(불립문자)
[내용] 經典 바깥의 특별한 傳承,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보고 불경을 얻는다.(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直指 :‘곧바로 가리킨다.’지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며 여러 군말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는 마음의 전형.
선종(禪宗)에서 말이나 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일. 달마(達磨)에 의해 중국에 전해진 조사선(祖師禪)에서는, 불교의 진수는 어떤 경전의 문구에도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체험에 의해서만 전해진다고 말한다. 이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선의 입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다. 석가가 언어로써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교내(敎內)의 법이라면, 교외(敎外)의 법은 석가의 마음을 직접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표월지(標月指: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비유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진리를 달에 비유한다면 교(敎)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으며, 이에 반해 선(禪)은 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다른 종파(宗派)가 모두 교내의 법을 가르침에 반하여, 선종에서만은 교외의 법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참고1] 老子는 道德經에서“성(聖)을 절(絶)하고 지(智)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百倍)하리 라.”고 하여, 지식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의 불필요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딱한 것은 지식이 불필요하다고 아는 것도 하나의‘앎’이요, 후세 사람들이 도덕경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이 노자의 사상을 알 수 있게 마련이니, 노자의 말은 오히려 지(知) 자체를 반성한 지의 지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사람은 그 무지 조차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 다름직도 하다고 하였거니와, 노자는 지의 불필요를 아는 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듯이, 지가 불필요함을 지로써 전하는 껏이라 하겟다. 결국 지(知) 이상의 것도 지를 통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참고2] 不立文字 敎外別傳說의 由來 우리나라 禪家의 전설은 대개 중국 선종의 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는 것으로 '禪宗系譜說'이 그러하고 '東土初祖說'이 그러하며 이제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說'도 그러하다. 다른 문제는 且置하고 이 不立文字의 문제, 곧 선종에도 所依經이 있었던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된 此說의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불교라 하는 것은 교주 釋迦牟尼佛의 敎說췱iddot;敎訓?iddot;敎示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교설 등이라 함은 言語와 文字로 된 經과 律 外에는 따로 없는 것이며,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교의 諸宗이므로, 만약 이것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經?iddot;律‥論 三藏을 所依로 하지 않고서 무엇으로써 어떠한 근거에서 自宗을 불교라 주장하는가. 선종의 견지에서는 釋迦牟尼佛이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 방법에는 二種이 있으니, 그 하나는 言說에 의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鈍根劣機에 대한 방법이요, 그 둘째는 言說文字에 의하지 않고 師資가 직접 以心傳心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殊勝한 근기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前者는 곧, 종교이요 후자가 곧, 선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참고3]도올 『碧巖錄』 講話 제1화 양무제가 달마를 만났을 때 |
■ 교자채신 敎子採薪 [가르칠 교/아들 자/캘 채/땔 나무 신]
☞자식에게 땔나무 캐오는 법을 가르치라, 무슨 일이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근본적인 처방에 힘쓰라.
[출전]『속맹자(續孟子)』.
[내용] 춘추시대 노나라의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루는 땔나무를 해 오라고 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너는 여기서 백 보 떨어진 곳에 가서 해오겠느냐? 아니면 힘이 들더라도 백 리 떨어진 곳에 가서 해 오겠느냐?"
말할 것도 없이 자식놈은 백 보 떨어진 곳으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까운 곳으로 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 곳은 언제든지 해올 수 있다. 하지만 백 리 떨어진 곳은 누가 가져가도 되니, 그 곳의 땔감부터 가져와야 우리 집 근처의 땔감이 남아 있지 않겠니?"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생각을 이해하고 먼 곳으로 땔나무를 하러 떠났다. |
■ 교주고슬 膠柱鼓瑟 [아교 교/기둥 주/두드릴 고/비파 슬]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참고]雁足:기러기 발/膠着교착/琴瑟금슬/守株待兎수주대토/,刻舟求劒각주구검/尾生知信미생지신
[출전]『史記』. [내용]조나라에 조사(趙奢)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어 병서를 가르쳤는데 매우 영리하여 뛰어나게 병법을 잘 알았다. 그러나 조사(趙奢)는,"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결전이므로 이론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병법을 이론적으로만 논하는 것은 장수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앞으로 괄(括)이 장수가 된다면 조 나라가 큰 변을 당할 위험이 있다."하며 부인에게 나라에서 조괄을 대장으로 삼지 않도록 말려 달라는 유언까지 했다.
뒷날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면서 첩자를 보내 流言蜚語를 퍼뜨렸다. "조나라 염파 장군은 늙어서 싸움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 다만 진나라는 조괄이 대장이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流言蜚語에 빠진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상여(藺相如)가 극력 반대하면서, "임금께서는 그 이름만 믿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기둥[膠柱]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준 병법을 읽었 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모릅니다."[膠柱鼓瑟]
그러나 임금은 그토록 신임하던 인상여의 말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였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날로 병서에 있는 대로 하여 전부터 내려오는 군영들을 뜯어고치고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기 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론만으로 작전을 감행한 끝에 40만이라는 대군(大軍)을 몽땅 죽이는 중국 역사 상 최대 최악의 참패를 가져왔다.
거문고의 기둥을 풀로 붙여 고정해 두고 거문고를 타니 조율을 할 수 없게 되어 소리 [音]가 제대로 날 리가 없었다
[원문]後四年, <趙惠文王>卒,子<孝成王>立. 七年, <秦>與<趙>兵相距<長平>, 時<趙奢>已死, 而<藺相如>病篤, <趙>使<廉頗>將攻<秦>, <秦>數敗<趙>軍, <趙>軍固壁不戰. <秦>數挑戰, <廉頗>不肯. <趙王>信<秦>之閒. <秦>之閒言曰: <秦>之所惡, 獨畏<馬服君><趙奢>之子<趙括>爲將耳. <趙王>因以<括>爲將, 代<廉頗>. <藺相如>曰: 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 <趙王>不聽, 遂將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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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학상장 敎學相長 [가르칠 교/배울 학/서로 상/자랄 장]
☞가르치고 배우면서 학업을 증진시키고 성장함
[출전] 『예기(禮記)』 [내용]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힘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유]口+卒啄同時 졸탁동시 : 새가 알에서 부화할 때 새끼가 안에서 톡톡 쪼는 행위와 어미가 밖에서 탁탁 쪼는 행위가 동시에 일어날 때 비로소 두꺼운 알이 깨진다는 말이다
[원문]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先學하니라. 雖有佳肴라도 不食하면 不知其味야요, 雖有至道나 不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 是故로 知不足한 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 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야요, 知困然後에 能自强야니 故로 曰 敎學相長야니라.**肴(안주 효)
[풀이]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배움이 깊을 수록 겸허(謙虛)해 진다는 뜻으로 비유해도 좋을 것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가르쳐 보면,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스승은 부족한 곳을 더 공부하여 제자에게 익히게 하며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남김없이 받아 더욱 학식이 풍부한 인재로 성장한다
[예문] ▷ 멘토링 수기공모에서 금상을 차지한 황광원(26)씨는 “나와 같은 어려움 가진 사람들이 또 어딘가에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포기하지 말고 마음으로 또 그만큼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가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하고 싶다.”면서 “멘토링을 하면서 나 또한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2006 서울신문>
▷ 가르침은 배움의 확장의 계기이며, 배움은 가르침의 시작이다. 가르치는 이는 항상 스스로 더 배워야 하며, 가르침을 통해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면서 배움을 넓혀가야 한다. 이것이 선생과 교사의 운명이다.<2006 중앙일보> |
■ 구맹주산 狗猛酒酸 [개구/사나울 맹/술 주/ 실 산]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어짐. 한 나라에 간신배가 있으면 어진 신하가 모이지 않음
[출전]『韓非者』 外儲說右 [내용]군주가 위협을 당하며 어질고 정치를 잘 하는 선비가 기용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비자(韓非子)는 한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 술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는 술을 만드는 재주가 뛰어나고 손님들에게도 공손히 대접했으며 항상 양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집보다 술이 잘 팔리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마을 어른 양천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양천이 물었다. "자네 집 개가 사나운가?" "그렇습니다만, 개가 사납다고 술이 안 팔린다니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어떤 사람이 어린 자식을 시켜 호리병에 술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술집 개가 덤벼들어 그 아이를 물었소. 그래서 술이 안 팔리고 맛은 점점 시큼해지는 거요."
[예문]"법제정을 통해 사행산업을 규제하라는 목소리에 재갈을 물린 것은 다름아닌 한나라당입니다. 대통령 말씀을 빚댄 유치한 정치공세는 즉각 중단되야할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또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답변태도를 빗대 사나운 개로 인해 주막집이 망했다는 구맹주산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기도했습니다.
"주막집 주인이 개를 길렀는데 주인한테는 꼬리를 흔들고 그렇게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손님들만 오면 사납게 짖어가지고 결국 그 주막집에는 손님들이 오지 못해서 술이 쉬어버려 망했다는 것이다." <2006 동아일보> |
■ 구미속초 狗尾續貂 [개 구/꼬리 미/이을 속/담비 초]
☞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형편없는 사람을 고관(高官)에 등용함. 벼슬을 함부로 줌.
[출전]『晉書』 [내용]서진의 재상 조왕륜이 천자를 내쫓고 즉위하자 자기편을 늘리기 위해 하인들에게까지 벼슬을 내리고 고관대작만이 쓸 수 있는 초선관[담비의 꼬리로 장식한 관]을 쓰게 함으로써 그 관을 쓴 사람 중에는 형편없는 자가 많았다.그래서 세인들이 "담비의 꼬리가 부족해서 개꼬리를 이엇다"고 욕을 했다 |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 구/ 꿀 밀/배 복/칼 검]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유] 笑中有劍(소중유검)/ 笑裏藏刀(소리장도)/ 笑面虎(소면호) /面從腹背(면종복배)/ 敬而遠之(경이원지) /羊頭狗肉(양두구육) /表裏不同(표리부동) [속담] 등치고 간 내먹는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웃고 사람 친다.)
[내용]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라고 하였다.
[원문]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참고]歷史(역사)를 龜鑑(귀감)으로 삼는 까닭은 治亂(치란)과 興亡(흥망)의 자취를 통해 그 속에서 敎訓(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明君賢相(명군현상)이 있었던 때는 治世가, 昏主奸臣(혼주간신)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亂世가 따랐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唐 玄宗(당 현종·712∼755 在位)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中國의 歷代(역대) 帝王(제왕) 중 그 만큼 人口에 많이 膾炙(회자)되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일생은 온통 劇的(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할머니였던 則天武后(측천무후)가 망쳐놓은 大唐帝國(대당제국)을 英明(영명)한 통치로 다시 일으켜 장장 30년에 이르는 유명한 ‘開元之治’(개원지치)를 이루었다. 당나라 최대의 太平聖代(태평성대)였다.
여기에는 물론 玄宗 자신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탁월한 정치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賢相의 登用 또한 빠뜨릴 수가 없다. 즉 그는 즉위 초부터 강력한 개혁정책을 밀고 나갔는데 이 때 그를 도왔던 이로 名宰相 姚崇(요숭)과 宋璟(송경)이 있다. 결국 천하는 未曾有(미증유)의 太平을 맞게 되어 기록에 의하면 도둑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위 후반기의 天寶(천보·742∼755)시대는 판이했다. 玄宗의 聰明(총명)도 날로 흐려져 갔으며 忠臣(충신)은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奸臣(간신)으로 채워지면서 급기야 대당제국은 亡國(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당시 대표적 奸臣에 宰相 李林甫(이림보)가 있었다. 宦官(환관) 高力士(고력사)의 추천으로 宰相이 된 그는 간사하고 陰險(음험)했으며 猜忌心(시기심)이 많아 자신보다 훌륭한 자는 눈뜨고 보지를 못했다. 결국 그에 의해 제거된 충신만도 張九齡(장구령), 嚴挺之(엄정지), 李適之(이적지), 李邕(이옹) 등 수십 명에 달했다.
그가 政敵(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절대로 나서지 않고 남을 시켜 처리했으며 자신은 도리어 칭찬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은밀히 온갖 죄상을 날조하고 뒤집어씌워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 제거했다. 그래서 史家(사가)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적었다.
“口有蜜, 腹有劍”(구유밀, 복유검)-입술에는 달콤한 꿀을 발랐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을 품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口蜜腹劍’으로 겉은 웃는 낯이지만 속으로는 사람을 해칠 무서운 생각을 품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문화가 흐르는 한자]
[예문] ▷ 동업하자는 사람의 말이 너무 번드르르해 미덥지가 못한데, 혹시 구밀복검일지도 모르니 한 번 더 재고해 보시지요.
▷ 모든 정치인은 먼저 국리 민리를 걱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당리를 궁리하며, 당리를 도모한 연후에 개인의 영달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그 연륜에 맞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큰 원인의 하나는 정치인이 입으로는 염불처럼 외고 다니면서 실지로는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분방한 데 있다.
▷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운운하며 호남인을 욕보이지 말 기를 엄숙히 호소한다"며 "자신들의 정치 연명을 위해 평생의 소 임을 다한 DJ를 생각하는 척하면서 실제로 (DJ를) 파는 듯한 모습 은 볼썽사납다<2005 부산일보> |
■ 구반문촉 毆槃捫燭[두드릴 구/쟁반 반/만질 문/촛대 촉]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만진다,어떤 사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함
[동]군맹모상(群盲摸象)·군맹무상(群盲撫象)·군맹평상(群盲評象)·맹인모상(盲人摸象)
[내용]옛날에 한 장님이 있었다. 그는 선천적인 장님이었으므로 태양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문득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곁에 있던 사람에게 그 모양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태양은 동반(銅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소." 그는 집으로 돌아와 동반을 찾아 구석구석 만져보고 두드려 보고는 '당당당' 하는 소리가 나자 잘 기억해 두었다. 그 후, 그가 길을 가는데 어떤 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가 동반을 두두렸을 때 들은 소리와 같았으므로, 그 장님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했다.
"저것이 바로 태양이오." 그러자 그 사람은 장님에게 말했다. "아니오. 태양은 동반 같기도 하지만 촛불처럼 빛을 낸다오." 장님은 집으로 돌아와 즉시 초 한 자루를 찾아 만져보고는 그 모양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약(대나무로 만든 구멍이 셋 또는 여섯 있는 피리)을 만지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이 정말 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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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사일생 九死一生 [아홉 구/죽을 사/한 일/날 생]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 [동]만사일생[萬事一生] [출전]『초사(楚辭)』《사기(史記)》〈굴원열전(屈原列傳)〉 [내용]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겪고 겨우 살아난다는 말로, 비슷한 말에 십생구사(十生九死)가 있다.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다. 초왕(楚王)의 일족으로 박학다식하고 변론(辯論)에 뛰어났기 때문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회왕(懷王)의 신임을 얻어 삼려대부(三閭大夫:왕가를 다스리는 대부)에 올랐으나, 양왕(襄王) 때 모략을 받아 두 번씩이나 강남(江南)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한 뒤 우국시(憂國詩) 회사부(懷沙賦)를 남기고 멱라수(羅水)에 빠져 죽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굴원열전(屈原列傳)〉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굴평(屈平:平은 굴원의 이름)은, 임금이 신하의 말을 듣고 분간하지 못하고, 참언(讒言)과 아첨하는 말이 왕의 밝은 지혜를 가리고, 간사하고 비뚤어진 말이 임금의 공명정대함을 상처내어 마음과 행실이 방정한 선비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했다. 그리하여 근심스러운 생각을 속에 담아 〈이소(離騷)〉 한 편을 지었다.”이소(離騷)의 제6단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길게 한숨을 쉬고 눈물을 닦으며, 인생의 어려움 많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선(善)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雖九死 猶未其悔(유미기회)].’” 이 〈구사(九死)〉에 대하여, 《문선(文選)》을 편찬한 유량주(劉良注)는 이렇게 말했다. “아홉은 수의 끝이다. 충성과 신의와 곧음과 깨끗함[忠信貞潔(충신정결)]이 내 마음의 선하고자 하는 바와 같으니, 이 해(害)를 만남으로써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남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유량주가 말한 이 ‘아홉 번 죽어서 한 번 살지를 못한다.’에서 나온 말로 죽을 고비에서 간신히 살아난다는 뜻이 된다. <두산백과> [원문]又申之以攬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有末悔
[예문] ▷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다 ▷ 그는 징용에 끌려갔다가 광복이 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했다.
▷그를 독일 점령 하에 있는 폴란드의 한 게토 (유태인 집단 거주지) 로 데려간 사람은 피터 카소비츠 감독이다. 헝가리 출신 유태인인 그는 다섯 살 때 유태인 수용소에 끌려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이 있다.<한국일보>
▷ 데니 브라운을 접촉하고 개를 살해할 것을 부탁했다.선수금 1,000달러를 받고 성공하면 500달러를 추가로 받기로 한 브라운은 개들이 좋아하는 개껌으로 ‘루이’를 유혹해 한적한 공터로 데려가 도끼로 수차례 내리쳤으나 개는 구사일생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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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상유취 口尙乳臭 [입 구/아직 상/젖 유/냄새 취]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아직 어리다. 하는 짓이 어리석고 유치 하다. [속담] 이마빡에 피도 안 말랐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출전] <史記>高祖紀 [내용] 한왕이 한신을 시켜 위왕 표를 치게 하면서 물었다. "유나라의 대장이 누구인고?" 누군가가 대답했다. "백직(柏直)입니다." 그러자 한왕이 말했다. "입에서 젖비린내가 나는구나. 어찌 우리 한신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원문]漢王以韓信魏王豹 問魏大將誰 左右對曰柏直 漢王曰 是口尙乳臭 安能當吾韓信
[예문] ▷ 나이 오십 줄에 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입에서 젖내 나는 년을 집구석으로 끌어 들이고 지랄을 버릇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슈?…[염상섭(廉想涉), 『三代』]
▷ 우리 집에서는 새 며느리를 맞는다고 야단 법석을 하며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제대로 가시지 못한, 열세살 먹은 꼬맹이에 冠帶(관대)를 입히고 紗帽(사모)를 씌워 나귀 등에 올려 앉히고 논틀을 건느고 산모롱이를 돌아 마을 앞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이와 같은 길을 三十里 쯤이나 갔을까. 역시 어떤 農村 조그마한 초가집 앞에 내려 놓는 것이었다.≪이희승, 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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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십춘광 九十春光 [아홉 구/열 십/봄 춘/빛 광]
☞봄의 석 달 동안. 석 달 동안의 화창한 봄 날씨. [예문] ▷ 유유창천(悠悠蒼天)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인데 북망산천아 말 물어보자. 역대제왕과 영웅열사가 모두다 네게로 가드란 말가, 경리안색(鏡裡顔色)을 굽어보니 검든머리 곱든 양자(樣姿) 어언간에 백발이로구나. 인간 칠십은 고래희인데 팔십장년, 구십춘광 장차 백세를 다 살아도 죽기가 싫어서 일러를 왔건만 하물며 아동초목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생각하면 긴들 아니 가련탄 말가≪엮음수심가≫
▷ 목화는 구름과 같이 몽실몽실 피는 곳 뒤뜰엔 봄이 오면 배나무꽃 만발하여 백설인가 놀라보면 여름 하늘 구름같고 뒷산의 꾀꼴새 맞아 구십춘광 즐겼지≪趙愛泳, 망향가≫
▷ 늦봄 멀구슬나무가 필 무렵부는 바람이 언뜻 겨드랑이를 스쳐도 옛가지는 다시 꽃필 마음이 없는 것이겠지요. 구십춘광 그리는 어리석음은 오직 늙음에 이른자의 몫입니다.≪김탁환 나,황진이≫中에서 |
■ 구여현하 口如懸河 [입 구/같을 여/매달 현/물 하]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동] 口若懸河(구약현하) /靑山流水(청산유수) [속담]말 잘하기는 소진 장의다./蘇張의 혀.(蘇陳張儀)
[내용] 진(晉)나라 때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비범하고 어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밝히기를 좋아하였다. 도한 老子와 莊子의 사상을 즐기면서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학자였다. 당시 그에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특히 남들과 여러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였다. 왕연(王練)이 이르기를「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흐르는 물이 큰 물줄기로쏟아져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며 칭찬하였다.
[원문]廳象語면 如懸河하여 瀉水注而不竭이라 ** 象(코끼리 상) 瞭(밝을 료) 練(익힐 련) 廳(들을 청) 瀉(쏟을 사) 注(물댈 주)
[예문] ▷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 ▷ 그는 아버지의 질책에 청산유수로 자신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 선생은 그 헌칠한 신수에 겸하여, 이야기가 또한 청산유수의 달변이었다.≪이희승, 먹추의 말참견≫ ▷ 그의 말솜씨는 청산유수 같아서 사흘 밤 사흘 낮을 꼬박 같이 지내면서도 조금도 지루한 줄 몰랐다.≪박완서, 미망≫
▷ 우리는 흔히 청산유수와 같이 유창하게 쏟아지는 연설을 좋은 연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막힘이 없이 유창하게 흘러가는 달변이 자꾸만 더듬거리는 눌변보다야 나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창함 자체만으로 좋은 스피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좋은 스피치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유창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유창함은 좋은 스피치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다. <광운대학 홈페이지> |
■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 구/소 우/한 일/터럭 모]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 많은 것 가운데 극히 미미한 하나.
[동] 九牛毛(구우모) /滄海一粟(창해일속) /大海一滴(대해일적)-->물방울 적 [속담]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뽑기다.
[출전] 『한서(漢書)』司馬遷, 報任安書 [내용]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은 秦始皇(진시황)이지만 漢武帝(한무제)는 秦나라 보다도 몇 배나 더 큰 판도를 이룩했다. 동서남의 3방향으로 국력을 뻗쳐 영토를 확장했다. 동쪽으로는 우리나라까지 쳐들어와 漢四郡(한사군)을 설치했음은 周知(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武帝에게도 북쪽의 오랑캐 匈奴(흉노)만은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영토를 넓히기는 커녕 侵攻(침공)과 掠奪(약탈)을 당해야 했으니 大漢帝國(대한제국) 武帝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장군 李陵(이릉)을 시켜 匈奴를 치게 했지만 오히려 패하여 항복하고 말았다. 武帝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다들 李陵을 逆賊(역적)으로 몰아 부쳤다. 그러나 『사기(史記)』의 저자司馬遷(사마천)만은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武帝가 그의 의견을 물어왔다. 司馬遷은 솔직하게 말했다.
“5000의 군사로 8만의 흉노 騎兵(기병)을 당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입니다. 그가 항복한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李陵의 친구였다. 하지만 객관적 상황을 고려하여 한 말이 武帝의 노여움을 건드렸음은 물론이다. 결국 그는 下獄(하옥)되어 腐刑(부형·宮刑이라고도 함. 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고 말았다. 司馬遷은 극도의 치욕을 느낀 나머지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 司馬談(사마담)의 유언이 귓전을 때렸다. 역대로 史官(사관)을 맡았던 家門의 명예를 위해 중국 최초로 通史(통사·모든 왕조의 역사를 담은 것)를 남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유언을 이어야했다.
또 이렇게 죽는다면 개죽음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泰山(태산)같이 위엄을 갖춘 죽음이 있는가 하면, 새의 깃털보다도 가벼운 죽음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 자살로 끝맺는다면「가령 내가 법에 복종하여 죽임을 당할지라도 마치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假令 僕伏法하여 受誅라도 若九牛亡一毛라.)동정은 커녕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인 즉 그 명예는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라고 하였다. 그의 심정은 그가 친구 任少卿(임소경)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유명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다. 九牛一毛는 여기서 나온 말로 ‘매우 하찮은 것’을 뜻한다.
마침내 그는 자살을 단념하고 恥辱(치욕)을 감수한 채 通史의 저술에 매달렸다. 不朽(불후)의 명저 ‘史記’(사기)는 이렇게 하여 태어났다. .
[원문]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人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曆近乎卜祝之間, 固主上所 弄, 倡優畜之, 流俗之所輕也.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 何異
[예문] ▷ 이같은 분위기는 "자리를 차지하고 녹 만 축내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의 행태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한 고위관계자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며 "퇴진론은 수많은 쇄신안 중 한 의견인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하다"고 말했다.<한국일보 권노갑 퇴진 파문>
▷ 책에 실린 칠십여 편의 작품들은 구우일모 격인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그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로 편집되었으리라고 준구는 믿고 있다.≪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 미화 2천400만달러(약 225억원). 대부분 나라에겐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한 금액이다. 하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겐 정말 `큰 돈'인 것으로도 보인다.<2006 연합뉴스>
▷ 혹자는 중국 13억 인구에 북한 탈북자 정도야 구우일모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인원 수'가 아니다. <2006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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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이지학 口耳之學 [아홉 구/귀 이/어조사 지/배울 학]
☞귀로 듣고 입으로 지껄이는 천박한 학문.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하여 조금도 자기를 이롭게 하지 않고, 깊이가 없는 학문을 말함. ≒ 구이(口耳).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것으로 만들지 못한 학문을 말한다. [출전]《순자(荀子)》〈권학편(勸學篇)〉
(구이지학은) 소인의 학문이다. 귀로 들은 것이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일 뿐. 어찌 일곱 자의 몸에도 채우지 못하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軀哉(소인지학야 입호이출호구 구이지간즉사촌 갈족이미칠척구재)]."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으면 그대로 마음에 삭이고, 신체에 정착하여 인격을 높이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사소한 말이나 동작도 많은 사람의 거울이 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면 곧바로 입으로 나온다. 즉, 들은 대로 즉시 타인에게 말하고, 조금도 자신을 수양하는 양식으로 두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겨우 네치 인데 그 사이동안만 신체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된다.
옛날 사람은 자신의 몸을 갈고 닦고 덕을 쌓기 위해 학문을 했으나 요즈음은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쳐서 생활의 수단으로 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의 학덕(學德)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반해 소인의 학문은 생활의 도구로 하기 위한 것이다. 순자가 지적했듯이 곧잘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하며, 모르는 바를 아는 체 하는 것을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병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훈계하고 있다.
이 '구이지학'과 뜻이 비슷한 말로 《논어》〈양화(陽貨)〉편에, "길에서 설들은 것을 길에서 되받아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것이다[孔子曰 道聽塗說 德之棄也(공자왈 도청도설 덕지기야)]." 앞 길에서 들은 좋은 말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신의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다음 길에서 곧 남에게 말해 버린다. 결국 '구이지학'과 같은 짓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다. 좋은 말은 모름지기 마음에 간직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사헌부 대사헌 이칙 등이 차자를 올리기를, “…세적이 글을 읽었다지만 어찌 1, 2년의 구이지학으로써 능히 형옥의 중임을 감당하겠습니까?” 하였다.(司憲府大司憲李則等 上箚字曰…世勣雖曰讀書 豈可以一二年口耳之學 能堪刑獄重任乎) [성종실록 권제221, 7장 앞쪽~뒤쪽, 성종 19년 10월 4일(갑오)] |
■ 구절양장 九折羊腸 [아홉 구/꺽일 절/양 양/창자 장]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하다.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 [예문] ▷ 구절양장 골마다 파고든 계류는 호남 의 고봉을 휘돌아 북으로 빠지고 그물길을 인도한 노령과 소백 두기둥 사이에 높은 지대를 이뤘다. 금강상류의 진안고원 운장산은 이 고원의 서북에 위치한 1,126m의 고산으로 호남평야를 굽어보며 노령봉 제일의 眺望을 연출한다.
▷ 비가 와 강물에 기운이붙으면 강원 산골의 목재를 이어 붙인 뗏목이 출발했다. 구절양장 정선과 영월의 골짜기를 돌아 안동에 닿았고 이어 남한강을 타고 한양까지 긴 여행을했다. 이 위험한 여행을 무릅쓴 이유는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떼돈’이라는 말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영월의 동강뗏목축제(29, 30일)는그 시절의정한을 더듬는 행사이다.<한국일보> |
■ 구화지문 口禍之門 [입 구/재앙 화/어조사 지/문 문]
☞입은 재앙의 문. 말을 삼가도록 경계.≒구시화문[口是禍門] [유]病從口入 禍從口出 (병종구입 화종구출)
[출전]《전당서(全唐書)》〈설시(舌詩)〉 [내용] “입은 곧 재앙의 문이요,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이라 하였으며 '구화지문'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풍도는 당(唐)나라 말기에 태어났으나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당(後唐) 때에 재상을 지냈다. 후당 이래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 등 여러 왕조에서 벼슬을 한 사람으로, 그 동란의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처신(處身)에 많은 경륜(經綸)을 쌓은 사람으로 위와 같은 처세관(處世觀)을 남겼다.
《주희(朱熹)》〈경재잠(敬齋箴)〉에도 독에서 물이 새지 않는 것과 같이 입을 다물고 발언에 신중을 기하라[守口如甁(수구여병)]고 했다. 우리 말에도 "화는 입으로부터 나오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간다." "모든 중생은 화가 입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네이버백과>
[원문]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閉口深藏舌 安身處處牢 |
■ 국사무쌍 國士無雙 [나라 국/선비 사/없을 무/짝수 쌍]
☞ 그 나라에서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선비. 매우 뛰어난 인재. [동]一歲之雄(일세지웅) : 한 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로 그시대에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 로 뛰어난 인물. / 棟梁之材(동량지재)--기둥이 될 만한 인물
[출전]『史記』<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내용] 한왕 유방(劉邦)이 군사를 이끌고 남정(南鄭)으로 갈 때 길이 험하고 멀어서 도주에 이탈하는 자가 많아 군사들이 동요하자 한신(韓信)도 도망하였다. 그 때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그것을 알고 급히 한신을 쫓아갔다. 유방은 충복인 소하마저도 도망한 줄 알고 크게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에 한신을 데리고 돌아오니 유방이 꾸짖으며 다그쳤다.“왜 도망쳤는냐?”소하가“도망한 것이 아니라 한신을 잡으러 갔었습니다.”“다른 장수들이 이탈했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유독 한신만을 쫓아간 이유는 무엇이냐?”
소하가 말하기를“「모든 장군은 얻기가 쉬울 따름이지만 한신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인물 중에 둘도 없습니다.(諸將은 易得耳나 至如信者는 國 士無雙이니다.)」 폐하께서 한중(漢中)의 왕만 되시려 한다면 그가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한신 없이는 더불어 그 일을 도모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원문]信數與蕭何語, 何奇之.至南鄭, 諸將行道亡者數十人, 信度何等已數言上, 上不我用, 卽亡. 何聞信亡, 不及以聞, 自追之. 人有言上曰: 丞相何 亡. 上大怒 如失左右手. 居一二日, 何來謁上, 上且怒且喜, 罵何曰: 若亡, 何也? 何曰: 臣不敢亡也, 臣追亡者. 上曰: 若所追者誰何? 曰: 韓信也. 上復罵曰: 諸將亡者以 十數, 公無所追;追信, 詐也. 何曰: 諸將易得耳. 至如信者, 國士無雙. 王必欲長王漢中, 無所事信;必欲爭天下, 非信 無所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 王曰: 吾亦欲東耳, 安能鬱鬱久 居此乎?何曰: 王計必欲東, 能用信, 信卽留;不能用, 信終亡耳. 王曰: 吾爲公以爲將. 何曰: 雖爲將, 信 必不留. 王曰: 以爲大將. 何曰: 幸甚. 於是王欲召信 拜之. 何曰: 王素慢無禮, 今拜大將如呼小兒耳, 此乃信所以 去也. 王必欲拜之, 擇良日, 齋戒, 設壇場, 具禮, 乃可耳. 王許之. 諸將皆喜, 人人各自以爲得大將. 至拜大將, 乃韓信也, 一軍皆驚.
▷ 蕭(맑은대쑥 소) 何(어찌 하) 諸(모두 제) 易(쉬울 이) |
■ 국치비가 國恥悲歌 [나라 국/부끄러울 치/슬플 비/노래 가]
☞나라를 잃은 수치 부끄러움을 탄식, 노래한 작품. [참고][송암유고] 풍설(風雪) 석거친 날에 뭇노라 북래사자(北來使者) 소해용안(小海容顔)이 언매나 치오신고, 고국(故國)의 못 죽는 고신(孤臣)이 눈물계워 하노라.
*북래사자(北來使者): 북쪽 심양에서 온 심부름꾼(사자) *소해용안(小海容顔): 우리 나라 왕자의 모습 *고국(故國)의: 고국의 다음에 생략된 말 : '국치(國恥)에도' *고신(孤臣): 필자 자신
風雲交紛日 爲問北來使 小海容顔苦 幾多耐嚴冬 故國孤臣在 未死但垂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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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계일학 群鷄一鶴 [무리 군/닭 계/한 일/ 학 학]
☞많은 닭 중에 한 마리의 학.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 [동]鶴立鷄群(학립계군) :. 鷄群孤鶴(계군고학). / 出衆(출중).
拔群(발군). 絶倫(절륜)..壓卷(압권)./ 白眉(백미) 傑出(걸출) /
鐵中錚錚(철중쟁쟁) : 쇠 중에서 소리가 가장 맑다는 뜻으로 평
범한 사람들 중 특별히 뛰어 난 사람.
[반]人中之末(인중지말) :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뒤떨어지고
못난 사람. [속담] 닭이 천(千)이면 봉(鳳)이 한 마리. [출전] 『晉書 』紹傳 [내용]해소의 자는 연조라 하는데, 죽림칠현의 한사람으로서 유명한 위의 중산대부 혜강의 아들이다. 소는10세 때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사형을 당하자 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가 당시 이부 에 있을 때 무제에게 상주하였다.
"강고에 부자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 시대의 진나라대부인 극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비서랑을 시키십시오." "경이 추천하는 사람 같으면 승이라도 족하겠지. 반드시 낭이 아니라도 좋지 않겠는가." 황제는 그를 비서랑보다 한등급 위인 비서승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그 후 소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사람인 왕융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혜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하여 ,독립불기한 들학이 닭 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네."
[원문]再昨日 初見 紹於混雜之群中 其資倜 如群鷄一鶴也
[예문] ▷ 신라는 7세기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시달리며 생존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
결과 신라는 당과의 연합을 성사시켰고, 결국 삼국을 통합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일찍
이 첩자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유신의 구실이 상당히 컸다. 첩자에 관한 한 김유신은
군계일학이었다.<2006 뉴시스>
▷ 절륜한 담력
▷ 용맹이 절륜하다
▷ 그 장사는 기운이 절륜했다.
▷ 용맹스러운 오랑캐 장수 울지내는 사람 위에 뛰어 나는 절륜한 힘이 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박종화, 임진왜란≫
▷ 아니나 다를까, 둘러섰던 사내들이 와락 달려들어 두 놈의 저고리와 바지를 홀딱 벗
기니 볼기짝은 고사하고 그래도 수청기녀들에겐 기운이 절륜인 음경이 드러났다.≪김
주영, 객주≫
▷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너무도 유명한 영·정조 시대(英正朝時代) 북학파(北學派)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그가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나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은 현실에 대한 신랄(辛辣)한 풍자(諷刺)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이(文章) 또한 기발(奇拔)하여, 그는 당대(當代)의 허다한 문사(文士)들 중에서도 최고봉(最高峰)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앙(推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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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맹무상 群盲撫象[무리 군/소경 맹/어루만질 무/코끼리 상]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범인의 좁은 식견의 비유.
[동] 군맹모상(群盲摸象). 군맹평상(群盲評象). 맹인모상(盲人摸象)
[출전]『涅槃經(열반경)』 [내용]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 날 맹인들
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
을 궁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얼마 후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댸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와 같사옵니다." (상아) "키와 같나이다." (귀) "돌과 같사옵니다." (머리) "절굿공 같사옵니다." (코) "널빤지와 같사옵니다." (다리) "독과 같사옵니다." (배) "새끼줄과 같사옵니다." (꼬리)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비유한 것이고, 소경들은 밝지 못한 모든 중생(衆生)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
고 이 이야기는 석가모니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즉 모든 중생들에게는 각
기 석가모니가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예문]대북금융제재 논의에 관해 주미대사와 청와대의 이야기가 다르고, 이라크 파병, 레바논 평화유지군 문제는 청와대와 미국측의 이야기가 각각 다르다. 더구나 청와대에
서도 한미정상회담과 방미 성과에 대한 책임 있는 보고를 한 적도 없으니, 국민들의 불
안은 증폭되고, 갖가지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 군맹무상(群盲撫象),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다.<2006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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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웅할거 群雄割據 [무리 군/영웅 웅/나눌 할/차지할 거]
☞많은 영웅들이 각지에서 자리잡고 세력을 규합하여 대립하는 것. [참고]分割(분할).役割(역할).割引(할인)
[예문] ▷ 대신증권이 독주해온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시장에 군웅할거 시대가 열리
고 있다. 삼성, LG 등 대형증권사들이 잇따라 새로운 시스템을선보이며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기 때문이다.<매일경제>
▷ 1990년대 비엔나의 커피 업계가 군웅할거 시대를 거친 후 2001년 12월 미국계 스타
벅스의 비엔나 진출을 계기로 비엔나 커피하우스는 모던과 올드의 구분이 더욱 명확해 졌다<2006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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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자불기 君子不器 [임금 군/아들 자/아니 불/그릇 기]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참된 인물은 편협하지 않다. [출전]『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해설] 공자가 한 말로 군자란 그 크기가 물건을 담는 데 불과한 그런 그릇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군자는 아니다. 지식과 아울러서 인격도 동시에 갖추고 덕을 실천하는 참된 인물이 군자인다. 오기와 아집, 편경과 독선을 부리는 그런 편협한 사람은 결코 군자가 아니다. 융통성이 풍부하고 포용력이 많은 인물이 참된 인
물인 것이다. 성인군자라고 할 때 성인이나 군자나 모두 참된 인물을 말한다.
[예문] 극기, 만들어진 나의 극복 -- 내 진정한 욕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자기, 만들어진 자기를 극복함이 절실해. 다름 아닌 극기야. 이해관계에 따르는 자기, 소인의 삶에 안주하는 자기를 극복함이지. 그것이 자기를 더 큰 자기, 진정한 자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요, 그런 자기들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거야. 공자의 유명한 말인 군자불기(君子不器), 즉 ‘군자는 그릇처럼 자기를 고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 <한겨레21 中에서> |
■ 군자삼락 君子三樂 [임금 군/즐거울 락]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 [출전]『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군자유삼락이 왕천하불여존언 父母具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작於人 二樂也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이에 들어있지 않다.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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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익자삼요(益者三樂)--예악(禮樂)을 적당히 좋아하고, 남의 착함을 좋아하고, 착한 벗이 많음을 좋아하는 것. *損者三樂(손자삼요)--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
주색을 즐김).『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
[예문]군자도 아니면서, 천하의 영재를 가르칠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으면서 어찌 ‘군자
삼락’의 그 오묘한 세계를 논할 수 있을 것인가마는 좋은 지도자를 옆에 두고 그의 용병
술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결코 덜 하지 않다. <2006 스포츠서울> |
■ 군자표변 君子豹變[표범 표/변할 변]
☞군자는 자신에게 과실이 있다고 일단 판단되면 이를 고치는 데에 매우 신속하고 확실함/ 범의 무늬가 두드러지듯 성질과 태도가 급변함 [출전]『주역』 [내용]대인은 범처럼 변하고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나 소인은 얼굴 빛만 고칠 뿐이다 [원문]大人虎變 君子豹變 小人革面 [해설] 오늘날 이말은 그저 '표변'이라고만 따로 떼어 쓰면서, 자신의 주의, 주장이나 행동을 지조없이 하루아침에 싹 바꾸어버리는 비겁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참고]군자 화이부동(和而不同) ---군자는 사람들과 친화하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는다는 뜻. 곧 대인관계에 있어 중용의 덕을 지켜,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을 짓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
<중용>에 '화이불류(和而不流:화합하되 횝쓸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논어] 자로(子路) 편
[예문] ▷ 김 후보자는 교육철학과 정책을 소신 있게 밝혀야 한다. 이 정권 인사들의 코드에 맞춘 '앵무새 답변'으로 일관하면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2006 중앙일보>
▷ 아베 총리를 ‘뉴 아베’로 규정했다. “우리들의 걱정은 기우였다”며 그 변신의 모습을 ‘역경(易經)’에 나오는 고사성어인 ‘군자표변(君子豹變ㆍ군자는 잘못을 깨달으면 즉시
고친다)’에 비유했다. <2006 한국일보> |
■ 궁서설묘 窮鼠齧猫 [다할 궁/쥐 서/물 설/고양이 묘]
☞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급한 사정이 되면 강자에게 대듦
[예문] ▷ "그놈들 제멋대로 매는 걸 어떻게.""그럼 오빠는 이까짓 메밀 간 세도 바치려네?"덕아는 자못 서글퍼 하는 말씨였다."글쎄, 먹고 남으면 바치지!"
들깨는 픽 웃었다. 그는 최근에 와서 갑자기 무던히 배짱이 커졌다. 덕아는 오빠의 말에 확실히 일종의 미더움을 느꼈다.--- 김정한 소설 <사하촌> 6장 부분 '들깨의 심정'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
▷ 작은 야당이 궁지에 몰린 것은 구조적이다. 이때 소야는 생존을 걱정한다. 궁지에 몰리면 목숨 걸고 물어버리는 형국(窮鼠齧猫.궁서설묘)이다. 야당이 작지만 매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밖에 없는 게 거여소야 구도다. <2010.4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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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여지책 窮餘之策 [다할 궁/남을 여/어조사 지/계책 책]
☞매우 어려운 가운데 짜낸 한가지 계책.
[동]苦肉之策 [예문] ▷ 정부가 당장 올해 50%를 지원하려면 추경예산 잔여분 1조5000억원을 거의 모두 사용해야 한다.그러나 7000억원 이상은 지원할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또 다른 조성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그래서 당국이 짜낸 궁여지책이 바로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현재의 갑당 2원에서 150원 내지 200원으로 해 최고 100배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매일경제>
▷ 텐트를 가져가기로 하다 보니 텐트 자체의 부피와 무게도 문제지만, 이것저것 늘어나는 짐들이 더 걱정이었다. 오죽하면 짐을 줄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1인용 텐트까지 고려되었을 정도다. 텐트는 잠만 자는 곳이므로 큰 공간이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에서다<2006 오마이뉴스> |
■ 궁조입회 窮鳥入懷 [다할 궁/세 조/들 입/품을 회]
☞ 궁지에 몰린 새가 급하면 품안으로 뛰어든다. 사정이 급박하게 되면 다시 타협하고 돌아 온다는 뜻
[내용]窮鳥入懷 仁人所憫 궁조입회 인인소민<顔氏家訓>- 궁한 새가 품에 들어오면 어진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예문] ▷ 태조는 웃음으로 국파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국파의 심정은 모르는 바 아니었다. 알기에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기어이 마중 나가시는 까닭을 말해 주소서." "장군은 궁조입회(窮鳥入懷)란 말을 알고 계시오이까?" "폐하, 단지 그 뜻이옵나이까?<소설-고려태조 왕건>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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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모술수 權謀術數 [권세 권/꾀할 모/재주 술/셈 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는 교묘한 술책.
[예문] ▷ 이문영이사장은 최근 복간된 '씨량의 소리' 머리말에서 "현재의 정치는 '권모술수의 정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고 규정하며 김대통령에게 "가던 길을 바꿀 것을 촉구했
다. <동아닷컴>
▷ 강수연의 눈빛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다. 관비라는 이유로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눈빛에서는 섬뜩하고, 자신의 야망을 숨기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부분에선 간교함으로 넘친다.<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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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불십년 權不十年 [권세 권/아니 불/열 십/해 년]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한다. 또는 영화는 일시적
이어서 계속되지 않는다.
[유]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 열흘 붉은 꽃이 없다,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속담]All good things must come to an end.-- 최근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우리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All'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
아야 모든 것이 좋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유한성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영원히 좋은 것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속담은 '모든 즐거운 경험들은 결국 끝이 나게 마련이다(All pleasant experiences eventually end).'라는 의미다. <속담영어>
[내용1]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秦始皇)은 '덕은 삼황(三皇)보다 낫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라고 하여, 자신의 칭호를 왕에서 황제(皇帝)로 바꾸었다.
자신은 첫 번째 황제이므로 '始(처음 시)'를 써서 '시황제(始皇帝)'라 하였고 아들을 이세황제, 그 다음을 삼세황제라 하여 자자손손 만년토록 이어지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황제의 명(命)은 '제(制)', 령(令)은 '조(詔)'라 하고, 짐(朕)과 옥새(玉璽)란 말도 황제에 한해서만 사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천하의 명옥(名玉) 화씨지벽(和氏之璧)에 '수명우천(受命于天-하늘에서 명을 받아 기수영창(旣壽永昌-영원히 번창한다)'이라고 새겨진 옥새
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처럼 기세 등등하던 진시황의 왕조는 2세황제인 호해(胡亥)에 이르러 2대 15
년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오래도록 누릴 수 없다는 말로,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거나 권력을 잡으려고 안달하는 인간들에게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내용2]人無十日好(인무십일호)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인데 月滿卽虧(월만즉휴)이니 權不十年(권불십년) 이니라.
사람의 좋은일은 10일을 넘지 못화고 붉은꽃의 아름다움도 10일을 넘지 못하는데, 달도 차면 기우니 권력이 좋다한들 10년을 넘지 못하느니라..
[예문] ▷ 세 치 혀를 적당히 놀려 권력자의 환심을 얻어 출세해 보려는 위선자들이 많다는 사
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니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 위국위민의 대도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세상만사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오는 봄을 누가 막으랴?인간이 만들어낸 경제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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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징악 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징계할 징/악할 악]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하다.[출전]『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내용]노(魯)나라 성공(成公) 14년 9월에 제(齊)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가 있던 교여(僑如 : 宣伯)가 부인 강씨(姜氏)를 제나라로 데리고 돌아왔다. 교여라고 높여서 부른 것은 부인을 안심시켜 슬며시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선백(宣伯)이 제나라로 공녀(公女)를 맞이하러 갔었을 때는 선백을 숙손(叔孫)이라고 불러 군주(君主)의 사자로 높여 부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이렇게 말한다. "춘추(春秋) 시대의 호칭은 알기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알기 쉽고, 쉬운 것 같으면서도 뜻이 깊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으면서도 정돈되어 있고, 노골적인 표현을 쓰지만 품위가 없지 않으며, 악행을 징계하고 선행을 권한다.[勸善懲惡] 성인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지을 수 있겠는가?"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원문]成公 14年 九月 僑如以夫人婦姜氏至自齊. 舍族, 尊夫人也. 故君子曰, "春秋之稱, 微而顯, 志而晦, 婉而成章, 盡而不汚, 懲惡而勸善, 非聖人, 誰能脩之?"
[예문] ▷ 판소리계 소설들은 거의 겉으로 드러나는 주제(표면적 주제)와 속에 묻혀 있는 주제(이면적 주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표면적 주제는 '권선징악, 인과응보, 개과천선'등의 유교적 이념의 구현이라면 이면적 주제는 '평민의식의 성장에 따른 양반층에 대한 비판,봉건이념의 허구성 폭로' 등이다.
▷ 암행어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판타지 요소를 결합시킨 SF 판타지 만화라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암행어사'라는 비밀요원이 있었던 '쥬신'이라는 나라가 멸망하고 사라진 때, 한명의 암행어사만 남아 세상을 떠돌면서 권선징악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외롭게 수행한다.<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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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여 權輿 [저울 권/수레 여]
☞사물의 시초,기원,창시 [동]미증유[未曾有]/,전대미문[前代未問]/전인
미답[前人未踏]/파벽[破僻],파천황{破天荒]-드
문 성씨의 가문이나 양반 없는 시골에서 인재가
나서 원래의 미천한 상태를 벗어남.효시[嚆矢],
남상[濫觴] [주] 權은 저울의 추,輿는 수레의 차대(車臺) 저
울을 만들 때 추를 먼저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차대부터 만든다는데서 유래, 바둑을 두는 데 있어서도 먼저 네 귀를 놓아서 자리를 정하는 등 시초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점임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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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토중래 捲土重來 [말 권/흙 토/거듭 중/올 래]
☞흙 먼지를 날리면서 거듭 온다.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세력을 갖추어 일어남. [동]死灰復燃(사회부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 붙었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세력을 다시 잡음**席捲(석권).--모조리 다 차지함/(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다
[내용] 唐나라 두목(杜牧 803∼852 : 杜甫를 老杜라 하
고 두목은 少杜라 함)은 ‘題烏江亭詩’에「승패는 병가에
서도 기약할 수 없는 것, 부끄러움을 안고 참는 것 이것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 재주있는 준걸이 많은데, 흙 먼지를 날리면서 다시 올 것을 알지 못 하였도다.[勝敗不可兵家期하고, 包羞忍恥是南兒이라. 江東子弟多才俊한데, 捲土重來未可知로다]」라 하여, 項羽가 죽은지 천 년이 지난 어느 날, 오강의 여사(旅舍)에 머물러, 그의 단순하고 격한 성격,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에서 볼 수 있는 인간성, 그리고 그의 요절(夭折-31세) 등을 회상하며 비감에 잠겨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 灰(재 회) 燃(불탈 연) 題(표제 제) 包(감쌀 포) 羞(부끄러워 수) 俊(준걸 준)
[예문] ▷ 대통령후보를, 민중당의 유진오(兪鎭午)대통령후보는 당 대표를 맡는 타협이 이뤄졌다. 절치부심하던 尹전대통령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을 상대로 권토중래의 기회를 잡았고, 대선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던 민중당 실세들은 통합신당의 당권 장악에 만족했다.<중앙일보 칼럼>
▷ 외시 9회로 송 실장의 오랜 라이벌인 이수혁 주 독일대사의 행보도 관심사다. 이 대사는 안보정책실장 자리를 놓고 송 실장과 경합을 벌였으나 막판에 뒤져 권토중래를 노려왔다. <2006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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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감 龜鑑 [거북 귀/거울 감]
☞사물의 거울. 본보기. 법도.
[내용]옛날 중국에서는 거북의 등을 불에 구워
그것이 갈라지는 균열을 보고 사람의 장래나 길
흉을 점쳤으며 자신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보기
위해 대야에 물을 떠놓고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
았다고 한다.--길흉을 점치고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잡는다
[예문] ▷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 ≒귀경. ▷ 귀감이 되다 ▷ 귀감으로 삼다 ▷ 신사임당은 한국 여성의 귀감이다. ▷ 심청의 효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 저는 그토록 정확을 기하려는 그의 성실한 자
세를 작가의 귀감으로 여겨 언제나 존중하고 있지요.≪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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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거래 歸去來 [돌아갈 귀/갈 거/올 래]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감. [참고] 『귀거래사(歸去來辭)』 중국 동진(東晋)·송(宋)의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적 작품. 405년(진나라 의회 1)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
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예문] ▷ "박봉은 참을 수 있어도,전공과 거리가 먼 일로 시간을 때우는 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통상교섭본부에서 통상전문관으로 일하다 최근 "본업"으로 복귀한 K 변호사의 "귀
거래사"다.
▷ 저는 이내 씁쓸해지고 말았습니다. 80년 세월을 넘게 살다간 두 노인의 죽음의 차이
를 싸늘하게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오늘 저의 이야기는 '한세
상 이름없이' 살다 돌아가는 민초들의 쓸쓸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자...(이주빈 기자) 국가보안법은 그 노인네의 밥줄이었다 <오마이뉴스> |
■ 귀이천목 貴耳賤目 [귀할 귀/귀 이/천할 천/눈 목]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김.먼 곳에 있는 것을 괜찮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나쁘게 여기는 보통 사람들의 풍조를 가리킨다
[내용]본래 이 말은 복고주의적(復古主義的) 성향이 강한 중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귀고천금(貴古賤今)'과 같은 말로 쓰인다. 〈환자신론(桓子新論)〉에 이런 내용이 있다."세상 사람들은 먼 곳의 소문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서 제 눈으로 본 것을 천
한 것으로 여긴다. 또 옛것을 귀하게 여기고, 지금 것을 비천하게 여긴다." 《진서(晉書)》〈장형·동경부(張衡·東京賦)〉편에, "세상에서 말하기를 후학(後學)이 속뜻은 모르고 겉만 이어 받아 전하며, 들은 것을 귀히 여기고 눈으로 본 것을 천하게 여긴다[所謂末學膚受 貴耳而賤目者也(소위말학부수 귀이이천목자야)]"라고 한 글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분별 있는 사고(思考)에 의해 올바른 것을 파악하기보다는 현재를 부정하고, 옛것만 쫓는 세태를 꼬집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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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촉도 歸蜀道 [귀할 귀/귀 이/천할 천/눈 목]
☞≒두견이, 접동새, 망제혼望帝魂, 불여귀不如歸, 자규子規, 두견杜鵑 두우杜宇, 제결, 蜀鳥, 두견새,두백杜魄,두혼(杜魂),망제望帝,사귀조思歸鳥,시조時鳥,주각제금,주연周燕,촉백蜀魄,촉혼(蜀魂),촉혼조, 소쩍새
[내용]촉(蜀, 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
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느 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나왔는데,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 와서 눈을 뜨고 살아 났다. 망제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와서 물어보니,
"저는 형주 땅에 사는 별령(鼈靈)이라는 사람으로,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를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망제가 생각하길, 이는 하늘이 나에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 여기고,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정승으로 삼아 나라일도 맡겼다. 망제는 나이도 어릴 뿐 아니라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 중 음흉한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도 모두 매수하여 자기 심복(心腹)으로 만들고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 때 별령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얼굴이 천하의 절색이었다.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 일을 모두 장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궁
중에 깊이 앉아 바깥 일은 전연 모르고 지냈다.
이런 중 별령은 마음 놓고 모든 공작을 다해 마침내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
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일조일석에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오니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고 또 울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 두우(杜宇), 귀촉도(歸蜀途)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하여 망제의 죽은 혼이 새가 된 것이라 말들했다.
[참고]귀촉도 (Cuculus poliocephalus) 두견이과에 속하는 새. 뻐꾸기와 비슷한데, 날개 길이 15-17cm 꽁지 12-15cm 부리 2cm 가량임. 몸빛은 배면(背面)이 암회청갈색 또는 석반회색. 윗가슴은 회청색이며, 그
아래쪽은 백색 바탕에 흑색 횡문(橫紋)이 있고 복면(腹面)은 황갈색이고 꽁지는 흑색에 백색 무늬가 있음. 5월에 건너 와서 8-9월에 건너가는데 숲속에서 단독으로 살고, 둥지를 짓지 않음. 꾀꼬리 등의 딴새집에 한 개의 알을 낳아 그 새가 기르도록 내맡기는데, 익조(益鳥)임. 여름에밤낮으로 처량하게 우는데, 중국 촉나라 망제의 죽은 넋이 붙
어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고래로 문학에 많이 등장함. 중국, 한국, 히말라야, 일본 등지에서 서식하고 대만,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월동함.--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 * 소쩍새는 올빼미과의 다른 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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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화위지 橘化爲枳 [귤 귤/화할 화/될 위/탱자 지]
☞귤이 탱자가 됨.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로
되듯이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동]남귤북지 南橘北枳
[출전] '안자춘추(晏子春秋)' 내잡(內雜) 하(下) 편 [내용]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안영(晏:晏子는 경칭)은 중국 역사상 드물게 보는 명 재상(宰相)이다.
세 명의 왕(靈公·莊公·景公) 밑에서 재상을 지냈지만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일관하였다. 그는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는 고기 반찬을 올리지 않았고 아내에게는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고, 조정에 들어가면 임금께서 묻는 말에 대답하되 묻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품행을 조심하였다. 또한유창(流暢)한 달변(達辯)과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도 유명하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해, 초(楚)나라의 영왕(靈王)이 그를 초청하였다. 초(楚)나라 영왕은 인사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하필 경(卿)과 같은 사람을 사신
으로 보낸 이유가 뭐요?"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비웃는 말이었다. 초나라 왕은 당시 제나라를 우습게 보았기 때문에 이런 심한 농담을 함부로 해댔다.
안영은 서슴지 않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그 까닭은 이러하옵니다. 저의 나라에선 사신
을 보낼 때 상대방 나라에 맞게 사람을골라서 보내는 관례가 있습니다. 즉, 작은 나라에는 작은 사람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큰 사람을 보내는데, 신(臣)은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초나라로 오게 된 것이옵니다."
안영의 능수능란(能手能爛)한 말솜씨에 기세가 꺾인 영왕은 은근히 부화가 끓어올랐는데, 마침 그 앞으로 포리(捕吏)가 제나라 사람인 죄인을 끌고 가자 영왕은 안영에게 들으라고 큰소리로 죄인의 죄명을밝힌 다음, "제나라 사람은 도둑질을 잘하는군." 안영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聞之 橘生淮南則爲橘生于淮北爲枳(영문지 귤생회남즉위귤 생우회북위지)].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 其實味不同(엽도상사 기실미부동)]. 그러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 水土異也(소이연자하 수토이야)].
지금 백성들 중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왕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오. 과인(寡人)이 오히려 부끄럽군요." 제나라 출신의 죄수를 안영에게 보여 줌으로써 안영의 명성
을 눌러 보려던 초왕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예문] ▷ 모든 문화의 교류는 일방적인 이식이 아니라 굴절이며, 수용하는 주체의 상황에 의해 변형되기 마련이고, 그 변형의 힘은 기존 문화의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문학은 어떤 측면에서든 고전 문학의 전통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김윤식, ‘한국 문학의 연속적 흐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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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기복례 克己復禮 [이길 극/몸 기/돌아갈 복/예도 예]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쫓음. [출전]『論語』 顔淵篇) [내용] 안연(顔淵)이 어느 날 孔子에게 仁에 관하여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
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그러면 인을 실
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안회가 어리석고 불민합니다만 이 말씀을 실천
하도록 평생 힘쓰겠습니다.”
[원문]顔淵門仁한대 子曰“克己復禮爲仁이니라, 一日克己復禮하고 天下歸仁焉하면 爲
仁由己이니, 而由人乎哉인져.”顔淵曰“請問其目하닛가.”子曰“非禮勿視하고, 非禮勿廳하고, 非禮勿言하고, 非禮勿動하라.”顔淵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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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묵자흑 近墨者黑 [가까울 근/먹 묵/놈 자/검을 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 빛이 된다. 사람은 늘 가까이 하는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 변하므로 조심하라. [출전]『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
[유]近朱者赤(근주자적) : 붉은 빛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됨./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마중지봉(麻中之蓬)·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
[속담]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내용]먹을 가까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뜻으로, 사람도 주위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스승의 행실을 보고 배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승을 닮게 되고, 나쁜 무리와 어울리면 보고 듣는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뿐이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 고사성어이다. 중국 서진(西晉) 때의 문신·학자인 부현(傅玄)의 〈태자소부잠(太子少傅箴)〉에 나온다.
"무릇 쇠와 나무는 일정한 형상이 없어 겉틀에 따라 모나게도 되고 둥글게도 된다. 또 틀을 잡아 주는 도지개가 있어 도지개에 따라 습관과 성질이 길러진다. 이런 까닭으로 주사(朱砂)를 가까이 하면 붉게 되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게 된다(故近朱者赤 近墨者黑). 소리가 조화로우면 울림이 맑고, 형태가 곧으면 그림자 역시 곧다."
주변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자성어로는 '귤화위지(橘化爲枳)·남귤북지(南橘北枳)',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마중지봉(麻中之蓬)·봉생마중(蓬生麻中)', '일부중휴(一傅衆咻)-한 사람의 스승이 가르치는데, 옆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니,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더라도 성과가 없다는 뜻으로, 환경의 영향을 받아 하는 일이 성과가 없거나, 공부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간섭만 하는 등 학습 환경이 좋지 않음<맹자>' 등이 있다..
<네이버백과>
[참고]①水隨方圓之器하고 人依善惡之友니라.물은 모나고 둥근 그릇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은 착하고 악한 친구에 의해 달라진다 /②從遊邪人하면 予亦自邪니라.사악한 친구를 따라 놀면 나 또한 사악해진다 ③蓬生麻中이면 不扶自直하고, 白沙在泥하면 與之皆黑이니라.『史記』 : (꾸불꾸불한)쑥도 (곧은) 삼 가운데에서 자라면 돕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도 진흙 가운데에 있으면 그와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隨따를 수/方모 방/圓둥글 원/遊놀 유/予나 여/蓬쑥 봉/扶도울 부/泥진흙 니
近墨者黑(근묵자흑)이요 먹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검어지고 近朱者赤(근주자적)이니 주사(朱砂)를 가까이하는 사람은 붉게 되니 居必擇隣(고필택린)하고 거처할 때엔 반드시 이웃을 가리고 就必有德(취필유덕)하라 나아갈 때엔 반드시 덕있는 사람에게 가라. <四字小學>
[예문] ▷ 어찌하여 인심을 논하는 것인가. 공자께서,‘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하시었다. 또 옛적에 맹자의 어머님이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 이었다. 옳은 풍속을 가지지 아니하면 다만 자신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자손들도 반드시 나쁜 물이 들어서 그르치게 될 근심이 있다. 그러므로 살 터를 잡음에 있어서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李重換,『택리
지(擇里地)』
▷ 사회에 나쁜 일이 더 많이 있다든가 모두가 나쁜 짓만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면, 저도 나쁜 일을 해도 된다거나 또는 제가 나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딴 사람보다는 착하다고 자처하게 되어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줄게 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관대하지 못한 것처럼 여기게 되고, 감히 바른 말을 할 용기가 꺾이든가 의욕이 일지 않게 된다. |
■ 금과옥조 金科玉條 [쇠 금 / 법 과 /옥돌 옥 / 법규 조]
☞금이나 옥과 같은 조문. 아주 귀중한 법칙이나 규범. [출전]이 말의 출처는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극진미신(劇秦美新)》에 있는 “懿律嘉量 金科玉條 神封靈兆 古文畢發 炳煥照耀”에서 비롯되었다.
[예문]「묵묵히 일하면 틀림없이 망한다」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몇년 전까지만해도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겨졌던 덕목과는 정반대되는 신(新)샐러리맨 성공수칙들이 화제다.현대산업개발 사보 최근호에 실린 「실패하는 샐러리맨 유형 7가지」라는 글에는... <동아일보> |
■ 금란지교 金蘭之交 [쇠 금/난초 란/어조사 지/사귈 교]
☞쇠를 자를 정도로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견고한 벗 사이의 우정.
[고사]두사람이 마을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
도 끊을 것이요,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냄새가 난초의 향기와 같다.[二人同心이면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이라]-『주역(周易)』
[유]管鮑之交(관포지교)/竹馬故友(죽마고우)/,斷金之交(단금지교) /芝蘭之交(지란지교)/.知己之友(지기지우)./知音(지음)./刎頸之交(문경지교)./水魚之交(수어지교)./膠漆之交(교칠지교)-아교와 옻처럼 떨어질 수 없는 가까운 사이
[참고] 지란지교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영원한 친구가 필요 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물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을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계속 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되도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 것을.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도 있고, 아첨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진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 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다른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 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 유 안 진 | |
■ 금상첨화 錦上添花 [비단 금/위 상/더할 첨/꽃 화]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좋은 일에 좋은 일이 겹칠 때. [반] 雪上加霜(설상가상) : 눈위에 서리가 더한다.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난다. 病上添病(병상첨병) : 병을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겹치다/엎친데 덮친격 [속담] 누이 좋고 매부(妹夫) 좋다. /곶감 죽 먹고 엿 목판에 엎어지겠다.
[내용] 북송(北宋) 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이 정계를 떠나 만년에 남경의 한적한 곳에서 은둔할 때 지은 시「즉사(卽事)」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물은 남원(南苑)으로 흘러 서쪽 언덕으로 기울고 바람에 영롱한 이슬 아름답구나. 문 앞 버드나무는 옛사람 도잠(陶潛)의 집이고, 우물가 오동나무는 옛 총지(總持)의 집이라.「아름다운 초대 술잔 속 맑은 술 따라 마시고, 즐거운 노래가락 비단 위에 꽃을 더하네.(嘉招欲覆盃中?,麗唱仍添錦上花)」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대접받으니 천원의 붉은 노을 아직도 많구나.” ** 嘉(아름다울 가) 招(부를 초) 覆(덮을 복) 盃(잔 배) ?(물맑을 록) 仍(이에 잉)
[원문] 河流南苑岸西斜 風有晶光露有華 門柳故人陶令宅 井桐前日總持家 嘉招欲履盃中淥 麗唱仍添錦上花 便作武陵樽俎客 川源應未少紅霞
[예문] ▷ 은행잎은 은행나무 중에서도 백미다. 더욱이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오래 전부터
연구가 진행돼 그 신비가 상당 부분 벗겨져 있다. 특히 현대 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고혈압, 뇌졸증, 심장병 등 성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주고 있어 의학계의 이목을 집
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부작용도 거의 없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현재 은행잎에서 추출한 의약품에 대한 연구 논문만 2백여 편을 헤아리며 전문 과학자도 3백여 명에 이르고 있다.
▷ 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 같은 쪼무래기패가 옴닥옴닥 들어 박혀 윤직원 영감의 육중한 체구가 처억 그 틈에 끼어 있을라치면 들이
놀림감이 되고 그래 좀 창피했는데 오늘은 이 상등스런 하등이 모두 점잖은 어른들이나 이쁜 기생들뿐이요 그따위 조무래기 떼가 없어서 실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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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탕지 金城湯池 [쇠 금/성 성/끓을 탕/못 지]
☞쇠로 만든 성과 끓는 연못, 방비가 아주 견고한 성. [동의어] 탕지철성(湯池鐵城) 금성철벽(金城鐵壁),鐵甕城(철옹성)
[출전] 『漢書』 괴오강식부전( 伍江息夫傳) [내용]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 B.C 246-210)가 죽고 어리석은 2세 황제가 즉위하자 전국시대 6강국의 후예들이 군사를 일으켜 고을의 우두머리를 죽이고 관청을 점거했다. 그 무렵, 무신(武信)이라는 사람이 조(趙)나라의 옛땅을 평정하고 무신군(武信君)이라 일컬었다.
이를 본 모사 괴통( 通)은 범양 현령(范陽縣令) 서공(徐公)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사
또께서는 지금 매우 위급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말대로 하시면 전화위복
(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공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무엇이 위급하다는 거요?" "사또께서 현령으로 재임한 지난 10년 동안에 진(秦)나라의 가혹한 형벌로 인해 부모를 처형당한 사람, 손발이 잘린
사람, 억울하게 죄인이 된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그들이 사또를 원망하며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모르오. 그런데, 전화위복이란 또 무슨 말이오?"
"제가 사또를 대신해서 지금 세력이 한창인 무신군을 만나 싸우지 않고 땅이나 성을 손
에 넣을 수 있는 계책을 말해 주면, 그는 틀림없이 사또를 후대할 것입니다.""그럼, 나를 위해 수고해 주시오."
이리하여 무신군을 찾아간 괴통( 通)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귀공(貴公)이 범양을 쳐서 현령이 항복한 경우, 그 현령을 푸대접한다면 죽음을 두려워하며 부귀를 바라는 각지의 현령들은 '항복하면 범양 현령처럼 푸대접받는다.'며 더욱 군비(軍備)를 강화하여 마치 '끓어오르는 못에 둘러싸인 무쇠 성[金城湯池]' 같은 철벽(鐵壁)의 수비를 굳히고 귀공
의 군사를 기다릴 것입니다. 그땐 공격이 쉽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지금 범양 현령을 극진히 맞이하여 그로 하여금 각지의 현령들을 찾아보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모두 싸우지 않고 기꺼이 항복할 것입니다."
[원문]臣因對曰:『<范陽>令宜整頓其士卒以守 戰者也, 怯而畏死, 貪而好富貴, 故欲以其城先下君. 先下君而君不利[之], 則邊地之城皆將相告曰 <范陽>令先降而身死 , 必將 城固守, 皆爲金城湯池, 不可攻也. 爲君計者, 莫若以黃屋朱輪迎<范陽>令, 使馳 於<燕趙>之郊, 則邊城 皆將相告曰 <范陽>令先下而身富貴 , 必相率而降, 猶如阪上走丸也. 此臣所謂傳檄而千里定者也.』 |
■ 금수지장 錦繡之腸 [비단 금/비단 수/어조사 지/창자 장]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이름. 아름다운 마음씨의 所有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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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슬지락 琴瑟之樂 [거문고 금/비파,큰 거문고 슬/어조사 지/즐길 락]
☞부부사이의 더정하고 화목한 즐거움.(금슬>금실) [동]금슬상화(琴瑟相和)/금슬상락(琴瑟相樂)/금슬지락(琴瑟之樂)[반]금슬부조(琴瑟不調)[출전]『시경(詩經)』
妻子好合 如鼓琴瑟 (처자호합 여고금슬) 兄弟歸翕 和樂且湛 (형제귀흡 화락차담) " 처자의 좋은 화합은 마치 거문고와 비파를 합주하는 것과 같고, 형제의 화합은 화락하고 또한 즐겁도다. " [상체장] 窈窕淑女 琴瑟友之 (요조숙녀 금슬우지) " 얌전하고 정숙한 숙녀를 금슬로 친애(親愛)하네. " [관저장] |
[유]비익연리 比翼連理/연리지(連理枝)/비익조(飛翼鳥) : 연리의 가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의 사이.「백낙천(白樂天)은 唐 현종 (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노래한‘장한가(長恨歌)’에서 양
귀비의 맹세로‘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데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데 연리지가 되기를[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鳥 連理枝]’라고 노래 하였다.」 ** 날개가 하나씩인 새로 두 마리가 합하여야 두 날개를 갖추게 되
어 날 수 있다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것
[참고]연리지는 원래《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妙)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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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옥토 金烏玉兎 [쇠 금/까마귀 오/옥돌 옥/토끼 토]
☞금오는 해, 옥토는 달. 즉 해와 달을 이름. 해 속에 까마귀가 있고 달 속에 옥토끼가
있다는 전설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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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의야행 錦衣夜行 [비단 금/옷 의/밤 야/갈 행]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자기가 아무리 잘 하여도 남이 알아주지 못한다는 뜻.
아무 보람이 없는 행동을 자랑스레 함 [동]夜行被繡(야행피수) : 밤길을 가는데 수놓은 옷을 입다.[반]衣錦晝行(의금주행)/
衣錦之榮(의금지영)/ 錦衣還鄕(금의환향)
[속담]어두운 밤눈 깜짝이기/달 밤에 삿갓쓰고 나온다/밑 빠진 가마에 물 길어다 붓기/절 모르고 시주하기/죽은 자식 나이 세기(亡者計齒)/죽은 자식 눈 열어 보기/동무 몰래 양식(糧食) 내기.
[출전]『한서(漢書)』, (項籍篇) [내용] 유명한 홍문연(鴻門宴)이 있은 지 수일 후의 일이다. 유방(劉邦)과 진(秦)의 수도인 함양 (咸陽)입성을 다투다가 드디어 목적을 이룬 항우가 득의만만하여 함양으로 입성했는데, 이때 유방과는 대조적인 그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그는 유방과 달리 난폭했으며 누가 진언을 해 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러한 그를 보고 모장(謀將)범중(范增)이 말렸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더군다나 오랜 싸움 끝에 그는 망향의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진에서 약탈한 재물과 미녀를 다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란 자가 간했다. "관중(關中)은 천연적으로 사면이 막혀 있어 지세가 견고할 뿐 아니라 토질도 비옥하니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여 천하의 패권을 잡고 제후들에게 호령해야 합니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불타다 남은 궁전, 형편없이 파괴된 황량한 초토일 뿐이었다. 그보다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동쪽 하 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를 이루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걷는 것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소냐.(富貴不歸故鄕 如衣錦夜
行誰知文者)" 그러자 한생이 '초나라 사람은 원숭이를 목욕시켜서 갓을 씌워놓은 것처럼 멍청하다고 하더니 말 그대로군'이라 하였다.이 말을 듣고 노한 항우는 그 자리에서 한
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비단옷을 입고 밤에 간다'는 <한서>의 항적전(項籍傳)에 기재된 말이며, <사기>의 항우 본기(項羽本紀)에서는 [錦]이 [繡]로 되어 있다.
[원문]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 ,燒秦宮室, 火三月不滅 ; 收其貨寶婦女而東. 人或說項王曰 "關中阻山河四塞, 地肥饒, 可都以 ." 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 又心懷思欲東歸,曰 "富貴不歸故鄕, 如衣繡夜行, 誰知之者!" 說者曰 "人言楚人沐 而冠耳, 果然." 項王聞之, 烹說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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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의환향 錦衣還鄕 [비단 금/옷 의/돌아올 환/고향 향]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옴. 다른 고장에 가서 성공하여 高貴한 신분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 [내용]'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이라는뜻이다. 옛날에는 왕이나 고관들이 입던 옷으로 출세의상징이었다. 반면 평민들은 흰색의 베옷을 입었는데, 이것은 '포의(布衣)'라 하였다.
즉,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을 찾는 것을 뜻한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전쟁이 한창일 때의 이
야기이다. 유방(劉邦)이 먼저 진(秦)나라의 도읍인 함양(咸陽)을 차지하자, 화가 난 항우(項羽)가 대군을 몰고 홍문(鴻門)까지 진격하였다. 이때 유방은
장량(張良)과 범증(范增)의 건의로 순순히 항우에게 함양을 양보하였다.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아방
궁을 불태우는가 하면 궁중의 금은보화를 마구 약
탈하고 궁녀들을 겁탈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묘까지 파헤쳤다. 항우는 스스로 망쳐놓은 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향인 팽성(彭城)에 도읍을 정하려 하였다. 신하들은 항우가 예로부터 패왕(覇王)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하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때 간의대부(諫議大夫) 한생(韓生)이 간언했지만 항우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길거리에서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라는 노래가 떠돌고 있다고 하더군. 이건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야. 그러니 어서 길일(吉日)을 택하여 천도하도록 하라."
그래도 한생이 간언을 그치지 않자, 항우는 그를 기름이 끓는 가마 속에 넣어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이 노래는 항우가 천하의 요새인 함양에 있는 한 유방이 승리할 수 없으므로 항우를 함양에서 내쫓기 위해 장량이 퍼뜨린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함양을 싫어했던 항우는 그 노래가 하늘의 뜻이라고 판단하여 마침내 팽성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결국 항우는 함양을 차지한 유방에게 해하(垓下)에서 크게 패함으로써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금의환향'으로 자신의 공덕을 고향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는 하였지만 천하를 잃고 만 셈이다. 출전은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이다.
[예문] ▷ 오직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남편이 몸 성히 있기를 축수하고 하루 바삐 성공을 해서 금의환향 하기를 三秋와 같이 기다리는 것을 도리어 난을 삼고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 …[심훈沈熏, 탈춤]
▷ 이번 대회가 끝나면 곧장 귀국길에 올라 4일 부산 아시아드CC에서 개막되는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하는 한희원은 역전 우승과 함께 금의환향하겠다는 각오. 한희원은 “2라운드 땐 비가 내려 그린이 느려진데다 3라운드에선 바람이 불어 퍼팅과 클럽 선택에 애를 먹었다. 마지막 날에는 공격적인 플레이로 승부를 걸겠다”고 말했다.<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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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자탑 金字塔 [쇠 금/글자 자/탑 탑]
☞.길이 후세에 전해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번역한 말.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 [예문] ▷ "내가 금메달을 딸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드디어 54㎏급의 세계정상도 심권호라는 사실이 실감됩니다.”올림픽 2연속 금메달의 금자탑을 이룬 심권호는 “상대가 너무 강해 이길
줄 몰랐다”면서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일간스포츠>
▷ 27일 시드니 올림픽파크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여자단식 결승. ‘흑진주’ 비너스 윌리엄스(20·미국)는 ‘러시아의 샛별’ 엘레나 데멘티에바(19)를 55분만에 2―0(6―2 6―4)으로 꺾고 예상대로 정상에 올랐다.올 6월 프랑스오픈에서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스페인)에게 패한 뒤 파죽의 32연승을 달린 윌리엄스는 6개 대회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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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지옥엽 金枝玉葉 [쇠 금/가지 지/옥돌 옥/잎사귀 엽]
☞금 가지에 옥 잎사귀. ① 임금의 자손이나 매우 귀한 집의 자손. ② 아름다운 구름을
고운 초목. ③ 가장 귀중한 물건. [예문] ▷ 황막한 눈 쌓인 벌판 요동 벌 천리를 거쳐 온 노국공주는 아무리 씩씩하고 발랄한 기상을 가진 여자지마는 그래도 나어린 금지옥엽의 귀한 몸이었다.[박종화(朴種和), 『多情佛心』]
▷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 길이 없어 풍설 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群吏(군리)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
의 명을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 신하가 둘러서 모
시고있었다. 임금은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
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영월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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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만장 氣高萬丈[기운 기/높을 고/일만 만/길이 장]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 **丈=10尺
[예문] ▷ 192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 상륙한 자동차는 세도가나 부호들 또는 이들에게 웃음이나 미모를 팔던 기녀들의 행락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귀했던 보통사람들이 차 한번 타자면 쌀 반 가마니가 날아갈 판이니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천대받는 기녀들까지 기고만장해 자동차를 제 신발처럼 타고 다니게 되니까 동경의 대상을 넘어 질시의 대상으로 차츰 변해 갔다. 그래서 기녀가 탄 자동차가 지나가면 야유를 하고 돌팔매질이 예사였다고 한다. <굳바이카 홈페이지>
▷ 대북 포용정책을 편 후 경험한 바 북한 정권은 순화되기는커녕 날로 기고만장해져
더욱 당당하게 뺏어가고 협박의 강도를 더 높여 왔 다는 너무나 분명한 우리의 집단적 경험을 부정하고 여전히 국민에 게 인내를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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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라성 綺羅星[기운 기/높을 고/일만 만/길이 장]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 즉 위세 있는 사람, 또는 그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
[예문] ▷ 192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에 상륙한 자동차는 세도가나 부호들 또는 이들에게 웃음이나 미모를 팔던 기녀들의 행락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귀했던 보통사람들이 차 한번 타자면 쌀 반 가마니가 날아갈 판이니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천대받는 기녀들까지 기고만장해 자동차를 제 신발처럼 타고 다니게 되니까 동경의 대상을 넘어 질시의 대상으로 차츰 변해 갔다. 그래서 기녀가 탄 자동차가 지나가면 야유를 하고 돌팔매질이 예사였다고 한다. <굳바이카 홈페이지>
▷ 대북 포용정책을 편 후 경험한 바 북한 정권은 순화되기는커녕 날로 기고만장해져
더욱 당당하게 뺏어가고 협박의 강도를 더 높여 왔 다는 너무나 분명한 우리의 집단적 경험을 부정하고 여전히 국민에 게 인내를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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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린아 麒麟兒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개세지세(蓋世之才), 골계지웅(滑稽之雄)
사슴의 몸에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를 갖고 있으며 온몸에 영롱한 비늘이 덮여 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성인(聖人)이 태어날 때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으며, 산 풀을 밟지 않을 뿐 아니라 머리에 돋은 뿔이 살로 되어있어 다른 짐승을 해치지 않는 인자한 동물이기도 하다. 희망과 행복을 전해주는 기린은 용,봉황,거북과 함께 상서로운 네 영물의 하나이다.
기린(麒麟)은 중국 고대(B.C 2500년경)로부터 전해오는 길상(吉詳)의 사령(四靈:용, 기린, 봉황, 거북)중 하나로 성인(聖人)이 세상에 태어날 징조로 나타나는 상징의 동물로서 우리에게 희망과 성공, 그리고 행복을 전해 준다.
기린의 형상은 사슴의 몸에 머리에는 살로된 뿔이 돋혔으며, 말의 발굽과 소의 꼬리, 온몸은 오색이 영롱한 비늘로 덮혔으며 산풀(生草)을 밟지 않는다고 한다.
이와같은 기린의 전설과 상징때문에 재주가 뛰어나고 지혜가 비상한 사람을 가리켜 기린아(麒麟兒)라 부르는가 하면, 신라시대에는 기린문양(麒麟文楊)을 부조(浮彫)한 벽돌을 만들어 건축에 이용하였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는 왕을 호위하는 호위군을 기린군이라 칭하고 기린을 수놓은 기린의장기(麒麟儀仗旗)를 세워 그 위용을 떨쳤다.
그후 조선왕조에 이르러 왕족을 비롯한 관직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는 표장(表章) 즉, 흉배(胸背)가 제정되자(단종 2년/1454년) 기린은 그 깊은 상징과 품격으로 왕족(王族)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문양으로서 대군의 흉배에 금사(金絲)로 수놓아져 왕실의 권위와 품격을 나타냈던 전래의 상서로운 동물이며 상징이다.
[참고]우리가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은 모습이 전설속의 기린과 비슷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예문] ▷ 현재 가장 비싼 가격이 매겨지고 있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우승한 모리스 그린의 황금색 운동화와 호주 남자수영의 기린아 이언 소프의 수영복.그린의 운동화는 한 켤레에 대략 37만2,000달러,한짝당 18만6,000달러(약 1억1,000만원)가 출발가격. 경기가 끝난 후 모리스 그린이 던진 한짝의 운동화를 잡은 하퍼란 보석상은 수십달러를 내고 경기장에 들어가 1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셈이다.<스포츠투데이>
▷ 대학 졸업과 함께 전업작가 선언을 한 그는 1979년 첫 소설 ‘제브데트씨와 아들들’이 밀리예트신문 소설 공모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1982년 터키의 대표적인 문학상인‘오르한 케말 소설상’을 수상, 터키 문단의 기린아로 떠오른 그는 1983년에는 두 번째 소설 ‘고요한 집’으로 ‘마다랄르 소설상’을 받았다.<2006 한국일보> | |
■기망 旣望 [이미 기/보름 망]
☞음력(陰曆)으로 16일. 이미 망월(望月:15일)이 지났다는 뜻에서 16일
[출전]소동파(蘇東波)의 『적벽부(赤壁賦)』
[내용]「임술년의 가을 7월 16일에 소동파가 객(客)과 더불어 배를 적벽강에 띄우고 놀새, 말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는 일어나지 않고 잔잔하니라[任戌之秋七月旣望에 蘇者 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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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염거 驥服鹽車 [천리마 기/멍에 멜 복/소금 염/수레 거]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준마가 헛되이 소금 수레를 끈다. 유능한 사람이 천한 일에 종사함
[출전]전국책(戰國策)
[내용]백락(伯樂)은 주(周)나라 때 사람으로 말을 감정
하는데 도가 튼 명인(名人) 이었다. 그가 훌륭한 말이라고
판정해 버리면 그 말 값이 하루아침에 열곱절은 쉽게 뛰었다. 그래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말이 생겼다. 명마가 백락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천리마라 해도 백락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唐)나라 때의 명문장가 한유(韓愈)도 "세상에 백락이 있고 나서 천리마가 있게 마련이다. 천리마는 언제나 있지만 백락은 항상 있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비록 명마라도 백락의 눈에 띄지 않으면 하인의 손에 고삐가 잡혀 끝내는 천리마란 이름 한 번 듣지 못하고 보통 말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죽고 만다"고 했다.
그런 백락이 어느날 긴 고갯길을 내려 가다가 명마 한 마리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오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분명 천리마인데 이미 늙어 있었다.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축 늘어졌고 소금은 녹아내려 땅을 적시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천리마
가 이 꼴이 되었는가.
천리마도 백락을 보고는 '히힝' 하고 슬픈 울음을 울었다. 명마로 태어 났으면서도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백락도 같이 울면서 자기의 비단옷을 벗어 말에게 덮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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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회생 起死回生 [일어날 기/죽을 사/돌아올 회/날 생]
☞중병으로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남
[출전]『여씨춘추(呂氏春秋) 』별류편(別類篇)
[내용]춘추시대 노나라의 오왕 부차는 3년 전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다가 다리에 중
상을입었지만 월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다. 월나라의 대부 종은 구천에게 월나라에 화약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제계영에게 오나라로 가서 그렇게 부탁하도록 했다. 그런데 부차가 이보다 앞서 월나라에 은혜를 베풀어 용서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왕은 월나라에 있어서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다.내 어찌 하늘의 재앙을 잊지 못하고,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겠는가?" 또한 <여씨춘추> "별류"편을 보면, 공손작이라는 자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 이것은 크나큰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날에는 위기에 빠졌다가 다시 회생하거나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되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원문] 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 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 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
[예문]일부 선수들에게는 기회의 시간이다. 페넌트레이스 내내 인상 깊은 활약을 하지 못했더라도 중요한 순간에 '한 건' 잘 건져 기사회생할 수 있고, 비주전들은 일약 주전감으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다.(2006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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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산지절 箕山之節 [키,뿌리 기/뫼 산/어조사 지/마디,절개 절]
☞기산의 절개. 굳은 절개나 자신의 신념에 충실함.
[출전]『漢書』 포선전 [내용]중국 요임금 시절 허유는 요임금이 자신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위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귀가 더럽혀졌다면서 영천으로 뛰어가 귀를 씻었다.
때마침 소부라는 자가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귀를 씻고 있는 허유의 행동을 보고는 이상히 여겨 물었다. "영천에 와서 귀를 씻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허유가 말했다. "요임금이 나에게 임금 자리를 양위한다지 않소! 나는 이 말을 듣고 내 귀가 더럽혀진 것 같아 냇가로 와서 씻는 것이오." 그리고는 곧장 기산으로 들어갔다. 허유의 말을 들은 소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려던 것을 멈추고 발을 돌리며 말했다. "더러운 말을 듣고 귀를 씻었으니, 이 물 또한 더럽혀졌을 것이다. 그런 물을 소에게 먹일 수는 없다." 소부 또한 그 길로 기산으로 들어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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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천외 奇想天外 [기이할 기/생각 상/하늘 천/바깥 외]
■ 기여보비 寄與補裨 [보낼 기/줄 여/도울 보/도울 비]
☞이바지하여 돕고 부족함을 보태어 줌.
[예문]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야 유사 이래 누천에 처음으로 이민족(異民族) 겸제(箝制)의 통고(痛苦)를 상(嘗)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이 무릇 기하이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이며, 민족적 존영(尊榮)의 훼손됨이 무릇기하이며,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써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遺失)함이 무릇 기하이뇨. <기미독립선언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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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인지우 杞人之憂[나라기/사람 인/어조사 지/근심 우])
☞기나라 사람의 근심. 쓸데없는 군걱정. [출전]『열자(列子)』 [내용]옛날 중국의 기국(杞國)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둘 바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소리를 들은 어떤사람이 이를 딱하게 여겨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저서 떨어지리요?”그 사람이 말하되“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마땅히 떨어지지 않으리요.”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라.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하는 바가 없느니라.”그 사람이 말하되“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오?”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그 사람이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고 일깨워 준 사람도 걱정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더라.
[원문]杞國에 有人이 憂天崩墜하여 身無所寄하고 廢寢食者러니 又有憂彼之所憂者아여 因往曉之曰“天은 積氣이라. 奈何憂崩墜乎아”杞人이 曰“天果積氣인댄 日月星宿는 不當墜耶아”曉之者曰“日月星宿도 亦積氣中에 有光曜者니 只使墜라도 又不能有所中傷이라”杞人이 曰“奈地壞何오”曉者가 曰“地는 積塊耳라 奈何憂其壞오”杞人이 舍然大喜하고 曉之者도 亦舍然大喜하니라.
**崩 무너질 붕/墜 떨어질 추/奇 붙어살 기/廢 그만둘 폐/舍 버릴 사(=捨)/壞 무너질 괴
[예문]당초 우려했던 북핵 위기 심리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 백화점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백화점 가을 세일 현장만을 놓고 보면 북핵 위기에 따른 내수심리 위축은 기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6 MBC뉴스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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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진맥진 氣盡脈盡 [기운 기/다할 진/맥 맥/다할 진]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리다. [예문]未熟한 盜賊 ----김수영( 金洙映)지음 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 기진맥진하여서 주정을 하고 기진맥진하여서 여관을 차저 들어갔다 옛날같이 낯선 방이 그리 무섭지도 않고 더러운 침구가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는데 義齒를 빼어서 물에 담거놓고 들어 누우니 마치 내가 臨終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 옆에 누운 친구가 내가 이를 뺀 얼골이 어린 아해 갔다고 간간대소하며 좋아한다 이 친구도 술이 취한 얼골을 보니 凄慘하다 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도 不安하지도 않고 都會에서 태어나서 都會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前線의 戰士에 못지않게 불상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하로하로 都會의 때가 묻어가는 나의 몸을 분하다고 한탄한다 친구가 일어나서 창밖으로 침을 뱉고 아래로 내려갔다 오드니 또 술을 마시려 나려가자고 한다
기진맥진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서 차가운 이를 건져서 끼고 따라서 나려간다 그중 끝의 방문을 열고보니 꺼먼 사람이 셋이나 앉었다 얼골은 분간할 수도 없는데 술 한병만이 방 한가운데 光彩를 띠우고 앉어 있다 나는 義齒를 빼서 호주머니에 넣고 앉자 선뜻 인사를 하고 淫詩를 한바탕 읊었드니 여간 좋아들 하지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기에 마흔여덜이라고 하니 그대로 곧이듣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 눈알에 백테가 앉은 사람같이 보이는 것이 모두 몽롱하다 請한지 半時間만에 떠다 주는 냉수를 한 대접 마시고 階段을 내려와서 어제 ㅅ 밤에 술을 마시든 방을 드려다보니 이불도 벼개도 타구 하나 없이 깨끗하다.
[도적질을 하는것도 저렇게 부지런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이게 무어야, 빨리 나가서 배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세]하고 친구가 서두른다 [그러니까 初年生盜賊이지] 하고 쑥스러운 대 ㅅ 구를 하면서 기진맥진한 머리를 쉬일 곳을 찾아서 친구의 뒤를 따라서 걸어나왓다. 우리의 잔등이에는 [未熟한 盜賊]이라는 글자가 써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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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지세 騎虎之勢 [말탈 기/범 호/어조사 지/기세, 형세 세]
☞호랑이를 타고 가는 형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도중 내릴 수 없는 것처럼 그만 두거나 물릴 수 없는 상태./ 내친 걸음
[원] 기수지세(騎獸之勢). [동] 기호난하(騎虎難下).
[출전]『수서 隨書』〈獨孤皇后傳〉 [내용]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양견의 뜻을 알고 있는 아내 독고(獨孤) 부인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맹수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獸之勢 不得下].'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시오소서."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선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년,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陳:557∼589)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원문]當周宣帝崩 高祖入居禁中 總百揆 后使人謂高祖曰 大事已然 騎虎之勢 不得不勉之.
[예문] ▷ 10언더파 206타를 친 데이비드 듀발과 토마스 비욘(덴마크) 등 2위 그룹과는 무려 6타차의 기호지세. 아직 마지막 4라운드 18홀을 남겨두고 있기는 하지만, 우즈는 지난 20차례의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역전패한 전례가 단 두차례에 불과해, 큰 이변이 없는 한 그의 우승은 확정적이다. <인터넷 한겨레>
▷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중동지역의 군사력을 철수시킨다면 결과적으로 이란에게만 좋을 일을 시켜준 꼴(이란의 숙적들을 모두 제거한 다음 물러나므로)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에서 손을 뗄 수도 없는 형국이다. 한마디로 기호지세(騎虎之勢), 호랑이 등에서 내리자니 호랑이에게 잡혀먹을 것이 두려워 내릴 수도 없는 형국이다.<2006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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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화가거 奇貨可居[기이할 기/재물 화/옳을 가/살 거]
☞기이한 재물은 저축해 두는 것이 옳다. 좋은 물건을 사두면 장차 큰 이익을 본다.
[출전]『사기,』 呂不韋列傳 [내용] 전국(戰國)시대 말 韓나라의 대상(大商)「여불위(呂不韋)가 한단으로 장사차 갔다가 그를 보고 가련타 여기며 말하기를 이는 좋은 재물이니 거두어 둘 만하다 라고 여기고 곧 가서 자초를 뵈었다. 그 후 많은 돈을 써서 안국군의 정비(正妃)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환심을 샀으며 널리 인재들을 규합하여 마침내 자초를 진나라 태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불위는 자기의 아이를 잉태한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시집보내어 그 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되니 그의 권세도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
[원문] 呂不韋가 賈邯鄲하여 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라하고 乃往見子楚하다
** 賈(장사 고) 邯(땅이름 한) 鄲(땅이름 단) 姬(아씨 희) 憐(가련할 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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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cybergos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