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및 한자 성어 古事 및 漢字 成語 |
가담항설 街談港說 (거리 가·말씀 담·거리 항·말씀 설)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세상에 떠도는 뜬 소문. |
道聽道說(도청도설), 巷間, 村間, 俗間, 民間, 坊間, 閭港(여항), 世評(세평), 世俗, 風說, 風間.
** 街 : 곧고 넓은 길. 港 : 좁고 구불구불한 길.
가렴주구 苛斂誅求 (가혹할 가·거둘 렴·벨 주)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들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 |
苛政猛於虎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고사 :「공자가 태산의 곁을 지날때, 부인이 있어 묘지에서 곡하며 슬퍼하거늘, 공자가 엄숙히 이를 들으시고, 子路로 하여금 그에게 물어 말하되“그대의 곡성은 한결같이 거듭 근심이 있는 것 같으니라.”이에 말하기를“그러합니다. 옛적에 나의 시아버지도 호랑이한테 죽고, 나의 남편도 또 그것에게 죽고, 이제 나의 아들이 또 그것에게 죽었습니다.”공자가 말씀하시되“어찌 이곳을 떠나지 않았습니까?”하니“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공자가 말씀하시되“제자들아 이를 들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것 이니라.”(孔子가 過泰山側할새, 有婦人이 哭於墓者而哀어늘 夫子가 式聽之하시고 使子路로 問之曰“子之哭也는 壹似重有憂者로다.”而曰“然하다 昔者에 吾舅死於虎하고 吾夫又死焉하고 今에吾子又死焉이니라.”夫子曰“何爲不去也오.”曰“無苛政也니라.”夫子曰“小子아 聽之하라 苛政이 猛於虎야로다.”)」
가서만금 家書萬金
여행 중에 가인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 데 해당 한다. |
** 家人 : 한 집안 사람. 佳人 :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 可人 : 착한 사람
고사 : 詩聖인 唐나라 杜甫(712∼770, 字 : 子美, 號 : 少陵)의‘春望’이라는 詩에
國破山河在요,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있고,
春城草木深이라.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感時和賤淚요,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이라. 이별을 한스러워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烽火連三月이요,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家書抵萬金이라.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白頭搔更短하니,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渾欲不勝簪이라.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 深(깊을 심) 淚(누물 루) 烽(봉화 봉) 抵(해당할 저) 搔(긁을 소) 渾(온통 혼) 簪( 잠)
가인박명 佳人薄命 (佳 : 아름다울 가·薄 : 엷을 박)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
紅顔薄命(홍안박명). 美人薄命(미인박명)
미인은 팔자가 사납다.
고사 : 北宋 후기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蘇軾(字 : 子瞻, 號 : 東波)의 시‘薄命佳人’에 어린 승려를 보고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고 노래한 시이다.
自古佳人多命薄하니, 예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많이 운명이 기박하였으니,
閉門春盡楊花落이라. 문 닫으니 봄은 다하고 버들꽃 떨어지는구나.
** 閉(닫을 폐) 盡(다할 진) 楊(버드나무 양)
각골난망 刻骨難忘 (難 : 어려울 난)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뼈에까지 사무쳐 잊혀지지 아니함. |
結草報恩(결초보은). 白骨難忘(백골난망)
각골명심 刻骨銘心 (銘 : 새길 명)
뼈에 새기고 마음에 새긴다. 어떤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둠. |
각자도생 各自圖生 (圖 : 도모할 도)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 |
각자무치 角者無齒 (角 : 뿔 각·齒 : 이 치)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하지는 못한다. |
각주구검 刻舟求劍 ( 刻 : 새길 각·劍 : 칼 검)
배에 새기어 칼을 찾음. 시대의 변천을 모르고 융통성이 없이 어리석음. |
고사 : 초나라의 어떤 사람이 배로 강을 건너다가 강 물속에 칼을 떨어뜨렸다. 그 사람은 뱃전에 칼이 떨어진 자리를 표시해 두었다가 배가 멈춘 뒤 칼을 찾고자 했으나, 배는 가고 칼은 강 속에 가라앉아 찾을 수가 없었다.
간담상조 肝膽相照 (肝 : 간 간·膽 : 쓸개 담)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귄다. |
고사 : 唐나라 유종원(柳宗元;773∼819, 字 : 子厚)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임명 되었는데 그의 친구 유몽득(劉夢得)도 파주자사(播州刺史)로 가게 되었다. 유종원이 그것을 알고 울먹이면서“파주는 몹시 궁벽한 변방인데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도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사실을 어떻게 어머님께 알릴 수 있겠는가? 내가 간청하여 몽득 대신 파주로 가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종원이 죽은 후 한유(韓愈)가 그 우정에 감복하여 유종원의 묘지명을 썼는데‘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참된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서로 그리워하고 같이 술을 마시며 놀고 즐겁게 웃는데 마치 간담(肝膽)을 내보이는 것처럼 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우정만은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으면 눈을 돌려 모르는 듯한 얼굴을 한다…….’라고 하였다.『柳子厚墓誌銘』
출전 : 韓愈柳子厚墓誌銘에 握手出肝膽하여 相示라하다.
** 韓(나라이름 한) 愈(나을 유) 厚(두터울 후) 誌(기록할 지) 銘(새길 명) 握(잡을 악)
간어제초 間於齊楚
제나라와 초나라에 사이하다.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의 사이에 끼어 괴로움을 받음. |
갈이천정 渴而穿井 (渴 : 목마를 갈·穿 : 뚫을 천)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지나간 뒤에는 아무리 서둘러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또는 자기가 급해야 서둘러서 일을 한다. |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갑갑한 놈이 송사(訟事)한다.
감개무량 感慨無量 (感 : 느낄 감·慨 : 슬퍼할 개)
마음 속의 느낌이 한이 없음. |
감언이설 甘言利說
달콤한 말과 이로운 말.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으로 꾀는 말. |
감지덕지 感之德之
이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를 덕으로 생각한다. 대단히 고맙게 여긴다. |
감탄고토 甘呑苦吐 (달 감·삼킬 탄·쓸 고·뱉을 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유리하면 하고 불리하면 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태도. |
☞나무에 아주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새가 있다. 달은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찾고, 고독한 여름 밤을 같이 지내고 가는, 의리 있고 다정한 친구다. 웃을 뿐 말이 없으나, 이심전심(以心傳心) 의사가 잘 소통되고 아주 비위에 맞는 친구다. 바람은 달과 달라 아주 변덕 많고 수다스럽고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올 뿐 아니라, 어떨 때에는 쏘삭쏘삭 알랑거리고, 어떤 때에는 난데없이 휘갈기고, 또 어떤 때에는 공연히 뒤틀려 우악스럽게 남의 팔다리에 생채기를 내놓고 달아난다. 새 역시 바람같이 믿지 못할 친구다. 자기 마음 내키는 때 찾아오고, 자기 마음 내키는 때 달아난다. 그러나, 가다 믿고 와 둥지를 틀고, 지쳤을 때 찾아와 쉬며 푸념하는 것이 귀엽다. 그리고, 가다가 흥겨워 노래할 때, 노래 들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기쁨이 되지 아니할 수 없다. 나무는 이 모든 것을 잘 가릴 줄 안다. 그러나, 좋은 친구라 하여 달만을 반기고, 믿지 못할 친구라 하여 새와 바람을 물리치는 일이 없다. 그리고, 달을 달리 후대(厚待)하고 새와 바람을 박대(薄待)하는 일이 없다. 달은 달대로, 새는 새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다같이 친구로 대한다. 그리고, 친구가 오면 다행하게 생각하고, 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행해 하는 법이 없다.
갑남을녀 甲男乙女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 또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 |
강구연월 康衢煙月 (오달도 강·거리 구·연기 연·달 월)
강구는 사통오달의 큰 길로서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연월은 연기가 나고 달빛이 비친다.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 |
張三李四, 匹夫匹婦, 善男善女, 樵童汲婦
개선광정 改善匡正 (匡 : 바로잡을 광)
좋도록 고치고 올바로 잡음. |
개과천선 改過遷善 (고칠 개·허물 과·옮길 천·착할 선)
지나간 허물을 고치고 옳은 길로 든다. |
거두절미 去頭截尾 (截 : 자를 절)
머리와 꼬리를 잘라 버린다. 요점만 남기고 앞뒤의 사설을 빼버린다. |
객반위주 客反爲主
나그네가 도리어 주인이 되다. 사물의 大小, 輕重, 前後을 뒤바꿈. |
거안사위 居安思危
편안하게 살면서 항시 위험한 때를 경계하여 생각함. |
有備無患
鳥久止면 必帶矢라.(久安則必危也라.)
人無遠慮면 必有近憂니라.
거안제미 擧案齊眉 (들 거·밥상 안·가지러할 제)
밥상을 눈 위로 받들어 올린다.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존경함. |
거자일소 去者日疎 (疎 : 성길 소)
죽은 사람을 애석히 여기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사라진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
건곤일척 乾坤一擲 (하늘 건·땅 곤·한 일·던질 척)
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한다.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나 성패를 겨룬다. 또는 오직 이 한번에 흥망성쇠가 걸려있는 일. |
在此一擧(재차일거) : 이 한번으로 단판을 짓다. 즉, 단 한 번의 거사로 흥하거나 망하거나 끝장을 낸다.
단판걸이로 씨름.(단판 씨름), 도 아니면 모.
고사 : 唐·宋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愈(768∼824, 字 :退之, 號 : 昌黎)의‘過鴻溝’의 詩에,
龍疲虎困割川原하니, 용과 범이 지쳐 이 강의 언덕으로 분할하니,
億萬蒼生性命存이라. 억만창생의 생명이 살아있도다.
誰勸君王回馬首라,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眞成一擲賭乾坤이라. 진정 한번 던져 하늘이냐 땅이냐로 도전한다.
홍구는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秦이 망하고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을 때 楚의 項羽와 漢의 劉邦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초가 서쪽은 한이 차지하기로 협약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 張良과 陣平이 유방에게 진언하기를,“漢은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지만, 楚는 군사가 피로하고 시량도 없습니다. 이때야 말로 하늘이 초를 멸하려 하는 것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하였다. 유방은 마침내 초를 해하(垓下)에서 승리하였다. 한유는 이때의 싸움을 천하를 건 일대 도박으로 보고 회고시를 쓴 것.
** 鴻(기러기 홍) 溝(도랑 구) 誰(누구 수) 勸(권할 권) 賭(걸 도)
건목수생 乾木水生 (乾 : 마를 건)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 내려한다. 엉뚱한 곳에서 불가능한 일을 이루려 한다. |
걸해골 乞骸骨 (빌 걸·뼈 해·뼈 골)
몸은 임금에게 바친 것이지만 뼈만은 내려 주십시오. 늙은 신하가 사직을 청원함. |
고사: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지난해(B.C. 203)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 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하남성(河南省) 내]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陣中)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과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이간책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은 장량(張良) 등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주] 소찬(素饌) : ① 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②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의 겸양의 말.
등창[背瘡] : 한의학에서, 등에 나는 큰 부스럼을 일컫는 말.
격물치지 格物致知 (이룰 격·만물 물·이를 치·알 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 |
고사: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유교의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으로서 그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 팔조목(八條目 :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으로 요약된다.
팔조목 중 여섯 조목에 대해서는 《대학》에 해설이 나와 있으나 '격물' '치지'의 두 조목에 대해서는 해설이 없다. 그래서 송대(宋代)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나와 유교 사상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로 논쟁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송나라 주자(朱子 : 朱熹, 1130∼1200)의 설과 명(明)나라 왕양명(王陽明 : 王守仁, 1472∼1528)의 설을 들을 수 있다.
① 주자의 설 : 만물(萬物)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궁구(窮究 : 속속들이 깊이 연구함)해 나가면 어느 땐가는 활연(豁然 : 환하게 터진 모양)히 만물의 겉과 속, 그리고 세밀함[精]과 거침[粗]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② 왕양명의 설 : 격물(格物)의 '물'이란 사(事)이다. '사'란 어버이를 섬긴다던가 임금을 섬긴다던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 곧 뜻이 있는 곳을 말한다. '사'라고 한 이상에는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밖에는 '물'도 없고 '이'도 없다. 그러므로 격물의 '격'이란 '바로잡는다'라고 읽어야 하며 '사'를 바로잡고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다. 악을 떠나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사람은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양지(良知)를 명확히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지(知)를 이루는[致] 것이며 '치지'이다.
[주] 양지 : ① 배우지 않을 수 있는 타고난 지능. ② 양명학(陽明學)에서, 마음의 본체.
격화소양 隔靴搔痒 (가죽신 화·긁을 소·가려울 양)
신을 신은 위로 가려운 곳을 긁는다. 어떤 일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돌기만 하여 매우 안타까운 상태. 또는, 답답하여 안타까움. |
隔靴爬痒
견강부회 牽强附會 (끌 견·강요할 강·붙일 부·모을 회)
말을 억지로 끌어다가 이치에 맞도록 함. |
견리사의 見利思義
이익되는 것을 보면 먼저 義理에 합당한가를 생각함. |
견마지년 犬馬之年
자기 나이를 낮추어 하는 말. |
견마지로 犬馬之勞
개나 말의 수고로움. 정성껏 수고를 다하는 노력. 또는 자기의 노력을 낮추어서 일컫는 말. |
☞수양은 나쁜 방면을 모름이 아니로되 그의 쉽지 않은 지혜를 높이 보아서 그를 긴히 쓰고자 함이었다.‘대감의 지혜와 지식 ― 국가를 다스림에 없지 못할 것이외다. 대감과 힘을 아울러 우리 전하를 도웁시다.’‘나으리 앞에서 견마의 노를 다 하오리라’수양은 인지의 손을 잡은 채 입을 닫았다.(金東仁, 首陽大君)
견마지양 犬馬之養
개나 말의 봉양. 부모를 봉양만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음. 봉양만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다. |
견문발검 見蚊拔劍 (蚊 :모기 문·拔 : 뽑을 발)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 보잘것 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움. 또는 조금한 일에 화를 내는 소견이 좁은 사람. |
견물생심 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임. |
견위수명 見危授命 (授 : 바칠 수)
(나라가)위태로움을 당하면 (나라에)목숨을 바침. |
견인불발 堅忍不拔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 |
견토지쟁 犬 之爭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 곧 ①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利)를 봄에 비유. 횡재(橫財)함의 비유. ② 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
고사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淳于 )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결자해지 結者解之
맺은 사람이 그것을 푼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그 일을 끝맺음. |
☞이리로 생각하고 저리로 생각하니 널로하여 생겼든지 널로하야 못살겠다 널로하여 죽게 되니 절로는 살길없다 暫見復望이오 結者解之라니 다 썩고 남은 간장 고칠 길이 전혀 없다.(歌詞, 相思陳情夢歌)
결초보은 結草報恩 (맷을 결·풀 초·갚을 보·은혜 은)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 ② 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하겠다.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
刻骨難忘(각골난망). 難忘之恩(난망지은). 銘心不忘(명심불망)
머리털 베어 신을 삼는다.
털을 뽑아 신을 삼겠다.
개 새끼도 주인을 보면 꼬리를 친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고사 :「晉나라의 大夫 위무(魏武)가 妾이 있었는데 병으로 앓게 되자, 그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하되“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내가 죽으면)죽여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과가 말하되“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秦과 晉의 싸움에 이르러 위과가 노인이 풀을 묶는 것을 보고서 두회(杜回)에게 대항했는데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지니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다. 후에 위과의 꿈에 노인이 이르기를“나는 개가를 시켜 준 부인의 아버지니라. 네가 너의 아버지의 정신이 있을 때의 유언을 좇아서 내 딸을 개가를 시켜 주어서 내가 이로써 너에게 갚는 것이다.”(魏武有妾이러니 武子病이어늘 謂其子顆曰“我死어늘 嫁此妾하라”病極이어늘 又曰“殺爲殉하라”及死에 顆曰“寧從治時命而嫁之리라”及秦晉之戰하여 魏顆가 見老人結草하여 以抗杜回하여 回跌而顚하고 遂獲之하니라. 後에 顆夢에 老人이 云“我而所嫁婦人之父也라 爾從治命이라. 余是以報니라.”)」(左傳)
** 嫁(시집보낼 가) 殉(따라죽을 순) 抗(막을 항) 杜(막을 두) 顚(엎어질 전)
☞낭군은 첩의 유언을 저버리지 마르사 전일의 정의를 생각하시고 이 두 딸을 어엿비 여겨 장성한 후 같은 가문에 배필을 얻어 봉황의 짝을 지어 주신다 하면 첩이 비록 명명한 가운데라도 낭군의 은택을 감축하여 結草報恩하리이다.(薔花紅蓮傳)
참고 : 再嫁·改嫁 : 일반적으로 시집갔던 여자가 다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 조선시대에는 엄격히 구분하여, 再嫁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 다시(再)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것을 설명한 말이고, 改嫁는 남편이 죽은 다음에 다른 남자에게 고쳐(改) 시집간 것을 지칭한 말이다.(팔자를 고쳐 새롭게 시작하는 결혼)
겸인지용 兼人之勇
혼자서 능히 몇 사람을 당해 낼 만한 용기. |
경거망동 輕擧妄動 (가벼울경·들 거·망령될 망)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경솔하게 함부로 행동함. |
경국지색 傾國之色
나라를 기우릴 만한 여자.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
傾城之色(경성지색). 萬古絶色(만고절색). 絶世(代)美(佳)人
羞花閉月(수화폐월). 國香. 國色
薄色(박색) : 매우 못생긴 여자.
고사 : 漢나라의 武帝 때 음악에 재능이 있고 춤이 뛰어난 이연년(李延年)이 어느 날 무제 앞에서“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는데, 세상에 견줄 만한 것 없이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도 기우네. (北方有佳人한대, 絶世而獨立이네. 一顧傾人城하고, 再顧傾人國이네.)”라고 노래 하엿다. 무제는 이연년의 누이동생을 빗댄 노래임을 알고 그녀를 불렀다. 과연 절세 미인이엇고 춤도 잘 추어 그 미모에 빠졌다. 傾國의 본뜻은‘나라를 위태롭게 한다’이다. 史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고조(高祖)가 항우에게 부모 처자를 포로로 빼앗겨 괴로와하고 있을 때, 후공(候公)이 그의 변설(辯舌)로써 이들을 찾아왓다. 이때 고조는“이는 천하의 변사(辯士)로다. 그가 있는 곳이면 나라도 기울게 하리라.”한 것이 본 뜻이다.
** 絶(끊을 절) 薄(엷을 박) 獨(홀로 독) 顧(돌아볼 고) 再(다시 재)
☞“당신 같은 팔자 어디 있어요, 주지육림(酒池肉林)에 경국지색(傾國之色)을 모아 놓고 밤 깊도록 노시다가 갑갑하실 때 쯤 때를 맞춰서 바람이나 쏘이시라고 나같은 모던 미인이 자동차까지 가지고 등대를 하고…하하…”경애는 야죽야죽 놀린다.(廉想涉, 三代)
경세제민 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준말 : 經濟) |
경이원지 敬而遠之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꺼리어 멀리함. 표리부동한 태도. |
경조부박 輕조浮薄
언어와 행동이 경솔하고 신중하지 못함.(준말 : 輕薄) |
경천위지 驚天緯地
온 세상을 다스림.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다스림. |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
고사: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주] 종횡가 :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제국(諸國)의 군주(君主)들을 찾아다니며 독자적인 정책을 유세(遊說)하여 그들 여러 나라를 종(縱) 횡(橫)으로 묶어서 경륜(經綸)하려던 외교가(外交家) 책사(策士) 모사(謀士)의 총칭. 합종책을 설(說)한 소진과, 소진이 피살된(B.C.317) 후 합종책을 깨기 위한 연횡책(蓮衡策)을 펴 성공한 장의(張儀)가 그 대표로 꼽힘.
계란유골 鷄卵有骨
계란에도 뼈가 있다. 운수가 나쁜 사람의 일은 모처럼 좋은 기회가 있더라도 무엇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
雪上加霜(설상가상)
운수가 나쁜 사람은 뒤로 넘어저도 코가 깨진다.(窮人之事는 飜亦破鼻라)
재수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웅담이 없다.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
밀가루 장수를 하면 바람이 불고 소금 장수를 하면 비가 온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의하면,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황희(黃喜, 號 : 尨村)는 마음이 착하고 생활이 검소하엿다. 황정승의 생활이 매우 빈한한 것을 상감(上監)께서 궁휼히 여기시고 어떻게 잘 살게 할 방도를 생각하시었다. 한 묘안을 얻어 명령하시되 내일은 아침 일찍 남대문을 열자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이 문을 들어오는 물건을 다 황정승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은 뜻밖에도 새벽부터 폭풍우가 몰아쳐 종일토록 멎지 아니하므로 문을 드나드는 장사치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다 어두워 집에 들어갈려고 할 때 무슨 까닭인지 시골 영감이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어 이것을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와 곧 삶아 먹으려고 하니 알마다 곯아서 한 알도 먹지 못하고 말았다 한다.‘곯다’의 어간이 한자의 骨과 음이 같은 데서‘뼈가 있다’로 된 듯함.
계륵 鷄肋 (肋 : 갈비 륵)
① 닭의 갈빗대.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② 닭의 갈빗대가 약하고 작은 것처럼 자기 몸이 약하다. |
兩手執餠(양수집병) : 양손에 든 떡. 갖기도 버리기도 아깝다.
고사 : ①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한중(漢中)을 먼저 점령하니 위(魏)의 조조(曺操)가 반격해 왔다. 그러나 조조는 수개월간의 싸움에 군량미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게 되자‘鷄肋’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조에게 양수(楊修)라는 은어를 잘 푸는 재주를 가진 주부(主簿)가 있었다. 그는 조조의 명령을 듣고 부리나케 수도 장안으로 돌아갈 차비를 차리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으니,“닭의 갈비는 먹으려하면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인데, 한중(漢中)을 이에 견주었으므로 왕은 곧 귀환 할 것을 결정하신 것이오.”그 말대로 조조는 위나라 전군에게 한중으로부터의 철군 명령을 내렸다.(後漢書)
② 유영(劉怜-竹林七賢)이 취홍 끝에 어떤 속인과 옥신각신 하였다. 그 속인이 팔을 걷어 부치고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드니 유영은 점잖게 말하기를,“닭의 갈빗대가 허약하니 어찌 그대의 주먹을 당해 내리오.” 달려들던 속인은 어이없이 그만 두어 버렸다.
계주생면 契酒生面
남의 물건으로 자기가 생색을 냄.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
계명구도 鷄鳴狗盜 (닭 계·울 명·개 구·도둑도)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① 잔재주를 자랑함. ②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③ 行世하는 사람이 배워서는 아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
函谷鷄鳴(함곡계명) : 함곡관의 닭 울음소리라는 뜻.
고사 :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가서 호백구(狐白구)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를 요구 하였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신이 능히 호백구를 얻어 오겠습니다.’하고 이에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史記, 孟嘗君傳)
계명구폐 鷄鳴拘吠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人家나 村落이 잇대어 있다. |
계찰괘검 季札掛劍
신의를 중히 여김. |
고사 : 오(吳)나라 계찰(季札)이 상국(上國)으로 사신가는 길에 서국(徐國)을 들르게 되었는뎨, 그 나라의 임금이 계찰의 칼을 매우 부러워 하였다. 계찰은 칼을 주기로 마음속으로 작정하고 사신 갔다가 돌아 오는 길에 서국을 들렀으나 임금은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마음 속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금의 묘에 칼을 걸어 놓고 왔다.
계포일약 季布一諾
한 번 한 약속은 끝까지 지킴. |
고사 : 초(楚)나라 계포는 어떤 일에든지‘좋다’하고 한 번 내뱉은 이상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걸고 싸울 때, 계포가 초나라 대장이 되어 유방을 여러차례 괴롭혔는데 한나라가 천하를 통일을 하자 쫓겨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을 잘 아는 자가 그를 밀고 하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유방에게 천거하여 사면시킨 뒤 벼슬까지 얻게 하였다.
고굉지신 股肱之臣 (다리 고·팔 굉·어조사 지·신하 신)
다리와 팔뚝에 비길 만한 신하.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重臣). |
股肱(고굉). 股掌之臣(고장지신)
고사 :『서경』익직편(益稷篇)에 순(舜)임금이 말햇다.“신하들이여! 옆에서 도와 주시오. 어려울 때 도와 주는 신히기 참된 신하로다.”하니 우(禹)가“옳으신 말씀입니다.”하였다. 순임금이 신하들을 둘러보며“그대들과 같은 신하는 짐의 팔다리요, 눈과 귀로다.(帝曰臣은 作朕股肱耳目) 내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돕고자 하니 아울러 그대들도 도와 주시오……. 나에게 잘못이 있으면 충고해 주고 모든 동료들이 서로 공경하고 예의를 지켜 주오. 그리고 관리는 백성의 뜻을 짐에게 전하는 것이 임무이니 올바른 이치로써 선양하고 뉘우치는 자가 있으면 용서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처벌하여 위엄을 보이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고군분투 孤軍奮鬪
수가 적고 도움이 없는 약한 군대가 강한 적과 용감하게 싸움. 적은 인원과 약한 힘으로 남의 도움도 없이 힘에 겨운 일을 악착스럽게함. |
고량진미 膏梁珍味
기름진 고기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 |
고려공사삼일 高麗公事三日
고려의 정령이 사흘 만에 바뀐다 착수한 일이 자주 바뀜. |
作心三日(작심삼일). 朝令暮改(조령모개). 朝變夕改(조변석개)
** 高麗 : 나라 이름. 또는 남의 사려를 높이어 이르는 말.
考慮 : 생각하여 헤아림. 苦慮 : 애써 생각함.
顧慮 :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 생각하여 봄.
고립무원 孤立無援
외톨이가 되어 도움을 받을 데가 없음. |
孤立無依
고복격양 鼓腹擊壤 (두드릴 고·배 복·칠 격·흙덩이 양)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친다. 배불리 먹고 흙덩이를 치는 놀이를 한다. 매우 살기 좋은 시절. |
堯舜之節(요순지절) :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시대.
太平聖代(태평성대) :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시대.
고사 : 고대(古代) 중국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다스렸던 시대는 태평성대(太平聖代)라 부를 만큼 매우 살기 좋았던 때라고 전한다. 어느 날 요임금은 자기를 천자로 받들기를 원하는지, 또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평복(平服)을 입고 시찰을 하였다. 이때 유행한 민요로“노인이 먹을 것을 입에다 물고서 배를 두드리고, 흙덩이를 치면서,「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들어와 쉬네. 새을 파서 물을 마시고, 농사지어 내 먹는데, 임금의 힘이 어찌 미치리오.(日出而作하고, 日入而息이로다. 鑿井而飮하고, 耕田而食하나니, 帝力이 何有於我哉리오.)」라면서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十八史略)
** 息(쉴 식) 鑿(뚫을 착) 飮(마실 음) 耕(밭갈 경)
고색창연 古色蒼然
오래되어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들어나 보이는 모양. |
고성낙일 孤城落日
고립무원한 외딴 성이 해가 지려고 하는 곳에 있다. 도움이 없이 고립된 상태.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쓸쓸한 심경. |
四顧無親(사고무친) : 친척이 없어 의지할 곳이 없이 외로움.
고식지계 姑息之計 (姑 : 잠시 고)
잠시 모면하는 일시적인 계책. |
因循姑息(인순고식) : 구습을 버리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을 취함.
고육지책 苦肉之策
적을 속이는 수단으로서 제 몸 괴롭히는 것을 돌보지 않고 쓰는 계책. |
고장난명 孤掌難鳴
외 손뼉은 울릴 수 없다. 혼자서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또는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는다. |
因人成事(인인성사) : 남의 일을 비어 일함.
十匙一飯(십시일반) :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여 한 사람을 돕는 일은 쉽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르다.
☞새로운 낱말을 만들 때에는 몇몇 선학들이 시도했듯이‘매, 가름, 목’처럼 일상어와 인연을 맺기가 어려운 것을 쓰거나,‘엮, 묶’과 같이 낱말의 한 부분을 따 오는 방식보다는 역시 일상적으로 쓰는 말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언어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고장에서는 시멘트를‘돌가루’라고 불렀다. 이런 말들은 자연적으로 생겨 난 훌륭한 우리 고유어인데도 불구하고, 사전에도 실리지 않고 그냥 폐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고향에 가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얼마 전, 고속 도로의 옆길을 가리키는 말을 종전대로 써 오던 용어인‘노견(路肩)’에서‘갓길’로 바꾸었다는 보도를 듣고, 우리의 언어 생활도 이제 바른 방향을 잡아 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고진감래 苦盡甘來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 |
生口不網(생구불망) :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
☞밤은 깊어 삼경인듸 안자쓴들 임이올가, 누워슨들 잠이오랴. 임도 잠도 아니 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매도 원수로다. 홍진비래 고진감내 예로부텀 잇건마는 지달임도 Я?안코…(完板春香傳)
☞이제는 살아갈 길이 막연하다. 이왕 시작한 일이라 주판지세요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하였으니 나중에야 설마 길한 일이 없으랴.(興夫傳)
☞소진도 일시의 곤란을 겪으며 뜻을 가다듬어 필경 육국상인을 허리에 띄였다 하니 나도 재조와 담력을 가지고 신고를 견디어 큰 사업을 성취할지니 속담에 이르되 고진감래라 하고 궁한즉 통한다 하니 좋은 때 돌아 오기를 기다릴지로다.(李人稙,雪中梅)
고침안면(高枕安眠)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곧 ①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②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의 비유. |
고사: 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 위(魏) 제(齊) 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했다.
"전하,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사옵고[高枕安眠]'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목하고 합종을 탈퇴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나라 난왕( 王)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고황지질 膏황之疾
고칠 수 없이 깊이 든 병.(膏 : 心臟의 아래. 황 : 橫隔膜과 心臟의 사이.) |
고사 : 옛날 중국 진후(晉候)가 병을 얻어, 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했더니, 꿈에 병이 든 두 소년으로 나타나서 한 놈이「그는 명의니까 어디로 숨을까」라고 말하니 또 한놈이 답하기를「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가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의원이 와 보고 병은 이미 황의 위, 고의 아래로 들어갔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중국 춘추시대 송나라 강왕은 포악하고 음란하여 미인을 탐하는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느 날 우연히 절세미인인 시종 한빙의 아내 하씨를 발견하고는 강제로 후궁을 삼앗다. 그후 아내를 빼앗긴 한빙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자, 하씨는“시신을 한빙과 합장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격노한 강왕은 무덤을 서로 보이게는 하되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으나 밤 사이에 두 그루의 노나무가 각각 두 무덤 끝에서 나더니 열흘이 못되 아름들이가 되엇다. 위로는 가지가 서로 얽히고 아래로는 뿌리가 맞닿았다. 그야말로 뜨거운 만남의 표현이었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새가 앉아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어 사람을 애처롭게 만들었다. 이 새를 한빙 부부의 넋이라 여겨, 그 나무를 상사수라고 했는데, 相思病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되었고, 새는 원앙새라고 하였다.
곡학아세 曲學阿世
학문을 왜곡하여 세상에 아첨한다. 자신의 소신이나 철학을 굽혀 권세나 시세에 아첨함. |
淸廉潔白(청렴결백) : 마음이나 행동이 깨끗하고 허울과 재물의 욕심이 없다.
고사 : 漢나라 경제(景帝)때 齊나라 사람 원고생(轅固生)은 90세의 늙은 신하였으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강직한 성격으로 인하여 헐뜯는 자들이 많았다. 또한 그와 함께 등용된 소장학자 공손홍(公孫弘)도 원고생이라는 늙은 신하를 탐탐히 여기지 않았으나, 원고생은 공손홍에게 태연한 자세로 이르기를,“요즘 學의 도는 어지러워지고 속설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두면 유서 깊은 학의 전통은 마침내 사설(邪說)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네. 그대는 다행히 젊고 好學의 선비라고 들었네. 부디 올바른 학을 열심히 배워 세상을 넓히도록 노력하게. 절대로 자기가 옳다고 믿는 학설을 굽히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지 않기를 바라네.”공손홍은 원고의 훌륭한 임품과 학식에 감복하여 자신의 무례함을 사과하고 제자가 되었다. 당시 이름 있는 시인들은 거의 원고의 제자였다고 한다.
골육상쟁 骨肉相爭
뼈와 살이 서로 다툼.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 |
同族相殘(동족상잔)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빈 손으로 �다가 빈 손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 |
공자왈맹자왈 孔子曰孟子曰
공자왈 맹자왈 한다. 글방 선비들이 다만 孔孟의 전적(典籍)을 읽으며 그에 하등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 空理空論만 일삼음을 보고 하는 말. |
공전절후 空前絶後
비교할 만한 것이 이전이나 이후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함. |
공중누각 空中樓閣
공중에 누각을 지은 것처럼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 |
고사: 송(宋)나라의 학자 심괄[沈括:호는 몽계옹(夢溪翁)]이 저술한 일종의 박물지(博物誌)인 《몽계필담(夢溪筆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등주(登州)는 사면이 바다에 임하여 봄과 여름철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성시누대(城市樓臺)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이른다.
[登州四面臨海 春夏時 遙見空際 城市樓臺之狀 土人謂之海市(동주사면임해 춘하시 요견공제 성시루대지상 토인위지해시)]
훗날 청(淸)나라의 학자 적호(翟灝)는 그의 저서《통속편(通俗篇)》에서 심괄이 이 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언행이 허구에 찬 사람을 일컬어 '공중누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일을 인용한 것이다.
[今稱言行虛構者 曰空中樓閣 用此事(금칭언행허구자 왈공중누각 용차사)]
이처럼 '공중누각'이란 말은 이미 청나라 때부터 쓰여 왔으며, 심괄의 글 가운데 '해시'라는 것은 '신기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유불급 過猶不及 (過 : 지날 과·猶 : 같을 유)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중용(中庸)을 가리키는 말. |
過不及
고사 : 자공(子貢)이 孔子에게“子張과 子夏 중 누가 현명합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날 자장이 공자에게,“士로서 어떻게 하면 達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그대가 말하는 達이란 무엇인가?”“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그것은 聞이지 達이 아니다. 본성아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 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이라 할 수 있다.”하고 공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구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자공은 지나쳤고, 자장은 미치지 못하였다.”“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論語, 先進篇)
과전이하瓜田李下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
고사: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 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애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관포지교 管鮑之交 (管 : 주관할 관·鮑 : 절인 고기 포)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 없는 교제. |
고사 : 제(齊)나라의 관중(管仲)이 포숙(鮑叔)과 함께 장사할때 이익을 많이 가져도 포숙이 나를 욕심이 많다고 여기지 않았고, 일을 도모하다가 곤궁해져도 어리석다 여기지 않았으며, 세 번 벼슬을 하였다가 세 번 쫓겨나도 못났다고 하지 않았고, 세 번 싸움에 세 번 도망갔으나 포숙은 관중을 겁장이라 여기지 않았다. 관중이 말하기를,「나를 낳아 주신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 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했다.(史記, 管晏列傳)
괄목상대 刮目相對(비빌 괄·눈 목·서로 상·기다릴 대)
눈을 비비고 보며 상대를 대한다. 한동안 못 본사이에 상대방이 놀랄 정도로 발전한다. |
고사 : 오(吳)나라 왕 손권(孫權)에게는 부하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몸이 날쇄고 무술이 뛰어나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매우 무식하였다. 어느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할 것을 권했다. 얼마 후 손권의 신하 중에서 학식이 가장 뛰어나며 여몽과 오랜 친구인 노숙(魯肅)이 찾아왔다. 서로 이야기하던 중 여몽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오늘에 이르러 학식이 영특하고 박식하니 온나라 시골 구석에 사는 어리석은 여몽이 아니구려.”라고 말하니 여몽이“선비는 헤어진지 3일이 지나면 곧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네.”라고 대답하였다.
광일미구 曠日彌久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낸다는 뜻. |
고사:전국 시대 말엽,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연(燕)나라의 공격을 받은 혜문왕은 제(齊)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3개 성읍(城邑)을 할양한다는 조건으로 명장 전단(田單)의 파견을 요청했다. 전단은 일찍이 연나라의 침략군을 화우지계(火牛之計)로 격파한 명장인데 조나라의 요청에 따라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러자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는 재상 평원군(平原君)에게 항의하고 나섰다.
"아니, 조나라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제게 맡겨 주신다면 당장 적을 격파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안 된다고 말했다. 구러자 조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나라와 연나라는 원수간이긴 합니다만 전단은 타국인 조나라를 위해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강대한 조나라는 제나라의 패업( 業)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단은 조나라 군사를 장악한 채 '오랫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보낼 것입니다[曠日彌久].' 두 나라가 병력을 소모하여 피폐해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평원군은 조사의 의견을 묵살한 채 미리 정한 방침대로 전단에게 조나라 군사를 맡겨 연나라 침공군과 대적케 했다. 결과는 조사가 예언한 대로 두 나라는 장기전에서 병력만 소모하고 말았다.
[주] 화우지계 : 쇠뿔에 칼을 잡아매고 꼬리에 기름 바른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그 소떼를 적진으로 내모는 전술.
교각살우 矯角殺牛 (矯 :바로잡을 교·殺 :죽일 살)
소 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 수단이 지나쳐 도리어 일을 그르침. |
矯枉過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다 태운다.
교언영색 巧言令色
교묘한 말과 억지로 꾸민 얼굴 빛. 겉치레만 할 뿐 성실하지 못한 태도. |
고사:공자[孔子:이름은 구(丘).B.C.551∼479]는 아첨꾼에 대해 《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발라 맞추는 말과 아랑거리는 태도에는 '인(仁)'이 적다.
[巧言令色 鮮矣仁(교언영색 선의인)]
말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보기 좋게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뒤집어서 또 공자는 〈자로편(子路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강직 의연하고 질박 어눌한 사람은 '인'에 가깝다.
[剛毅木訥 近仁(강의목눌 근인)]
의지가 굳고 용기가 있으며 꾸밈이 없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인(덕을 갖춘 군자)'에 가깝다는 뜻.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라도 '인(덕을 갖춘 군자)' 그 자체는 아니라고 공자는 〈옹야편(擁也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질 빈빈한 연후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文質彬彬 然後君子(문질빈빈 연후군자)]
문(文:형식)과 질(質:실질)이 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군사라는 뜻이다.
☞권위주의는‘윗사람에게는 복종과 아첨을 일삼으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군림하려 하는 의식 구조와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위계적인 사회 질서 속에서 살아왔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거의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적인 정치 질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힘있는 사람이나 윗사람에게는 복종하거나 아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생존 방식이고 출세를 위한 처세술이라고 여겨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권위주의의 큰 폐단은 다른 사람의 인권은 물론이고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데 있다. 따라서, 권위주의는 민주적 시민 사회나 합리적인 산업 사회 이상 미덕이 될 수 없게 된 낡고 퇴행적인 가치관인 것이다.
교외별전 敎外別傳
경전(經典) 바깥의 특별한 전승(傳承).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 |
以心傳心(이심전심) 心心相印(심심상인) 不立文字(불립문자)
고사 : 經典 바깥의 특별한 傳承,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보고 불경을 얻는다.(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 直指 :‘곧바로 가리킨다.’지적이라기 보다는 직관적이며 여러 군말 없이 사실을 사실대로 토로하는 마음의 전형.
☞老子는 道德經에서“성(聖)을 절(絶)하고 지(智)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百倍)하리 라.”고 하여, 지식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의 불필요함을 말하였다. 그러나 딱한 것은 지식이 불필요하다고 아는 것도 하나의‘앎’이요, 후세 사람들이 도덕경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이 노자의 사상을 알 수 있게 마련이니, 노자의 말은 오히려 지(知) 자체를 반성한 지의 지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사람은 그 무지 조차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과 다름직도 하다고 하였거니와, 노자는 지의 불필요를 아는 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말로 표현하듯이, 지가 불필요함을 지로써 전하는 껏이라 하겟다. 결국 지(知) 이상의 것도 지를 통함으로써만 알 수 있다.
교주고슬 膠柱鼓瑟 ( 아교 교·두드릴 고·비파 슬)
거문고의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탄다.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음. 또는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 |
교학상장 敎學相長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스승에게 배우거나 모두 나의 학업을 증진시킨다. |
고사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옛날에 왕된 자는 나라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임금 노릇을 함에 교와 학을 우선으로 삼았다. 비록 좋은 안주가 있더라도 먹지 않으면 그 맛을 알지 못하고, 비록 지극한 도가 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음을 모른다. 이런 까닭으로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연후에야 막힘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안 연후에 스스로 반성할 수 있고, 막힌을 안 연후에 스스로 힘쓸 수 있으니, 그러므로 말하기를,“남을 가르치는 일과 스승에게서 배우는 일이 서로 도와서 자기의 학업을 증진시킨다.”고 한다.(玉不琢이면 不成器요 人不學이면 不知道라. 是故로 古之王者는 建國君民에 敎學先學하니라. 雖有佳肴라도 不食하면 不知其味야요, 雖有至道나 不學하면 不知其善也니라. 是故로 知不足한 然後에 知不足하고 敎然後에 知困하니라. 知不足한 然後에 能自反야요, 知困然後에 能自强야니 故로 曰 敎學相長야니라.)」(禮記)
** 肴(안주 효)
구미속초 狗尾續貂
개꼬리를 담비의 꼬리에 잇는다. 좋은 것 다음에 나쁜 것을 잇는 것. 또는 쓸만한 인격자가 없어 비열한 고관(高官)에 등용함. |
구밀복검 口蜜腹劍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배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 속은 음흉한 것. |
笑中有劍(소중유검), 笑面虎(소면호)
面從腹背(면종복배) :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敬而遠之(경이원지) : 친절한 체하나 속으로는 그렇지 않음.
羊頭狗肉(양두구육) : 양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
表裏不同(표립부동) : 겉과 속마음이 같지 않다.
등치고 간 내먹는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웃고 사람 친다.)
고사 :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이임보(李林甫)는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後宮)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 후「권세와 지위가 장차 자기를 압박할 만한 사람은 반드시 여러 계책으로 제거하고 문학하는 선비들은 더욱 꺼려 혹은 함께 선한 체하다가 달콤한 말로 속이고 몰래 그를 함정에 빠뜨리니 세상 사람들이 이임보는 입에는 꿀이 잇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勢位가 將逼己者를 必百計去之하고 尤忌文學之士하여 或陽與之善이라가 담以甘言하고 而陰陷之하니 世謂 林甫는 口有蜜이요 腹有劍이라.)」고 이르더라.
** 勢(세력 세) 逼(다그칠 핍) 忌(꺼릴 기) 담(먹일 담) 陷(빠질, 함정 함)
구사일생 九死一生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 |
구상유취 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 아직 어리다. 하는 짓이 어리석고 유치 하다. |
이마빡에 피도 안 말랐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나이 오십 줄에 들어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입에서 젖내 나는 년을 집구석으로 끌어 들이고 지랄을 버릇는 그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슈?…(廉想涉, 三代)
☞우리 집에서는 새 며느리를 맞는다고 야단 법석을 하며 아직도 입에서 젖내가 제대로 가시지 못한, 열세살 먹은 꼬맹이에 冠帶(관대)를 입히고 紗帽(사모)를 씌워 나귀 등에 올려 앉히고 논틀을 건느고 산모롱이를 돌아 마을 앞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 이와 같은 길을 三十里 쯤이나 갔을까. 역시 어떤 農村 조그마한 초가집 앞에 내려 놓는 것이었다.(李熙昇, 隨筆)
☞갑주를 갖추고 진문에 나서며 원수를 불러 가로되 네 한갓 혈기만 믿고 우리를 대적하려 하니 이는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니라. 네 빨리 나와 나를 대적하라. 이때에 원수 의기 양양하여 응성하고 내다라 싸워 일합이 못하여 거의 한담을 잡게 되었더니 적진이 또 쟁을 처 싸움을 거두거늘…(劉忠烈傳)
☞「어디 그러면 한 번 겨뤄 보자」샛바람은 제 말마따나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벽에 끌러서 걸어둔 제 환도를 떼어 든다.「허, 이놈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견디어 봐라…(玄鎭健, 無影塔)
☞-말을 삼가라? 나는 노골적이다! 너희놈들처럼 뒷구멍으로 우물쭈물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애는 못 데려갈 줄 아슈. -이게 원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 할 줄 모른다드니! 설사 내가 애를 찾으러 왔다 하자. 그렇드래두 그애 하나쯤은 내 주는 게 예의가 아니냐? 내가 누구라는 걸 알면 말이다!(黃順元, 人間接木)
구십춘광 九十春光
봄의 석 달 동안. |
구여현하 口如懸河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
口若懸河(구약현하)
靑山流水(청산유수) : 푸른 산에서 물 흐르듯이 말을 술술 잘함.
말 잘하기는 소진 장의다.
蘇張의 혀.(蘇陳張儀)
고사 : 진(晉)나라 때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비범하고 어떤 사물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이치를 밝히기를 좋아하였다. 도한 老子와 莊子의 사상을 즐기면서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학자였다. 당시 그에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특히 남들과 여러 사상을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였다. 왕연(王練)이 이르기를「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흐르는 물이 큰 물줄기로쏟아져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廳象語면 如懸河하여 瀉水注而不竭이라.」며 칭찬하였다.
** 象(코끼리 상) 瞭(밝을 료) 練(익힐 련) 廳(들을 청) 瀉(쏟을 사) 注(물댈 주)
고희 古稀
70세 |
고사 : 두보(杜甫)의 곡강(曲江) 시에「술빚은 보통 가는 곳마다 있으니 결국 인생은 기껏 살아 본들 70 세는 옛날로부터 드물다.(酒債尋常行處有하니 人生七十古來稀라.)」란 승구 중 古 자와 稀 자만을 써서「古稀」란 단어를 만들어 70 세로 대신 쓴 것이다.
** 債(빚 채) 尋(찾을 심)
(참고) 연령(年齡)을 나타내는 漢字語
지학(志學) : 공자는『논어』에서,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 데서 나온 말. 15 세 를 일컬음.
약관(弱冠) : 남자 나이 20세를 일컬음.
이립(而立) : 공자가『논어』에서, 30세가 되어 인생관이 섰다고 한 데서 나온 말. 30세를 일컬음.
불혹(不惑) : 공자가『논어』에서, 40세가 되어 사물의 이치에 의문나는 점이 없었다고 한 데 서 나온 말. 40세를 일컬음.
지명(知命) : 공자가『논어』에서, 50세가 되어 천명(天命)을 알았다고 한 데서 온 말. 50세를 일컬음.
이순(耳順) : 공자가『논어』에서, 60세가 되어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한 데 서 나온 말. 60세를 일컬음.
화갑(華甲)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에다 일(一)이 하나 있으므로 61세를 나타내며,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고도 한다. 61세를 일컬음.
진갑(進甲) :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란 뜻이다. 62세를 일컬음.
고희(古稀) : 70세를 일컬음.
종심(從心) : 공자가『논어』에서, 70세가 되어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한데서 나온 말. 70세를 일컬음.
희수(喜壽) :「희(喜)」자를「칠」로도 썼기 때문에 喜壽는‘七 + 七’세 즉, 77세를 일컬음.
산수(傘壽) :「산(傘)」자를「산」로도 썼기 때문에 傘壽는‘八 + 八’세 즉, 88세를 일컬음.
미수(米壽) :「미(米)」자를 분해하면‘八十八’이 되기 때문에 米壽는 88세를 일컬음.
졸수(卒壽) :「졸(卒)」의 약자를「 」이라고 썼기 때문에 卒壽는‘九十’세, 즉 90세.
백수(白壽)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백(白)」즉 百에서 하나를 빼면 99세가 된다.
(참고) : 결혼기념일(結婚記念日)을 나타내는 漢字語
紙婚式(지혼식) : 1주년 象牙婚式(상아혼식) : 14주년
藁婚式(고혼식) : 2주년 銅婚式(동혼식) : 15주년
糖菓婚式(당과혼식) : 3주년 磁器婚式(자기혼식) : 20주년
革婚式(혁혼식) : 4주년 銀婚式(은혼식) : 25주년
木婚式(목혼식) : 5주년 眞珠婚式(진주혼식) : 30주년
花婚式(화혼식) : 6주년 珊瑚婚式(산호혼식) : 35주년
電氣器具婚式(전기기구혼식) : 8주년 碧玉婚式(벽옥혼식) : 40주년
陶器婚式(도기혼식) : 9주년 紅玉婚式(홍옥혼식) : 45주년
錫婚式(석혼식) : 10주년 金婚式(금혼식) : 50주년
鋼鐵婚式(강철혼식) : 11주년 回婚式(회혼식) : 60주년
麻(絹)婚式(마혼식) : 12주년 金剛石婚式(금강석혼식) : 75주년
구우일모 九牛一毛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 많은 것 가운데 극히 미미한 하나. |
九牛毛(구우모)
滄海一粟(창해일속) : 넓고 큰 바다에 작은 좁쌀. 넓고넓은 가운데 하찮은 물건 하나.
大海一滴(대해일적) : 넓고 큰 바다에 물방울 하나.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 뽑기다.
고사 :『사기(史記)』의 저자 司馬遷(사마천)은 漢나라 때 흉노족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패하게 되자 투항한 이릉(李陵)을“황공하오나 아뢰옵니다. 이릉은 얼마 되지 않 는 군사로 억만의 적과 싸워 오랑캐의 왕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원군은 오지 않고, 적과 내통한 자가 있어 부득이 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릉은 군졸들과 신고(辛苦)를 같이 했고 인간으로서 최대의 힘을 발휘한 명장입니다. 흉노에 항복한 것은 아마 후에 漢에 보답하려는 의도인 줄 압니다. 차제에 오히려 이릉의 공을 천하에 나타내주십시요.”라고 변호 한 까닭으로 武帝에게 궁형(宮刑:남자의 성기를 없애는 형벌)을 받아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사마천은 이를 최하급의 치욕이라 여기면서,「가령 내가법에 복종하여 죽임을 당할지라도 마치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하나의 털이 없어지는 것과같다.(假令 僕伏法하여 受誅라도 若九牛亡一毛라.)」라고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한편 그는치욕을 받으면서도 선친(先親)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살아서 마침내 사기를 �다고 한다.(司馬遷, 報任安書)
** 滄(큰바다 창) 粟(조 속) 遷(옮길 천) 假(거짓 가) 誅(벨 주)
구절양장 九折羊腸
아홉 번 꺾인 양의 창자.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하다. 또는 세상이 복잡하여 살아가기 어렵다. |
구화지문 口禍之門
입은 재앙의 문. 말을 삼가도록 경계. |
국사무쌍 國士無雙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은 둘도 없다. 매우 뛰어난 인재. |
一歲之雄(일세지웅) : 한 시대의 영웅이라는 말로 그시대에는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 로 뛰어난 인물.
고사 : 한왕 유방(劉邦)이 군사를 이끌고 남정(南鄭)으로 갈 때 길이 험하고 멀어서 도주에 이탈하는 자가 많아 군사들이 동요하자 한신(韓信)도 도망하였다. 그 때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그것을 알고 급히 한신을 쫓아갔다. 유방은 충복인 소하마저도 도망한 줄 알고 크게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틀 뒤에 한신을 데리고 돌아오니 유방이 꾸짖으며 다그쳤다.“왜 도망쳤는냐?”소하가“도망한 것이 아니라 한신을 잡으러 갔었습니다.”“다른 장수들이 이탈했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유독 한신만을 쫓아간 이유는 무엇이냐?”소하가 말하기를“「모든 장군은 얻기가 쉬울 따름이지만 한신 같은 경우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인물 중에 둘도 없습니다.(諸將은 易得耳나 至如信者는 國 士無雙이니다.)」 폐하께서 한중(漢中)의 왕만 되시려 한다면 그가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소유하고자 한다면 한신 없이는 더불어 그 일을 도모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史記)
** 蕭(맑은대쑥 소) 何(어찌 하) 諸(모두 제) 易(쉬울 이)
군계일학 群鷄一鶴
많은 닭 중에 한 마리의 학. 평범한 사람 가운데 뛰어난 사람. |
鶴立鷄群(학립계군) : 학이 닭이 많이 있는 데 선다. 눈에 띠게 훌륭함.
出衆(출중). 出群(출군). 出等(출등). 出凡(출범). 出人(출인)
拔群(발군). 絶倫(절륜).
白眉(백미) : 유비(劉備)의 신하 중 마량(馬良)의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흰 눈썹을 가 진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는 故事.
鐵中錚錚(철중쟁쟁) : 쇠 중에서 소리가 가장 맑다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중 특별히 뛰어 난 사람.
人中之末(인중지말) :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뒤떨어지고 못난 사람.
닭이 천(千)이면 봉(鳳)이 한 마리.
군맹무상群盲撫象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곧 ①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② 범인의 좁은 식견의 비유. |
고사:인도의 경면왕(鏡面王)이 어느 날 맹인들에게 코끼리라는 동물을 가르쳐 주기 위해 그들을 궁중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신하를 시켜 코끼리를 끌어오게 한 다음 소경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얼마 후 경면왕은 소경들에게 물었다.
"이제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았느냐?"
그러자 소경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예, 알았나이다."
"그럼, 어디 한 사람씩 말해 보아라."
소경들의 대답은 각기 자기가 만져 본 부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달랐다.
"무와 같사옵니다." (상아)
"키와 같나이다." (귀)
"돌과 같사옵니다." (머리)
"절굿공 같사옵니다." (코)
"널빤지와 같사옵니다." (다리)
"독과 같사옵니다." (배)
"새끼줄과 같사옵니다." (꼬리)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를 비유한 것이고, 소경들은 밝지 못한 모든 중생(衆生)들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들이 석가모니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즉 모든 중생들에게는 각기 석가모니가 따로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군웅할거 群雄割據 (무리 군·나눌 할·차지할 거)
많은 영웅들이 각지에서 자리잡고 세력을 규합하여 대립하는 것. |
군자삼락君子三樂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는 말. |
고사:전국 시대, 철인(哲人)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맹자(孟子:B.C. 372?∼289?)는 《맹자(孟子)》〈진심편(盡心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君子有三樂(군자 유삼락)]
첫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요.
[父母具存 兄弟無故(부모구존 형제무고)]
둘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구부려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요.
[仰不傀於天 俯不 於人(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셋째 즐거움은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다.
[得天下英才 而敎育之(득천하영재 이교육지)]
한편 공자는 《논어(論語)》〈계시편(季시篇)〉에서 '손해 되는 세가지 좋아함[損者三樂(손자삼요)]'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교락(驕樂:방자함을 즐김), 일락(逸樂:놀기를 즐김), 연락(宴樂:주색을 즐김).
궁여지책 窮餘之策
매우 어려운 가운데 짜낸 한가지 계책. |
권모술수 權謀術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는 교묘한 술책. |
권불십년 權不十年
권세는 10년을 넘지 못한다.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늘 변한다. 또는 영화는 일시적이어서 계속되지 않는다. |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 : 열흘 붉은 꽃이 없다.
권선징악 勸善懲惡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벌하다. |
권토중래 捲土重來 (거둘 권·흙 토·거듭 중·올 래)
흙 먼지를 날리면서 거듭 온다. 한번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세력을 갖추어 일어남. |
死灰復燃(사회부연) : 다 탄 재가 다시 불 붙었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세력을 다시 잡음.
고사 : 唐나라 두목(杜牧 803∼852 : 杜甫를 老杜라 하고 두목은 少杜라 함)은‘題烏江亭詩’에「승패는 병가에서도 기약할 수 없는 것, 부끄러움을 안고 참는 것 이것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 재주있는 준걸이 많은데, 흙 먼지를 날리면서 다시 올 것을 알지 못 하였도다.(勝敗不可兵家期하고, 包羞忍恥是南兒이라. 江東子弟多才俊한데, 捲土重來未可知로다)」라 하여, 項羽가 죽은지 천 년이 지난 어느 날, 오강의 여사(旅舍)에 머물러, 그의 단순하고 격한 성격, 우미인(虞美人)과의 이별에서 볼 수 있는 인간성, 그리고 그의 요절(夭折-31세) 등을 회상하며 비감에 잠겨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 灰(재 회) 燃(불탈 연) 題(표제 제) 包(감쌀 포) 羞(부끄러워 수) 俊(준걸 준)
귀거래 歸去來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감. |
참고 : 단오(端午)의 유래는 楚나라 회왕(懷王)때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志操)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에 투신 자살을 하였는데 그 날이 바로 음력 5월 5일 이었다.《열아세시기》에는 이날 밥을 수뢰(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극기복례 克己復禮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쫓음. |
고사 :「안연(顔淵)이 어느 날 孔子에게 仁에 관하여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오는 것이 인이다. 만일 사람이 하루라도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온다면 그 영향으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인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런데, 이 인은 제 힘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 남의 힘을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그러면 인을 실천하는 조목은 무엇입니까?”“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도 말라는 것이다.”“안회가 어리석고 불민합니다만 이 말씀을 실천하도록 평생 힘쓰겠습니다.”(顔淵門仁한대 子曰“克己復禮爲仁이니라, 一日克己復禮하고 天下歸仁焉하면 爲仁由己이니, 而由人乎哉인져.”顔淵曰“請問其目하닛가.”子曰“非禮勿視하고, 非禮勿廳하고, 非禮勿言하고, 非禮勿動하라.”顔淵曰“回雖不敏 請事斯語矣니이다.」(論語, 顔淵篇)
근묵자흑 近墨者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은 빛이 된다. 사람은 늘 가까이 하는 사람에 따라 영향을 받아서 변하므로 조심하라. |
近朱者赤(근주자적) : 붉은 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됨.
水隨方圓之器하고 人依善惡之友니라.
從遊邪人하고 予亦自邪니라.
蓬生麻中이면 不扶自直하고, 白沙在尼하면 與之皆黑이니라.(史記) : (꾸불꾸불한)쑥도 (곧은) 삼 가운데에서 자라면 돕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지고, 흰 모래도 진흙 가운데에 있으면 그와 더불어 모두 검어진다.
☞어찌하여 인심을 논하는 것인가. 공자께서,‘마을 인심이 착한 곳이 좋다. 착한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랴.’하시었다. 또 옛적에 맹자의 어머님이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아들의 교육을 위한 것 이었다. 옳은 풍속을 가지지 아니하면 다만 자신에게 해로울 뿐 아니라 자손들도 반드시 나쁜 물이 들어서 그르치게 될 근심이 있다. 그러므로 살 터를 잡음에 있어서 그 지방의 풍속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李重換,擇里地)
금과옥조 金科玉條
금이나 옥과 같은 조문. 아주 귀중한 법칙이나 규범. |
금란지교 金蘭之交
금처럼 견고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사귐. 견고한 벗 사이의 우정. |
고사 : 두사람이 마을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은 쇠도 끊을 것이요, 마음을 같이 한 말은 그 냄새가 난초의 향기와 같다.(二人同心이면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이라.)
금상첨화 錦上添花 (添 : 더할 첨)
비단 위에 쫓을 더한다. 좋은 일에 좋은 일이 겹칠 때. |
雪上加霜(설상가상) : 눈위에 서리가 더한다. 어려운 일이 연거푸 일어난다.
病上添病(병상첨병) : 병을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겹치다. ?? 엎친데 덮친격.
누이 좋고 매부(妹夫) 좋다.
고사 : 북송(北宋) 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이 만년에 남경에서 은둔할 때 지은 시「즉사(卽事)」에 나오는 구절이다.“강물은 남원(南苑)으로 흘러 서쪽 언덕으로 기울고 바람에 영롱한 이슬 아름답구나. 문 앞 버드나무는 옛사람 도잠(陶潛)의 집이고, 우물가 오동나무는 옛 총지(總持)의 집이라.「아름다운 초대 술잔 속 맑은 술 따라 마시고, 즐거운 노래가락 비단 위에 꽃을 더하네.(嘉招欲覆盃中록,麗唱仍添錦上花)」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대접받으니 천원의 붉은 노을 아직도 많구나.”
** 嘉(아름다울 가) 招(부를 초) 覆(덮을 복) 盃(잔 배) 록(물맑을 록) 仍(이에 잉)
금성철벽 金城鐵壁
금으로 만든 성, 철로 된 벽. 매우 굳고 든든한 성. |
금수지장 錦繡之腸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이름. 아름다운 마음씨의 所有者. |
금실지락 琴瑟之樂
부부사이의 더정하고 화목한 즐거움. |
연리지(連理枝) : 연리의 가지. 화목한 부부. 또는 남녀의 사이.「백낙천(白樂天)은 唐 현종 (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노래한‘장한가(長恨歌)’에서 양귀비의 맹세로‘하늘에 있어서는 원컨데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데 연리지가 되기를(在天願作比翼鳥 在 地 願 鳥 連理枝)’라고 노래 하였다.」
비익조(飛翼鳥) : 날개가 하나씩인 새로 두 마리가 합하여야 두 날개를 갖추게 되어 날 수 있다 하여 연리지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금오옥토 金烏玉兎
금오는 해, 옥토는 달. 즉 해와 달을 이름. |
금의야행 錦衣夜行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아무리 출세하려고 열심히 일을 해도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다. |
衣錦夜行(금의야행) : 비단 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夜行被繡(야행피수) : 밤길을 가는데 수놓은 옷을 입다.
錦衣還鄕(금의환향) : 비단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출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다.
衣錦晝行(의금주행) : 비단옷을 입고 낮에 다닌다.
衣錦之榮(의금지영) : 비단옷을 입는 영화로움.
고사 : 漢나라와 楚나라가 동맹관계에 있을 때 유방(劉邦)이 먼저 秦나라를 점령하였다. 항우(項羽)가 늦게 진나라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하여 진나라 왕 자영(子영)을 죽이고 궁궐을 불살랐으며 재보(財寶)와 여자들을 손 안에 넣고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려 하자 신하가“함양은 산과 강이 험하여 사방이 막혀 있고 땅이 기름지므로 여기에 도읍을 삼으면 패자(覇者)가 될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부귀하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富貴하나 不歸故鄕이면 如衣錦夜行이라.)」라고 말하고 함양을 떠났다.(漢書, 項籍篇)
금의환향 錦衣還鄕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옴. 다른 고장에 가서 성공하여 高貴한 신분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
☞오직 멀리 떨어져 있는 자기 남편이 몸 성히 있기를 축수하고 하루 바삐 성공을 해서 금의환향 하기를 三秋와 같이 기다리는 것을 도리어 난을 삼고 모든 고생을 달게 여기며 …(沈熏, 탈춤)
금지옥엽 金枝玉葉
금 가지에 옥 잎사귀. ① 임금의 자손이나 매우 귀한 집의 자손. ② 아름다운 구름을 고운 초목. ③ 가장 귀중한 물건. |
☞황막한 눈 쌓인 벌판 요동 벌 천리를 거쳐 온 노국공주는 아무리 씩씩하고 발랄한 기상을 가진 여자지마는 그래도 나어린 금지옥엽의 귀한 몸이었다.(朴種和, 多情佛心)
금자탑 金子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번역한 말. 그 모양이 금(金)자와 비슷한 데서 온 말. 길이 후세에 전해질 만한 가치가 있는 불멸의 업적. |
기고만장 氣高萬丈
기운이 만장이나 뻗치었다. 펄펄 뛸 만큼 크게 성이 남. 또는 일이 뜻대로 되어 나가 씩씩한 기운이 대단하게 뻗침. |
기망 旣望
음력(陰曆)으로 16일. 이미 망월(望月:15일)이 지났다는 뜻에서 16일. |
고사 : 소동파(蘇東波)의 적벽부(赤壁賦)에 말하되「임술년의 가을 7월 16일에 소동파가 객(客)과 더불어 배를 적벽강에 띄우고 놀새, 말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의 파도는 일어나지 않고 잔잔하니라.(任戌之秋七月旣望에 蘇者 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기상천외 奇想天外
상식에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 |
기여보비 寄與補裨
이바지하여 돕고 부족함을 보태어 줌. |
기인지우 杞人之憂
기나라 사람의 근심. 쓸데없는 군걱정. |
고사 :「옛날 중국의 기국(杞國)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둘 바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소리를 들은 어떤사람이 이를 딱하게 여겨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저서 떨어지리요?”그 사람이 말하되“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마땅히 떨어지지 않으리요.”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라.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하는 바가 없느니라.”그 사람이 말하되“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오?”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그 사람이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고 일깨워 준 사람도 걱정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더라.(杞國에 有人이 憂天崩墜하여 身無所寄하고 廢寢食者러니 又有憂彼之所憂者아여 因往曉之曰“天은 積氣이라. 奈何憂崩墜乎아”杞人이 曰“天果積氣인댄 日月星宿는 不當墜耶아”曉之者曰“日月星宿도 亦積氣中에 有光曜者니 只使墜라도 又不能有所中傷이라”杞人이 曰“奈地壞何오”曉者가 曰“地는 積塊耳라 奈何憂其壞오”杞人이 舍然大喜하고 曉之者도 亦舍然大喜하니라.)」(列子)
기린아 麒麟兒
슬기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 젊은이. |
기진맥진 氣盡脈盡
기운이 없어지고 맥이 풀렸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버리다. |
기호지세 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가는 형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도중 내릴 수 없는 것처럼 그만 두거나 물릴 수 없는 상태. |
고사: 남북조(南北朝) 시대 말엽인 581년,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재상 양견(楊堅)은 즉시 입궐하여 국사를 총괄했다. 외척이지만 한족(漢族)이었던 그는 일찍이 오랑캐인 선비족(鮮卑族)에게 빼앗긴 이 땅에 한족의 천하를 회복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에 선제가 죽은 것이다.
양견이 궁중에서 모반을 꾀하고 있을 때 이미 양견의 뜻을 알고 있는 아내 독고(獨孤) 부인으로부터 전간(傳簡)이 왔다.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이므로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일입니다[騎虎之勢 不得下].'만약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호랑이와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부디 목적을 달성하시오소서."
이에 용기를 얻은 양견은 선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라 일컫고 국호를 수(隋)라고 했다. 그로부터 8년 후인 589년, 문제는 남조(南朝) 최후의 왕조인 진(陳:557∼589)나라마저 멸하고 마침내 천하를 통일했다.
기화가거 奇貨可居
기이한 재물은 저축해 두는 것이 옳다. 좋은 물건을 사두면 장차 큰 이익을 본다. |
고사 : 전국(戰國)시대 말 韓나라의 대상(大商)「여불위(呂不韋)가 한단으로 장사차 갔다가 그를 보고 가련타 여기며 말하기를 이는 좋은 재물이니 거두어 둘 만하다 라고 여기고 곧 가서 자초를 뵈었다.(呂不韋가 賈邯鄲하여 見而憐之曰 此奇貨可居라하고 乃往見子楚하다.)」그 후 많은 돈을 써서 안국군의 정비(正妃)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 환심을 샀으며 널리 인재들을 규합하여 마침내 자초를 진나라 태자로 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여불위는 자기의 아이를 잉태한 애첩 조희(趙姬)를 자초에게 시집보내어 그 때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여 진시황제(秦始皇帝)가 되니 그의 권세도 무소불위(無所不爲)였다.(史記, 呂不韋列傳)
** 賈(장사 고) 邯(땅이름 한) 鄲(땅이름 단) 姬(아씨 희) 憐(가련할 련)
낙락장송 落落長松
가지가 축축 늘어진 오래된 큰 소나무. |
낙점 落點
벼슬아치를 뽑을 때 임금이 뽑을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던 일. |
☞조선시대에 관리를 임명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었으니, 인사를 담당한 이조나 병조에서‘비삼망(備三望)’이라 해서 세 사람을 추천하여 왕에게 올리면 왕은 자신의 의중에 드는 한 사람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서 뽑았다. 점이 찍힌 사람의 편에서 보면‘수점(受點)’으로 되지만 점을 찍은 왕의 편에서 보면‘낙점(落點)’으로 되는 것이다.
천거(薦擧)란 관리로 등용할 수 있는 인재를 추천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 중앙과 지방의 정3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은 3명의 인재를 추천할 의무를 가졌으며, 인재를 추천하는 사람을 거주(擧主)라고 했다. 만약 추천한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연대 책임을 졌다.
난공불락 難攻不落
공격하기가 어려워 함락시키지 못했다. |
낙양지귀洛陽紙貴
낙양의 종이 값. 훌륭한 글을 다투어 베끼느라고 종이의 수요가 늘어서 값이 등귀한 것을 말함이니 문장의 장려함을 칭송하는 데 쓰이는 말. |
고사 :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 )의 풍물을 읊은《삼도부(三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시인이《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 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저술],《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삼도부》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 환관 문인 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洛陽紙價貴]'고 한다.
난형난제 難兄難弟
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어느 편이 낫다고 우열을 가리기가 곤란할 때 쓴다. |
莫上莫下(막상막하) : 어느 것이 위고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다.
伯仲之勢(백중지세) : 우열을 분간할 수 없다.(伯仲之間)
互角之勢(호각지세) : 서로 조금도 낫고 못함이 없는 자세.
優劣難分(우열난분) : 뛰어나고 열등함을 분간할 수 없다.
大同小異(대동소이) : 거지반 같고 조금만 다름. 즉, 거의 같음.
五十步百步(오십보백보) :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아서는 본질상 차이가 없음.
고사 : 후한(後漢) 말의 학자 진식(陳寔)은 덕망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그의 아들 진기(陳紀), 진심(陳諶)과 더불어 세군자로 불리어졌다. 진기의 아들 진군(陳群)도 역시 뛰어난 수재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었다. 진군이 어렸을 때 어느 날 진심의 아들 진충(陳忠)과 놀다가「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논하였는데 서로 자기 아버지가 낫다고 하여 결말을 짓지 못하였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물으니,“형이 낫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우가 낫다고 하기도 어렵구나.”라고 대답하였다.(各論其父功德하여 爭之不能決하여 咨于太丘하니 太丘曰 元方難爲兄하고 季方難爲弟니라.)」(世說新語)
남가지몽 南柯之夢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날 꿈에 지나지 않는다. |
고사 ; 당(唐)나라 9대의 황제인 덕종(德宗:780∼804년)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淳于 )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태수를 제수(除授)받고 부임했다.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대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남귤북지 南橘北枳 (橘 : 귤나무 귤·枳 :탱자 지)
강남의 귤을 강북으로 옮기면 탱자로 변한다. 환경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된다. |
남남북녀 南男北女
우리나라는 남쪽엔 남자, 북쪽엔 여자가 더 잘난 사람이 많다. |
남부여대 男負女戴(負 : 짐질 부·戴 : 일 대)
남자는 짐을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는 형상. |
남선북마 南船北馬
중국의 남쪽은 강이 많아 배를 타고 다니고, 북쪽은 들이 넓어 말을 타고 다닌다 함이니, 사방으로 바쁘게 돌아다닌다. |
낭중지추 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드러나게 된다. 또는 아무리 감추려 하나 숨겨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드러나 善惡을 가리게 된다. |
錐囊(추낭). 추처낭중(錐處囊中)이 원어(原語)이다.
주머니 속에 들어간 송곳이라.
고사 : 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은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秦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되었다. 그래서 楚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식객 중 지용(智勇)을 겸비한 사람 20명을 뽑아 동행하고자 했지만 한 사람이 부족했다. 그 때 모수가 자천(毛遂自薦)하자,「평원군이“대저 현명한 선비가 세상을 대처함은 비유컨데 송곳이 주머니 속에 처하여 그 끝이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 선생이 내 집에 들어와서 여기에서 3년이 되었다. 내가 들은바가 없으니 이것은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자 모수가“오늘 처음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 달라는 것입니다. 일찍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더리면 송곳자루까지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平原君曰“夫賢士之處世也는 譬若錐之處囊中하여 其末立見이라. 今先生이 處勝之門下하여 三年於此矣라 勝 未有所聞하니 是先生無所有也라.”毛遂曰“臣乃今日請處囊中耳니이다. 使遂蚤得處囊中하니 乃穎脫而出하니 非特其末見而耳니다.”)」(史記,平原君傳)
** 譬(비유할 비) 蚤(일찍 조) 穎(고리, 이삭, 빼어날 영)
낭중취물 囊中取物
주머니 속에 든 것을 꺼내 가지는 것과 같이 아주 손 쉽게 얻을 수 있다. |
식은 죽 먹기.
누워 떡 먹기.
☞듣자오니 특재라 하는 자객이 있어 사람 죽임을 낭중취물같이 한다 하오니 천금을 주어 밤에 들어가 해하오면 상공이 알으시나 할 길 없사오리니 부인은 재삼 생각하소서…(洪吉童傳)
내강외유 內剛外柔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하지만 속마음은 단단하고 굳셈. |
外柔內剛(외유내강)
內柔外剛(내유외강)
내우외환 內憂外患
나라 안에도 근심스런 문제가 있고 나라 밖으로부터도 외적이 쳐들어 오는 불안전한 시국. |
노마지지 老馬之智
늙은 말의 지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 |
고사 :「관중과 습붕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칠 때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가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가로되“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만하다”하고 곧 늙은 말을 풀어 그 말을 따랐다.(管中濕朋이 從於桓公하여 而伐孤竹할새 春往冬反이라가 迷惑失道하다. 管中曰 老馬之智를 可用也라하고 乃放老馬하여 而隨之하다.)」(韓非子, 說林上) 또한 산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없어 갈증이 나자 습붕이“개미는 겨울이면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산의 북쪽에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말하여 파보니 과연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물도 뛰어난 장점이 있듯이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여 할 일을 부여한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 管(대통 관) 濕(진펄 습) 迷(어두울 미) 惑(미혹될 혹) 放(놓을 방)
노당익장 老當益壯 (益 : 더욱 익·壯 : 씩씩할 장)
나이를 먹을수록 기력이 더욱 좋아지다. 그런 사람을 이른다.(?? 老益壯) |
노심초사 勞心焦思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각을 너무 깊게 함. 애쓰면서 속을 태움. |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錢莊 : 전당포)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 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하고 그는 마치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하…오(좋소).”하고 내어 준다. 그는 “하…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녹림호객綠林豪客
푸른 숲이란 뜻으로, 도둑 떼의 소굴을 일컫는 말. |
고사:전한(前漢:B.C. 202∼A.D. 8) 말, 왕실의 외척인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은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신(新:8∼24)이라 일컬었다.
왕망은 농지, 노예, 경제 제도 등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책을 폈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잡한 제도에 걸려 농지를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또한 화폐가 8년 동안에 네 차례나 바뀌는 등 경제정책 역시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백성들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다. 그래서, 왕망은 백성들은 물론 귀족들로부터도 심한 반감을 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북 변경의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이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湖北省當陽縣) 내의 녹림산에 근거지를 둔 8000여의 한 무리는 스스로를 '녹림지병(綠林之兵)'이라 일컫고 지주의 창고와 관고(官庫)를 닥치는 대로 털었다. 그 후 이 녹림지병은 5만을 헤아리는 대세력으로 부상했는데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 유수(劉秀)는 그들을 십분 이용하여 왕망의 신 나라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녹음방초 綠陰芳草 (綠 : 푸를 록·芳 : 꽃다울 방)
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꽃다운 풀. 여름의 아름다운 경치. |
녹의홍상 綠衣紅裳 (裳 : 치마 상)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 젊은 여인의 고운 옷차림. |
丹脣皓齒(단순호치) : 불은 입술과 흰 이. 미인의 얼굴.
雪膚花容(설부화용) : 흰 살결에 고운 얼굴.
柳尾蜂腰(유미봉요) : 버들같은 눈섭에 개미같은 허리.
논공행상 論功行賞
공을 다 따져 각각 알맞은 상을 주는 일. |
누란지위 累卵之危
알을 쌓은 듯한 위태로움. 쌓아 놓은 알과 같이 매우 위태로운 형세. |
危如累卵(위여누란). 累卵之勢(누란지세). 累碁(누기) : 바득 돌을 쌓아 올린 듯하다.
如履薄氷(여리박빙) : 엷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
百尺竿頭(백척간두) : 백 척이나 되는 장대 위에 매달려 있다.
風前燈火(풍전등화) : 바람 앞의 등불.
焦眉之急(초미지급) : 눈섶에 불이 붙음. 일각의 여유도 둘 사이없이 다급함.
고사 : 魏나라의 범수(范휴)는 수가(須賈)의 식객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어느날 齊에 사신으로 가는 수가를 보필하고 돌아왔는데, 모함으로 누명을 쓰고도망하다 장록(張祿)으로개명하고 秦나라에서 벼슬자리 얻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마침 사신으로 위나라에 온 왕계(王稽)가 범수의 유능함을 알고 진으로 데려와 소왕에게 아뢰기를“장록은 출중한 사람입니다. 그가「진나라는 알을 쌓아둔 것처럼 위태로우므로 나를 쓰면 나라가 평안해질 것입니다.(秦王之國은 危於累卵이니 得臣則安하리라.)」하기에 데려 왔습니다.”하였다.(史記, 范휴傳)
농가성진 弄假成眞
장난으로 한 것이 참으로 한 결과가 되었다. |
假弄成眞(가농성진)
농단壟斷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 곧 ① 재물을 독차지함. ② 이익을 독점함. |
고사:전국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실현을 위해 제국을 순방 중이던 맹자는 제나라에서도 수년간 머물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려 했다. 그러자 선왕은 맹자에게 높은 봉록을 줄 테니 제나라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맹자는 거절했다.
"전하, 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데도 봉록에 달라붙어서 '재물을 독차지[壟斷]'할 생각은 없나이다."
이렇게 말한 맹자는 '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농단'은 '깎아 세운 듯이 높이 솟아 있는 언덕'이란 뜻인데, 전하여 '재물을 독차지한다', '이익을 독점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먼 옛날에는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었다. 그런데 한 교활한 사나이가 나타나 시장의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는 '높은 언덕[壟斷]'에 올라가 좌우를 살펴서 장사함으로써 '이익을 독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나이의 비열(卑劣)한 수법을 증오(憎惡)하고 그에게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때부터 장사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생겼다고 한다.
농와지경 弄瓦之慶
딸을 낳은 기쁨. |
고사 : 옛날 중국에서 딸을 낳으면 쓰는 벽돌(瓦)을 장난감으로 주었으므로 이름.(詩經에「乃生好載寢之地 載衣之석 載弄之瓦」)
농장지희 弄璋之喜
아들을 낳은 기쁨. |
고사 : 옛날 중국에서 아들을 낳으면 구슬(璋)의 장난감을 준 고사.(詩經에「乃生男子 載寢之狀 載衣之裳 載弄之璋」)
누란지위累卵之危
알을 쌓아(포개) 놓은 것처럼 위태로운 형세의 비유. |
고사:전국시대, 세 치의 혀[舌] 하나로 제후를 찾아 유세하는 세객(說客)들은 거의 모두 책사(策士) 모사(謀士)였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나라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려던 책사 모사를 종횡가(縱橫家)라고 일컬었다.
위(魏)나라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난 범저(范雎)도 종횡가를 지향하는 사람이었으나 이름도 연줄도 없는 그에게 그런 기회가 쉽사리 잡힐 리 없었다. 그래서 우선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종자(從者)가 되어 그를 수행했다. 그런데 제나라에서 수가보다 범저의 인기가 더 좋았다. 그래서 기분이 몹시 상한 수가는 귀국 즉시 재상에게 '범저는 제나라와 내통하고 있다'고 참언(讒言)했다.
범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거적에 말려 변소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는 모사답게 옥졸을 설득, 탈옥한 뒤 후원자인 정안평(鄭安平)의 집에 은거하며 이름을 장록(張祿)이라 바꾸었다. 그리고 망명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중 때마침 진(秦)나라에서 사신이 왔다. 정안평은 숙소로 은밀히 사신 왕계(王稽)를 찾아가 장록을 추천했다. 어렵사리 장록을 진나라에 데려온 왕계는 소양왕(昭襄王)에게 이렇게 소개했다.
"전하, 위나라의 장록 선생은 천하의 외교가 이옵니다. 선생은 진나라의 정치를 평하여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며 선생을 기용하면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고 하였사옵니다."
소양왕은 이 불손한 손님을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인재가 아쉬운 전국 시대이므로, 일단 그를 말석에 앉혔다. 그 후 범저(장록)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으로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곧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데 종이나 붓 따위의 재료 또는 도구를 가리는 사람이라면 서화의 달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 |
고사:당나라는 중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나라의 하나였다. 당시 서예의 달인으로는 당초 사대가(唐初四大家)로 꼽혔던 우세남(虞世南) 저수량( 遂良) 유공권(柳公權) 구양순(歐陽詢)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를 배워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낫소?"
우세남은 이렇게 대답했다.
"구양순은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으면서도[不擇筆紙]' 마음대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能書]고 하오. 그러니 그대는 아무래도 구양순을 따르지 못할 것 같소."
이 말에는 저수량도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또 '능서불택필'은 ①《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과 ②주현종(周顯宗)의 《논서(論書)》에 각각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①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젯거리로 삼게 되었다."
②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니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 전서(篆書) 예서(隸書)를 쓰는 경우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
능소능대 能小能大
모든 일을 임기웅변으로 잘 처리함. |
다기망양 多岐亡羊
달아난 양을 찾다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 학문의 길이 다방면이면 진리를 얻기 어렵다. 또는 방침이 많아 도리어 갈 바를 모른다. |
亡羊之嘆(망양지탄)
고사:전국시대의 사상가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했던 양자[楊子:이름은 주(朱), B.C.395?∼335?]와 관계되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그래서 그 집 사람들은 물론 양자네 집 하인들까지 청해서 양을 찾아 나섰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양자가 물었다.
"양 한 마리 찾는데 왜 그리 많은 사람이 나섰느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예, 양이 달아난 그 쪽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지쳐서 돌아왔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갈림길이 하도 많아서 그냥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양을 못 찾았단 말이냐?"
"예,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양자는 우울한 얼굴로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한 현명한 제자가 선배를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스승인 양자가 침묵하는 까닭을 물었다. 그 선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 학자는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학문이란 원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시고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
다다익선 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많이 보태지면 힘이 더 난다. |
多多益辦(다다익판) :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잘 처리한다.
고사 : 漢나라 유방(劉邦)이 천하통일 후 한신(韓信)을 楚 왕으로 임명하고, 한신에게「임금이 묻기를“나는 얼마쯤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느냐? ”한신이 대답하기를“폐하께서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리는데에 불과합니다.”임금이 가로되“그대는 얼마쯤인가?”한신이 대답하기를“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上問曰 如我能將幾何오하니 信曰 陛下不過能將十萬이니다. 上曰 於君何如오 曰 臣多多益善耳니이다.)」유방이 웃으면서“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느냐?”하니 한신이 대답하기를“폐하께서는 장군의 능력은 없지만 장군을 통솔하는 폐하의 능력은 하늘이 주신 것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능력으로는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史記, 淮陰侯傳)
다사다난 多事多難
여러 가지로 일이 많고 몹시 어려움. |
단기지계 斷機之戒
베를 끊어서 훈계했다. 학업을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경계. |
孟母斷機(맹모단기)
고사 : 맹자가 자라서 어느 날 유학을 갔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오니,「맹모가 바야흐로 베를 짜다가 묻기를“학문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느냐?”맹자가 말하기를“전과 같습니다.”하니 맹모가 칼로써 베를 끊으면서 말하기를“자식이 학문을 버림은 내가 이 베를 끊는 것과 같다.”하니 맹자가 두려워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학문하였다.(孟母方績타가 問曰 學何所至與아. 孟子曰 自若也니이다. 母以刀로 斷其機曰 子之廢學은 若吾斷斯織矣라. 孟子懼하여 旦夕으로 勤學하다.)」맹자는 마침내 천하의 명유(名儒)가 될 수 있었다.(列女傳, 母儀)
단말마 斷末魔
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 |
단도직입 單刀直入
한 자루의 칼을 들고 곧바로 쳐들어 감. 허두를 빼고 요점이나 본문제로 들어간다. 또는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서슴지 않고 정면으로 대번에 용건을 들어 말하는 것. |
단사표음 簞食瓢飮
대그릇의 밥과 표주박의 물. 좋지 못한 적은 음식. |
簞瓢陋巷(단표누항)
고사 :「공자가 말씀하시되「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심으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있음을 사람들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子曰 賢哉라 回也여 一簞食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堪其憂어늘 回也는 不改其樂하니 賢哉라 回也여.)」(論語)
** 簞(도시락 단) 食(밥 사) 瓢(바가지 표) 巷(집 항) 堪(견딜 감) 憂(근심 우)
단장 斷腸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게 견딜 수 없는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 |
고사 : 晉나라의 환온(桓溫)이라는 사람이 蜀나라로 가던 도중 환온의 종자(種子)가 양자강의 삼협(三峽)에서 원숭이 새끼를 싣고 가자 그 어미가 새끼를 그리워하여 울부짖으며 백여리나 달려와 배에 뛰어 들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담판 談判
어떤 일의 是非를 가리거나 결말을 짓기 위하여 논의하다. 부당한 일에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여 시정하도록 하다. |
당구풍월 堂拘風月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한다. 무식쟁이라도 유식한 사람과 사귀면 견문이 넓어진다. 또는 무슨 일 하는 것을 오래 오래 보고 듣고 하면 자연히 할 줄 알게 된다. |
堂拘三年에 吠風月이라.
당랑거철 螳螂拒轍 (사마귀당,랑·저항할 거·바퀴자국 철)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비다. |
螳螂之斧(당랑지부) : 사마귀가 앞 발을 머리 위로 올린 것.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
螳臂當車(당비당거) : 사마귀의 팔뚝이 수레를 당하다. 용감무상한 것.
고사 : 齊나라의 장공(莊公)이 어느 날 사냥을 갔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다리를 들고 수레바퀴로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본 장공이 부하에게“용감한 벌레로구나. 저놈의 이름이 무엇이냐?”“예. 저것은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저 벌레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제 힘은 생각지 않고 한결같이 적에 대항하는 놈입니다.”장공이 이 말을 듣고“이 벌레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에 비길 데 없는 용사였을 것이다.”하고는 그 용기에 감탄하여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서 가게 했다.(淮南子, 人間訓)
대기만성 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큰 인물은 많은 노력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뒤늦게 이루어짐. |
고사: ① 삼국 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란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 하고 일가 친척들로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②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25∼57)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인데, 복파장군이란 전한(前漢) 이후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이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 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재목으로 다듬어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③《노자(老子)》에도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隅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주] 긴 안목으로 봐 주자는 자애어린 이 말이, 요즈음에는 각 분야에서 '늦되는 사람'에게 위로 겸 농담조로 얼버무릴 때에도 쓰임.
대대손손 代代孫孫
대대로 이어오는 자손. |
子子孫孫(자자손손) 世世孫孫(세세손손)
대동단결 大同團結
많은 사람. 여러 갈래의 당파가 큰 덩어리로 한 데 뭉치다. |
대동소이 大同小異
크게는 같은 데 작게는 다르다. 거의 같음. |
대명천지 大明天地
매우 밝은 세상. 크게 밝은 하늘과 땅. |
대서특필 大書特筆
뚜렷이 드러나게 큰 글씨로 쓰다. 누구나 알게 크게 여론화하다. |
대의멸친 大義滅親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 정의를 위해서는 사적인 일에 구애받지 않는다. |
滅私奉公(멸사봉공) : 사사로운 일을 저버리고 공적인 일을 힘써 받는다.
枉尺直尋(왕척직심) : 짧은 것은 굽히고 긴 것을 폄. 小를 희생시켜 大를 살림.(尺:길이의 단 위. 10촌을 말함. 尋:두 팔을 벌린 길이 7∼8尺정도.)
고사: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원년(元年:B.C.719)의 일이다. 위(衛)나라에서는 공자(公子) 주우(州 )가 환공(桓公)을 시해하고 스스로 군후의 자리에 올랐다. 환공과 주우는 이복 형제간으로서 둘다 후궁의 소생이었다.
선군(先君) 장공(莊公) 때부터 충의지사로 이름난 대부 석작(石 )은 일찍이 주우에게 역심(逆心)이 있음을 알고 아들인 석후(石厚)에게 주우와 절교하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석작은 환공의 시대가 되자 은퇴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석작이 우려했던 주우의 반역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반역은 일단 성공했으나 백성과 귀족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지 않자 석후는 아버지 석작에게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물었다. 석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역시 천하의 종실(宗室)인 주왕실을 예방하여 천자(天子)를 배알(拜謁)하고 승인을 받는 게 좋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천자를 배알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왕실과 각별한 사이인 진(陳)나라 진공(陳公)을 통해서 청원하도록 해라. 그러면 진공께서 선처해 주실 것이다."
이리하여 주우와 석후가 진나라로 떠나자 석작은 진공에게 밀사를 보내어 이렇게 고하도록 일렀다.
"바라옵건대, 주군(主君)을 시해한 주우와 석후를 잡아 죽여 대의를 바로잡아 주시 오소서."
진나라에서는 그들 두 사람을 잡아 가둔 다음 위나라에서 파견한 입회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했다고 한다.
대천지수 戴天之讐 (일 대·하늘 천·어조사 지·원수 수)
함께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수. 임금이나 어버이에 대한 원수는 하늘을 함께 하고 살지 않는다. |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不共戴天(불공대천). 徹天之怨(철천지원).
殺父之讐(살부지수). 貿首之讐(무수지수) : 아버지를 죽인 원수.
고사 :『禮記』곡예편(曲禮篇)에“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지 못하고 형제의 원수는 병기를 돌이키지 않고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지 않는다.(父之讐는 不與共戴天하고 兄弟之讐는 不反兵하며 交遊之讐는 不同國이라.)”
도로무익 徒勞無益
헛되이 수고만 하고 보람이 없다. |
☞도로아미타불은 옛날 어떤 고을로 동냥을 갔던 젊은 중이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그만 상사병에 걸렸다. 중은 번민 끝에 처녀에게 청혼을 했다. 처녀는 10년 동안 한방에서 동거하되 손목도 잡지 말고 바라만 보고 친구처럼 지내면 10년 후에는 아내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동거가 시작되어 어언 내일이면 10년이 되는 날 밤, 중은 사랑스런 마음에 그만 하루를 못 참고 처녀의 손을 잡으니, 깜짝 놀란 처녀는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10년 노력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즉 순간의 실수로 애쓴 일이 소용없이 되어 처음과 같음을 일컫는다.
☞만사휴의(萬事休矣)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보았지만 달리 해결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하여 모든 일이 헛수고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로,『송사(宋史)』의「高氏世家」에서 비롯된 말로 남평(南平)이라는 나라의 보훈(保勛)이라는 임금은 어렸을 때 편애를 받고 자란 영향으로, 항상 웃고 살았다. 당시 송나라가 강성해지고 있던 시기였기에 국력 강화에 힘을 기울여야 함에도 만사 걱정이 없는 태도로 일관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남평 사람들은 만사휴의(萬事携矣:모든 것이 끝났다.)요, 이제 그에게 기대를 걸어 볼 수 없으니 남평은 곧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도외시度外視
① 가욋것으로 봄. 안중에 두지 않고 무시함. ② 문제삼지 않음. 불문에 붙임. |
고사:후한의 시조 광무제(光武帝)때의 일이다. 광무제 유수(劉秀)는 한(漢:前漢)나라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현(劉玄)을 세워 황제로 삼고 한나라를 재흥했다.
대사마(大司馬)가 된 유수는 그 후 동마(銅馬) 적미(赤眉) 등의 반란군을 무찌르고 부하들에게 추대되어 제위에 올랐으나 천하 통일에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윽고 제(齊) 땅과 강회(江淮) 땅이 평정되자 중원(中原)은 거의 광무제의 세력권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벽지인 진(秦) 땅에 웅거하는 외효( )와 역시 산간오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 거점을 둔 공손술(公孫述)만은 항복해 오지 않았다.
중신들은 계속 이 두 반군의 토벌을 진언했다. 그러나 광무제는 이렇게 말하며 듣지 않았다.
"이미 중원은 평정(平定)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문제시할 것 없소[度外視]."
광무제는 그간 함께 많은 고생을 한 병사들을 하루 속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어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원결의 桃園結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하다. |
結義兄弟(결의형제) : 의형제를 맺음.
고사 : 後漢 말기 환관들의 횡포가 몹시 심하여 정사가 혼란했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피폐함이 극에 달했다. 또한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 국중이 시끄러울 때 유비(劉備)는 선조의 왕조를 되찾겠다는 큰 뜻을 품고「도원 안에서 세 사람이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며 맹세하여 말하기를 생각건데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씨는 다르나 이미 맺어 형제가 되었으니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곤궁함을 구제하고 위태로움을 부축하여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리라.(於桃園中에 三人이 焚香再拜而誓曰 念컨데 劉備 關羽 張飛는 雖異姓이나 旣結爲兄弟하니 則同心協力하여 救困扶危하여 上報國家하고 下安藜庶라.)」고 天地神明께 제사하고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죽기로 맹세하고 의형제를 맺었다.
** 巾(두건 건) 焚(불사를 분) 誓(맹세할 서) 協(합할 협) 扶(붙잡을 부) 藜(검을 려) 庶(뭇 서)
도청도설 道聽塗說
길거리에서 듣고 길거리에서 이야기함. 길거리의 뜬 소문. |
流言蜚語(유언비어)
고사:①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논어(論語)》〈양화편(陽貨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道聽塗說]'은 덕을 버리는 것과 같다[德之棄也]."
길거리에서 들은 좋은 말[道聽]을 마음에 간직하여 자기 수양의 양식으로 삼지 않고 길거리에서 바로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는 것[塗說]은 스스로 덕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좋은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자기 것으로 하지 않으면 덕을 쌓을 수 없다는 말이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고, 천도(天道)를 지상(地上)에서 행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던 공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억제하고 인덕(仁德)을 쌓으며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덕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논어》에서 이르고 있다.
② 후한시대, 반고(班固)가 엮은《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대체로 소설이란 것의 기원은 임금이 하층민의 풍속을 알기 위해 하급 관리에게 명하여 서술토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 즉 세상 이야기라든가 길거리의 뜬소문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道聽塗說]' 무리가 지어낸 것이다."
소설이란 말은 이런 의미에서 원래는 '패관(稗官:하급 관리) 소설'이라고 일컬었으나 나중에 그냥 '소설'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③《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에는 다언(多言)을 이렇게 훈계하고 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오고[口耳之學]'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口耳四寸].' 이처럼 짧은 거리를 지날 뿐이라면 어찌 일곱 자[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배운 것을 금방 다른 사람에게 고하
고 자기를 위해 마음 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인간을 못쓰게 망쳐 버린다. 그래서 묻지 않은 말도 입밖에 낸다. 이것을 '잔소리'라 하며,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한다. 둘 다 잘못되어 있다. 참된 군자(君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어느 세상에도 오른쪽 귀로 들은 것을 왼쪽 사람에게 털어놓는 수다쟁이 정보통이 많다. 더구나 그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사이에 점점 꼬리를 끌게 마련이다. '이런 무리는 해가 있을 뿐'이라며 공자, 순자는 경계하고 있다.
도탄지고 塗炭之苦 (진흙 도·숯 탄·괴로울 고)
진흙이나 숯불에 떨어진 것과 같은 고통. 가혹한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 |
도탄(塗炭)에 빠졌다.
도처춘풍 到處春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 즉 좋은 얼굴로 남을 대하여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처신하는 사람. 가는 곳마다 기분 좋은 일. |
독불장군 獨不將軍
혼자서는 장군을 못한다. 저 혼자 잘난 체하며 뽑내다가 남에게 핀잔을 받고 고립된 처지에 있는 사람. 또는 가장 잘난 체 하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
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編義自見
뜻이 어려운 글도 자꾸 되풀이하여 읽으면 그 뜻을 스스로 깨우쳐 알게 된다. |
고사 : 후한 말기에 동우(董遇)라는 사람이 있었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을 해가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고(手不釋卷) 부지런히 공부하여 황문시랑(黃門侍郞)이란 벼슬에 올라 임금님의 글공부의 상대가 되었으나, 조조(曺操)의 의심을 받아 한직으로 쫓겨났다. 각처에서 동우의 학덕을 흠모하여 글공부를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나에게 배우려 하기보다 집에서 그대 혼자 책을 몇 번이고 자꾸 읽어 보게. 그러면 스스로 그 뜻을 알게 될 걸세.”하고 넌즈시 거절하였다.(魏略)
독서삼도 讀書三到
책을 읽는 데는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
독서삼매 讀書三昧
아무 생각없이 오직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상태.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 |
독수공방 獨守空房
결혼한 여자가 남편 없이 홀로 방을 지키다. |
독안룡(獨眼龍)
애꾸눈의 용이란 뜻. 곧 ① 애꾸눈의 영웅 또는 용맹한 장수. ② 애꾸눈의 고덕(高德)한 사람. |
고사:당나라 18대 황제인 희종(僖宗:873∼883)때의 일이다. 산동(山東) 출신인 황소(黃巢)는 왕선지(王仙芝) 등과 반란을 일으킨지 5년만에 10여 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마침내 도읍인 장안에 입성했다. 그리고 스스로 제제(齊帝)라 일컫고 대제국(大齊國)을 세웠다.
한편 성도(成都)로 몽진(蒙塵)한 희종은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맹장 이극용(李克用:856∼908)을 기용하여 황소 토벌을 명했다. 당시 4만 여에 이르는 이극용의 군사는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사정없이 맹공을 가했기 때문에 반란군은 '갈가마귀의 군사[鴉軍]가 왔다 !'며 심히 두려워했다고 한다.
19대 황제인 소종(昭宗:883∼903)이 즉위한 그 이듬해 마침내 반란군은 토멸되었고 황소도 패사(敗死)하고 말았다. 이극용은 그 공에 의해서 농서[ 西:감숙성(甘肅省)] 군왕(郡王)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이극용은 숙적 주전충[朱全忠:852∼912,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귀순한 뒤 황소 토멸에 공을 세워 동평군왕(東平郡王)이 됨]과 정권을 다투다가 패하고 실의 속에 세상을 떠났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주전충은 20대 황제인 애종(哀宗:903∼907)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후량(後梁:907∼923)을 세웠으나 16년 후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李存 :후당(後唐)의 초대 황제인 장종(莊宗)]에게 멸망했다.
맹장 이극용에 대해《오대사(五代史)》〈당기(唐記)〉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이극용은 젊고 효용(驍勇:사납고 날쌤)했는데 군중(軍中)에서는 이아아(李鴉兒)라고 일컬었다. 그의 눈은 애꾸눈이었다. 그가 귀한 자리에 오르자 일컬어 '독안룡'이라고 했다."
동가식서가숙 東家食西家宿
정처 없으며 의식주가 곤란하다. 두가지 좋은 일을 아울러 가지려함. |
고사 : 옛날 齊 나라 사람이 혼기에 찬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혼담이 들어왔다. 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넉넉하지만 얼굴이 못생겼고, 서쪽에 사는 남자는 얼굴은 잘 생겼으나 집안이 가난 했다. 그 부모가 딸에게 말하기를“네가 동쪽에 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 손을 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두 손을 다 들었다. 이에 부모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밥은 동쪽에 가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면 되잖아요.”하였다.
동가홍상 同價紅裳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조건이라면 좀 더 낫고 편리한 것을 택함. |
☞마누라와는 다시는 제대로 들어설 수 없고 그렇다고 마누라가 죽을 때만 바라고 언제까지 홀아비 생활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무어나 하나 얻고야 말테니 동가홍상이면 이 계집을 다시 붙드는 것이 상책이요 그렇게 되면 아이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는 것이다.(廉想涉, 三代)
동량지재 棟梁之材
집의 들보가 될 나무와 같이 한 사회, 한 나라의 중심인물이 될 사람. |
동병상련 同病相憐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서로 불쌍히 여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한다. |
兩寡分悲(양과분비) : 두 과부가 슬픔을 함께 나눈다.
虎死兎泣(호사토읍) : 여우가 죽으니 토끼가 운다. 같은 것 끼리의 불행을 슬퍼함.
類類相從(유유상종) : 같은 무리끼리 서로 내왕하며 사귐.
草綠同色(초록동색) : 풀빛과 녹색은 한 빛깔. 같은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거나 기우는 것.
고사 : 합려(闔閭)는 자객(刺客)인 전저(專諸)를 시켜 吳나라의 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오자서(伍子胥)는 전저를 천거한 공로로 대부(大夫)가 되었고 또한 楚나라에서 망명한 백비(伯비)를 천거하여 함께 정치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같은 대부 피리(被離)가“백비를 한 번 보고 왜 그렇게 신용합니까?”라고 물으니“그것은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상가(河上歌)에「같은 병에는 서로 불쌍히 여겨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同病相憐 同憂相救) 놀라서 나는 새는 서로 따르며 날아가고,(驚翔之鳥 相隨而飛) 여울로 흐르는 물은 그로 인하여 다시 함께 흐르네.(瀨下之水 因復俱流)」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오자서는 백비를 경계하는 피리의 충고를 듣지 않다가 越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참언으로 분사(焚死)하였다.(吳越春秋)
** 寡(과부 과) 驚(놀랠 경) 翔(날 상) 隨(따를 수) 瀨(여울 뢰) 俱(함께 구)
☞그믐달은 요염하게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만은,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만은,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만은,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 등에 정든 님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
동문서답 東問西答
동쪽을 묻는데 서쪽을 대답한다. 묻는 말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대답. |
동방화촉 洞房花燭
부인의 방에 촛불이 아름답게 비침. 婚禮. |
참고☞?? 동방화촉(洞房花觸) 노(老)도령이 숙녀(淑女) 만나 즐거운 일. : 매우 즐거운 일.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서방이 좋을시고. 세상 사람들 다 듣거라. 청춘 금방 괘명하니 소년등과 즐거운 일 동방화촉 노도령이 숙녀 만나 즐거운 일 천리 타향 고인 만나 반가워서 즐거운 일 삼춘고한 가물 적에 감우 오니 즐거운 일 칠십 노인 구대 독자 생남하여 즐거운 일 즐거운 일 많것마는 이런 일도 또 있는가.(古本春香傳)
참고 ☞남녀간의 부부됨을 일러 結婚이라 하지만 우리 전통으로는 婚姻이다. 婚은 원래 昏, 즉 해가 진 후에 예를 치른다는 뜻이고 姻은‘여자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성례한다’는 뜻이다. 結婚이란 저녁에 맺어진다 하여 생긴 말이다. 고구려 때는 혼인식을 저녁에 베풀었다. 사위가 될 신랑이 저년 무렵 신부집 문밖에 꿇어앉아 큰절을 하며 신부와 동침케 해줄 것을 애걸하면, 고자세가 된 장인 장모가 밤 늦게야 미리 마련한 사위방에 들인다. 결혼하는 것을 장인 장모집에 든다 하여‘장가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풍습에서 연유된 것이다.
동상이몽 同床異夢
한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그 가지는 생각이 서로 다름. |
동호지필董狐之筆
'동호의 직필(直筆)'이라는 뜻. 곧 ① 정직한 기록. 기록을 맡은이가 직필하여 조금도 거리낌이 없음을 이름. ②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적어 역사에 남기는 일. |
고사:춘추 시대, 진(晉)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대신인 조천(趙穿)이 무도한 영공(靈公)을 시해했다. 당시 재상격인 정경(正卿) 조순(趙盾)은 영공이 시해되기 며칠 전에 그의 해학을 피해 망명 길에 올랐으나 국경을 넘기 직전에 이 소식을 듣고 도읍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 이렇게 적었다.
'조순, 그 군주를 시해하다.'
조순이 이 기록을 보고 항의하자 동고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대감이 분명히 하수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감은 당시 국내에 있었고, 또 도읍으로 돌아와서도 범인을 처벌하거나 처벌하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감은 공식적으로는 시해자(弑害者)가 되는 것입니다."
조순은 그것을 도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뒤집어쓰고 말았다. 훗날 공자는 이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었다. 법을 지켜 올곧게 직필했다. 조선자(趙宣子:조순)도 훌륭한 대신이었다. 법을 바로잡기 위해 오명을 감수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을 넘어 외국에 있었더라면 책임은 면했을 텐데……."
동족방뇨 凍足放尿
언 발에 오줌 누기. 잠시의 효력이 있을 뿐. 그 효력은 없어지고 마침내는 더 나쁘게 될 일을 한다. 앞을 내다 보지 못하는 姑息之計를 비웃는 말. |
두문불출 杜門不出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 집안에만 들어앉아 외출을 하지 않다. |
두찬 杜撰 (막을 두·지을 찬)
저술(著述)에 전거(典據)나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문자를 쓰거나 오류가 많음. |
고사 : 두묵(杜默)이라는 사람이 어느 날 좋은 시상이 떠오르기에 지필(紙筆)을 꺼내어 시를 한 수 지었는데, 운율이 맞지 않는 데가 여러 군데 있었다. 이일로 인하여 일을 함에 있어 격(格)에 잘 맞지 않는 것을 杜撰이라 일컫게 되었다.(撰은 著作이란 뜻.)(野客叢書)
득록망촉 得록望蜀
욕심은 한이 없음. |
고사 : 後漢 광무제(光武帝)때 나라 안은 군웅이 할거하고 있었는데, 장안의 적미(赤眉), 농서(롱西)에 외효(외효), 하서(河西)에 공손술(公孫述), 수양(휴陽)에 유영(劉永), 노강(盧江)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에는 장보(張步) 등이었다. 이 중에 장안의 적미, 수양의 유영, 노강의 이헌, 촉의 공손술 등은 제호(帝號)를 붙이고 있었다. 광무제는 유영, 이헌, 장보 등을 모두 토벌하였다. 두융은 모반하지 않겠노라 하였으니 문제 없고, 이제 농서의 외효와 촉의 공손술이 문제였다. 외효는 광무제에게서 서주 상장군(上將軍)의 칭호를 받은바 있었으나, 공손술과 제휴하여 대항하려 하였으나, 공손술이 응하지 앉자 광무제와의 맹약을 더욱 두터이 하엿다. 한편 외효도 항거하다 병으로 죽고 그 아들 구순(寇恂)이 항복함으로써 농서는 광무제의 손에 평정되었다. 광무제가 말하기를“인생은 만족함을 모른다. 이미 농(롱)을 얻고 또다시 촉(蜀)을 바란다.”고 하고서는 대군을 거느리고 촉을 쳐 천하를 평정하였다.(後漢書, 光武記)
등고자비 登高自卑
높은 곳을 올라가려면 낮은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일의 진행에는 차례가 있음. 또는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스스로 겸손해야 한다. |
등용문 登龍門
용문에 오르다. 立身出世의 관문. 또는 출세의 계기를 잡다. |
고사 :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이다. 이 근처는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 있어 급류를 차오르는 큰 고기도 여간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는 용으로 화한다는전설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용문에 오르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출세의 제일보라 하여「登龍門」이라 하였다.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은「점액(點額)」이라 한다. 點은 상처를 입는다는 뜻이고 額은 이마.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가 바위에 부딪쳐 이마를 깨고 피를 흘리며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말한다. 낙방자(落榜者), 生存競爭의 패배자를 뜻한다.
등하불명 燈下不明
등잔 밑이 어둡다.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도리어 잘 모른다. 또는 남의 일은 잘 알 수 있으나 제 일은 잘 모른다. |
☞「그야 헛소문이 난게지. 자식 속이야 제 애비만큼 알 수가 없는 법이오.」「그야 지자는 막역부(知者는 莫逆父)란 말이 없잖아 있지마는…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으로 어버이 아는 것이 외문만 못한 수도 더 많으니까」(玄鎭健,無影塔)
등화가친 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하여 책 읽기에 좋다. 가을 밤은 심신이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가 좋음. |
天高馬肥(천고마비) :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
新凉燈火(신량등화) :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처음 생길 무렵에 등불 밑에서 글 읽기가 좋다.
마부위침 磨斧爲針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 꾸준히 노력함. |
고사:시선(詩仙)으로 불리던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자는 태백(太白), 701∼762]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백은 아버지의 임지인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항해 걷고 있던 이백이 계곡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일설에는 쇠공이[鐵杵])를 갈고 있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다[磨斧作針]."
"그렇게 큰 도끼가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여기서 생각을 바꾼 그는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은 마음이 해이해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곤 분발했다고 한다.
마이동풍 馬耳東風
말 귀에 봄바람이다. 남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흘려버리거나 알아 듣지 못하는 것. 또는 어리석고 둔하여 남의 말을 알아 듣지도 못하고 사리를 깨쳐 알지도 못한다. |
牛耳讀經(우이독경). 牛耳誦經(우이송경) : 쇠 귀에 경 읽기.
對牛彈琴(대우탄금) : 소를 마주하고 거문고를 뜬다.
쇠 귀에 경 읽기.
고사: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李白)이 벗 왕십이(王十二)로부터〈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추운 방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느낀 바 있어서)]〉라는 시 한 수를 받자 이에 답하여〈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는데 '마이동풍'은 마지막 구절에 나온다. 장시(長詩)인 이 시에서 이백은 "우리네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이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다음과 같이 맺고 있다.
………………
세인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흔드네
[世人聞此皆掉頭(세인문차개도두)]
마치 동풍이 쏘인 말의 귀처럼
[有如東風射馬耳(유여동풍사마이)]
[주] 동풍은 봄바람의 뜻. 그 동풍이 말의 귀를 쏘아(스쳐) 봤자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임. 즉 세인들이 시인의 말이나 걸작에 기울이는 관심도가 그 정도로 낮다 - 무관심하다고 이백은 비분(悲憤)하고 있는 것임.
마중지봉 麻中之蓬
구부러진 쑥도 삼밭에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란다. 환경에 따라 악도 선도 고쳐진다. |
막역지우 莫逆之友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리는 일이 없는, 死生을 같이할 수 있는 친밀한 벗. |
만가 輓歌 (수레 끌 만·노래 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혹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
고사 : 漢高祖가 아직 즉위하기 전의 일이다. 齊王 전횡(田橫)은 한나라 장수 한신에게 급습을 당해, 그 분풀이로 한의 사신 역이기(력食其)를 삶아 죽이고 도망쳐 버렸다. 고조는 나중에 전횡이 난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그의 죄를 용서하고 불렀으나 한왕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다 하여 목을 찔러 죽고 말았다. 후에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해露), 호리(蒿里) 두 장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노래하였다.
해上朝露何易晞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 마르도다.
露晞明朝更復落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人死一去何時歸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해露)
蒿里誰家地 聚斂魂魄無賢愚 호리는 뉘집 터인고, 혼백 거둘 땐 현우가 없네.
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지주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후에 한 무제(武帝)가 악부(樂府)의 일을 맡은 이연년(李延年)으로 하여금 이 노래를 장례시에 부르게 하니 사람들이 후에 이를 만가(輓歌)라 하였다.
만경창파 萬頃蒼波
만 이랑의 푸른 물결.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 |
만구성비 萬口成碑
많은 사람의 입이 비를 이룬다. |
만사휴의萬事休矣
모든 일이 끝장났다(가망 없다)는 뜻으로, 어떻게 달리 해볼 도리가 없다는 말. |
고사:당나라가 망하고 송(宋:北宋, 960∼1127) 나라가 일어날 때까지 53년 동안에 중원에는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다섯 왕조가 일어났다가 쓰러지곤 했는데 이 시대를 오대[五代:후오대(後五代)의 준말]라 일컫는다.
또 다시 중원을 벗어난 각 지방에는 전촉(前蜀) 오(吳) 남한(南漢) 형남(荊南) 오월(吳越) 초(楚) 민( ) 남당(南唐) 후촉(後蜀) 북한(北漢)등 열 나라가 있었는데 역사가는 이를 오대 십국(五代十國)이라 일컫고 있다.
이들 열 나라 중에는 형남과 같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도 있었는데 이 나라의 왕인 고종회(高從誨)는 아들 고보욱(高保勖)을 분별없이 귀여워했다. 그래서 고보욱은 남이 아무리 노한 눈으로 쏘아보아도 싱글벙글 웃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일이 끝장났다[萬事休矣].'
과연 고보욱의 대(代)에 이르러 형남은 멸망하고 말았다.
만시지탄 晩時之歎
때가 늦었음을 한탄한다. 기회를 잃고 지났음을 한탄함. |
만신창이 滿身瘡痍
온몸이 상처투성이. 성한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또는 사물이 쓸 만한 데가 없을 정도로 결함이 많음. |
망국지음亡國之音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곧 ① 음란하고 사치한 음악. ②망한 나라의 음악. ③ 애조(哀調)를 띤 음악. |
고사:① 춘추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던 도중 복수[ 水:산동성(山東省) 내] 강변에 이르자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영공은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서서 잠시 넋을 잃고 듣다가 수행중인 사연(師涓)이란 악사(樂師)에게 그 음악을 잘 기억해두라고 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도착한 영공은 진나라 평공(平公)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은 새로운 음악'이라고 자랑했다. 당시 진나라에는 사광(師曠)이라는 유명한 악사가 있었는데 그가 음악을 연주하면 학이 춤을 추고 흰 구름이 몰려든다는 명인이었다. 위나라 영공이 새로운 음악을 들려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입궐한 사광은 그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중지시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새로운 음악이 아니라 '망국의 음악[亡國之音]'이오."
이 말에 깜짝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그 내력을 말해 주었다.
"그 옛날 은(殷)나라 주왕(紂王)에게는 사연(師延)이란 악사가 있었사옵니다. 당기 폭군 주왕은 사연이 만든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미(淫 :음란하고 사치함)한 음악에 도취하여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서 음일(淫佚)에 빠졌다가 결국 주(周)나라 무왕(武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나이다. 그러자 사연은 악기를 안고 복수에 토신 자살했는데, 그 후 복수에서는 누구나 이 음악을 들을 수 있사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망국의 음악'이라고 무서워하며 그곳을 지날 땐 귀를 막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사옵니다."
②《예기(禮記)》〈악기(樂記)〉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
"복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망국지음'이다."
망양보뢰 亡羊補牢
양을 잃고서 그 우리를 고친다.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한다. 이미 때가 늦었다. |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망양지탄 亡羊之歎
양을 잃었으나 길이 많고 복잡하여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름을 한탄한다. 학문이란 그 범위가 넓고 복잡하여 얻는 것이 적음을 한탄한다. |
고사: 먼 옛날 황하 중류의 맹진(孟津:하남성 내)에 하백(河伯)이라는 하신(河神)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금빛 찬란히 빛나는 강물을 보고 감탄하여 말했다.
"이런 큰 강은 달리 또 없을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자라였다.
"그럼, 황하보다 더 큰 물이 있단 말인고?"
"그렇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해 뜨는 쪽에 북해(北海)가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강이 사시 장철 그곳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그 넓이는 실로 황하의 몇 갑절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 큰 강이 있을까? 어쨌든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네."
황하 중류의 맹진을 떠나 본 적이 없는 하백은 늙은 자라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가을이 오자 황하는 연일 쏟아지는 비로 몇 갑절이나 넓어졌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하백은 문득 지난날 늙은 자라가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이 기회에 강 하류로 내려가 북해를 한번 보기로 했다. 하백이 북해에 이르자 그곳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잘 왔소. 진심으로 환영하오."
북해의 해신이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파도는 가라앉고 눈앞에 거울 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세상에는 황하 말고도 이처럼 큰 강이 있었단 말인가‥….'
하백은 이제까지 세상 모르고 살아온 자신이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북해가 크다는 말을 듣고도 이제까지 믿지 않았습니다. 지금 여기서 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나의 단견(短見)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북해의 신은 웃으며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구려. 대해(大海)를 모르면 그대는 식견이 낮은 신으로 끝나 버려 사물의 도리도 모를 뻔했소. 그러나 이제
그대는 거기서 벗어난 것이오."
망운지정 望雲之情
타향에서 고향에 계신 부모를 생각함. 멀리 떠나온 자식이 어버이를 사모하여 그리는 정. |
白雲孤飛(백운고비)
고사 : 唐나라「적 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구름이 외롭게 나르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狄仁傑이 授幷州法曹參軍이어늘 其親은 在河陽別業이라 仁傑이 登太行山하여 反顧見白雲孤飛하고 謂左右曰“吾親이 舍其下로다 瞻창이 久之니라”하고 雲移에 乃得去하니라.)」
** 狄(성 적) 授(줄 수) 舍(머무를 사) 瞻(볼 첨) 창(슬플 창)
망자계치 亡子計齒
죽은 자식 나이 세기.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기다. |
망중한 忙中閑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가로운 때. |
매처학자 梅妻鶴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음. 풍아한 생활. |
맥수지탄 麥秀之歎 (이삭 수·어조사 지·탄식할 탄)
보리만 무성하게 자란 것을 탄식함. 고국의 멸망을 탄식하다. |
亡國之歎(망국지탄). 亡國之恨(망국지한) : 나라가 망함을 탄식함.
고사 : 殷의 주왕(紂王)은 夏의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신하 셋이 있었는데 미자(微子)·기자(箕子)·비간(比干)이었다. 주왕은 이들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주색에 빠져 있었던 까닭으로 결국 周나라의 무왕(武王)에게 정복당하고 말았다. 몇해 뒤 기자가 주나라를 �아가는 도중에, 맥수지가(麥秀之歌)를 지어「보리이삭은 쑥쑥 자라 있고, 벼, 기장도 잘 자라네. 저 교활한 아이여, 나와 함께 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도다.(麥秀漸漸兮여, 米黍油油라. 彼狡童兮여, 不與我好兮로다.)」하고 殷의 도읍은 간데 없고 궁궐터에 보리와 기장만이 무성함을 탄식하였다.
** 諫(간할 간) 漸(점점 점) 黍(기장 서) 油(기름 유) 狡(교활할 교)
맹귀우목 盲龜遇木
눈먼 거북이가 다행히 물에 뜬 나무를 붙잡게 되었다. 매우 힘든 행운. |
맹모삼천 孟母三遷
맹자 어머니가 맹자를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 집을 옮긴 고사.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좋은 환경을 가려서 산다. |
孟母三遷之敎
고사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그 때에 맹자 나이 어려 보고 듣는 것이 상여(喪輿)와 곡성(哭聲)이라 늘 그 흉내만 내므로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이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하고 곧 저자 근처로 집을 옮겼더니 역시 맹자는 장사의 흉내를 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곳도 자식 기를 곳이 아니라 하고 다시 서당(書堂) 근처에 집을 정하니 맹자가 늘 글 읽는 흉내를 내므로 이곳이야말로 자식 기르기에 합당하다 하고 드디어 거기에 안거(安居)하였다.(孟軻之母는 其舍가 近墓러니 孟子之少也에 嬉戱에 爲墓間之事하여 踊躍築埋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居舍市하니 其嬉戱에 爲賈衒이어늘 孟母曰 此非所以居子也라하고 乃徙舍學宮之傍하니 其嬉戱에 乃設俎豆하여 揖讓進退어늘 孟母曰 此眞可以居子矣로다하고 遂居之하니라.)」
** 軻(멍에 가) 嬉(놀 희) 戱(놀 희) 踊(뛸 용) 躍(뛸 약) 築(쌓을 축) 埋(묻을 매) 賈(장사 고)
衒(팔 현) 徙(옮길 사) 俎(제기 조) 揖(읍할 읍)
면벽구년 面壁九年
고승 달마가 산중에서 구년간 벽을 대하고 앉아 수도하여 마침내 형태가 돌 속으로 들어갔다. 정성을 다하면 금석이라도 뚫을 수 있다. |
면종복배 面從腹背
표면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내심으로는 배반함. |
명경지수 明鏡止水
맑은 거울은 그쳐 있는 물이다. 맑고 깨끗한 마음씨는 담겨 있는 물과 같다. |
雲心月性(운심월선) : 구름 같은 마음에 달 같은 성품이란 뜻으로 욕심없는 말과 깨끗한 마 음씨를 일컫는다.
平易淡白(평이담백) :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
고사 :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태)는 문하생(門下生)이 孔子의 문하생에 필적할 만큼 많았는데 상계(商季)가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공자에게 물었다.“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 뿐이어서 자기를 위한 수행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데 어찌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까?”「공자왈“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 삼는다.(孔子曰 人은 莫鑑於流水하고 而鑑於止水라.)」(莊子, 德充符篇)
명실상부 名實相符
이름과 실상이 서로 들어 맞음. 알려진 것과 실제의 상황이나 능력에 차이가 없다. |
名實相反(명실상반)
명약관화 明若觀火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 더 말할 나위없이 명백하다. |
명재경각 命在頃刻
목숨이 끊어질 지경. |
명철보신 明哲保身
이치에 좇아 일을 처리하여 보신함. |
고사 :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이 殷의 기자(箕子)의 비(碑)에“기자의 묘비에 씀”이라는 글에서 기자의 덕망을 칭송하면서“그 명철을 보하라”라고 하였다. 기자는 은나라 주왕(紂王)의 그릇된 정치를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거짓 미친 체하여 몸을 보전하고 그의 도를 후세에 남긴 현인이다. 또한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은‘두우(杜佑) 치사(致仕)의 제(制)’라는 글에서“힘을 다하여 임금을 받들고 명철보신하며 진퇴종시(終始), 그 길을 잃지 않았다. 현달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능히 이것을 겸하리오.”라고 두우를 칭송하였다.(詩經, 大雅)
모수자천 毛遂自薦
자기가 자신을 추천함. 다른 사람이 자기를 추천해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스스로를 추천한다. |
고사 : 囊中之錐 참조
모순 矛盾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 |
二律背反(이율배반)
自家撞着(자가당착)
고사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칼을 파는 사람이 있어 이것을 좋다고 자랑하며 말하기를,“이 방패는 굳고 단단하여 �히 뚫을 수 없다.”하고, 또 그 창을 자랑하며 말하기를,“이 창의 날카로움은 어떤 물건이든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길“그러면 그대의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는다면 어찌되겠소?”하니, 그 사람이 능히 대답을 못 하더라.(楚人에 有죽盾與矛者하여 譽之曰“吾盾之堅은 莫能陷也라”하고, 又譽其矛曰“吾矛之利는 於物에 無不陷也니라”或曰“以子之矛로 陷子之盾이면 如何오.”其人이 不能應也러라.)」
목불식정 目不識丁
눈이 정자도 알지 못한다. 쉬운 글자도 모르는 매우 무식한 사람. |
一字無識(일자무식) : 한 글자도 알지 못한다.
魚魯不辨(어로불변) :‘魚’와‘魯’를 분별하지 못하다.
目不之書(목불지서) : 눈으로 책을 알지 못하다.
고사 : 唐나라 때 장홍정(張弘靖)이란 사람은 못나고 무식하며 행동 또한 오만불손(傲慢不遜)하였다. 그러나 부친인 장연상(張延賞)이 조정에 끼친 공적이 많아 그 덕분으로 그의 벼슬길은 매우 순탄하였다. 그가 노룡(盧龍)의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하들과 어려운 병영생활을 하려 않고 가마를 타고 즐기며 군사들을 괴롭히고 교만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니 오히려「천하가 무사한데 무리들이 포와 활을 당기는 것은‘丁’자 하나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天下가 無事한대 而輩挽石弓은 不如識一丁字라.)」라고 꾸짖었다.
목불인견 目不忍見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하거나 참혹한 상황. |
묘항현령 猫項懸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실행하지 못할 일을 공연히 의논만 함. |
무골호인 無骨好人
뼈없이 좋은 사람. 지극히 순하고 남의 비위를 두루 맞추는 사람. |
무궁무진 無窮無盡
끝이 없고 다함이 없다. |
무념무상 無念無想
일체 상념(想念)이 없는 담담한 마음의 상태. |
무뢰한 無賴漢
일정한 직업이 없이 나 다니는 불량한 자. |
무릉도원 武陵桃源
무릉의 도원. 지상의 낙원으로 인간의 도원경(桃源境). |
?? 桃源境(도원경). 桃花源(도화원)
壺中天地(호중천지) : 호공(壺公)이란 사람이 항아리에서 살았는데 비장방(費長房)이 그 속 을보니 화려하고 술안주가 가득하였다는 이야기.
고사 :「진나라 태원때 무릉 사람이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았는데 (하루는) 시내를 따라 (배를 저어) 가다가 길이 멀고 가까움을 잊었다가 문득 복사꽃이 핀 수풀을 만났다. 언덕을 끼고 수백보쯤의 넓이에 (온통 도화로) 한 그루의 잡목도 없으며 향기로운 풀은 곱고 아름다우며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러이 날린다. 어부가 이를 매우 이상히 여겨 다시 앞으로 (배를 저어) 가서 그 끝까지 가보리라 하였더니 숲이 다하고 수원에서 문득 한 산을 얻으니, 산에는 작은 굴이 있어 마치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에 배에서 내려 굴 입구를 따라 들어가니 처음에는 매우 좁아 겨우 (한) 사람 정도 통과할 수 있더니, 다시 수십 보를 나아가니 갑자기 앞이 탁 뜨여 밝아지면서, 토지는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들이 있으며 전답의 (사이의) 길들은 사방으로 뻗어있고 닭과 개의 울음 소리가 도처에서 들리며 그 가운데에서 가고 오며 농사짓는 남녀의 의복이 모두 외부 사람들의 모습 같고, 노인과 어린 아이들이 모두 편안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晉太元中에 武陵人이 捕魚爲業하여 綠溪行에 忘路之遠近이라가 忽逢桃花林이라. 夾岸數百步에 中無雜樹하며 방초鮮美하고 落英이 빈紛이라. 漁人이 甚異之하여 復前行하며 欲窮其林하니 林盡水源에 便得一山하고 山有小口하여 방불若有光이라. 便捨船從口入하니 初極狹하여 재通人이러니 復行數十步하니 豁然開朗하여 土地平曠하고 屋舍儼然하며 有良田美池桑竹之屬하여 阡佰交通하고 鷄犬相聞하며 其中往來種作하는 男女衣着이 悉如外人하고 黃髮과 垂초가 竝怡然自樂이러라.)」(桃花源記)
** 浦(잡을 포) 夾(낄 협) 빈(어지러울 빈) 방불(비슷할 방·불) 재(겨우 재) 豁(내뚫린골 활)
儼(엄전할 엄) 阡(밭뚝길 천) 悉(모두 실) 초(더벅머리 초) 怡(기쁠 이) 曠(넓을 광)
무불간섭 無不干涉
남의 일에 나서서 참견하지 않음이 없다. 자기와는 상관도 없는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참견하지 말라. |
남의 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他人之宴에 曰梨曰枾라. 言不在其位 勿言其事)
무산지몽巫山之夢
무산(巫山)의 꿈이란 뜻으로, 남녀간의 밀회(密會)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 |
고사:전국 시대, 초나라 양왕(襄王)의 선왕(先王)이 어느 날 고당관(高唐館)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잤다. 그러자 꿈속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나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첩(小妾)은 무산에 사는 여인이온데 전하께오서 고당에 납시었다는 말씀을 듣자옵고 침석(枕席:잠자리)을 받들고자 왔나이다."
왕은 기꺼이 그 여인과 운우지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을 나누었다. 이윽고 그 여인은 이별을 고했다.
"소첩은 앞으로도 무산 남쪽의 한 봉우리에 살며,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이옵니다."
여인이 홀연히 사라지자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이튿날 아침, 왕이 무산을 바라보니 과연 여인의 말대로 높은 봉우리에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름다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왕은 그곳에 사당을 세우고 조운묘(朝雲廟)라고 이름지었다.
무소부지 無所不知
알지 못하는 바가 없다. 매우 박학다식(博學多識)함. |
無不通知
무용지물 無用之物
아무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 |
무위도식 無爲徒食
하는 일 없이 헛되이 먹기만 함.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는 사람. |
무장공자 無腸公子
담력이나 기개가 없는 사람을 비웃어 하는 말. 게의 별칭. |
무지몽매 無知蒙昧
아는 것이 없이 어리석음. |
묵묵부답 默默不答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 |
묵적지수 墨翟之守
굳건히 성을 지킴.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굳이 지킴. |
고사:춘추 시대의 사상가로서 '자타 차별 없이 서로 똑같이 사랑하고 이롭게 하자'는 겸애교리설(兼愛交利說:兼愛說)과 비전론(非戰論)을 주창한 묵자[墨子:이름은 적(翟), B.C. 480∼390]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의 도읍 영[ :호북성(湖北省) 내]에 도착한 묵자는 공수반(公輸盤)을 찾아갔다. 그가 초왕을 위해 운제계(雲梯械)라는 새로운 공성기(攻城機:성을 공격하는 기계)를 만들어 송(宋)나라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북방에 나를 모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가 나를 위해 죽여 줄 수 없겠소?"
그러자 공수반은 불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의(義)를 중히 여기는 만큼 살인은 안하오."
"사람 하나 죽이지 않는 게 '의'라면 왜 죄 없는 송나라 백성을 죽이려 하시오?"
답변에 궁한 공수반은 묵지를 초왕 앞으로 안내했다.
"전하, 새 수레를 소유한 사람이 이웃집 헌 수레를 훔치려 하고 비단옷을 입은 사람이 이웃집 누더기를 훔치려 한다면 전하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건 도벽이 있어서 그럴 것이오."
"하오면, 사방 5000리 넓은 국토에다 온갖 짐승과 초목까지 풍성한 초나라가 사방 500리밖에 안되는 가난한 송나라를 치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옵니까?"
"과인은 단지 공수반의 운제계를 한번 실험해 보려 했을 뿐이오?"
"하오면, 외신(外臣)이 여기서 그 운제계에 의한 공격을 막아 보이겠나이다."
이리하여 초왕 앞에서 기묘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 모양으로 사려 놓고 나뭇조각으로 방패를 만들었다. 공수반은 모형 운제계로 아홉 번 공격했다. 그러나 묵자는 아홉 번 다 굳게 지켜냈다. 이것을 본 초왕은 묵자에게 송나라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문경지교 刎頸之交
목을 벨 수 있는 벗.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
管鮑之交(관포지교) : 齊(제)나라 재상 管仲과 鮑叔牙의 사귐. 매우 친한 사이의 사귐.
金蘭之交(금란지교) : 쇠를 끊을 만큼 견고하고 향기로운 난초와 같은 우정.
芝蘭之交(지란지교) : 지초와 난초의 사귐. 맑고도 고상한 사귐.
竹馬故友(죽마고우) : 어릴 때부터 같이 놀며 자란 친구.
고사 : 전국시대 趙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환관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인상여를 만나면 망신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 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가“秦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염파가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廉頗가 肉袒負荊하고 至門하여 謝罪曰 鄙賤之人이 不知將軍寬之如此라. 卒相與驩이 爲刎頸之友하다.)」(史記, 廉頗藺相如傳)
** 藺(고풀 린) 廉(청렴할 렴) 頗(치우칠 파) 袒(웃통벗을 단) 荊(곤장 형) 謝(사례할 사)
鄙(더러울 비) 寬(너그러울 관) 驩(기뻐할 환)
문과식비 文過飾非 (꾸밀 문·허물 과·꾸밀 식·아닐 비)
허물도 꾸미고 잘못도 꾸민다.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뉘우침도 없이 숨길 뿐 아니라 도리어 외면하고 도리어 잘난 체함. |
문방사우 文房四友
글을 쓰는 네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紙筆墨硯) |
문일지십 聞一知十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안다. 매우 총명함. |
得一忘十(득일망십)
고사 : 孔子는 子貢이 顔回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자네와 안회는 누가 더 나을 것같이 생각되는가?”하니,“소생이 어찌 감히 안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회는 하나를 듣고서 열을 알지만 소생은 하나를 듣고서 겨우 둘을 아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확실히 자네는 회를 따를 수 없다. 따를 수 없는 것은 자네만이 아니라 나도 회를 따르지 못하는 점이 있다네.”라고 하였다.
문외한 門外漢
어떤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거나 관계가 없는 사람. |
문전성시 門前成市
문 앞에서 시장이 이루어진다. 권세가나 부자집 문앞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
門前若市(문전약시) : 문 앞이 시장과 같다.
門庭若市(문정약시) : 집안의 뜰이 시장과 같다.
門前雀羅(문전작라) : 문 앞이 새 그물을 칠 정도로 한적하다.
고사 : 漢나라 애제(哀帝)는 약관(弱冠)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이 정권을 쥐고 있어 꼭두각시에 불과하였지만 그에게는 정숭(鄭崇)이라는 어진 신하가 있었다. 처음엔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외척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지자 귀찮아 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 틈에 간신들이 기회를 잡고 그를 모함하니,「임금이 정숭을 꾸짖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과 같다고 하니 어찌하여 짐(朕)과의 관계를 금하여 끊으려 하는가? 하니 정숭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신의 집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上責崇曰 君門如市이라하니 何以欲禁切主上이리오하니 崇對曰 臣門如市이나 臣心如水이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漢書, 鄭崇傳)
문전작라門前雀羅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
고사: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汲 )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一死一生 卽知交情(일사일생 즉지교정)]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一貧一富 卽知交態(일빈일부 즉지교태)]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一貴一賤 卽見交情(일귀일천 즉현교정)]
물외한인 物外閑人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지내는 사람. |
미망인 未亡人
남편이 죽고 홀로 사는 여인. |
一夫終身(일부종신) : 남편이 죽은 뒤에도 개가(改嫁)하지 않고 수절하며 일생을 마치다.
出天烈女(출천열녀) : 하늘이 낸 열녀. 절개가 굳은 여인을 이른다.
柏舟之操(백주지조) : 잣나무로 만든 배의 지조. 남편을 잃은 아내가 끝까지 정절을 지킴.
고사 : 春秋시대 魯나라 성공(成公)이 재위 중 노의 백희(伯姬)가 송공(宋公)에게 출가하게 되자계문자(季文子)라는 사람이 백희를 따라 송에 갔다. 계문자는 후행(後行)으로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으므로 성공은 위로의 연회를 베풀었다. 그 연회석상에서 계문자는 詩經을 인용하여 성공과 송공을 칭송한 후, 송의 땅은 좋은 곳이니 출가한 희(姬)는 틀림없이 잘살 것이라고 노래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희의 모친 목강(穆姜)은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이번에 퍽이나 큰 신세를 끼쳤습니다. 당신은 선군(先君)때부터 충성을 다하였고, 이 미망인인 나에게까지 진력하여 주셔서 고맙기 그지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역시 시경의 녹의(綠衣)의 종장(終章)에 만족의 정을 의탁하여 노래를 부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미생지신 尾生之信
미생의 믿음. 우직(愚直)하게 약속만을 굳게 지킴. |
고사 : 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은 일단 남과 약속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그 시간에 나타나질 않았다.‘조금 더 조금 더’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큰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나 미생은‘이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니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교각(橋脚)을 붙잡고 버텼으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莊子는 도척편(盜척篇)에서 도척의 입을 미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이런 자는 책형(책形 - 기둥에 결박하여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된 개, 물에 쓸린 돼지, 깨어진 사발을 한 손에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같으며 사소한 명목에 끌려 진짜 귀중힌 목숨을 소홀히 하는 자이며 참다운 삶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니라.”하고, 그 어리석음을 규탄하면서 이는 신의에 얽매인 데서 오는 비극이라 하였다.(史記, 蘇秦傳)
미봉책 彌縫策 (꿰맬 미·꿰맬 봉·꾀 책)
꿰매어 깁는 계책. 결점이나 실패를 덮어 발각되지 않게 이리 저리 주선하여 �추기만 하는 계책. |
고사: 춘추 시대인 주(周)나라 환왕(桓王) 13년(B.C. 707)의 일이다. 환왕은 명목상의 천자국(天子國)으로 전락한 주나라의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정(鄭)나라를 치기로 했다. 당시 정나라 장공(莊公)은 날로 강성해지는 국력을 배경으로 천자인 환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환왕은 우선 장공으로부터 왕실 경사(卿士)로서의 정치상 실권을 박탈했다. 이 조치에 분개한 장공이 조현(朝見:신하가 임금을 뵙는 일)을 중단하자 환왕은 이를 구실로 징벌군을 일으키고 제후(諸侯)들에게 참전을 명했다.
왕명을 받고 괵( ) 채(蔡) 위(衛) 진(陳)나라 군사가 모이자 환왕은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 정나라를 징벌하러 나섰다. 이런 일이 곧 천자(天子)의 자장 격지(自將擊之)는 춘추 시대 240여년 동안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윽고 정나라의 수갈(繡葛:하남성 내)에 도착한 왕군(王軍)은 장공의 군사와 대치했다. 공자(公子)인 원(元)은 장공에게 진언했다.
"지금 좌군(左軍)에 속해 있는 진나라 군사는 국내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에 전의(戰意)를 잃고 있습니다. 하오니 먼저 진나라 군사부터 공격하면 반드시 패주할 것입니다. 그러면 환왕이 지휘하는 중군(中軍)을 혼란에 빠질 것이며 경사(卿士)인 괵공( 公)이 이끄는 채 위나라의 우군(右軍)도 지탱하지 못하고 퇴각할 것입니다. 이 때 중군을 치면 승리는 틀림없습니다."
장공의 원의 진언에 따라 원형(圓形)의 진(陣)을 쳤는데 이는 병거(兵車:군사를 실은 수레)를 앞세우고 보병(步兵)을 뒤따르게 하는 군진(軍陣)으로서 병거와 병거 사이에는 보병으로 '미봉'했다. 원이 진언한 전략은 적중하여 왕군은 대패하고 환왕은 어깨에 화살을 맞은 채 물러가고 말았다.
[주] 자장격지(自將擊之) : 남을 시키지 않고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움.
미증유 未曾有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 |
전대미문(前代未聞) :
파천황(破天荒) :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이루어 놓은 일.
최초(最初). 광고(曠古).
박물군자 博物君子
온갓 사물에 대하여 견문이 썩 넓은 사람. |
박빙여리 薄氷如履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 |
박이부정 博而不精
여러 방면으로 널리 아나 정통하지 못함. 독서에 있어서 정독(精讀)의 중요성. |
박주산채 薄酒山菜
맛이 변변치 않은 술과 산나물.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의 겸칭. |
박학다식 博學多識
학문이 넓고 식견이 많음. |
無所不知(무소부지). 無不通知(무불통지) : 무슨 일이든 모르는 것이 없음.
반근착절 盤根錯節 (굽을 반·뿌리 근·섞일 착·마디 절)
구부러진 나무 뿌리와 울퉁불퉁한 나무의 마디. 세상 일에 난관이 많음. |
고사: 후한(後漢) 6대 황제인 안제(安帝: 106∼125)때의 일이다. 안제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모후(母后)인 태후(太后)가 수렴 청정(垂簾聽政)을 하고 태후의 오빠인 등즐(鄧 )이 대장군이 되어 병권을 장악했다.
그 무렵, 서북 변경은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의 침략이 잦았다. 그러나 등즐은 국비 부족을 이유로 양주(凉州:감숙성)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낭중(郎中) 벼슬에 있는 우허(虞 )가 반대하고 나섰다.
"함곡관(函谷關)의 서쪽은 장군을 내고 동쪽은 재상을 낸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양주는 많은 열사와 무인을 배출한 곳인데 그런 땅을 강족에게 내준다는 것은 당치 않은 일입니다."
중신들도 모두 우허와 뜻을 같이했다. 이 때부터 우허를 미워하는 등즐은 때마침 조가현(朝歌縣:안휘성 내)의 현령이 비적(匪賊)에게 살해되자 우허를 후임으로 정하고 비적 토벌을 명했다. 친구들이 모여 걱정했으나 우허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盤根錯節]'에 부딪쳐 보지 않고서야 어찌 칼날의 예리함을 알 수 있겠는가."
현지에 도착한 우허는 우선 전과자들을 모아 적진에 침투시킨 다음 갖가지 계책으로 비적을 토벌했다고 한다.
반목질시 反目嫉視
서로 눈을 돌리고 미워하는 것. 눈으로 흘겨 보고 노려 보다. |
白眼視(백안시) : 냉대하여 봄.
반식재상 伴食宰相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대신을 비꼬아 말함. |
고사 : 唐의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친 황제로 유명하지만, 즉위 초에는 현인(賢人)을 등용하고 문예를 장려하여「개원(開元)의 治」라 불리울 만큼 문물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현상(賢相) 요숭(姚崇)의 공로가 지대하였다. 그런데 요승이 병으로 정사를 돌볼 수 없게 되자 노회신(盧懷愼)이 국정을 살폈으나 역부족으로 중요한 국사 결정에는 요숭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그때부터 노회신을 가리켜 상반대신(相伴大臣)이라는 뜻으로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 불렀다. 무능한 대신이라는 조릉의 뜻이다.
** 伴食(반식) : 실권이나 실력이 없이 어떠한 직에 앉아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 일.
반포보은 反哺報恩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 |
反哺之孝(반포지효)
반신반의 半信半疑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하다. |
발본색원 拔本塞源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아 버린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폐단을 없애 버리다. |
剪草除根(전초제근) : 풀을 베고 뿌리를 캐내다. 즉 미리 폐단의 근본을 없애 버리다.
削株堀根(삭주굴근) :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냄. 즉 미리 화근(禍根)을 뽑아 버리다.
고사 :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심은 마치 의복에다 갓이나 면류관을 갖춘 것과 같고, 나무의 뿌리와 물의 수원이 있는 것과 같고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계신 것과 같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 근본을 뽑고 근원을 막으며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그 어찌 나 한 사람 뿐이리오.(伯父가 若裂冠毁冕하고 拔本塞源하며 專棄謀主하면 雖戎狄이라도 其何有余一人이리오.)」(春秋左氏傳)
방방곡곡坊坊曲曲
어느 한 군데도 빼놓지 않은 모든 곳. 도처(到處). |
방저원개 方底圓蓋
네모난 바닥에 둥근 뚜껑. 사물이 서로 맞지 않은 것. |
方예圓鑿(방예원착)
발산개세 拔山蓋世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기상. 아주 뛰어난 기운. 또는 놀라운 기상. |
고사 : 項羽가 劉邦에게 포위되었을 때,「항우가 밤에 일어나서 진중에서 술을 마실 때 옆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데 이름은 우(虞)라. 항상 항우를 따라다�다. 준마(駿馬)의 이름은 추(추)라, 항상 이것을 타고 다니니라. 이에 있어서 항왕이 이에 슬픈 노래를 불러 탄식하고 스스로 시를 지으니 그 시에 말하되‘힘이 산을 뽑음이여! 기운이 온 누리를 덮을 만하도다. 때가 이롭지 아니함이여! 준마도 달리지 않도다. 준마도 닫지 아니함이여! 어떻게 할까?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어찌할꼬!’노래를 몇 차례 부르다가 끝나고 우미인이 화답하니, 항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니라. 옆에 있는 신하들이 다 소리를 내어 우니, 이것을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項王이 則夜起하여 飮帳中할새 有美人하니 名은 虞라 常行從하고 駿馬의 名은 추라 常騎之라 於是에 項王이 乃悲歌강慨하여 自爲詩하니 曰 力拔山兮여 氣蓋世로다 時不利兮여 추不逝로다 추不逝兮여 可奈何오 虞兮虞兮여 乃若何오 歌數결에 美人이 和之하니 項王이 泣數行下라 左右皆泣하여 莫能仰視러라.)」
방약무인 傍若無人
곁에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함. 또는 무엇을 하거나 말할 때 조금도 꺼리낌 없고 조심성없게 한다. |
眼下無人(안하무인) :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교만하게 행동함.
輕擧妄動(경거망동) : 경솔하고 망령되게 행동하다.
傲慢無禮(오만무례) : 행동이 교만하고 예의없이 행동하다.
고사 : 전국시대 말기에 衛나라 사람 형가(荊軻)는 술과 글을 좋아하고 검술에 뛰어난 비범한 인물이었지만 위나라에서 자신이 등용되지 않자 燕나라로 가개잡는 사람들과 거리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고 또한 축(筑:대나무로 만든 악기로거문고와 비슷함)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와 사귀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고점리가 축을 치며 곁에 사람이 없는 것 같이 행동하였다.(漸離擊筑하며 傍若無人하다.)」그 후 秦나라로부터 치욕을 받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으로 秦始皇을 암살하기 위하여 진나라로 들어 갔으나 피살당하고 말았다.(史記, 刺客列傳)
방휼지쟁 蚌鷸之爭
조개와 도요새의 다툼. 서로 버티고 물러서지 않고 싸움. |
犬兎之爭(견토지쟁) : 한로(韓盧)라 하는 개가 동곽준(東郭逡)이란 토끼를 쫓아서 산에 오르 기를 다섯 번, 산을 돌기를 세 번 하다가 마침내는 둘이 다 기운이 빠 져 죽어버리므로 둘 다 지나가던 사람이 얻어 가지게 되었다는 옛일에 서 나온 말로 둘의 싸움 끝에 아무 관계 없는 제삼자가 이익을 봄.
漁父之利(어부지리) : 제 삼자가 이익을 봄.
배반낭자杯盤狼藉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곧 ① 술을 마시고 한창 노는 모양. ② 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 |
고사: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淳于 )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했다.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고 말았다. 전화(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다.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하나이다."
"허,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고?"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땐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땐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땐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이렇게 간했다.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樂極 生]'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오소서."
위왕은 그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한다.
배수지진 背水之陣
물을 등지고 진진다. 위태한 일을 모헙적으로한다 또는 최후에 목숨을 걸고 성패(成敗)를 결한다. |
捨量沈舟(사량침주) : 식량을 버리고 배를 침몰시키다.
濟河焚舟(제하분주) : 물을 건너고 나서 그 배를 불사르다.
釜釜沈舟(파부침주) : 솥을 깨뜨리고 타고 간 배를 침몰시키다.
고사 : 한(漢)나라의 한신(韓信)이 조(趙)나라를 치려고 나섰다. 조나라를 공격하려면 정형(井형)의 좁은 굴을 빠져 나가야 했는데, 조나라는 쳐들어 올 것을 예상하고 그곳에 20만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놓았다. 한신은「군리에게 일러 가로되 조군이 이미 먼저 유리한 땅을 차지하여 성에 의거했으니 저들은 우리의 대장기와 북을 보지 못하면 먼저 공격하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한신이 곧 1만의 군사에게 먼저 가게 하여 배수진을 치니 조군이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謂軍吏曰 趙已先據便地爲壁하니 此彼未見吾大將旗鼓면 未肯擊前行하리라. 信乃使萬人으로 先出하여 背水陣하니 趙軍이 望見而大笑하더라.)」날이 밝자 한신은 대장기를 앞세우고 정형의 입구에서 나왔다. 조나라 군사가 성문을 열고 일제히 공격하였다. 한군이 패배를 가장하여 후퇴하니 조군은 성을 비운 채 추격해 왔다. 이 사이에 매복시켜 놓았던 한군이 성을 정복하고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군사는 목숨을 걸고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다.
** 형(지레목 형) 吏(아전 리) 據(웅거할 거) 壁(바람박 벽) 旗(깃발 기) 肯(즐길 긍)
☞바루 이 산 너머 큰 골에 광산이 있다. 광부를 삼백여명이나 부리는 노다지 판인데 매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냥을 넘는다. 돈으로 치면 칠천원, 그 줄맥이 큰 산허리를 뚫고 나왔다는 것이다. 둘이서 파면 불과 열흘 안에 줄을 잡을 게고 적어도 하루 서돈씩은 되리라 우선 삼만원만 해도 얼마냐, 소를 산대도 반필이 아니냐고, 그러나 영식이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금점이란 칼 물고 뜀 뛰기다. 잘 되면 이어니와 못 되면 신세만 좁힌다.
참고 ☞堡壘(보루) : 적군을 막거나 공격하기 위해 흙이나 돌로 튼튼하게 쌓아놓은 진지. 즉, 가장 튼튼한 발판.
☞마지노선(Maginot line) : 프랑스 육군 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땀. 방어선을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에만 건설하여, 독일군이 벨기에로 우회해서 침공.‘ 마 지노 선 이 무너졌다’는 말이 생김.
배은망덕 背恩忘德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덕을 잊다. |
배암투명 背暗投明
어두운 곳을 등지고 밝은 곳으로 나오다. 그른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다. |
배중사영 杯中蛇影 (잔 배·가운데 중·뱀 사·그림자 영)
잔 속에 비친 뱀의 그림자.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하다. |
杞憂(기우) : 중국의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寢食)을 잊고 근심 걱정하였 다는 고사(故事).
고사 : 후한 말 학자 응소(應소)의 조부 응침(應침)이 급현(汲縣)의 장관으로 있을 때 주부(主簿)인 두선(杜宣)과 술을 마셨다. 그런데 두선은 그의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여 마시기 싫었으나 마지 못해 마셨다. 그 후로 몸이 아파 백방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병세는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다. 응침이「그 변고를 물으니 이르되“두려운 것은 이 뱀이 배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응침이 돌아와 그 일을 듣고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활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옛 그 자리에 두선을 실어오게 하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잔 속에 옛날 같이 뱀을 뜨게 한 다음 두선에게 이르기를“이 벽 위에 있는 활 그림자 일 뿐 다른 이상한 것이 있지 않다.”두선이 마침내 고민을 풀고 이로 말미암아 병이 나았다.(問其變故하니 云하되 畏此蛇入腹中이니다. 침還聽事하고 思惟良久顧見懸弩하다. 載宣於故處하여 設酒하고 杯中故復有蛇因謂宣 此壁上弩影耳나 非有他怪 宣遂解 由是추平하다.)」(風俗通怪神)
** 還(돌아올 환) 顧(돌아볼 고) 弩(큰활 노) 他(다를 타) 宣(베풀 선) 解(풀 해) 추(니을 추)
배회고면 徘徊顧眄 (어정거릴 배·회·곁눈질할 면)
목적없이 이리저리 거닐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
백가쟁명 百家爭鳴
많은 학자나 논객(論客)들이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논쟁하는 일. |
백년가약 百年佳約
젊은 남녀가 결혼하여 한평생을 함께 하자는 언약. |
백년대계 百年大計
먼 장래를 내다보고 세우는 계획. 일생의 큰 계획. |
백년하청 百年河淸
백년에 한 번 황하의 물이 맑아진다. 아무리 기다려도 일이 이루어질 가망이 없음. |
千年一淸(천년일청) : 물이 천년에 한 번 맑아진다는 뜻.
如俟河淸(여사하청) :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俟河淸(사하청) : 언제나 흐리어 누런 황하의 물이 맑기를 기다린다.
고사 : 楚나라의 영윤(令尹) 자양(子襄)이 鄭나라를 공격 하였을 때 정나라의 경대부 여섯 명이 회의를 열어, 자사(子駟)·자국(子國)·자이(子耳)는 항복하자 하고, 자공(子孔)·자교(子교)·자전(子展)은 晉나라에 구원을 청하자고 주장하였다. 자사가「주나라의 시에 이것이 있어 말하기를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가?(周詩有之하여 曰 俟河之淸이면 人壽幾何오) 점을 쳐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지고 그물에 거려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라는 시를 인용하고,“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많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 예물을 갖추어 초나라와 진나라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한 쪽에 붙어 백성을 지키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그 후에 결국 초나라와 화친하였다.
참고 ☞고대 문명은 모두 강 연안에서 발달해 하천 문명으로 일컬어진다.‘楊子江’과 ‘황하’는 똑 같이 큰강이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달리 불리는가? 즉 같은 물 수(水) 변에 붙은 (工)과 가(可)의 차이로, 工은 곧고 반듯하다는 뜻이로, 項은 반듯하고 곧은 목을 뜻하고, 功은 일에 임해서 곧바로 힘쓰는 것을 뜻하고, 攻은 곧바로 쳐들어간다는 뜻한다. 또한 可는 굽는다. 굴절한다는 뜻으로, 何는 사람이 짐을 지고 허리를 굽힌다는 형상이요, 柯는 굽은 나무가지이며, 歌는 굴곡이 있는 목소리를, 奇는 반듯하지 못하고 굽어 있어 비정상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江은‘直’이요 河는‘曲’이다.
백년해로 百年偕老
부부가 되어 서로 사이좋고 화목하게 함께 늙다. |
백발백중 百發百中
백 번 쏘아 백 번 맞는다. 쏘기만 하면 명중함. 계획이 예정대로 들어맞다. |
백면서생 白面書生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 세상일에 조금도 경험이 없는 사람. |
白面郞(백면랑). 白面書郞(백면서랑).
고사 : 宋 나라의 문제(文帝)가 북위(北魏)를 정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귀족들에게 의논하고 협조를 구하여 군사를 일으키려 하였다. 그 때 교위(校尉) 심경지(沈慶之)가 귀족들이 주장하는 바를 못마땅하게 여겨서 반대하고 문제에게 아뢰기를「밭일을 종에게 물어야 하고 길쌈질은 하녀에게 물어야 잘 알수 있습니다. 북위를 징벌하고자 하시면서 나이가 어려 희고 고운 얼굴에 오로지 글만 읽은 풋내기들과 그 일을 도모하신다면 어떻게 성공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耕當問奴하고 織當問婢니이다. 欲伐國한대 而與白面書生으로 謀之하시면 事何由濟리오.)」(宋書, 沈慶之傳)
백문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백 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경험의 중요성. |
山戰水戰 다 겪었다.
물은 건너 보아야 알고, 사람은 사귀어 보아야 안다.
고랑몰라 봐야알쥐 (제주방언)
고사: 전한(前漢) 9대 황제인 선제(宣帝:B.C. 74∼49)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에 사는 티베트계(系) 유목 민족인 강족(羌族)이 쳐들어왔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선제는 어사대부(御史大夫:검찰총장)인 병길(丙吉)에게 후장군(後將軍) 조충국(趙充國)을 찾아가 토벌군의 장수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어 보라고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나이 70이 넘은 노장(老將)이었다. 그는 일찍이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 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의 휘하 장수로 흉노 토벌에 출전했다가 포위되자 불과 100여 명의 군사로써 혈전(血戰) 끝에 포위망을 뚫고 전군을 구출했다. 그 공으로 거기 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된 그는 이때부터 오랑캐 토벌전의 선봉장이 되었던 것이다.
조충국을 찾아온 병길은 이렇게 말했다.
"강족을 치는데 누가 적임자인지, 장군에게 물어 보랍시는 어명을 받고 왔소이다."
그러자 조충국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어디 노신(老臣)을 능가할 사람이 있겠소?"
선제는 조충국을 불러 강족 토벌에 대해 물었다.
"강족을 토벌하는데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또 병력은 얼마나 필요하오?"
조충국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옵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軍事)란 실지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오니 원컨대 신을 금성군[金城郡:감숙성 난주(甘肅省蘭州) 부근]으로 보내 주시 오소서. 계책은 현지를 살펴 본 다음에 아뢰겠나이다."
선제는 기꺼이 윤허했다. 현지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조충국은 기병(騎兵)보다 둔전병(屯田兵)을 두는 것이 상책이라고 상주했다. 그 후 이 계책이 채택됨으로써 강족의 반란도 수그러졌다고 한다.
[주] 둔전병 : 변경(邊境)에 주둔(駐屯) 토착(土着)시켜 평상시에는 농사도 짓게 하던 군사.
백미 白眉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남. |
고사 : 촉한(촉한) 때「마량(馬良)의 字는 계상(季常)이니 형제 5인이 다 常자를 사용하여 자를 만들었으며, 5형제가 대 재명(才名)이 있어서 동네 사람이 이를 위하여 퍼뜨린 속담에 이르되「마씨(馬氏)의 5형제 가운데 흰 눈썹이 난 사람이 가장 뛰어나다.」하니, 마량은 눈썹 가운데흰 터럭이 있음이라. 그런 까닭으로써 이를 칭하니라.(蜀漢馬良의 字는 季常이니 兄弟五人이 皆用常爲字하고 幷有才名이라. 鄕里爲之諺曰「馬氏五常에 白眉最長이라」하니 良은 眉中에 有白眉라 故로 以稱之니라.)」(三國志)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흰 머리털의 길이가 삼천 길[ ]이란 뜻으로, 중국 문학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 |
고사:'백발 삼천장'이란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추포가(秋浦歌)〉17수 중 한 수인 오언절구(五言絶句)에서 나온 말이다.
흰 머리털이 (자라 어느새) 삼천 길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근심으로 인하여 이처럼 길어졌네 [緣愁似箇長(연수사개장)]
알지 못해라 밝은 거울 속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고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이 시는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이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백수건달 白手乾達
아무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 다니는 사람. |
☞불교 문헌에서는 음악을 맡은 천신(天神)을‘건달박(乾達縛)’또는‘건달바(乾達婆)’라고 부르는데, 식향(食香), 심향행(尋香行), 향음(香陰), 향신(香神)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의역의 경우 향(香)자가 모두 들어간 이유는 그 천신이 향만을 먹으며 유유히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건달바는 술과 고기를 먹지 않으며 오직 향기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이들은 원래 브라만교에서 숭배하던 여러 신 가운데 하나로서, 불교경전에서는 동방을 수호하는 신으로 간주하며, 또 욕계(欲界)의 중음신(中陰神)을 가리키기도 한다. 욕계의 중생이 죽고 나서 아직 새로운 육체를 얻기 이전인 중음신 상태에서는 오직 향기만을 먹으므로 이렇게 브른다. 이 가운데 복이 적은 자는 나쁜 향기를 먹으며, 복이 많은 자는 좋은 향기를 먹는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이 향을 피우는 것은 건달박에게 봉양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이 건달바에 빗대어‘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사람’을 건달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아절현 伯牙絶鉉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 친한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말이며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 |
知音(지음) :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 자기의 속마음까지 알아 주는 사람.
秋夜雨中 - 崔致遠 -
秋風唯苦吟하니, 가을 바람에 애써 시를 읊조리니,
細路少知音이라.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구나.
窓外參更雨한대, 창 밖엔 삼경에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이라. 등잔불 앞에서 마음은 만리를 달리네.
고사 : 春秋시대에 거문고의 명인(名人)인 백아(伯牙)와 그의 거문고를 잘 알아 주었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다.「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그것을 들었다. 거문고를 타는 뜻이 큰 산에 있으면 산이 우뚝하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하도다 라고 말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에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였다.(伯牙鼓琴이면 鍾子期聽之하다. 知在太山이면 則巍巍로다하고 志在流水면 則曰湯湯하도다하다. 子期가 死하니 伯牙絶鉉하고 痛世無知音者하다.)」(呂氏春秋)
** 琴(거문고 금) 鐘(쇠북 종) 聽(들을 청) 巍(높을 외) 湯(끓을 탕) 痛(아플 통)
백안시白眼視
남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봄. |
고사:위진 시대(魏晉時代 : 3세기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노장(老莊)의 철학에 심취하여 대나무숲 속에 은거하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에 완적(阮籍)이 있었다. 그는 예의 범절에 얽매인 지식인을 보면 속물이라 하여 '백안시'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혜강( 康)의 형 혜희( 喜)가 완적이 좋아하는 술과 거문고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완적이 업신여기며 상대해 주지 않자 혜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도망가듯 돌아갔다.
이처럼 상대가 친구의 형일지라도 완적은 그가 속세의 지식인인 이상 청안시(靑眼視)하지 않고 '백안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은 완적을 마치 원수를 대하듯 몹시 미워했다고 한다.
백전노장 百戰老將
많은 싸움을 치른 노련한 장수.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어 여러 가지로 능란한 사람. |
백전백승百戰百勝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으로,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
고사: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주] 여기서 '백(百)'이란 단순과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 '구(九)' '천(千)' '만(萬)'등과 마찬가지로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백절불굴 百折不屈
백 번 꺾어도 굴하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에도 굽히지 않다. |
百折不撓(백절불요)
백중숙계 伯仲叔季
형제의 차례. 伯은 맏이, 仲은 둘째, 叔은 셋째, 季는 막내. |
백중지세 伯仲之勢
낫고 못함이 거의 없음. |
백척간두 百尺竿頭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 섰으니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하였다. |
☞방문을 열어 보면 마치 미역감는 냇가 같이 아이 어른이 벗고들 있는지라 흥부가 기가 막히어 옷 해 입힐 생각하니 백척간두에 사흘에 한 때도 먹어 갈 수가 없거든 의복을 어찌 생의 하리오.(興夫傳)
백척간두진일보 伯尺竿頭進一步
백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다달은 것은 이미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것인데 또 한 걸음 나아간다 함은 더욱 노력하여 위로 향한다. |
백팔번뇌 百八煩惱
불교에서 나온 말로 인간의 과거(過去), 현재(現在),미래(未來)에 걸친 108가지 번뇌(煩惱). 육관〔(六官 : 耳(소리), 目(색깔), 口(맛), 鼻(냄새), 心(뜻), 體(감각)〕이 서로 작용해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가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싫지도 않은(不好不惡) 평등(平等)의 3가지 인식 작용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3×6=18가지의 번뇌가 된다. 거기에 탐(貪), 불탐(不貪)이 있어 18×2=36가지가 되고, 이것을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 즉 전생(前生), 금생(今生), 내생(來生)의 3世에 36×3=108이 되어 백팔번뇌(百八煩惱)라 한다. |
참고 ☞만(卍)은 불보살(불보살)의 가슴, 손, 발 등에 나타나는 길상(吉祥) 만덕의 상으로 불교를 상징하는 표지, 태양, 움직이는 사방위, 흐르는 물, 둥글게 선회하는 빛의 상징이라 하는데, 태양의 신 비슈누(VISHNU) 신의 가슴팍에 자란 털 모양을 나타낸다는 길상의 증표라는 것이다. 불교에서의 유래는『화엄경(華嚴經)』에“여래의 가슴에는 훌륭한 분의 특징인 만(卍)자 모양이 있다. 이것을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부르는데, 온통 세계를 진리의 바다처럼 넘실거리게 한다.”에 나온다. 만(卍)자가 불교의 상징 마크가 된 것은 부처님의 백호(白毫:눈썹 사이에 난 흰터럭)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을 우선(右旋)이라 하여 신성시하여 길상의 기호로 형상이 만(卍)이 된 것이다. 卍은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비쳐서 볼 수 있는 초월적 능력이 있다.
(하켄크로이츠)마크는 유럽 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이었다. 나치가 당의 상징으로 도입한 것은 독일 민족이 아리안족의 적자(嫡子)라는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자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다.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피의 순수성이라든가, 살인이나 파괴와 같은 원시 본능을 칭송함으로써 집단 무의식의 가장 어두운 부분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군중을 바로 눈 앞의 것만 내다보는 근시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하켄크로이츠)마크가 독일인들의 호응을 얻은 것은‘과거 영광에의 열망’이라는 민족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성(性) 이미지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해석도 있다. 즉 정신과 의사 라이히에 따르면, 갈고리 모양의 (하켄크로이츠)마크는 남녀가 휘감긴 체위를 상징하고 있어서 독일인의 강렬한 섹스에 대한 욕망을 은연중 강조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엎드려서 왼발을 치켜 올리고, 남자가 무릎을 굽혀 뒤에서 관계를 갖는 형상이 곧 (하켄크로이츠)마크이기 때문에 그것이 심리적으로 높은 호소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백해무익 百害無益
조금도 이로운 것이 없고 해롭기만 하다. |
벽창우 碧昌牛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크고 억센 소.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碧昌牛) |
번문욕례 繁文縟禮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 규칙, 예절,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 |
벌제위명 伐齊爲名
제나라를 공격하나 이름만 있다. 무엇을 하는 체하나 실상인즉 딴짓을 함. |
☞많이 위문 옵네 하고 몰려들어서는 잔치집 모양으로 떠들썩하니 안에서도 거기 따라서 더운 점심을 짓네 어쩌네 하고 한층 더 부산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사랑에들만 몰려도 좋을 것을 무슨 종회나 가족회의 하듯이 몰려서 뒤집어 엎는데는 머리가 빠질 일이다. 그러나 당자인 병인이 그렇게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니 어찌 하는 수도 없다. 그래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벌제위명으로 큰 일이나 보아주는 듯시피 입으로만 떠들어 대고 수군거렸지 누구하나 똑똑히 다잡아서 약 한첩 조리 있게 쓰는 것도 아니다.(廉想涉, 三代)
변화무쌍 變化無雙
세상이 변하여 가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많고 심하다. |
병가상사 兵家常事
병가에는 항상 있는 일. 흔히 있는 일. 또는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 없다. |
복수불수 覆水不收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른다. 또는 다시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그릇됨. |
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
甑已破矣(증이파의) : 시루가 이미 깨졌다.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
쏘아 놓은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춰지지 않는다.
고사 : 周의 무왕(武王)을 도와 殷의 주왕을 몰아 내는데 큰 공을 세워 후에 齊나라의 왕이 된 강태공(姜太公)이 벼슬하지 아니하였을 때 그의 아내 마씨(馬氏)는 남편이 학문에만 열중하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나가 버렸다. 그 뒤 문왕에게 등용되어 공을 세우고 제나라 왕이 되자 마씨가 강태공의 앞에 나타나 거두어 줄 것을 원했다. 그러자 물 한동이를 길어오게 한 다음 그 물을 땅에 쏟아 담아 보라고 했으나 담지 못했다. 태공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若能離更合이나 覆水定難水라.)라 하고 마씨를 아내로 맞아 들이지 않았다.(拾遺記)
복잡다단 複雜多端
일이 얼키고 설키어 갈피를 잡기 어려움. |
본말전도 本末轉倒
일이 처음과 나중이 뒤바뀜. 일의 근본 줄기는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힘. |
본연지성 本然之性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자연의 심성. |
본제입납 本第入納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
참고 ☞편지 봉투를 쓸 때 이름 아래 붙이는 칭호
· 氏(시) : 나이나 지위가 비슷한 사람에게 존경의 뜻으로 쓸 때.
· 貴中(귀중) : 단체에 쓸 때.
· 님께 : 순 한글식으로 쓸 때.
· 女史(여사) : 일반 부인에게 쓸 때.
· 大兄(대형), 人兄(인형), 雅兄(아형) : 남자끼리 친하고 정다운 벗을 높여 쓸 때.
· 座下(좌하) : 마땅히 공경해야 할 어른〔조부모(祖父母), 부모(父母),선배(先輩), 선생(先生)〕 에게 쓸 때.
· 先生(선생) : 은사(恩師)나 사회적으로 이름난 분에게 쓸 때.
· 畵伯(화백) : 화가를 높여 쓸 때.
· 貴下(귀하) : 상대방을 높여 쓸 때.
· 君(군), 兄(형) : 친한 친구에게 쓸 때.
· 孃(양) : 처녀로서 동년배(同年輩) 혹은 아랫사람에게 쓸 때.
· 展(전) : 손아랫사람에게 쓸 때.
☞미국 작가 A. 비어스는『악미의 사전』에서 봉투를“서류를 매장하는 관, 연애편지를 넣는 옷”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도 봉투를“이루지 못한 연문의 관통(관통)이요, 사랑을 거절하는 답장의 칼집”이라 했다. 봉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흙봉투에 다다른다. 당시 제왕 또는 권력자만이 보아야 하는 문서는 여느 사람이 볼 수 없게끔 해야 했는데, 그 시절 점토판에 글을 �기로 그 점토판을 포개어 양끝을 이겨서 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낙랑시대 유물로 이 흙봉투가 출토되어 있다. 봉니(封泥)가 그것이다. 봉투란 단어는‘구부려 덮어 봉한’데서 유래했다.
봉고파직 封庫罷職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罷免)시키고 관고(官庫)를 봉하여 잠그는 일. |
부마駙馬
임금의 사위. 공주의 부군(夫君). |
고사: 옛날 농서[ 書:감숙성(甘肅省)] 땅에 신도탁(辛道度)이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대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하녀가 나와 대문을 열었다.
"옹주로 가는 나그네인데 하룻밤 재워 줄 수 없겠습니까?"
하녀는 잠시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그를 안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잘 차린 밥상이 있었는데 하녀가 사양 말고 먹으라고 한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
"저는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딸이온데 조(曹)나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을 하고 이제까지 23년 동안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 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인연을 맺어 주세요."
신도탁은 그런 고귀한 여인과 어찌 부부의 인연을 맺을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했으나 여인의 끈질긴 간청에 못 이겨 사흘 낮 사흘 밤을 함께 지냈다. 다음날 아침에 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좀더 함께 지내고 싶지만 사흘 밤이 한도예요. 이 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되지요. 그래서 헤어져야 하지만 제 진심을 보여 드릴 수 없는 게 슬프군요. 정표로 이거라도 받아 주세요."
여인은 신도탁에게 금베개[金枕]를 건네주고는 하녀에게 대문까지 배웅하라고 일렀다. 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그 큰 기와집은 간데 없고 잡초만이 무성한 허허 벌판에 무덤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품속에 간직한 금베개는 그대로 있었다.
신도탁은 금베개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 그후 왕비가 금베개를 저잣거리에서 발견하고 관원을 시켜 조사해 본 결과 신도탁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왕비는 그를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 보니 다른 부장품(副葬品)은 다 있었으나 금베개만 없어졌다. 그리고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 정교(情交)한 흔적이 역력했다. 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이야기와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이야말로 내 사위라며 그에게 '부마도위(駙馬都尉)'하는 벼슬을 내리고 후대했다고 한다.
부창부수 夫唱婦隨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른다. 남편의 주장에 아내가 따름. 부부의 화합. |
부화뇌동 附和雷同
주견(주견)없이 남의 의견을 그대로 좇아 따르거나 같이 행동하다. |
追友江南(추우강남) : 친구따라 강남간다.
북당 北堂
남의 어머니의 별칭. |
참고 ☞㈎‘남의 어머니를’높이어 이르는 말 : 母堂, 慈堂, 令堂, 萱堂.
㈏ 남에게‘자기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 : 慈親, 慈위, 家母, 家慈.
㈐‘남의 아버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椿府丈, 椿府, 椿丈, 椿府大人, 椿庭, 椿堂, 家尊, 令尊.
㈑ 남에게‘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 : 家父, 家君, 家嚴, 家大人, 家親, 嚴君.
부언시용 婦言是用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 |
고사 : 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달기(달己)라는 요부(妖婦)에게 빠져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주색(酒色)을 즐겨 매일같이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일족(一族)들 마저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혼란하여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때 「무왕이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암닭은 새벽에 울지 아니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오직 집안이 망할 뿐이다.’(王曰 古人有言曰 牝鷄無晨이니 牝鷄之晨이면 惟家之索이라.)’」라고 하였다.(書經, 周書篇)
** 牝(암놈 빈) 索(쓸쓸할 삭)
분골쇄신 粉骨碎身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다. 또는 남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음. |
犬馬之勞(견마지로) :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盡忠竭力(진충갈력) :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
驅馳(구치) : 말이나 수레를 몰아 빨리 달림. 또는 남의 일을 위하여 힘을 다함.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산 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다는 뜻으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의 가혹한 법[苛法]과 혹독한 정치[酷政]을 이르는 말. |
고사:기원전 222년, 제(齊)나라를 끝으로 6국을 평정하고 전국 시대를 마감한 진나라 시황제 때의 일이다. 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하자 주(周)왕조 때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중앙집권(中央執權)의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채택했다.
군현제를 실시한 지 8년이 되는 그 해(B.C. 213) 어느 날, 시황제가 베푼 함양궁(咸陽宮)의 잔치에서 박사(博士)인 순우월(淳于越)이 '현행 군현 제도하에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기하기가 어렵다'며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순우월의 의견에 대해 가부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立案者)인 승상 이사(李斯)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침략전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사오며, 법령도 모두 한 곳에서 발령(發令)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들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심과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醫藥) 복서(卜筮) 종수(種樹:농업)에 관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시황제가 이사의 진언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속속 불태워졌는데 이 일을 가리켜 '분서'라고 한다.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므로, 책은 모두 글자를 적은 댓조각을 엮어서 만든 죽간(竹簡)이었다. 그래서 한번 잃으면 복원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이듬해(B.C. 212) 아방궁(阿房宮)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神仙術法)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는 많은 재물을 사취(詐取)한 뒤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진노했다. 그 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중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폐하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다. 시황제는 그들을 모두 산 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라고 한다.
불가사의 不可思議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 야릇함. |
微妙(미묘) : 야릇해서 잘 알 수 없음.
神秘(신비) : 보통 이론과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한 일.
不可知解(불가지해) : 알 수가 없음.
불가항력 不可抗力
힘으로 대항할 수 없음. |
불구대천 不俱戴天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 죽여 없애야 할 원수. |
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고사 : 예기(禮記)는 오경의 하나로 周 나라 말부터 秦漢시대에 유학자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적은 책이다. 그 중 곡례(曲禮)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아버지의 원수는 더불어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 살려둘 수는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 무기를 가지고 올 사이가 없다.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원수를 만나면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죽여 없애야 한다.”(禮記)
불립문자 不立文字
도는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지 문자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 |
불문가지 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가히 알 수 있다. |
불문곡직 不問曲直
굽고 곧음을 묻지 않음. 잘잘못을 따지지 아니하고 다짜고짜 행동함. |
불수진拂鬚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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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송(宋:北宋, 960∼1127)나라의 4대 황제인 인종(仁宗:1022∼1063) 때 강직하기로 유명한 구준(寇準)이라는 정의파 재상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여러 유능한 인재를 발탁, 천거했는데 참정(參政:從二品) 정위(丁謂)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구준이 정위를 포함한 중신들과 회식(會食)을 하는데 음식찌꺼기가 수염에 붙었다. 이것을 본 정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 소맷자락으로 공손히 털어냈다. 그러자 구준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허, 참. 참정이라면 나라의 중신인데, 어찌 남의 '수염에 붙은 티끌을 털어 주는[拂鬚塵]' 그런 하찮은 일을 하오?"
정위는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도망치듯 그 자리를 물러갔다고 한다.
불입호혈 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는 뜻으로, 모험을 하지 않고는 큰 일을 할 수 없음의 비유. |
고사:후한(後漢) 초기의 장군 반초(班超)는 중국 역사서의 하나인《한서(漢書)》를 쓴 아버지 반표(班彪), 형 반고(班固), 누이동생 반소(班昭)와는 달리 무인(武人)으로 이름을 떨쳤다.
반초는 후한 2대 황제인 명제(明帝) 때(74년) 서쪽 오랑캐 나라인 선선국[ 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떠났다. 선선국왕은 반초의 일행36명을 상객(上客)으로 후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후대는 박대(薄待)로 돌변했다. 반호는 궁중에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고 즉시 부하 장수를 시켜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부하 장수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
"지금 신선국에는 흉노국(匈奴國)의 사신이 와 있습니다. 게다가 대동한 군사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흉노는 옛부터 한족(漢族)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침입을 막았을 정도로 영맹(獰猛)한 유목민족이다. 반초는 즉시 일행을 불러모은 다음 술을 나누며 말했다.
"지금 이곳에는 흉노국의 사신이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와 있다고 한다. 신선국왕은 우리를 다 죽이거나 흉노국의 사신에게 넘겨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끌려가서 개죽음을 당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지 않습니까? 싸워야 합니다!"
모두들 죽을 각오로 싸우자고 외쳤다.
"좋다. 그럼 오늘 밤에 흉노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쳐들어가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는 호랑이 새끼를 못 잡는다[不入虎穴不得虎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날 밤 반초 일행은 흉노의 숙소에 불을 지르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 일을 계기고 선선국이 굴복했음은 물론 인근 50여 오랑캐의 나라들도 한나라를 상국(上國)으로 섬기게 되었다.
불철주야 不撤晝夜
밤낮을 가리지 않음. 조금도 쉴사이 없이 일에 힘씀. |
불치하문 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
불편부당 不偏不黨
어느 편으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태도. |
불혹不惑
미혹(迷惑)하지 아니함. 나이 마흔 살의 일컬음. |
고사:공자는 일생을 회고하며 자신의 학문 수양의 발전 과정에 대해《논어》〈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 다섯 살 때 학문에 뜻을 두었고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志學]
서른 살 때 입신했다.
[三十而立(삼십이입)-而立]
마흔 살 때는 미혹하지 않고
[四十不惑(사십불혹)-不惑]
쉰 살 때 하늘의 명을 알았다.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知命]
예순 살 때는 귀에 따랐고
[六十而耳順(육십이이순)-耳順]
일흔 살이 되니 마음 내키는 대로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從心]
[주] 20세 : 약관(弱冠),《예기(禮記)》에서 온 말. 60세 : 환갑(還甲). 70세 : 고희(古稀), 두보의 시 '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 77세 : 희수(喜壽), '喜'의 초서체(草書體)는 七七이라 읽을 수 있음. 88세 : 미수(米壽), '米'자를 분해하면 八十八이 됨.
붕우책선 朋友責善
친구는 서로 착한 일을 권함. 참다운 친구라면 서로 나뿐 짓을 못 하도록 권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야 한다. |
붕정만리 鵬程萬里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양양하다. |
비몽사몽 非夢似夢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어렴풋한 상태. |
비육지탄 脾肉之歎
넓적다리에 살이 붙음을 탄식함. 자기의 뜻을 펴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을 한탄하다. |
고사 : 後漢 말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평정하고, 조조(曹操)와 협력하여 여포(呂布)를 하비(下비)에서 격파하고 그 후 헌제(獻帝)에게 부름을 받아 좌장군(左將軍)에 임명되었으나 조조의 휘하에 있는 것이 싫어 고사(固辭)하고 형주(荊州)에 사는 유표(劉表)에게 의지했다. 어느 날 유표에게 초대받았을 때 변소에 갔다가 넓적다리에 살이 많이 붙은 것을 보고 놀랐다. 자리로 돌아온 유표가 그의 눈물을 보고 까닭을 묻자,「유비가 말하기를“항상 몸이 안장에서 떨어지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모두 없었는데 지금은 다시 말을 탈 수 없으니 넓적다리 속으로 살이 생기고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늙음이 이르는데도 공업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슬플 뿐입니다.”(備曰 常時身不離鞍하여 脾肉皆消한대 今不復騎하니 脾裏肉生하고 日月이 如流하여 老將至한대 功業不建하니 是以悲耳니라.)」(三國志, 蜀志)
** 鞍(안장 안) 消(없앨 소) 騎(말탈 기) 裏(속 리) 業(일 업) 建(세울 건) 悲(슬플 비)
비일비재 非一非再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님. 수두룩하게 많음. |
빈천지교 貧賤之交
내가 가난하고 천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준 벗은 내가 부귀하게 된 뒤에도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된다. |
빙공영사 憑公營私
공적인 일을 빌어서 사리사욕을 채움. |
빙탄불상용 氷炭不相容
얼음과 불은 성질이 반대여서 만나면 서로 없어진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화합하지 못함. 또는 산반되는 사물. |
고사 : 漢나라 무제의 신하 중에 동방삭(東方朔)이 있다. 그는 박학다식하여 무제의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언제나 어전에서 먹고 지냈는데 남은 음식이 있으면 품에 넣어 집으로 가지고 갔으며 하사받은 의복은 어깨에 걸머메고 퇴거하는 묘한 행동을 하였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미친 놈이라 하였으나 본인은 태연하였다. 동방삭의 글에 칠갑전(七諫傳)이 있는데 여기에,“얼음과 불은 서로 나란히 할 수가 없다(氷炭不可以相竝兮).”란 말이 보인다. 곧 충성스러움과 아첨함은 깥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의 비유이다.(미상)
사갈시 蛇蝎視
뱀이나 전갈을 보듯 함. 악독한 것을 보고 끔찍히 싫어함. |
사고무친 四顧無親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의지할 곳이 없다. |
孤立無援(고립무원) : 아무도 도와 줄 이 없다.(=無援孤立)
進退維谷(진퇴유곡) :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난처한 지경에 빠지다.
사기종인 舍己從人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본떠 행함. |
고사 :「선생이 말씀하시되“능히 자신을 버리고서 남을 좇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자의 큰 병이라.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으니 어찌 가히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리요? 사람이 질문이 있으면, 곧 얕고 가까운 말이라도 반드시 마음에 두고서 조금 있다가 이를 대답하고, 일찍기 묻는 말에 바로 응하여 대답하지 말지니라.”(先生이 曰“不能舍己從人은 學者之大病이라 天下之義理無窮하니 豈可是己而非人이리오. 人有質問이어든 則淺近說이라도 必留意하여 少間而答之하고 未嘗應聲而對니라.”」(退溪集)
사단 四端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네 마음. |
고사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선왕이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곧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사를 하였다.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를 다스리기는 손바닥 위에 놓고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이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사람이 문득 어린아이가 장차 우물에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이 아니며, 향당(鄕黨)과 친구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며, 그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의 발단이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의의 발단이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발단이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지의발단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스스로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해치는자요, 그 임금이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자는 그 임금을 해치는 자이다. 무릇 나에게 있는 사단을 다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물이 처음 솟아오르는 것과 같으니, 만일 확충한다면 사해(四海)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요, 만일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人皆有不忍人之心하니라. 先王이 有不忍人之心하사 斯有不忍人之政矣니라. 以不忍人之心으로 行不忍人之政이면 治天下는 可運於掌上이니라.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는 今人이 斯見孺子將入於井하고 皆有출척惻隱之心하나니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며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며 非惡其聲而然也니라. 由是觀之컨데 無惻隱之心이면 非人也며 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며 無辭讓之心이면 非人也며 無是非之心이면 非人也니라. 惻隱之心은 人之端也요 羞惡之心은 義之端也요 辭讓之心은 禮之端也요 是非之心은 智之端也니라. 人之有是四端也는 猶其有四體也니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는 自賊者也요 謂其君不能者는 賊其君者也니라. 凡有四端於我者를 知皆擴而充之矣면 若火之始然하며 泉之始達이니 苟能充之면 足以保四海요 苟不充之면 不足以事父母니라.」(孟子, 公孫丑 上)
** 乍(잠깐 사) 孺(어린애 유) 출(두려워할 출) 척(두려워할 척) 端(실마리 단) 擴(넓힐 확)
사면초가 四面楚歌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다. 적에게 포위당하여 고립되거나 이러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태. 또는 자기를 돕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고립된 경우. |
고사: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 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 )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 不逝(시불리혜추불서)]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 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사무사 思無邪
생각이 바르므로 사악함이 없음. |
고사 :‘子曰 詩三百이 一言而蔽之曰 思無邪라.’
사면춘풍 四面春風
도처가 춘풍. 누구에게나 모나지 않게 처세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
사분오열 四分五裂
넷으로 나누어지고 다섯으로 갈라진다.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 |
사상누각 砂上樓閣
모래 위에 지은 누각. 기초가 견고하지 못해 오래가지 못하다. |
사석위호 射石爲虎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 |
사숙 私淑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의 학문이나 인품을 본받아 배우며 인격을 수양해 나간다. |
사이비자 似而非者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으나 실지로는 아주 다른 가짜. |
고사 : 사이비(似而非)는 공자(公子)의 말에서 유래했다. 만장(萬章)이 그의 스승 맹자(孟子)에게 물었다.“온 고을이 다 그를 향원(鄕原 :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디를 가나 향원일 터인데 공자께서 덕(德)의 도적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맹자가 대답했다.“비난을 하려 해도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을 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시대의 흐름에 함께 휩쓸리며 더러운 세상과 호흡을 같이 하여 그의 태도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것 같으며 그의 행동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다. 모든 사람들도 그를 좋아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함께 참다운 성현의 길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의 도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공자는 말씀 하셨다.‘나는 같고도 아닌 것(似而非)을 미워한다’라고.”즉, 그들은 꼬집어 비난할 구석이 없으며 얼핏 보기에는 청렴결백한 군자와 같으나, 실인즉 오직 세속에 빌붙어서 사람들을 감복케 하고, 칭찬을 받으며, 자신도 만족한 삶을 누리는 것뿐 결코 성인의 도를 행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들이야 말로‘덕의 적’이라 하고“세상의 사이비한 인간을 미워한다. 돌피는 잡초에 불과하나 벼포기와 비슷한 까닭으로 더욱 성가시다. 수작이 능한 자를 미워함은 정의를 혼란케 만드는 때문이요, 鄭나라의 음악을 미워함은 그것이 아악과 비슷한 관계로 향원을 증오하는 까닭은 그들이 덕을 어지럽게 한다는 데 있다.”고 갈파했다.
☞사이비(似而非)와 유사한 뜻으로 사쿠라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쇠고기와 관계가 있다. 일본 사람들이 쇠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일본의 개국 정책에 따라 요코하마나 고베, 등지에 외국인 거류지가 설치되고 포루투갈 사람들이 온 이래 그 영향을 받았다. 일단 고기맛을 들이자 쇠고기가 인기를 끌었다. 쇠고기의 붉은 육질과 부드러운 맛이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했던 까닭이었다. 그러자 말고기를 쇠고기라고 속여서 파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이른바 우두마육(牛頭馬肉)인 것이다. 그당시 일본에서는 말고기의 빛깔이 벚꽃처럼 붉다 하여 말고기를 사쿠라(벚꽃) 고기라 했는데, 속여 팔던 뻔뻔함이 그대로 보통 명사화 되었다. 사이비를 사쿠라라고 하는 유래가 여기에 있다.
사자후 獅子吼
① 석가모니의 목소리를 사자의 우는 소리에 비유. 사자가 소리쳐 울 때 작은 사자는 용기를 내고 기타 일체의 금수는 도망쳐 숨어버리는 것과 같이 석가모니의 설법을 들을 때 보살은 정진하고 도를 벗어난 악마들은 숨어버린다. ② 사자의 울부짖음. ③ 크게 열변을 토하다. ④ 샘이 많은 여자가 남편에게 암팡스럽게 대드는 것. |
사족 蛇足
필요 없는 것을 붙이는 것. 또는 필요 없는 것. |
고사 :「楚나라에 제사를 맡은 사람이 그 하인들에게 큰 잔에 담긴 술을 주거늘, 하인들이 서로 말하되“여러 사람이 이를 마시면 만족하지 못하고 한 사람이 마시면 조금 과하니 청컨데 땅에다가 그려서 뱀을 만들되 먼저 이룬 사람이 술을 마시기로 하자.”하였다. 한 사람이 뱀을 먼저 이루어 놓고 막 이를 마시려고 할 때, 왼손으로 술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땅에 그리며 말하기를“내가 능히 그렸으나 발이 아직 발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도다.”그 때 바로 한 사람이 뱀을 완성하고, 그 술잔을 빼앗아 말하되“뱀은 진실로 발이 없거늘 그대는 어찌 뱀의 발을 그릴 수 있겠는가?”하고 마침내 술을 마시니 뱀의 발을 만든 사람은 마침내 그 술을 마시지 못하였다.
(楚有祠者하여 賜其舍人치酒하니 舍人이 相謂曰“數人이 飮之면 不足이요 一人이 飮之면 有餘하니 請畵地爲蛇하여 先成者가 飮酒하리라”一人이 蛇先成하여 引酒且飮之할새 乃左手로 持치하고 右手로 畵地曰“吾能爲之나 足未成이로다.”一人之蛇가 成하야 奪其치曰“蛇固無足이라 子安能爲之足이리요”遂飮其酒하니 爲蛇足者는 終亡其酒러라.)」(戰國策)
사필귀정 事必歸正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 모든 시비(是非) 곡직(曲直)은 결국 바른 길로 돌아 온다. |
죄는 지은 데로 가고 덕은 닦은 데로 간다.
사후약방문 死後藥房文
죽은 뒤에 약방문. 시기를 잃어 낭패를 보는 경우. |
사통오달 四通五達
사방으로 왕래할 수 있는 편리한 곳. |
사해동포 四海同胞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형제. |
산고수장 山高水長
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한 말. |
산자수명 山紫水明
산은 푸르고 물은 맑다. 산수의 풍경이 깨끗하고 아름다움. |
산전수전 山戰水戰
산에서의 전투와 물에서의 전투를 다 겪음. 험한 세상의 일에 경험이 많음. |
百戰老將(백전노장)
살신성인 殺身成仁
자신의 몸을 죽여 인을 이룬다.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하다. |
고사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子曰 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하고 有殺身以成仁이니라.)”」라고 하였다. 지사(志士)란 도의(道義)에 뜻을 둔 사람을 일컫고 인인(仁人)이란 어진 덕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이 소중하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지(志)나 인(仁)을 잃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때로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인(仁)을 달성하려 한다.(論語, 衛靈公篇)
삼강오륜 三綱五倫
삼강(三綱)은 유교 도덕이 되는 세가지 뼈대가 되는 줄거리로서, 임금과 신하(君爲臣綱), 남편과 아내(夫爲婦綱), 부모와 아들(父爲子綱)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 오륜(五倫)은 유교 실천 도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다섯가지의 인륜(君臣有義, 父子有親,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을 말한다. |
삼고초려 三顧草廬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여러 번 찾는 것. |
고사 :후한 말엽, 유비[劉備:자는 현덕(玄德), 161∼223]는 관우[關羽:자는 운장(雲長), ?∼219] 장비[張飛:자는 익덕(益德), 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漢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軍師)가 없어 늘 조조군(曹操軍)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에게 군사를 천거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伏龍)이나 봉추(鳳雛)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후 제갈량[諸葛亮:자는 공명(孔明), 181∼234]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저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 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유비는 그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三分)하고 한실(漢室)의 맥을 잇는 촉한(蜀漢)을 세워 황제 [소열제(昭烈帝), 221∼223]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이 되었다.
「臣이 본래 벼슬이 없는 천한 몸으로 몸소 남양 땅에 묻히어 밭이나 갈면서 살고자 하여, 진실로 생명을 어지러운 세상에서 잘 보전하고 벼슬을 임금들에게 구하지 않고 지내려 하였더니, 선제께서 신을 벼슬이 없는 천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외람스럽게도 몸을 굽히어 세 번이나 초가집의 가운데에서 나를 찾아 주시고 신에게 당세의 여러 가지 일을 물음이라. 이로 말미암아 마음에 크게 느껴 드디어 선제의 밑에서 일할 것을 허락을 하더니, 뒤에 나라가 기울 제를 만나서, 책임을 패하여 가는 군인의 즈음에서 받고, 명령을 어려운 사이에서 받음이 지금까지 二十一 년이 되니라. (臣本布衣로 躬耕南陽하여 苟全性命於亂世하고 不求聞達於諸侯러니 先帝不以臣卑鄙하시고 猥自枉屈하사 三顧臣於草廬之中하여 咨臣以當世之事라 由是感激하여 遂許先帝以驅馳러니 後値傾覆하여 受任於敗軍之際하고 奉命於危難之間이 爾來二十一年의라.)」(出師表)
** 躬(몸소 궁) 鄙(더러울 비) 猥(외람될 외) 枉(굽힐 왕) 咨(물을 자) 激(분발할 격) 値(만날 치)
참고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임금의 청을 받아 들인 것이라면 취직(就職)은 거절의 뜻을 표명한 말이다. 취직(就職)이란 말은 중국 진(晉)나라의 이밀(李密)이란 사람이 황제의 부름을 받았으나, 그는 자신의 가문이 출중치 못하다는 겸양(謙讓)을 발휘해 부름을 끝내 사양했다. 그는 자신의 명문집「문선(文選)」에서 이런 뜻을‘具以表聞辭不就職’이라는 글귀로 남겼다.
삼년불비 우불명 三年不飛又不鳴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훗날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이르는 말. |
고사:춘추시대 초엽, 오패(五 )의 한 사람으로 꼽혔던 초(楚)나라 장왕(莊王:B.C. 613∼591)이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장왕은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다.
"앞으로, 과인을 간하는 자는 사형(死刑)에 처할 것이오."
그 후 장왕은 3년간에 걸쳐 국정은 돌보지 않은 채 주색(酒色)으로 나날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신 오거(五擧)는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諫言)할 결심을 했다. 그러나 차마 직간(直諫)할 수가 없어 수수께끼로써 우회적으로 간하기로 했다.
"전하, 신이 수수께끼를 하나 내볼까 하나이다."
"어서 내보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사온데, 이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사옵니다[三年不飛又不鳴].' 대체 이 새는 무슨 새이겠나이까?"
장왕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번 날면 하늘에 오를 것이오. 또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이제 그대의 뜻을 알았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으나 장왕의 난행(亂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전에 나아가 직간했다. 그러자 장왕은 꾸짖듯이 말했다.
"경(卿)은 포고문도 못 보았소?"
"예, 보았나이다. 하오나 신은 전하께서오서 국정에 전념해 주신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알았소. 물러가시오."
장왕은 그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 전념했다. 3년 동안 장왕이 주색을 가까이했던 것은 충신과 간신을 선별하기 위한 사전 공작이었다. 장왕은 국정에 임하자마자 간신을 비롯한 부정 부패 관리 등 수백 명에 이르는 반윤리적 공직자를 주살(誅殺)하고 수백 명의 충신을 등용했다. 그리고 오거와 소종에게 정치를 맡겨 어지러웠던 나라가 바로잡히자 백성들은 장왕의 멋진 재기를 크게 기뻐했다.
삼매경 三昧境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 |
精神統一(정신통일).
無我(무아) : 나의 존재를 잊고 생각지 않음.
無心(무심) : 물욕과 속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경지.
삼불행 三不幸
맹자가 말한 불행의 세 가지. 축재에 전념하고, 자기 처자만 사랑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
삼불혹 三不惑
빠지지 말아야 할 세가지. 술·여자·재물. |
삼불효 三不孝
부모를 불의(不義)에 빠지게 하고, 가난 속에 버려두며, 자식이 없어 제사가 끊어지게 하는 일. |
삼불휴 三不朽
세운 德, 이룬 功, 교훈이 될 훌륭한 말. |
삼삼오오 三三五五
셋 또는 대여섯이 무리를 지어 다니거나 함께 일을 하는 모양. |
삼성오신 三省吾身
날마다 세 번씩 자신을 반성함. |
고사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날마다 세 번 내 몸을 살피니, 사람을 위하여 일을 도모함에 추성스럽게 아니 하였는가? 벗과 더불어 사귀되 믿음을 잃지는 않았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아니 하엿는가?”이니라.(曾子曰“吾日三省吾身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아 與朋友交而不信乎아 傳不習乎아”니라.)」
삼순구식 三旬九食
한 달에 아홉 끼니밖에 먹지 못한다. 집이 몹시 가난한 것. |
上漏下濕(상루하습) : 위에서는 비가 새고 아래에서는 습기가 차오른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비유하는 말.
삼십육계 三十六計
곤란할 때에는 도망가는 것이 가장 좋다. |
고사:남북조 시대, 제(齊:南齊, 479∼502)나라 5대 황제인 명제(明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로서 고제의 증손(曾孫)인 3대 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簒奪)한 황제이다. 그는 즉위 후에도 고제의 직손(直孫)들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잡아 죽였다.
이처럼 피의 숙청이 계속되자 고조 이후의 옛 신하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국 공신인 회계(會稽) 태수 왕경측(王敬則)의 불안은 날로 심해졌다. 불안하기는 명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平東)장군에 임명하여 회계와 인접한 오군(五郡:강소성 내)으로 파견했다. 그러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도읍 건강(建康:南京)을 향해 진군하여 불과 10여 일 만에 건강과 가까운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했다. 도주에 농민들이 가세함에 따라 병력도 10여 만으로 늘어났다.
한편 병석의 명제를 대신하여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패전 보고서를 받자 피난 준비를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단장군(檀將軍)의 '서른 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가는 것이 제일 좋은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었다고 하더라. 이제 너희 부자(父子)에게 남은 건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이 말은 '단장군이 위(魏:北魏)나라 군사와 싸울 때 도망친 것을 비방한 것이다'라고 주석을 붙인 책도 있다.
그 후 관군에게 포위 당한 왕경측은 난전중(亂戰中)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주] 단장군 : 송(宋:420∼479)나라 무제(武帝:420∼422)의 건국(建國)을 도운 명장 단도제(檀道濟)를 가리킴.
삼인성호 三人成虎
세 사람이 호랑이를 이루다. 세 사람이 똑같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믿게 된다. ① 거짓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 ②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다. ③ 여러 사람이 떠들면 소문 낸 것이 무섭다. |
고사: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龐 )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주] 방총 :《韓非子》에는 방공(龐恭)이라고 되어 있고《戰國策》에는 방총(龐 )이라고 되어 있음.
삼재 三才
만물을 지배하는 세 가지. 天, 地, 人. |
참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은 완성, 최고, 신성, 장기성, 종합성 따위로 인식되고 있으니, 우리만 3을 중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엔드레스(F. C. Endres)는〈수의 신비와 마법〉에서 3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라이문트 뮐러는 1903년 논문에서 설화와 문학, 그리고 미술에 나타난 3이라는 수의 중요성을 해명하고자 했다. 그는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 3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체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인간은 물과 공기와 흙을 보고 세 가지 형태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고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인간은 물체의 세 가지 상태(고체·액체·기체)와 피조물의 세 가지 집단(과일·식물·동물)을 발견했다. 인간은 식물에서는 뿌리와 줄기와 꽃을, 과실에서는 껍질과 과육과 씨앗을 밝혀냈다. 또한 태양은 아침, 정오, 저녁에 각각 다른 모습을 갖는다고 여겼다. 실제로 모든 경험은 길이와 높이와 넓이라는 공간 좌표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3차원이다. 일체의 삶은 생성과 존재와 소멸로 표상될 수 있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라는 세 국면으로 진행되며, 완전한 전체는 정립과 반정립, 그리고 종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색채의 혼합은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노랑에서 비롯한다. ”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러한 자연현상 속의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이다. 서구의 3개념이 가장 절대적으로 드러난 부분은 역시 삼위일체다. 삼위일체는 초기 기독교시대에 등장, 후에 정립된 완벽의 개념이다.
우리나라의 종교관이 3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비교할 때, 그 유사성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들의 싱화에 담겨진 3의 의미를 지나치게 간과해왔다. 우리 민족의 탄생신화에서 조차 녹아 있는 3은 가장 환상적인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민족신화에 3이 매우 중요했음을 암시한다. 단군신화에서 삼위태백, 천부인 3개, 무리 3000명, 풍백·우사·운사, 360여 가지 일, 삼칠일간의 금기…… 모조리3이다. 실상 환인, 환웅, 단군의‘3대(三代)’로 이루어지는 ‘삼신(三神)’체계가 고대신화의 원형을 이룬다. 임재해 교수(안동대)는 그의 저서〈민족신화와 건국 영웅들〉에서 단군신화의 인간상을 셋으로 나눈다. 신격으로서의 황웅, 동물격인 곰녀, 그리고 인격인 단군이 3의 원형체계라는 것이다. 해모수가 동명왕으로 이어지고, 동명왕이 유리왕으로 이어지는 고대 부여족의 신화적 중심인물도‘3대’이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도 3이 두루 쓰였다. 중국 청동기문화의 대표적인 제사도구들을 대개 세 개의 다리로 되어 있으니 제기(祭器)를 뜻하는 정(鼎)이란 글자도 다리 셋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대 동방의 삼재설(三才說)은 천·지·인 수관념은 그대로 한글 창제원리로도 작용하였다. 홀소리 글자의 기본을 셋으로 정하여‘·’는 하늘,‘ㅡ’는 땅,‘ㅣ’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떠, 세상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자문화권에 편입되면서 한문식의 3개념이 강화되었다.‘주자가례’가 강화되면서 귀착된 삼강오륜(三綱五倫),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삼일장(三日葬), 삼배(三拜), 삼탕(三湯), 삼색실과(三色實果)등이 그것이다. 삼황(三皇), 삼도(三道), 삼족(三族), 삼계(三戒)도 들어온 것들이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한자를 풀어서‘一’과 ‘二’를 합한 것을‘三’으로 보았다.‘三’을 거꾸로 세우면‘川(泉)’이 되어 ‘셋’과‘샘’은 어원도 같고 무궁무진함을 뜻하기도 한다. 문자가 생성되던 상고시대부터 3은 늘 완벽의 상징이었다.
불교에서는 조금 어려운 말로 삼성(三性)이라고 하여 일체의 세간법(世間法)을 그 본질 면에서 선(善), 악(惡), 무기(無記)의 셋으로 보는 교설이 있다. 이 삼성의 입장에서 관조된 세계는 공(空:없음)일 뿐만 이니라 진실한 유(有:있음)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세상의 있고 없음이 모두 삼성에 기초하고 있디는 말이다.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의미하는 삼보(三寶),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三歸依),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지는 상태인 삼매(三昧), 중생들의 세계를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나누는 삼계(三界) 등은 모두 불교에서 전래된 것이다.
3은 저 홀로 쓰여지는 것만도 아니다. 3이 3번 반복되어 9를 이루면서 강한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을굿에서는 서말·서되·서홉으로 쌀을 준비하여 신성의 의미가 한결 강해진다. 아홉수라고 하여 29살에 결혼을 피하는 관념속에는 이미 '삼재'라고 하는 액이 3번 반복된 마지막 해라는 계산법이 숨겨져 있다. 아기를 낳고 금줄을 치면서 몸조리를 하게 되는 삼칠일(21일간)에도 7이 3번 반복된 의미가 담겨 있다.
삼현육각, 삼정승 육판서 처럼 3과 3의 배수인 6이 결합하여 강조되기도 한다. 무언가 잘못을 하고서 부지런히 도망을 칠 때, 우리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고 말한다. 3이 열두번이나 반복되었으니 대단한 속도감을 뜻한다. 여기서 열두번은 대단히 많다는 속뜻을 지니고 있다.
반복은 좋은 것을 더욱 좋게 만든다. 우리는 늘 홀수가 두 번 겹친 것을 선호했다. 1월 1일의 설날은 말할 것도 없고, 3월 3일의 삼짇날, 5월 5일의 단오, 7월 7석의 칠석, 9월 9일의 중구절을 중시했다. 어느 누가 2월 2일, 4월 4일, 6월 6일, 8월 8일, 10월 10일을 중시하는가.
3을 양수(陽數)이고 길한 숫자인 탓으로 양수가 겹쳐진 삼월 삼짇날(3.3) 따위를 길일로 친 것도 것도 반복의 원리다. 삼월 삼짇날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풀리며 냇가의 버들 강아지도 눈을 트고 모처럼 기지개를 펴게 되는 길일이다. 중국사람들 최대 명절인 9.9절도 바로 3.3이 반복된 결과다. 이날은 양기가 그득하여 천지 만물이 힘을 얻게 된다고 믿어왔다.
3을 좋아하는 수관념은 짝수보다도 홀수를 선호했던 수관념과도 관계있다. 우스갯소리로, 술집에서 맥주를 시킬 때 '1·3·5·7·9’를 고집하는 것도 무의식중에 이러한 수개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삼한갑족 三韓甲族
우리 나라에서 대대로 문벌이 높은 집안. |
상가지구 喪家之拘
상가집의 주인 잃은 개. 여위고 지칠대로 지친 수척한 사람을 비유한 말. 또는 궁상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 |
烏面鵠形(오면곡형) : 까마귀 얼굴에 따오기 같은 형상. 주려서 매우 수척한 사람.
보름에 죽 한끼 못먹은 사람이다.
고사 :「孔子가 魯나라의 재상으로 국정개혁(國定改革)에 실패한 후 편력(遍歷)의 여행을 하였다. 공자가 鄭나라에 갔을 때「정나라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자공에게 일러 말하기를“동문에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마는 요임금과 같고 그의 목은 고요와 같고 그의 어깨는 자산과 같다.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왕에 미치지 못하기를 세 치요, 지친 모습은 상가의 개와 같았다.”자공이 공자에게 이실직고하니 공자가 기뻐 웃으면서 말하기를“모습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상가의 개와 같다는 말은 그렇도다. 그렇도다. ”라고 대답 하였다.(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한대“其상似堯요 其項類皐陶요 其肩類子産이라. 然自腰以下는 不及禹三寸이요 壘壘若喪家之拘라. ”子貢以實告孔子하니 孔子가 欣然笑曰“形狀未也라. 而似喪家之拘는 然哉로다. 然哉로다.”)」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
** 鵠(고니 곡) 상(이마 상) 肩(어깨 견) 腰(허리 요) 壘(맬 루) 欣(기쁠 흔) 哉(어조사 재)
상궁지조 傷弓之鳥
활에 상처를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 한 번 궂은 일을 당하고 나면 의심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상전벽해 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 세상이 몰라 볼 정도로 바뀐 것. |
碧海桑田(벽해상전). 滄桑之變(창상지변).
陵谷之變(능곡지변) : 높은 언덕이 변하여 깊은 골짜기가 되고 깊은 골짜기가 높은 언덕으로 변한다.
고사 :「마고가 왕방평에게 일러 말하기를“스스로 모신 이래로 동해가 세 번 뽕나무 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 봉래에 이르니 물이 곧 갈 때 보다 얕아져 대략 반쯤이었습니다. 다시 언덕이 되려는 것입니까?”왕방평이 말하기를“동해가 다시 흙 먼지를 일으킬 뿐이다.”라고 하였다.(麻姑가 謂王方平曰 自接待以來로 見東海三變爲桑田한대 向到蓬萊하니 水乃淺於往者略半也라. 豈復爲陵乎아. 王方平이 曰 東海가 行復揚塵耳라.)」(葛洪, 神仙傳)
새옹지마 塞翁之馬
변방에 사는 늙은이의 말. 인생의 길흉화복은 항상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 |
塞翁得失(새옹득실). 塞翁禍福(새옹화복).
北수失馬(북수실마) : 북방에 사는 늙은이가 말을 잃었다.
生者必滅(생자필멸) :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죽을 때가 있다.
苦盡甘來(고진감래) :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榮枯盛衰(영고성쇠) : 인생은 번성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吉凶禍福(길흉화복) : 길흉과 화복. 즉 사람의 운수를 이른다.
轉禍爲福(전화위복) : 화가 바뀌어 복이 됨.
고사 :「국경 가까이 사는 사람 중에 점을 잘 치는 자가 있더니, 말이 까닭 없이 도망하여 오랑캐 땅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다 이를 위로하니 그 늙은이가 말하기를,“이것이 어찌 복이 되지 않겠는가?”했다. 수개월이 지난 뒤 그 말이 오랑캐 따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축하하니 그 늙은이가 말하기를,“이것이 어찌 뜻밖의 화가 되지 않으리오?”했다. 집에 좋은 말이 많은지라, 그 아들이 말타기를 좋아하더니 말에서 떨어져 다리뼈가 뿌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로하니 그 늙은이가 말하기를,“이것이 어찌 뜻밖의 복이 되지 않으리오.”했다. 일 년이 지난 뒤, 오랑캐들이 크게 국경을 쳐들어 오니 장정들이 활을 당겨 싸워 국경 근처 사람 중 죽은 자가 열 가운데 아홉이 되었으나, 이 사람만이 유독 다리를 저는 까닭에 부자가 서로 목숨을 보존했다.(近塞上之人에 有善術者러니 馬無故亡而入胡라. 人皆弔之한대 其父曰“此何遽不爲福乎아.”하더니, 居數月에 其馬가 將胡駿馬而歸라. 人皆賀之한대 其父曰,“此何遽不能爲禍乎아.”하더니, 家富良馬하여 其子好騎러니 墮而折其脾라. 人皆弔之한대 其父曰,“此何遽不爲福乎아”하더니, 居一年에 胡人이 大入塞하니 丁壯者는 引弦而戰하여 近塞之人이 死者十九로되, 此獨以跛之故로 父子相保라.)」(淮南子)
** 遽(급할 거) 墮(떨어질 타) 折(부러질 절) 脾(넓적다리 비) 弦(활시위 현) 跛(절름발이 파)
☞옛날에 어떤 시골 양반이 딸을 하나 두었습니다. 외동딸이라 시집이나 잘 보내 주어야겠다고 봇짐을 싸 갖고 사위감을 고르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서당에 들어가 쉬게 되었죠. 그런데 글방의 아이들 중에서 퍽이나 잘생긴 아이 하나를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 글방 선생에게 자기 심중을 털어 놓았습니다. 글방 선생은 쾌히 허락하면서,“그 아이는 바로 제 아들입니다.”하였습니다. 그래서 택일까지 해 놓고 돌아와 결혼할 날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결혼하는 날 장가 오는 신랑을 보니 웬걸, 그 때 본 아이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생긴 다른 아이였습니다. 당황을 했으나 할 수 없이 딸을 보내며,‘에라, 모르겠다. 제 팔자가 좋으면 잘 살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위는 글방 선생의 아들이 아니라 사동이었습니다. 조실 부모를 해서 맡아 기르면서 지지리도 못난 놈이라 나무꾼 노릇을 시켰는데, 장가도 못 들고 해서 아들 대신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도 딸 자식이라 5년 후쯤 아버지가 찾아가 보니 생각보다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딸에게 시집 잘못 보내 주어 후회하고 있다고 했더니 딸은 별말씀을 다 한다며 장을 열어 보이니, 돈이 꽉 차 있었습니다. 까닭을 물으니, 나무 장사를 해서 모았다고 말했습니다. 한참 있는데 쿵 하고 나뭇짐을 내려 놓는 소리가 나더니 사위가 들어오는데 미더워 보였습니다. 그 후 10년이 되던 해 갑부가 되더니 아내를 돌보지 않고 산 속으로 들어가 3년간 공부한 후 과거에 장원 급제를 하여 딸 부부는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글방 선비의 아들은 끝내 가난한 선비로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아키바라는 랍비가 나귀와 개와 함께 작은 램프 하나를 가지고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어두운 밤이 되자 아키바는 한 채의 낡은 헛간을 발견하고 그 곳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에 불을 붙이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램프가 꺼져 버렸으므로 할 수 없이 그대로 잠을 청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잠든 사이에 늑대가 와서 개를 물어 죽였고, 사자가 나타나 나귀를 죽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하는 수 없이 램프만을 들고 혼자서 터벅터벅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어느 마을에 이르렀으나 한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간밤에 도둑떼가 쳐들어와서 집을 부수고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켰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바람 때문에 램프의 불이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는 도둑에게 발견되었을 것이고, 개가 살아 있었더라면 개짖는 소리에 도둑들이 몰려왔을 것이고, 나귀도 역시 가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대신 그는 도둑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시빈목西施 目
서시가 눈살을 찌푸린다는 뜻. 곧 ① 영문도 모르고 남의 흉내를 냄의 비유, ② 남의 단점을 장점인 줄 알고 본뜸의 비유. |
고사:춘추 시대 말엽, 오(吳)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를 바쳤다. 그러나 서시는 가슴앓이로 말미암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는 길을 걸을 때 가슴의 통증 때문에 늘 눈살을 찌푸리고 걸었다. 이것을 본 그 마을의 추녀(醜女)가 자기도 눈살을 찌푸리고 다니면 예쁘게 보일 것으로 믿고 서시의 흉내를 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질겁을 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아무도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장자(莊子)》〈천운편(天運篇)〉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원래 반유교적(反儒敎的)인 장자가 외형에만 사로잡혀 본질(本質)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사람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는 것으로 실로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
춘추 시대 말엽의 난세(亂世)에 태어난 공자가 그 옛날 주왕조(周王朝)의 이상 정치(理想政治)를 그대로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 재현시키려는 것은 마치 '서시빈목'을 흉내 내는 추녀의 행동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서제막급 臍莫及
배꼽을 물려고 해도 입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 곧 기회를 잃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음의 비유. |
고사:기원전 7세기 말엽, 주왕조(周王朝) 장왕(莊王) 때의 이야기이다. 초(楚)나라 문왕(文王)이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에 있었던 신(申)나라를 치기 위해 역시 하남성에 있었던 등(鄧)나라를 지나가자 등나라의 임금인 기후(祁侯)는 '내 조카가 왔다'며 반갑게 맞이하여 진수성찬으로 환대했다. 그러자 세 현인(賢人)이 기후 앞으로 나와 이렇게 진언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머지 않아 저 문왕은 반드시 등나라를 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하오니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훗날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옵니다[ 臍莫及].'"
그러나 기후는 펄쩍 뛰며 듣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어느 날, 문왕은 군사를 이끌고 등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리하여 등나라는 일찍이 세 현인이 예언한 대로 문왕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선견지명 先見之明
앞 일을 미리 내다보는 총명. |
생면부지 生面不知
태어나서 만나 본 적이 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 |
생살여탈 生殺與奪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다. 남의 목숨이나 재물을 마음대로 하다. |
선공후사 先公後私
공사(公事)를 먼저 하고 사사(私事)를 뒤로 미룸. |
☞윤현이 호조판서로 있었을 때입니다. 한 번은 헤어진 돗자리를 창고에 널어 두고 훗날의 쓸모를 기다리니 뭇사람이 다 웃었으나, 나중에 종이 만드는 관청에 보내어 빨아 헹구니 질이 뛰어난 종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또 집의 문앞에 밭이 삼십 이랑이 있었는데 나물을 심지 아니하고 피를 가니 사람이 다 괴이히 여겼으나, 마부에게 맡겨 하루 한 이랑씩 베어 말에게 먹였습니다. 말이 한 달에 삼십 이랑을 다 먹었지만, 피는 쉬 나는 것이라 지난 달에 벤 것이 다음 달엔 이미 두어 자씩 자라, 마부가 따로 풀베러 다니지 않아도 항상 푸른 꼴이 넉넉하였습니다. 그리고 목화가 풍년이 들자 베를 내다 팔아 목화를 사다가 다락에 쌓았습니다. 들보에까지 닿을 만큼 쌓인 목화를 낭비하지 않고 두었더니, 두어 해가 못 지나 목화가 극히 귀해질 즈음에 내다 팔자, 그 값이 십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서과피지 西瓜皮지
수박 겉 핥기. 일이나 물건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겉만 아는 척하다. 아무 실속이 없다. |
선시어외先始於
'먼저 외( )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나(너)부터 또는 말한 사람(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 |
고사:전국 시대, 연(燕)나라가 영토의 태반을 제(齊)나라에 빼앗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어느 날, 재상 곽외(郭 )에게 실지(失地)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다. 곽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옛날에 어느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를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잡일을 맡아보는 신하가 천리마를 구해 오겠다고 자청하므로 왕은 그에게 천금을 주고 그 일을 맡겼나이다. 그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는 곳을 알고 달려갔으나 애석하게도 그 말은 그가 도착하기 몇 일 전에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죽은 말의 뼈를 오백 금(五百金)이나 주고 사 오자[賈死馬骨]' 왕은 진노하여 '과인이 원하는 것은 산 천리마야. 누가 죽은 말뼈에 오백 금을 버리라고 했느냐'며 크게 꾸짖었나이다. 그러자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천리마라면 그 뼈조차 거금으로 산다는 것을 안 만큼 머지 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이라고 말했나이다. 과연 그 말대로 1년이 안 되어 천리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전하께오서 진정으로 현재(賢才)를 구하신다면 '먼저 신 외부터[先始於 ]' 스승의 예를 받도록 하오소서. 그러면 외 같은 자도 저렇듯 후대를 받는다며 신보다 어진 이가 천리 길도 멀다 않고 스스로 모여들 것이옵니다."
소왕은 곽외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위해 황금대(黃金臺)라는 궁전을 짓고 스승으로 예우했다. 이 일이 제국(諸國)에 알려지자 천하의 현재가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는데 그 중에는 조(趙)나라의 명장 악의(樂毅)를 비롯하여 음양설(陰陽說)의 비조(鼻祖)인 추연(鄒衍), 대정치가인 극신(劇辛)과 같은 큰 인물도 있었다. 이들의 보필을 받은 소왕은 드디어 제국(諸國)의 군사와 함께 제나라를 쳐부수고 숙원을 풀었다.
[주] 매사마골 : 쓸데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쓸데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다루면 현인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
선종외시 先從외始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
先從自始(선종자시)
買死馬骨(매사마골) : 죽은 말 뼈다귀를 사다. 즉 소용없는 것을 산 후 쓸모있는 것이 오기 를 기다린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고사 : 전국시대 燕나라는 齊나라에게 영토의 태반(太半)을 정복당했다. 어느 날 소왕(昭王)은 재상 곽외(郭외)와 그 방법을 의논하니,“옛날 어느 임금이 천금(千金)을 걸고 천리말을 구하려 했으나, 3년이 지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해 사람을 시켜 구하도록 하여 천리마를 찾았으나 또착하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말의 뼈를 500금에 사 임금에게 바치니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으나 채 1년도 되지 않아 천리말을 끌고 이른 자가 세사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현재(賢才)를 구하시려 한다면 이 외(외)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저와 같은 사람도 후대받고 있는데 하물며 그보다 어진 사람들이야 이를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선즉제인 先則制人
먼저하면 남을 제압한다. 무슨 일이든 남보다 빨리하면 유리하다. |
고사:진(秦)나라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의 일이다. 진시황(秦始皇) 이래 계속되는 폭정에 항거하여 대택향[大澤鄕:안휘성 기현(安徽省 縣)]에서 900여 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궐기한 날품팔이꾼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은 단숨에 기현을 석권하고 진[秦:하남성 회양(河南省淮陽)]에 입성했다. 이어 이곳에 장초(張楚)라는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진승은 옛 6개국의 귀족들과 그 밖의 반진(反秦) 세력을 규합하여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강동(江東)의 회계군수(會稽君守) 은통(殷通)은 군도(郡都) 오중[吳中:강소성 오현(江蘇省吳縣)]의 유력자인 항량(項梁)을 불러 거병을 의논했다.
항량은 진나라 군사에게 패사(敗死)한 옛 초(楚)나라 명장이었던 항연(項燕)의 아들인데, 고향에서 살인을 하고 조카인 적[籍:항우(項羽)의 이름]과 함께 오중으로 도망온 뒤 타고난 통솔력을 십분 발휘하여 곧 오중의 실력자가 된 젊은이다.
"지금 강서(江西:안휘성 하남성) 지방에서는 모두들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는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코자 하는 시운(時運)이 되었기 때문이오, 내가 듣건대 '선손을 쓰면 남을 제압할 수 있고[先則制人]' 뒤지면 남에게 제압당한다고[後則人制] 했소. 그래서 나는 그대와 환초를 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일으킬까 하오."
은통은 오중의 실력자일 뿐 아니라 병법에도 조예가 깊은 항량을 이용, 출세의 실마리를 잡아볼 속셈이었으나 항량은 그보다 한 수 위였다.
"거병하려면 우선 환초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제 조카인 적뿐입니다. 그러니 지금 밖에 와 있는 그에게 환초를 불러오라고 하명하시지요."
"그럽시다. 그럼, 그를 들라 하시오."
항량은 뜰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항우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이렇게 일렀다.
"내가 눈짓을 하거든 지체 없이 은통의 목을 치도록 하라."
항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온 항량은 항우가 은통에게 인사를 마치고 자기를 쳐다보는 순간 눈짓을 했다. 항우는 칼을 빼자마자 비호같이 달려들어 은통의 목을 쳤다. 항량과 항우가 은통에 앞서 '선즉제인'을 몸소 실행한 것이다.
항량은 곧바로 관아를 점거한 뒤 스스로 회계 군수가 되어 8000여 군사를 이끌고 함양으로 진격하던 중 전사하고 말�다. 뒤이어 회계군의 총수가 된 항우는 훗날 한왕조(漢王朝)를 이룩한 유방(劉邦)과 더불어 진니라를 멸망시켰다(B.C. 206). 그러나 그후 유방과 5년간에 걸쳐 천하의 패권을 다투다가 패하여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先則制人 後則制於人(선즉제인 후즉제어인)의 준말.
先發制人(선발제인) : 먼저 시작하면 남을 제압한다.
先聲奪人(선성탈인) : 먼저 큰 소리를 쳐 남의 기세를 꺾다.
선풍도골 仙風道骨
신선의 풍채. 도사와 같은 골격. 남달리 뛰어난 풍모를 가진 사람. 또는 비범한 사람. |
선행후교 先行後敎
선인의 행위를 들어 후학을 가르침. |
설부화용 雪膚花容
흰 살결에 고운 얼굴. 미인의 얼굴. |
설상가상 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더함. 불행이 거듭 생기는 일. |
설왕설래 說往說來
서로 말이 오고 감. 어떤 일의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 옥신각신하다. |
言去言來(언거언래). 言往說來(언왕설래).
섬섬옥수 纖纖玉手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
성동격서 聲東擊西
병법의 하나로 동쪽을 친다고 소리 질러 놓고 실제로는 서쪽을 친다. |
성하지맹 城下之盟
적에게 성을 정복당하고서 항복하여 맺은 강화(講和)의 맹약(盟約). 대단히 굴욕적인 강화. |
참고 ☞성(城)의 역사를 살펴보면 동 서양을 막론하고 서은 최고 통치자의 안보를 위해 세워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양의 성(castle)은 정권의 상징적 공간으로 생성되었기에 건물의 형태로 발달한 반면, 동양의 성(城)은 거주민들의 안보를 위해서 생성되었기에 도성, 산성 등의 형태로 구분되고 발달했다. 기록상 나타난 최초의 성곽은 춘추시대(BC 770∼476)다.『만국사물기원역사』에 따르면,“오월춘추(吳越春秋)에 城을 쌓아 군을 지키고 郭을 을 만들어 백성을 지켰으니, 이것이 성곽의 효시다.”중국의 성문은 기본적으로 한 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성문 전면에 옹성이라는 소곽(小郭)을 설치했다. 이 옹성의 상징성은 매우 강해서 농성(籠城)이란 말을 낳았다. 즉 정예 병사들이 지키던 옹성이 무너지면 성 안으로 들어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철저하게 성을 지켰는데 이를 농성이라 했다. 이에 유래하여 오늘날 농성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일을 뜻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장군이 있는 성의 한가운데에 호화스런 깃발을 세우고 장군의 위세를 과시했다. 이 깃발은 깃대의 끝을 황백색의 상아로 장식하고 거기다 교묘한 조각을 하는 등 볼품있었다. 이 깃발을 아기(牙旗)라 불렀고, 대장군이 있는 성을 아성(牙城)이라고 했다. 오늘날 아성은 아주 중요한 근거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은 외적으로는 어떤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그 주위를 둘러막은 성곽의 개념이 강했다. 수도의 보위를 위해서 도성, 왕궁의 보위를 위해서 궁성(宮城), 각 지방의 행정 소재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읍성(邑城) 등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처에 미리 쌓아놓은 성들도 적지않다. 그런 성의 하나로 우리 편의 근거지를 삼기 위하여 산 위에 쌓은 것을 산성(山城)이라 하고 요지를 따라 한 줄로 쌓아 적을 방어하는 것을 행성(行城)이라 한다. 남한산성은 한 맺힌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이 이곳에 피신하였으나, 강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 수항단으로 나가 항복하는 굴욕을 치렀다.
성혜成蹊
샛길이 생긴다는 뜻. 곧 덕(德)이 높은 사람은 자기 선전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듦의 비유. |
전한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때 이광(李廣)이라는 명장이 있었다. 당시는 북방 흉노족(匈奴簇)과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때인 만큼 이광의 무용담(武勇談)도 자연히 흉노족과의 전쟁과 결부된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다.
어느 날, 이광은 불과 100여 기(騎)를 이끌고 적 후방 깊숙이 쳐들어가 목적한 기습 공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곧 적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광은 부하 장병들에게 이렇게 명했다.
"침착하라. 그리고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적은 깜짝 놀랐다. 그 행동이 너무나 대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표를 찔린 적은 필연 뭔가 계략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믿고 주춤했다. 이때 이광은 10여 기를 이끌고 질풍처럼 적진에 돌입하여 한칼에 적장을 베었다. 그러자 적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났다. 이리하여 이광은 한 사람의 병사도 잃지 않고 개선했다. 그 후에도 많은 무공을 세운 이광을 칭송하여 사마천(司馬遷)은 그의 저서《사기(史記)》〈이장군 열전(李將軍列傳)〉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장군은 언변은 좋지 않았으나 그 덕과 성실함은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복숭아와 오얏 꽃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桃李不言:덕 있는 사람의 비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사람들이 모여들므로 '나무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下自成蹊].'"
세속오계 世俗五戒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계율.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 |
세월부대인 歲月不待人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세월을 아껴라. |
고사 : 귀거래사(歸去來辭)로 유명한 진(晉) 나라의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권학시(勸學詩) 다.
盛年不重來하니, 한창 시절은 거듭 오지 않으니,
一日難再晨이라. 하루는 두 번 새기 어렵다.
及時當勉勵하니, 때에 미쳐 힘써야 하니,
歲月不待人이라.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 세월을 아껴서 배워야 한다는 시문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偶成(우연히 이름) - 朱熹 -
少年易老學難成하니, 소년은 늙기가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
一寸光陰不可輕이라. 짤막한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지니라.
未覺池塘春草夢한대 못가에 돋아난 봄 풀의 꿈을 아직 깨닫지도 못 하였는데,
階前吾葉已秋聲이라. 뜰 앞의 오동잎은 벌써 가을 소리로구나.
◎ 勸學文 - 朱熹 -
勿謂今日不學而有來日 오늘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勿謂今年不學而有來年 금년 배우지 아니하여도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日月逝矣 歲不我延 세월이 흘러가도다. 세월은 나를 위해 늘어나지 아니하노니,
嗚呼老矣 是誰之愆 아 늙었도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
세한고절 歲寒孤節
추운 계절에도 혼자 푸르른 대나무. 겨울. |
참고 ☞氷姿玉質(빙자옥질) : 봄.
雅致孤節(아치고절) : 여름.
傲霜孤節(오상고절) :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 충신 또는 국화.
세한송백 歲寒松栢
추운 계절에도 소나무와 잦나무는 잎이지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굳은 절개. |
雪中松栢(설중송백) :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백.
霜風高節(상풍고절) : 곤경에 처하여도 굽히지 않는 서릿발 같은 높은 절개.
소인묵객 騷人墨客
시문(詩文)이나 서화(書畵)를 일삼는 사람. |
소탐대실 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큰 것을 잃다. |
속수무책 束手無策
손이 묶인 것처럼 방책을 세울 수없다. 어찌할 도리가 없음. |
송구영신 送舊迎新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이 한다. 송고영신(送故迎新)에서 나온 말로 관가 에서 구관을 보내고 신관을 맞이 했던 데서 유래. |
☞망년회란 풍습은 일본의 풍속으로‘한 해의 노고를 잊는다(忘年)’는 뜻이나, 우리나라에서는‘나이(歲)를 잊는다’는 뜻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그 사람의 재주나 인품을 보고 사람 사귀는 것을‘망년지교(忘年之交)’라 했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 또는 연망(年忘)이라 하여 섣달 그믐께 친지들끼리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세시 민속이 있었으며 이것이 망년회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연말 풍습은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마루 부엌 마구간 측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상신의 하강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성스러운 밤이었다. 부엌신인 조상신은 1년 내내 그 집안 사람들의 선악을 낱낱이 지켜보았다가 섣달 스무나흗날 승천하여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이날 밤에 하강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따라서 연말 1주일은 일년 동안의 처신에 대한 심판을 기다렷던 만큼 경건함을 지켰으며, 흥청거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송양지인 宋襄之人
송나라 양공의 어짐. 너무 착하여 쓸데없는 아량을 베푸는 것. |
?? 인정에 겨워 시아버지가 아홉이라 : 인정이 많아서 거절하지 못하고 한 일이 시아버지가 아 홉이 되는 결과. 즉 가장 치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함이니 무슨 일이나 인정에 끌려 정당치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두고하는 말.
고사 : 어느 날 楚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했는데 목이(目夷)가 적이 포진하기 전에 공격하자고 주장했으나「양공이 말하기를“군자는 막힌 곳에서 사람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초나라에게 패하니 세상의 조소를 받는 것을 송양지인이라고 하였다.(襄公曰 “君子는 不困人於액이라하다. 遂爲楚所敗하니 世笑를 以爲宋襄之人이라하다.”」(十八史略)
수간모옥 數間茅屋
두서너 칸밖에 안되는 띠집. 오두막집. |
수구초심 首丘初心
여우는 죽을 때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두고 초심으로 돌아간다. 근본을 잊지 않다. 또는 죽어서라도 고향 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 |
호사수구(狐死首丘). 구수(丘首)
고사 : 강태공(姜太公)이 제(齊)나라 영구(營丘)에 봉해져 계속해서 오대(五代)에 이르기까지 살았으나 주(周)나라에 와서 장례(葬禮)를 치뤘다.「군자가 말하기를“음악은 그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바를 즐기고 예는 그 근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옛사람의 말이 잇어 말하기를“여우가 죽을 때 언덕에 머리를 바르게 하는 것은 인(仁)이다”라고 하였다.(君子曰“樂은 樂其所自生하고 禮는 不忘其本이라.”古人之有言曰“狐死正丘首는 仁也라”하다.)」(禮記, 檀弓上篇)
수문수답 隨問隨答
물으면 묻는대로 거침없이 대답함. |
☞언젠가 외국 잡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사람이 피카소에게“당신의 그림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을 때, 피카소는“당신은 숲 속에서 아름답게 노래부르며 재잘대는 온갖 산새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추상 미술이란,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산새들의 노랫소리를 아름답게 들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상 미술을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이 즐거워지고 또 마음 속에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으로써 벌써 그 주요한 사명을 다한 것이 된다는 뜻이 아니었는가 한다.
수불석권 手不釋卷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늘 책을 가까이하여 학문을 열심히하다. |
수서양단 首鼠兩端
쥐가 머리를 내밀고 나갈까 말까 망설인다. 자기의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고 요리조리 눈치만 살핀다. |
고사: 전한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竇 )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田 )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 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 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 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 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左顧右眄(좌고우면) : 왼쪽으로 돌아보고 오른쪽으로 돌아본다. 어떤 일을 결정짓지 못하고 요리조리 눈치만 살핀다.
曖昧模糊(애매모호) :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지 못하고 희미하다.
優柔不斷(우유부단) : 마음이 여려 맺고 끊음을 못하고 줏대없이 어물거리다.
이 장떡이 큰가? 저 장떡이 큰가?
가난한 양반 씨나락 주무르듯 한다.
방에 가면 더 먹을까,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수석침류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곧 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씀.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함. ② (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을 안하고) 억지가 셈의 비유. |
고사:진(晉: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간에는 속세의 도덕 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처도 죽림 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流漱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수세불통 水泄不通
물이 샐 틈이 없다. 단속이 엄하여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한다. |
수수방관 袖手傍觀
팔장을 끼고 바라만 본다. 해야할 일을 간여하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다. |
吾不關焉(오불관언)
☞조선조의 정치적 특성은 왕권과 신권 사이의 세력 균형에서 찾아졌는데, 이때 신하들이 왕권을 견제하고자 할 때 사용한 무기는 다름 아니라 유가적 원리였다. 한문에 능하고 유가적 원리에 밝을수록 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외국의 텍스트를 절대화하는 경향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강하게 지식인 사이에 팽배해 갔다. 세종 때 우리말을 그대로 옮겨 쓸 수 있는 한글이 만들어졌어도 엘리트들은 그것을 못 본 체했다.
수석침류 漱石枕流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 말을 잘못해 놓고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것. 또는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셈. |
고사 : 晉나라 사람 손초(孫楚)가 젊었을 때 죽림칠현(竹林七賢 : 진나라 때 속세를 떠나 한가롭게 지내던 일곱 사람을 말함.)을 그리워하였다. 그래서 속세를 버리고 산 속으로 은거하고자 하여,「왕제에게 일러 말하기를“돌로 베게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한다”를 잘못 말하여“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게 삼겠다.”라고 .(謂王齊曰 當云欲枕石水流를 誤云水石枕流라.)」했다. 왕제가“흐르는 물이 어찌 베개가 되고 어떻게 돌로 양치질 할 것인가?”라고 물으니 “물로 베개를 삼겠다는 것은 옛날의 은자 허유(許由)처럼 되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는다는 뜻이요,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뜻이다.”라고 그럴 듯하게 대답하였다.(晉書)
수어지교 水魚之交
물과 물고기의 사귐. 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 부부의 친밀함. |
魚水之親(어수지친). 猶魚有水(유어유수)
風雲之會(풍운지회) : 구름이 용을 만나고 바람이 범을 만났다는 뜻으로 명군(明君)과 현상 (賢相)이 서로 만나다.
고사 : 촉한(蜀漢)의 유비(劉備)가 삼고지례(三顧之禮)한 후 제갈량(諸葛亮)을 등용시켜 그의 계략으로 점점 나라는 자리가 잡혀가고 발전하였다. 날이 갈수록 유비가 제갈량을 신뢰하고 교분이 더욱 두터워 지니 결의형제(結義兄弟)한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몹시 불만스러워 했다. 어느 날 유비가 그것을 알고 그들을 불러「선왕이 말하기를“나에게 공명이 있는 것은 고기가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원컨데 다시는 말하지 말아라.”(先王曰 孤之有孔明은 猶魚之有水라 源勿復言하라.)」라고 말하고 또한 관우와 장비를 위로 하였다.
수원수구 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것이 없다. |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 곧 ①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②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큰 힘을 발휘함의 비유. |
고사:북송(北宋:960∼1127)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 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 짜리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 아치는 장괴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한 푼[一文]이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요,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 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옥림학로(玉林鶴露)》는 쓰고 있다.
[주] '수적천석'은 우리 나라의 속담(俗談) '낙숫물이 댓돌[臺石]을 뚫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 성어임.
구실 아치 : 각 관아(官衙)에서 벼슬아치(官員)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 아전(衙前). 이속(吏屬). 서리(胥吏). 소리(小吏). 하전(下典).
수전노 守錢奴
돈만 지키는 노예.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 모르는 인색한 사람. |
수주대토 守株待兎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하다. |
?? 刻舟求劍(각주구검) : 楚(초)나라 사람중에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을 강에 빠뜨리고 배에서 떨어뜨린 지점에 새겨두었다가 거의 건너 왔을 때 물 속으로 들어가 칼을 찾았다는 고사.
膠柱鼓瑟(교주고슬) : 비파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으면 음조를 바꾸지 못하여 한 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꽉 막힌 사람.
墨城之守(묵성지수) : 묵자가 성을 지키는데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너무 완고하여 변통할 줄 모르거나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
고사 :「송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거늘, 이로 인하여 그 쟁기를 풀어 놓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키어 다시 토끼를 얻고자 하였으나, 토끼를 다시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宋人에 有耕田者러니 田中有株하여 兎走觸株하여 折頸而死하니 困釋其뢰하고 而守株하여 冀復得兎하나, 兎不可復得하고 而身爲宋國笑하니라.)」(韓非子, 五두篇)
** 株(그루터기 주) 頸(목 경) 뢰(쟁기 뢰) 觸(부딪칠 촉) 釋(놓을 석) 冀(바랄 기)
수즉다욕 壽則多辱
장수하면 욕됨이 많다. 오래도록 살면 그만큼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게 된다. 또는 사람이 모질어서 남 못할 짓을 함을 욕함. |
多男多懼(다남다구) : 아들을 많이 두면 여러 가지로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많다.
고사 : 堯임금이 화주(華州)에 갔을 때 변방을 지키던 사람이“성인이시여! 오래오래 사시고 부자가 되시옵고 아드님도 많이 두기를 비옵니다.”하니 요임금이 대답하시기를「아들을 많이 두면 걱정 근신이 많고 부유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됨이 많으니라. 세 가지는 덕을 길러 주는 까닭이 못되느니라.(多男子則多懼요 富則多事요 壽則多辱이라. 是三者는 非所以養德也라.)」하였다. 그 사람이“자식이 많다 해도 각각 제 할 일을 맡겨 주면 되고 부자가 되더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또한 삼환(三患 : 병·늙음·죽음)과 재앙이 없다면 오래 산다 해도 무슨 욕됨이 많단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떠나려 하자 그 말에 감탄하여 요임금이 물을 것이 있다고 청했으나 돌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莊子, 天地篇)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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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후한 시대 초엽,《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 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淸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임상의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숙맥불변 菽麥不辨
콩인지 보리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 |
숙호충비 宿虎衝鼻
자는 범 코침 주기. 화를 스스로 불러들이는 일. |
순결무구 純潔無垢
마음과 몸이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때가 없다. |
純眞無垢(순진무구)
순망치한 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가까이 있는 둘 중의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도위태로워진다. |
脣齒輔車(순치보거). 脣齒之國(순치지국). 脣齒之勢(순치지세)
輔車相依(보거상의) :‘輔’는 수레의 양쪽 변죽에 대는 나무.‘車’는 수레를 일컬음.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하다.
고사 : 晉나라의 헌공(獻公)이 괵(괵)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우(虞)나라에게 길을 빌려 달라고 청원하였다.「궁지기가 간하여 말하기를“괵나라는 우나라의 표면이니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반드시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속언에 이르기를‘輔와 車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고 한 것은 우나라와 괵나라를 두고 한 말입니다.”(宮之奇諫曰“괵은 虞之表也이니 괵亡하면 虞必從之니이다. 諺에‘所謂輔車相依요 脣亡齒寒者라함은’其虞괵之謂也니이다.”)」라고 설득 했지만 진나라의 뇌물을 받은 우공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길을 빌려 주었다가 결국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공격하여 정복하였다.(春秋左氏傳)
** 輔(도울 보) 依(의지할 의) 괵(범발톱자국 괵) 諫(간할 간)
순풍이호 順風而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소리지른다는 말로 좋은 기회를 타서 일을행하면 성사하기쉬움을 이룸 |
술이부작 述而不作
성인의 말을 술하고(전하고) 자기의 설(說)을 지어내지 않음. |
고사 :「공자가 말씀하시기를“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은(殷)의 현인 팽(彭)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시시비비 是是非非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함. |
시위소찬 尸位素餐
벼슬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봉록만 먹는다. |
참고 ☞ 尸位(시위) : 옛날 제사 지낼 때에 신위(神位) 대신으로 앉히던 어린애의 자리.
식소사번 食少事煩
먹을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음.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적다. |
식자우환 識字憂患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거리가 됨. ① 알기는 알아도 똑바로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지식이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 ② 도리(道理)를 알고 있는 까닭으로 도리어 불리하게 되었음을 이름. ③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른다. |
시종일관 始終一貫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꿰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다. |
시행착오 施行錯誤
일을 되풀이하면서 고쳐 나감. |
식언 食言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음. 음식이 입안에서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데서 연유. |
신상필벌 信賞必罰
상을 줄 만한 사람에게 꼭 상을 주고, 벌을 줄 만한 사람에게 꼭 벌을 준다는말로, 상벌을 규정대로 분명하게 함. |
신언서판 身言書判
인물을 선택하는 표준으로 삼던 네 가지 조건. 사람을 평가할 때나 선택할 때가 되면 첫째 인물이 잘났나 즉 身, 둘째 말을 잘 할 줄 아는가 즉 言, 셋째 글씨는 잘 쓰는가 즉 書, 넷째 사물의 판단이 옳은가 즉 判의 네가지를 보아야 한다 하여 이르는 말. |
신진대사 新陳代謝
묵은 것이 없어지고 새것이 대신 생기는 일. |
신토불이 身土不二
몸과 땅은 둘이 아니다. 우리 농산물을 사랑해야 한다. |
신통지력 神通之力
신통력. 헤아릴 수 없는 변화의 재주를 가진 힘. |
신체발부 身體髮膚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의 몸 전체. |
고사 :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 不敢毁傷이 孝之始也니라.(孝經)
신출귀몰 神出鬼沒
출몰이 자유자재하여 귀신 같음. |
심기일전 心機一轉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 |
심사숙고 深思熟考
깊이 생각하고 깊이 고찰함. 신중을 기하여 곰곰히 생각함. |
실사구시 實事求是
실제에 임하여 그 일의 진상을 찾고 구함. |
십벌지목 十伐之木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없다. 아무리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치근거리면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
십시일반 十匙一飯
열 명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이 된다. 여럿이 한 명을 돕기는 쉽다. |
십일지국 十日之菊
국화는 9월 9일이 절정기이니 십일 날의 국화. 무엇이나 한창 때가 지나 때 늦은 것. |
고사 : 정곡(鄭谷)의 詩‘十日菊’에,
節去蜂愁蝶不知하고, 계절이 바뀌니 벌의 근심을 나비는 알지 못하고,
曉庭還折有殘枝로다. 새벽 정원엔 다시 꺾인 나무 가지가 남아 있구나.
自緣今日人心別한대, 인연이 오는 사람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데,
未必秋香一夜衰로다. 반드시 가을의 흥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로구나.
십중팔구 十中八九
열 가운데 여덟이나 아홉. 거의 예외없이 그러할 것이라는 추측. |
아비규환 阿鼻叫喚
불교에서 말하는 아비지옥.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여 울부짖는 참상. |
참고 ☞八大地獄
等活地獄(등활지옥) : 불교에서 말하는 八熱(팔열)지옥의 하나. 살생의 죄를 지은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옥졸(獄卒)에게 칼 따위로 몸을 찢기며 쇠몽둥이로 맞는 형벌을 받다가 다시 깨어나 그러한 고통을 거듭 받게된다고 함.
黑繩地獄(흑승지옥) : 불교에서 이르는 팔열지옥의 두번째. 살생이나 절도의 죄를 지은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온몸을 벌겋게 달군 쇠사슬로 묶어 놓고 톱이나 도끼 다위로 베거나 자르는 고통을 받는다고 함.
衆合地獄(중합지옥) : 불교에서 이르는 팔열지옥의 세번째.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의 죄를 범한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쇠로 만든 큰 수유 속에서 눌러 짬을 당한다고 함.
叫喚地獄(규환지옥) : 불교에서 이르는 팔열지옥의 네 번째. 살생, 절도, 음행, 음주,의 죄를 지은 이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들어가거나 시뻘건 불 속에 던져져 고통을 받는다고 함.
大叫喚地獄(대규환지옥) : 五戒를 깨뜨린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등활, 흑승, 중합, 규환 등의 지옥의 10배에 해당하는 고통을 받는다고 함.
焦熱地獄(초열지옥) : 불교에서 말하는 팔열지옥의 하나. 살생, 투도, 음행(음행), 음주(飮酒), 망어(망어),의 죄를 지은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불에 달군 철판 위에 눕혀 놓고 벌겋게 단 쇠몽둥이와 쇠꼬챙이로 치거나 지지는 고통을 받는다고 함.
大焦熱地獄(대초열지옥) : 살생, 투도, 음행, 음주, 망어의 죄를 지은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시뻘겋게 달군 쇠집이나 쇠다락(철루) 속에 들어가 살을 타는 고통을 받는다고 함.
無間地獄(무간지옥) : 五逆罪를 짓거나, 절이나 탑을 헐거나, 시주(施主)한 재물을 축내거나 한 자가 가게 된다는 지옥으로,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 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아전인수 我田引水
내 논에 물대기.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하다. |
반)易地思之(역지사지) : 남이 당한 경우를 바꾸어서 생각함.
악전고투 惡戰苦鬪
죽을 힘을 다하여 고되게 싸움. |
안고수비 眼高手卑
눈은 높으나 손은 낮음. 눈은 높으나 실력은 따라서 미치지 못함. 또는 전에는 사치하게 살던 이가 가난하여져 눈은 높고 돈은 전대로 쓰지 못할 때. |
안분지족 安分知足
자기 분수에 만족하여 다른 데 마음을 두지 아니함. |
안빈락도 安貧樂道
구차하고 가난하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도를 즐김. |
애걸복걸 哀乞伏乞
갖은 수단으로 머리 숙여 빌고 빌다. |
안신 雁信
편지(便紙), 소식(消息), 안서(雁書), 안백(雁帛)이라고도 함. |
고사 : 漢의 무제(武帝) 때 주랑장(中郞將) 소무(蘇武)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북방의 흉노족에 포로로 잡혀 한군의 포로 교환의 임무를 띠고 갔다가 흉노의 내란에 부딪쳐 일행이 다 붙잡혔다. 항복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무는 항복하기를 거절하였다. 흉노는 그를 움에 가두고 끼니도 대주지 않아 모전(毛纏 : 짐승의 털로 짠 요)을 씹어먹고 눈(雪)을 받아먹으며 기갈을 이겨냈다. 며칠이 지나도 소무가 죽지 않는 것을 본 흉노는 북해로 보내 양을 치게 하였다. 그들은 숫놈 양만 보내주고는,“수컷이 새끼를 낳으면 돌려 보내주겠다.”하는 것이었다. 무제가 죽고 소제(昭帝)가 즉위하자 흉노에 사자를 보내어 소무를 송환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랬더니 소무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날밤 소무와 함께 가 있던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사신을 찾아와 귀뜸해 주는 것이 있었다. 사신은 이를 듣고 흉노를 찾아가“한의 천자가 상림원에서 사냥을 하다가 기러기를 떨어뜨렸더니 다리에 비단이 매어있고(雁帛) 거기에 소무가 큰못(大澤) 안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소무가 분명 살아있소.”이 말에 흉노는 어쩔 수 없이 실토하고 소무를 북해에서 데리고 와 석방하였다.(漢書, 蘇武傳)
안심입명 安心立命
생사(生死)의 이해에 대하여 태연함. 생사의 도리를 깨달아 내세의 안심을 꾀함. |
안중지정眼中之釘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 곧 ①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비유. ② 몹시 싫거나 미워서 항상 눈에 거슬리는 사람(눈엣가시)의 비유. |
고사:당나라 말, 혼란기에 조재례(趙在禮)라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가 있었다. 그는 하북 절도사(河北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의 수하 무장이었으나 토색(討索)질한 재무를 고관대작에게 상납, 출세길에 오른 뒤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다.
송주(宋州:하남성 내)에서도 백성들로부터 한껏 착취한 조재례가 영흥(永興) 절도사로 영전,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놈이 떠나가게 되었다니 이젠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이 전해지자 화가 난 조재례는 보복을 하기 위해 1년만 더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다. 청원이 수용되자 그는 즉시 '못 빼기 돈[拔釘錢(발정전)]'이라 일컫고 1000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납자는 가차없이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했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취한 돈이 1년간에 자그마치 100만 관(貫)이 넘었다고 한다.
안하무인 眼下無人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 교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김. |
애매모호 曖昧模糊
희미하여 분명하지 못함. |
애이불비 哀而不悲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 |
안항 雁行
남의 의좋은 형제. |
兄弟(형제). 同氣間(동기간). 天倫(천륜). 同根(동근). 昆季(곤계). 使君과叔氏(사군과숙씨). 叔 伯(숙백).
참고 ☞與我同父母者爲, 兄弟
兄弟, 同受父母遺體, 與我如一身
암중모색 暗中摸索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찾는다. 어둠 속에서 일을 하다.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어림짐작하다. |
暗索(암색)
南大門入納(남대문입납) : 주소도 모르면서 막연히 찾아 다니다.
群盲評象(군맹평상) : 장님들이 코끼리 몸을 만저보고 제각기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주관에만 치우쳐 큰 일을 그릇되게 판단한다.
盲玩丹靑(맹완단청) : 소경이 단청 구경하기. 전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함.
고사 : 唐나라 3대 황제 고종(高宗)이 황후 왕씨(王氏)를 폐하고 무씨(武氏 : 則天武后)를 황후로 맞이 하였다. 무씨를 옹립하는데 중심역활을 한 허경종(許敬宗)은 성격이 침착치 못하고 오만하여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곧 잊어버리곤 했다.「어떤 사람이 그가 총명하지 못함을 이러 말하기를“경은 스스로 알기가 어렵네.”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허경종이 말하기를“만약 하·유·심·사와 같은 사람이라면 어둠 속에서 더듬어 찾더라도 확실히 또한 알 수 있다네. ”(或謂其不聰曰“卿自難識이라”許曰“若遇何·劉·沈·謝라면 暗中摸索이라도 著亦可識이라.”」라고 대답하였다.(隨唐嘉話)
약방감초 藥房甘草
약방의 감초. 무슨 일이든지 빠짐없이 낌. 그러한 사람. |
양금택목良禽擇木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
고사:춘추 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세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良禽擇木]고 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자는 기분이 풀리어 위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양두구육 羊頭狗肉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 고기를 판다. 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
牛首馬關(우수마관) 羊質虎皮(양질호피) : 겉은 화려하나 본바탕은 좋지 못하다.
衒玉賈石(현옥고석) : 옥을 진열해 놓고 돌을 판다.
口蜜腹劍(구밀복검)
似是而非(사시이비) : 겉은 옳은 것 같으나 속은 다르다.
表裏不同(표리부동) : 겉과 속이 같지 않다.
고사 :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사람 유하혜(柳下惠)는 공자(孔子) 맹자(孟子)가 칭찬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생 도척(盜척)은 유명한 대도(大盜)로 수천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다. 도척이“강도를 하러 들어갈 때 먼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용(勇)이요, 맨 나중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의(義)다.”라고 큰 소리 쳤다고 하는데 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내린 조서(詔書)에 그것을 빗대어“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말린 말고기를 팔고 도척이 공자어를 한다.”라고 하였다.
☞때마침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사는, 벼슬을 좋아하지 않는 체하는 선비가 하나 있으니, 그의 호는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마흔에 손수 교정한 글이 일만 권이요, 또 九經의 뜻을 부연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 일만오천 권이나 되므로 천자(天子)가 그의 의로움을 아름답게 여기고 그의 이름을 사모하였다. 그리고 그 고을 동쪽에 동리자(東里子)라는 청춘 과부 하나가 있었다. 천자가 그의 절조를 갸륵히 여기고 제후들은 그의 어짐을 연모하여 그 고을 사방 몇 리의 땅을 봉하여 동리과부지려(東里寡婦之閭)라 하였다. 동리자는 이렇게 수절 잘하는 과부였으나, 아들 다섯을 두었는데 각기 다른 성(姓)을 지녔다.
양상군자 梁上君子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 도둑을 미화하여 점잖게 부르는 말. |
無本大商(무본대상) : 밑천없는 큰 장사. 도둑.
綠林豪傑(녹림호걸) : 푸른 숲 속에 사는 호걸. 불한당이나 화적.
고사 : 後漢 말 태구현(太丘縣)의 장관 진식(陳寔)은 학문을 좋아하고 마음이 정직하며 관대한 선비였다. 어느 해 그 지방에 심하게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해지자 도둑이 들끓었다. 하루는「도둑이 밤에 그 집에 들어가서 대들보 위에 숨었다. 진식이 몰래 그것을 보고 자손들을 불러 정색을 하고 그들을 훈계하였다.“대저 사람은 스스로 힘쓰지 않을 수 없다. 착하지 못한 사람도 반드시 본심이 악한 것은 아닌데 습관이 성격을 이루어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니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도 이것이다.”(有盜가 夜入其室하여 止於梁上하니 寔陰見之하고 呼子孫正色訓之하다. 夫人不可不自勉이라. 不善之人도 未必本惡한대 習以性成하여 遂至於此이니 梁上君子도 是矣라.)」라고 하니 도둑이 크게 놀라 스스로 내려와서 깊이 사죄하였다.(後漢書, 陳寔傳)
양약고구良藥苦口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린다는 말. |
고사:① 천하를 통일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했던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천하는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간 학정에 시달려온 민중이 각지에서 진나라 타도의 기치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 2세 황제 원년(元年:B.C. 209)에 군사를 일으킨 유방(劉邦:훗날의 한고조)은 역전(歷戰) 3년 만(B.C. 206)에 경쟁자인 항우(項羽)보다 한 걸음 앞서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했다.
유방은 3세 황제 자영(子 )에게 항복을 받고 왕궁으로 들어갔다. 호화찬란한 궁중에는 온갖 재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꽃보다 아름다운 궁녀들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았다.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유방은 마음이 동하여 그대로 궁중에 머물려고 했다. 그러자 강직한 용장 번쾌(樊 )가 간했다.
"아직 천하는 통일되지 않았나이다. 지금부터가 큰일이오니 지체없이 왕궁을 물러나 적당한 곳에 진을 치도록 하시오소서."
유방이 듣지 않자 이번에는 현명한 참모로 이름난 장량(張良)이 간했다.
"당초 진나라가 무도한 폭정을 해서 천하의 원한을 샀기 때문에, 전하와 간은 서민이 이처럼 왕궁을 드실 수 있었던 것이옵니다. 지금 전하의 임무는 천하를 위해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이옵니다. 그런데도 입정하시자 재보와 미색(美色)에 현혹되어 포악한 진왕(秦王)의 음락(淫樂)을 배우려 하신다면 악왕(惡王)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옵니다.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고[忠言逆於耳利於行], 독약(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毒藥苦於口而利於病]'고 하였나이다. 부디 번쾌의 진언을 가납(嘉納:권하는 말을 기꺼이 들음)하시오소서."
유방은 불현듯 깨닫고 왕궁을 물러나 패상( 上:함양 근처)에 진을 쳤다.
② 이 '양약고구'란 말은《공자가어(孔子家語)》에도 실려 있는데 요약해서 적으면 다음과 같다.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 이롭다. 은나라 탕왕(湯王)은 간하는 충신이 있었기에 번창했고,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따르는 신하만 있었기에 멸망했다. 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자신이 잘못하면 친구가 간해야 한다. 그리하면 나라가 위태롭거나 망하는 법이 없고, 집안에 패덕(悖德)의 악행이 없고, 친구와의 사귐도 끊임이 없을 것이다."
약육강식 弱肉强食
약한 것이 강한 자에게 먹히다. |
양호상투 兩虎相鬪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운다. 두 영웅 또는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 것. |
양호유환 養虎遺患
호랑이를 길러 근심거리를 남기다. 스스로 화근을 만들어 그로 인하여 화를 입게 되는 것. |
養虎(양호)
自業自得(자업자득) : 스스로 얻은 업보다.
어부지리 漁父之利
어부의 이익.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이득을 보는 경우. |
鷸蚌之爭(휼방지쟁) : 도요새와 조개의 싸움.
田父之功(전부지공) : 주축(走逐)에 지친 개와 토끼를 농부가 주웠다.
犬兎之爭(견토지쟁) : 개가 토끼를 쫓아 산을 오르내리다 마침내는 지쳐 둘 다 죽으니 지나 가던 농부가 주워 갔다.
고사 :「趙나라가 燕나라를 치고자 하거늘 소대(蘇代)라는 사람이 연나라를 위하여 조 혜왕(惠王)에게 일러 말하기를‘오늘 신이 역수를 건너다가 보니, 조개가 마침 물가에 올라와 했볕을 쬐려고 입을 딱 벌리고 있거늘, 황새가 그것을 보고 조개의 고기를 먹으려고 찍으니 조개가 놀라서 꼭 오므리고 그 황새의 입부리를 물거늘,”황새가 말하되,“오늘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곧 너는 죽을 뿐이다.”하니, 조개도 또한 황새에게 일러 말하되“오늘 물고서 벌리지 않고, 내일 물고서 벌리지 않으면 곧 너는 죽을 뿐이다.”하여 둘이 서로 놓지 않고 싸우거늘 어부가 잡아서 둘을 얻었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趙와 燕이 오랫동안 서로 싸워서 백성을 괴롭게 하면, 臣은 강한 秦나라에 먹히어 어부의 이익을 주게 될까 두렵습니다. 원컨데 왕은 깊이 생각하소서.’조나라 혜왕이 말하되“옳은 말이다.”하더라.(趙且伐燕이어늘 蘇代가 爲燕하여 謂惠王曰‘今日에 臣이 過易水할새 蚌이 方出曝而鷸이 啄其肉하니 蚌이 合而箝其喙라 鷸曰“今日不雨하고 明日不雨면 卽有死蚌이라”蚌이 亦謂鷸曰“今日 不出하고 明日不出이면 卽有死鷸이라”하고 兩者가 不肯相舍하니 漁者가 得而幷擒之라 今趙且伐燕하여 燕趙가 久相攻하여 以폐大衆이면 臣은 恐强秦之爲漁夫也라 願大王은 熟計之也니이다.’惠王이 曰“善하다”하니라.)」(戰國策燕策)
** 蚌(조개 방) 曝(해쬘 폭) 鷸(큰새 휼) 啄(쫄 탁) 箝(끼울 겸) 喙(부리 훼) 擒(사로잡을 금)
폐(피폐하게할 폐) 熟(익을 숙) 舍(높을 사)
어불성설 語不成說
말이 말이 되지 않는다. 하는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다. |
언문풍월 諺文風月
지난날, 우리 글로 지은 시가 따위를 얕보아 이르던 말. |
언어도단 言語道斷
말문이 막히다. 어이없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언중유골 言中有骨
말 속에 뼈가 있다. 말은 순한 듯하나 남을 비꼬거나 헐뜯는 요소가 들어 있다. |
언즉시야 言則是也
말하는 것이 사리에 맞음. |
엄이도중 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자기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뜻한다. 또는 결코 넘어가지 않을 얕은 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
掩耳盜鈴(엄이도령)
掩目捕雀(엄목포작) : 눈 가리고 참새를 잡는다.
고사 : 晉나라 육경(六經)중의 한 사람인 범씨(范氏)는 중행씨(中行氏)와 함께 다른 네 사람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 범씨가 망하자 혼란을 틈타 범씨의 종을 훔치러 들어온 자가 있었다. 그러나 종이 매우 무거워 지고 갈 수가 없어 종을 깨뜨려 가지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망치로 그것을 치니 종이‘쨍’하는 소리가 잇어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자기의 종을 빼앗을까 두려워 재빠르게 그의 귀를 막았다.(以椎毁之하니 鐘갱然有音하여 恐人聞之而奪己하여 遽掩其耳하다. 」고 한다.(呂氏春秋)
椎(몽둥이 추) 毁(훼손할 훼) 갱(금옥소리 갱) 恐(두려울 공) 奪(빼앗을 탈) 遽(갑자기 거)
☞또 하나가‘그런데 어쩐지 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군?’할라치면 하나가 서슬이 시퍼래서「향깃허구먼 그러시우?」하고 새수 빠진 소리를 하는 것을 지천을 하던 것이다. 이렇듯 사리고 조심하여 눈을 가리고 아웅한 덕에 내외의 의견은 더 볼 것도 없이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蔡萬植, 濁流)
여도지죄餘桃之罪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란 뜻으로,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
고사:전국 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 君]'니…‥."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리박빙 如履薄氷
살얼음을 밟듯 매우 조심함. |
여반장 如反掌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매우 쉽다. |
여산진면목 廬山眞面目
너무도 깊고 그윽하여 그 진면목을 알 수 없음. |
고사 : 여산(廬山)은 중국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삼면이 물로 싸여 있고 서쪽만이 만학천암(萬壑千巖)이 항상 안개에 휩싸여 있어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는 명산이다. 그 산속에는 백록동(白鹿洞), 묵지(墨池), 옥연(玉淵) 등의 명승지가 있으며, 서북쪽의 산은 피서지로 유명하다. 周나라 무왕(武王) 때, 광유(匡裕)라는 선비가 이 산에 초당을 짓고 살면서 신선술을 닦고 있었다. 무왕이 그의 학식과 덕망이 높음을 듣고 그에게 벼슬을 주어 나라 일을 함께 도모하려 하였다. 사긴을 보내어 모셔오게 하였는데 이를 눈치챘음인지 광유는 어디론지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엿다. 무왕은 그가 죽은 것이라 판단하고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이 산을 관리하는 직책을 두고 산 이름도 광산(匡山)이라 부르게 하였다.
여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나 나그네들의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 소식(蘇軾)은 이 여산에 왔다가 그 오묘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다가 칠언절구의 시 한 수를 지었다.
橫看成嶺側成峯 옆으로 보니 고갯마루요, 또 곁으로 보아도 봉우리로다.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 모습 알기 어려우니,
只緣身在此山中 이는 나만 내 몸이 이 산중에 묻혀 있음이로다.
李白도 이 폭포를 보고, 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를 지었다.
日照香爐生紫煙 해가 향로를 비추니 붉은 빛 아름다운 안개가 일어난다.
遙看瀑布掛長川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기나긴 개울이 걸려 있구나.
飛流直下三千尺 나는 듯 곧바로 떨어져 삼천 척이니
疑是銀河落九天 은하수 한구비가 구천에서 떨어지는 듯하여라.
여삼추 如三秋
짧은 시간이 3년 같다.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 |
여세추이 與世推移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해가다. |
여좌침석 如坐針席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몹시 불안하다. |
역린 逆麟
임금님의 노여움. |
고사 : 중국에는 용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가 많다. 용은 물론 가상적 동물이지만 봉(鳳), 인(麟), 귀(龜)와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하여 영물로 실재화하여 생각하였다. 용은 특히 비늘 달린 짐승 중 으뜸가는 것으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몰고 온다고 여겼다. 그리고 군주를 용에 비겨서 용상(龍床)이니 용안(龍顔)이니 하여 그 권위와 존엄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전국 시대에 한비(韓非)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법가(法家)였다. 그는 군신간의 모해와 온갖 불법 등을 직시하면서 전국 시대의 난국을 이겨낼 국가적 대계를 강구하고 있었다. 그의 저서「한비자(韓非子)」설난편(說難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이 하나 있는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 군주에게도 또한 이런 역린이 있다.”그러므로, 이 말에 연유하여 군주의 노여움을「역린(逆麟)」이라 한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해 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헤아림. |
연목구어 緣木求魚
나무에 인연하여 물고기를 구한다. 목적이나 수단이 일치하지 않아 성공이 불가능하다. 또는 허술한 계책으로 큰 일을 도모한다. |
上山求魚(상산구어) : 산 꼭대기에서 물고기를 구하려하다.
射魚指天(사어지천) : 물고기를 쏘려는데 하늘에다 겨눔.
乾木水生(건목수생) :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함.
고사 : 齊나라 선왕(宣王)이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 맹자가 찾아가 설득하기를「영토를 넓혀서 진나라나 초나라를 굴복시키고 중국에 군림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진압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으로써 이와 같은 원하는 것을 구하려 한다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것과 같습니다.(欲벽土地하여 朝秦楚하고 리中國而撫四夷也로소이다. 以若所爲로 求若所欲이면 猶緣木而求魚也니이다.)」하니 선왕이“그토록 터무니없는 일입니까?”하니“아닙니다. 그보다도 더 터무니없는 일일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직은 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후환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전쟁으로 바라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심력을 다하더라도 후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孟子, 梁惠王章句上篇)
☞한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와 그의 집단을 위해 유리하게 헌법 특히 선거 제도를 고쳐 버리는 작태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이런 작태가 계속되는 한 정치의 예술화, 즉 민의에 의한 평화적 정권 교체란 緣木求魚라 할 것이다. 정권이 평화적으로 교체되지 못하고 정치 외적 무력에 의해 강점되는 원인은,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정권 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권을 탈취당하면 그를 추종하던 정당이 하루아침에 침몰하고 마는데, 그 까닭도 따지고 보면 제도의 불공정성에 있다. 진실로 공평 무사한 제도란, 집권당이 정권을 내놓고 난 뒤에도 풍비박산(風飛雹散)되지 않고 계속 정당으로서 존속하면서 재집권할 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그런 제도를 일컫는다.
연마장양 鍊磨長養
갈고 닦고 오래도록 준비하여 옴. |
연하고질 煙霞痼疾
산과 물을 매우 사랑하는 것이 마치 고치지 못할 병이 든 것 같음. |
염량세태 炎凉世態
뜨겁고 차가운 세태. 권세가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쫓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형편. |
영고성쇠 榮枯盛衰
영화롭고 마르고 성하고 쇠함. 개인이나 사회의 성하고 쇠함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 |
오리무중 五里霧中
5리가 온통 안개 속이다. 찾을 길이 막연하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
고사: 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 대고 끝내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장해는《춘추(春秋)》《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게다가 전국 각처의 숙유(夙儒 宿儒:학식과 명망이 높은 선비)들을 비롯하여 괴족 고관대작 환관(宦官)들까지 다투어 그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는 이를 싫어하여 화음산(華陰山) 기슭에 자리한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해를 좇아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 남쪽 기슭에 장해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는 학문뿐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주] '오리무중(五里霧中)'이란 말은 '오리무'에 '중(中)'자를 더한 것인데 처음부터 '중'자가 붙어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함.
방술 : 신선의 술법을 닦는 방사(方士)의 술법.
오매불망 寤寐不忘
자나 깨나 잊지 못하다. |
輾轉反側(전전반측)
오비삼척 吾鼻三尺
내 코가 석자. 내 일도 감당하기 어려워 남의 사정을 돌볼 여유가 없다. |
오비이락 烏飛梨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어떤 일이 공교롭게도 맞아 떨어져 의심을 받게 되다. |
오상고절 傲霜孤節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 충신 또는 국화. |
오상 五常
사람의 다섯가지 행실.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또는 오륜(五倫 : 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와 같다. |
참고 : 제야(除夜)의 종소리 :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온 세상에 울려퍼지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고유의 행사이다. 보신각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것은, 저승에서 사는 악마로부터 이승의 모든 사람 그리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33체라는 불교 관념에 기인한다. 고려 때부터 시작된 과거에서 33인을 뽑는 것이나, 기우제 때 동자 33명으로 하여금 빌게 하는 것도 모든 백성의 마음을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아침에 33번을 치는 것은 4×8방위에 절대자 1을 의미하고, 저녁에 28번을 타종하는 것은 저녁 하늘에 뜨는 별자리수를 의미한다.
오색영롱 五色玲瓏
여러 가지 빛이 한데 섞이어 찬란하게 비침. |
오십보백보 五十步百步
오십보 도망한 자가 백보 도망한 자를 비웃는다. 조금 낫고 못한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은 것. |
五十笑百(오십소백)
大同小異(대동소이) : 거의 같고 조금만 다르다. 본질적으로 같다.
彼此一般(피차일반) : 저것이나 이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같다.
走逐一般(주축일반)
고사 : 孟子가 어느 날 유세(遊說)차 魏나라에 가니 양혜왕(梁惠王)이“심혈(心血)을 기울여 정치를 했으나 어찌 이웃나라 백성은 줄지 않고 나의 백성은 많아지니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맹자가「“왕께서 싸움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하겠습니다. 북이 둥둥 울려 병사들의 칼날이 부딪쳤을 때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어떤 자는 100보를 도망하다가 멈추고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하다가 멈췄습니다. 만일 50보 도망한 자가 100보 도망한 자를 보고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하고 되물으니 혜왕이“100보를 도망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도망한 것이니 도망한 것은 마찬가지지요”(王好戰하시니 請以戰喩니이다. 塡然鼓之하여 兵刃旣接할새 棄甲曳兵而走커늘 或百步而後止하고 或五十步而後止한대 以五十步笑百步하면 則何如오. 惠王曰 不可하다. 直不百步耳니 是亦走也라.)」라고 대답하였다.(孟子, 梁惠王上篇)
** 塡(메울 전) 刃(칼날 인) 曳(끌 예)
오손공주烏孫公主
정략 결혼의 희생이 된 슬픈 운명의 여인 |
고사:오손은 전한(前漢) 때 서역(西域) 지방에 할거하던 터키계(系)의 유목 민족으로, 그 세력권은 천산(天山) 산맥 북쪽의 이시크를 호수 부근으로부터 이리하(伊犁河:일리 강) 유역의 분지를 포함하여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르 강 상류의 나린 강 계곡에 있던 적곡성(赤谷城:본거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 오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성했던 흉노는 북방 몽골 땅을 근거지로 삼고 한나라를 끊임없이 침범했다. 그래서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흉노를 무찌르기 위해 건원(建元) 26년(B.C. 115) 장건(張騫)을 오손에 보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10년 후 무제의 형인 강도왕(江都王)의 딸 세군(細君)을 공주로 꾸며 오손왕에게 출가시킴으로써 동맹은 더욱 굳어졌다.
이리하여 흉노는 한나라와 오손의 협공에 견디지 못하고 서역은 물론 한나라의 변경으로부터 북방 멀리 쫓겨가고 말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서역 50여 이민족의 소국들은 한나라를 상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이들 나라의 이반을 막기 위해 구자(龜玆:쿠차)에 감독 사찰 기관으로서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를 두었다. 건국 이후 100년 이상 시달려 온 흉노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먼 이국의 이민족에게 주어진 오손 공주는 망향의 노래를 부르며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오우 五友
다섯 종류의 절개 있는 식물. 선비가 벗삼을 만한 식물. 梅·蘭·菊·竹·蓮. |
오월동주 吳越同舟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전혀 뜻이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됨. |
同舟濟江(동주제강) :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즉 원수라도 한가지 일을 위해서는 돕게 된다.
同舟相救(동주상구) :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면 자연히 돕게 된다.
원수도 한 배에 타면 서로 돕게 된다.
고사 : 吳의 합려(闔閭)와 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고 가정한다면 원수처럼 맞붙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쪽 어깨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 처럼 도울 것이다.(夫吳人與越人은 相惡也나 當其同舟而濟라가 遇風이면 其相救也는 如左右手니라.”(孫子, 九地篇)
오청 五淸
다섯 가지의 깨끗한 사물.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것. 松·竹·梅·蘭·石. |
오하아몽 吳下阿蒙
오나라 아래에 의지하고 있는 여몽. 학문의 소양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인물. |
오합지졸 烏合之卒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 질서없이 어중이 떠중이가 모인 군중을 뜻한다. 또는 제각기 보잘 것 없는 수 많은 사람. |
烏合之衆(오합지중)
고사:까마귀떼 같이 질서 없는 무리라는 뜻. 곧 ① 규율도 통일성도 없는 군중. ② 갑자기 모인 훈련 없는 군세(軍勢).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 )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9년).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후한의 시조)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23년).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與)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 )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케 했다. 그런데 유수의 본진을 향해 행군하던 경감의 군사는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은 두 사람을 앞으로 끌어낸 뒤 칼을 빼 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섬서성 서안(陝西省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중'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에 임명되었다.
오행 五行
우주간에 쉬지 않고 운행하는 다섯가지 원리. 金·木·水·火·土. |
옥석혼효 玉石混淆
옥과 돌이 함께 뒤섞여 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섞여 있음. |
玉石同碎(옥석동쇄). 玉石同櫃(옥석동궤)
玉石俱焚(옥석구분) : 옥과 돌이 함께 탐.
鯨戰鰕死(경전하사) :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고사 : 晉나라 사람 갈홍(葛洪)의 저서『포박자(抱朴子)』는 내편(신선의 도를 기술)과 외편(정치와 도덕)으로 되어 있다. 외편 상박(尙博)에“세상 사람들이 천박한 시부(詩賦)를 즐기는가 하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글을 가볍게 여기며 이로운 말을 어리석은 말로 여기고 헛되고 달콤한 말에는 기뻐한다. 그러므로「참과 거짓이 바뀌고 옥과 돌이 한 데 뒤섞여 있으며 상동을 광악과 마찬가지로 여기고 풀로 엮은 옷을 용무늬의 옷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眞僞顚倒하고 玉石混淆하며 同廣樂於桑同하고 鈞龍章於卉服하다.) 」모두가 태연한 것은 진실로 한탄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 碎(부술 쇄) 櫃(궤짝 궤) 顚(넘어질 전) 倒(넘어질 도) 鈞(고를 균) 卉(풀 훼)
옥하가옥 屋下架屋
독창성 없이 전 시대인의 것을 모방만 함을 경계. |
고사 : 魏는 蜀과 吳를 멸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국호를 晉이라 고치고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낙양에 유중(庾仲)이라는 시인이 양도(揚都-南京)의 아름다운 풍경과 융성함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양도는 오 나라의 도읍지였는데 이미 멸망한 후 이지만 양자강을 앞에 두고 뒤로는 우람한 산이 있어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로서 강남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도시를 노래한 것으로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그 표현이 특히 절묘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 시를 베끼어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껑충 뛰었다. 그런데, 사태부(謝太傅)라는 고관이 있어 그 시를 보더니,“무얼 그런 따위 시를 가지고 떠드는가. 그런 시는 마치 지붕 밑에다 또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같이 같은 것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라며 비웃었다.(世說)
온고지신 溫故知新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 옛 것을 익혀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발견하다. |
博古知今(박고지금) : 공자가 노자에게“옛 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는 말을 듣고 옛 일을 두루 익히면 오늘날의 일도 자연히 알게 된다.
以故爲鑑(이고위감) : 옛 것을 거울로 삼는다. 즉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하다.
學于古訓(학우고훈) : 옛 성왕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다.
고사 :「공자게서 말씀하시기를“옛 것을 복습하여 새 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주(注)에 보면 온(溫)은 심(尋)이라 하였다. 곧 찾는다는 말이다. 무엇을 찾았는가? 다시 주를 보면 심(尋)은 석고(釋故)라 하여 옛 것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온고지신이란 옛 학문을 되풀이하여 연구하고,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論語)
온정신성 溫청晨省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고 어두워지면 이부자리를 정해 드리고 아침에는 안후(顔厚)를 살피다. 정성을 다해 부모를 모시다. |
冬溫而夏청하고 昏定而晨省하라.
와각지쟁 蝸角之爭
달팽이의 뿔 위에서 하는 싸움. 매우 사소한 일로 다툼. 작은 나라끼리 싸움. |
고사: 전국시대, 양(梁:魏)나라 혜왕(惠王)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齊)나라 위왕(威王)에 대한 응징책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서 혜왕은 재상 혜자(惠子)가 데려온 대진인(戴晉人)에게 의견을 물었다.
대진인은 현인(賢人)으로 이름난 도가자류(道家者流:도교를 믿고 닦는 사람)답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달팽이라는 미물(微物)이 있사온데 그것을 아시나이까?"
"물론, 알고 있소."
"그 달팽이의 왼쪽 촉각 위에는 촉씨(觸氏)라는 자가, 오른쪽 촉각 위에는 만씨(蠻氏)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있었나이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 영토를 다투어 전쟁을 시작했는데 죽은 자가 수만명에 이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 만에 전쟁을 멈추었다하옵니다."
"그런 엉터리 이야기가 어디 있소?"
"하오면, 이 이야기를 사실에 비유해 보겠나이다. 전하, 이 우주의 사방 상하(四方上下)에 제한(際限)이 있다고 생각하시옵니까?"
"아니,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소."
"하오면,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으음, 과연."
"그 나라들 가운데 위라는 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大梁:개봉(開封)]이라는 도읍이 있사오며, 그 도읍의 궁궐 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 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 전쟁을 시작하시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觸角) 위의 촉씨 만씨가 싸우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아옵니까?"
"과연,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소."
대진인이 물러가자 제나라와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은 혜자에게 힘없이 말했다.
"그 사람은 성인(聖人)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와신상담 臥薪嘗膽
섶에 누워 쓸개를 맛본다. 원수를 갚기 위해 괴롭고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다. |
고사: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 李:절강성 가흥(浙江省嘉興)]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 )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 )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
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완벽 完璧
흠이 없는 구슬. 결점이 없이 훌륭함. |
고사 : 趙의 혜문왕(惠文王)은 세상에도 드문「화씨의 벽(和氏之璧)」이라는 고귀한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신하 목현(木賢)의 애장품이었는데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그런데, 강대국 秦의 소양왕(昭襄王)이 이 소문을 듣고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조에 사신을 보내어 15성(城)과 화씨지벽과 바꾸자고 청하였다. 혜문왕은 걱정이 생겼다. 내주자니 소양왕이 받고도 15성의 약속을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고, 거절하자니 이를 구실삼아 진이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왕은 중신 회의를 열었다. 이 때, 목현이 나와서 식객 중 인상여라는 자가 지모와 용기가 있으니 그를 사자로 보내면 능히 난국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하고 천거하였다. 인상여(린相如)는 즉시 진으로 가 지니고 갔던 화씨지벽을 일단 소왕에게 바쳤다. 구슬을 받아 쥔 왕은 "과연 훌륭하구나!" 하면서 감탄하면서 좋아할 뿐 15성 이야기는 조금도 비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예기했던 인상여는, "그 구슬에 한 군데 조그만 흠집이 있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고 속여 말하니 무심코 내주었다. 인상여는 즉시, "우리는 신의를 지키느라 구슬을 지참하였으나 왕은 15성의 약속을 지킬 듯 싶지 않으니 이 구슬은 일단 소생이 지니겠습니다. 불연이면 소생의 머리와 더불어 이 구슬을 부숴 버리겠습니다." 하고는 구슬을 빼내어 조국에 돌려 보냈다. 호담한 소양왕은 할 수 없이 인상여를 정중하게 놓아 보냈다.(史記, 린相如傳)
외유내강 外柔內剛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굳셈. |
요동지시遼東之豕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
고사: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요령부득要領不得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의 요령을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
고사: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의 일이다. 당시 만리장성 밖은 수수께끼의 땅이었다. 그러나 영맹한 흉노는 동쪽 열하(熱河)에서부터 서쪽 투르키스탄(중앙 아시아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세력을 펴고 빈번히 한나라를 침범 약탈했다. 그래서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 흉노에게 쫓겨 농서[ 西:감숙성(甘肅省)]에서 서쪽 사막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大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월지에 다녀올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張騫:?∼B.C. 114)이란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B.C. 138), 장건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서쪽 이리(伊犁:위구르 자치구 내)란 곳에 있다는 것밖에 모르는 월지를 찾아 장안[長安:서안(西安)]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흉노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장건은 활짝 트인 성격으로 해서 흉노에게 호감을 사 장가도 들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탈출할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포로가 된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장건은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우뚝 솟은 천산(天山) 산맥의 남쪽 기슭을 따라 타림 분지를 횡단한 그들은 대완국(大宛國) 강거국(康居國)을 거쳐 마침내 아무 강 북쪽에 있는 월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곧 월지의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서천(西遷) 이후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그러니 백성은 이제 구원(舊怨)을 씻기 위한 그런 쓸데없는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
장건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史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 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 넘게 억류되었으나 부하 한 사람과 탈출, 13년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B.C. 126). 그로부터 3년 후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진 장건은 계속 서역(西域) 사업에 힘썼는데 그의 대여행은 중국 역사에 많은 것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동서의 교통이 트이면서 서방으로부터 명마(名馬) 보석 비파(琵琶) 수박 석류 포도 등이 들어오고 한나라로부터는 금과 비단 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크 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 대완국 : 중앙 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었던 작은 나라.
강거국 : 아랄해 동쪽 시르강 하류의 키르기스 초원에 있었던 터키계(系) 유목 민족의 작은 나라.
대하국 : 일명 박트리아 왕국. 힌두쿠시 산맥의 계곡, 아무 강 상류의 좁은 지역에 있었던 나라
요산요수 樂山樂水
어진 사람은 의리에 밝고 산과같이 중후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산을 좋아 한다는 뜻. 지혜있는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여 물과 같이 막히는 것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 |
요조숙녀 窈窕淑女
마음씨가 고요하고 맑은 여자. 마음씨가 얌전하고 자태가 아름다운 여자. |
요지부동 搖之不動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함. |
욕속부달 欲速不達
빨리하고자 하면 도달하지 못한다. 어떤 일을 급하게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 |
고사 : 자의 제자로 자하(子夏)가 있다. 그는 본명이 복상(卜商)이며 자하는 字이다. 공자의 문하(門下) 10철(哲)의 한 사람이다.「자하가 노(魯)나라의 작은 읍 거부(거父)의 읍장이 된 적이 있다. 그는 어떻게 이 고을을 다스릴까 궁리하다가 스승인 공자에게 정책을 물으니,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정치를 할 때 공적을 올리려고 고을 일을 너무 급히 서둘러서 하면 안 된다. 또한 조금한 이득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일을 급히 서둘러 공적을 올리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조금한 이득을 탐내다가는 온 세상에 도움이 될 큰 일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子夏爲거父宰라가 問政한대 子曰“無欲速이면 無見小利하고, 欲速則不達하면 見小利則大事不成이니라.)라고 하였다.(論語, 子路篇)
용두사미 龍頭蛇尾
용머리처럼 시작하여 뱀꼬리처럼 끝나다. 거창하게 시작했으나 갈수록 흐지부지되다. |
용미봉탕 龍味鳳湯
용과 봉황으로 만든 음식. 매우 맛있는 음식. |
용사비등 龍蛇飛騰
용과 뱀이 하늘로 날아 오르다. 살아 움직이듯 매우 활기찬 글씨. |
용의주도 用意周到
어떤 일을 할 마음이 두루 미친다. 마음의 준비가 두루 미쳐 빈틈이 없다. |
용호상박 龍虎相搏
용과 범이 서로 싸우다. 강한 사람이나 나라가 서로 싸우는 것. |
우공이산 愚公移山
우공이 산을 옮기다. 남들은 어리석게 여기나 한 가지 일을 소신있게 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 |
山溜穿石(산류천석) : 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를 뚫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무쇠공이도 바늘 된다.
고사 : 우공(愚公)이라는 노인이 태형산(太形山)과 왕옥산(王屋山)이 막혀있어 집밖을 출입할 때마다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다. 그래서 자손들과 의논하여 산을 없애기로 하고 흙을 삼태기에 담아 발해(渤海)로 운반하였다. 그것을 지수(智수)가 보고 말리니「북산의 우공이 길게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비록 내가 죽더라도 자식이 여기에 있다. 자식이 또 손자를 낳고 손자가 또 자손을 낳으면 그 자손이 또 자손이 있고 그 자손이 또 손자가 있으니 자자손손이 다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은 더욱 더 높아질 수 없으니 어찌 괴롭다고 해서 평평하게 하지 않으리오.(北山愚公이 長息曰 雖我之死라도 有子存焉이라. 又子生孫하고 孫又生子하며 子又有子하고 子又有孫하니 子子孫孫이 無窮櫃也라. 而山不可增이니 何苦而不平이리오.”)」라고 말하며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진주집을 떼어 들여 앉히기가지에는 읍내집이라는 열아홉된 처녀 장가도 들어 보았고, 스물 일곱 난 과부도 들여 앉혀 보았고, 서울이다 읍내다 하고 돌아다니면서 자식을 보려고 애를 태웠으나 웬 일인지 낳는다는 것이 계집 아이 아니면 아들은 쪽쪽 돌도 못가서 죽어버리는 것이다.「하두 남한태 못할 일을 해서 죌 받느라구 그래, 왜 남들은 쑥쑥 낳는 자식으 그렇게 못 나? 우물두 한 우물을 파랬다구 이건 며칠 데리구 살다간 툭 차구! 그냥 차기만 하나? 하인놈 아니면 청지길 붙어 먹었다구 내쫓았지!」(李無影, 農民)
우도할계 牛刀割鷄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랴. 조그만 일을 처리하는 데 대기(大器)를 씀. |
고사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자유(子游)여, 무성같은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 데 그리 허풍스럽게 현가(현가) 같은 것을 가르칠 필요가 뭐 있는가? 닭을 잡는 데 소를 잡는 큰 칼을 쓰지 않아도 될 터인데.”하니“저는 선생님으로부터 사람 위에 서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예악(禮樂)의 길을 배움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게 되고 또한 백성은 예악의 길을 배움으로써 온용(溫容)하게 되어 잘 다스려지며 예악의 길은 상하간에 중요하다고 배워, 오직 이 가르침을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가볍운 농담으로 한 말을 자유가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를 보고,“아니야, 농이야. 그대 말대로다. 그래 잘 했어.”(論語, 陽貨篇)
우수마발 牛수馬渤
소의 오줌과 말의 똥. 아무 데도 쓰지 못할 것. 극히 하등품(下等品)인 藥을 이름. |
우여곡절 迂餘曲折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
우유부단 優柔不斷
어물어물하며 딱 잘라서 결단하지 아니함. |
우이독경 牛耳讀經
소 귀에 경읽기.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 뜯지 못한다. |
對牛彈琴(대우탄금) : 소에 대하여 거문고를 뜯는다. 어리석은 사람을 향하여 도리를 일러도 알아 듣지 못함.
우자일득 愚者一得
어리석은 사람도 때에 따라 좋은 생각을 해 낸다. |
우화등선 羽化登仙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치어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됨. |
고사 : 우화(羽化)라는 말의 원뜻은 번데기가 날개 있는 벌레로 바뀐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화등선이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되어 있는 사람이 날개가 돋친 듯 날아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뜻. 일종의 이상 동경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소동파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나온다.
「임술년(1082) 가을 7월 16일에, 동파가 손님과 더불어 배를 띄우고 적벽의 아래에서 놀 때에 청풍은 천천히 불고 물결은 일지 않았다.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시경의 명월편을 암송하고 요조의 장을 노래 불렀다. 이윽고 달이 동산 위에 나와 남두성과 견우성 사이에서 배회하더라. 흰 이슬은 강을 가로지르고 물빛은 하늘에 닿은지라, 쪽배가 가는 대로 맡겨 아득히 넓은 강을 지나가니, 넓고 넓도다. 허공을 타고 바람을 몰아 가서 그 그치는 곳을 모르겠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도다. 속세를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 같구나.이때에 술을 마셔 즐거움이 더하니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壬戌之秋七月旣望에 蘇子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擧酒屬客하여 誦明月之詩하고 歌窈窕之章이러니 少焉에 月出於東山之上하여 徘徊於斗牛之間이라. 白露 橫江하고 水光 接天이라. 縱一葦之所如하여 凌萬頃之茫然이라. 浩浩乎如憑虛御風하여 而不知其所止이라 飄飄乎이다. 如遺世獨立하여 羽化而登仙이라. 於是에 飮酒甚樂하니 구舷而歌之라.)」(前赤壁賦)
** 泛(띠울 범) 窈窕(곱다 요, 조) 徘徊(방황할 배, 회) 橫(비낄 횡) 縱(놓아둘 종) 葦(갈대 위) 凌(넘을 릉) 茫(아득할 망) 浩(널을 호) 憑(기댈 빙) 飄(나부낄 표) 毫(털 호) 竭(다할 갈)
우후죽순 雨後竹筍
비온 뒤에 죽순이 자라듯이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생기다. |
욱일승천 旭日昇天
아침 해가 하늘로 오름. 그와 같은 기상. |
운니지차 雲泥之差
구름과 진흙 차이. 서로의 차이가 매우 크다. |
天壤之差(천양지차). 天壤之判(천양지판). 天壤懸隔(천양현격)
운상기품 雲上氣品
속됨을 벗어난 인간의 고상한 기질과 성품. |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정책. |
고사:전국 시대, 위(魏)나라의 책사(策士)인 범저(范雎)는 제(齊)나라와 내통하고 있다는 모함에 빠져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진(秦)나라의 사신 왕계(王稽)를 따라 함양(咸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진나라는 '알을 쌓아 놓은 것처럼 위태롭다[累卵之危]'고 자국(自國)의 정사를 혹평한 범저를 환영하지 않았다. 따라서 범저는 소양왕에게 자신의 장기인 변설(辯舌)을 펼쳐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소양왕 36년(B.C. 271), 드디어 범저에게 때가 왔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재상으로서 실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는 제나라를 공략하여 자신의 영지인 도(陶)의 땅을 확장하려 했다. 이 사실을 안 범저는 왕계를 통해 소양왕을 알현하고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한(韓) 위(魏) 두 나라를 지나 강국인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득책(得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적은 병력을 움직여 봤자 제나라는 꿈쩍도 않을 것이옵고, 그렇다고 대군(大軍)을 출동시키는 것은 진나라를 위해 더욱 좋지 않사옵니다. 가능한 한 진나라의 병력을 아끼고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동원코자 하시는 것이 전하의 의도인 듯하오나 동맹국을 신용할 수 없는 이 마당에 타국 너머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 王)이 연(燕)나라의 악의(樂毅)장군에게 패한 원인도 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초(楚)나라를 공략하다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된 동맹국이 이반(離反)했기 때문이옵니다. 그때 덕을 본 것은 이웃 나라인 한나라와 위나라이온데, 이는 마치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借賊兵(차적병)] 도둑에게 식량을 갖다 준 꼴[齎盜糧(재도량)]'이 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나이다.
지금 전하께서 채택하셔야 할 계책으로는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책(遠交近攻策)
'이 상책(上策)인 줄 아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寸土)이옵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尺地)가 아니옵니까? 이해득실(利害得失)이 이토록 분명 하온데 굳이 먼 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현책(賢策)이 아닌 줄 아옵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저는 승진 끝에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지론인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國是)가 되었다.
원수불구근화遠水不救近火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는 뜻으로, 먼 데 있으면 급할 때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 |
고사:《한비자(韓非子)》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목공(穆公)은 아들들에게도 진(晉)나라와 형(荊)나라를 섬기게 했다. 그 무렵 노나라는 이웃 나라인 강국 제(齊)나라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위급할 때 진나라와 형나라 같은 강국의 도움을 받으려는 속셈에서였다. 목공의 그런 속셈을 이서(梨 )가 간했다.
"사람이 물에 빠진 경우, 먼 월(越)나라에서 사람을 청해다가 구하려 한다면 월나라 사람이 아무리 헤엄을 잘 친다 해도 때는 이미 늦사오며, 또 집에 불이 난 경우, 발해(渤海)와 같이 먼바다에서 물을 끌어다가 끄려 한다면 바닷물이 아무리 많다 해도 때는 역시 늦사옵니다.
이처럼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곳에서 난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不救近火]'고 했듯이 노나라가 이웃 제나라의 공격을 받았을 경우, 먼 진나라와 형나라가 강국이긴 해도 노나라의 위난은 구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원입골수怨入骨髓
원한이 뼈에 사무친다는 뜻으로, 원한이 마음 속 깊이 맺혀 잊을 수 없다는 말. |
고사:춘추시대 오패(五 )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목공(繆公)은 중신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 장군에게 정(鄭)나라를 치라고 명했다. 진나라 군사가 주(周)나라의 북문에 이르렀을 때 마침 이곳에 소를 팔러 온 정나라의 소장수인 현고(弦高)는 진나라 장군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 주상(主上)께서는 장병들을 위로하시기 위해 소생에게 소 12마리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서 거두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자 생각이 달라진 세 장군은 공격 목표를 바꾸어 진(晉)나라의 속령(屬領)인 활(滑)로 쳐들어갔다.
당시 진나라는 문공(文公)이 죽어 국상(國喪)중에 있었으나 태자[太子:후의 양공(襄公)]는 즉시 용장(勇將)을 파견하여 침략군을 섬멸했다. 포로가 된 세 장군은 태자 앞에 끌려 나왔다. 그러자 목공의 딸인 태자의 모후(母后)는 그들의 구명을 청원했다.
"저들을 죽이면 강국인 진나라 목공은 '원한이 뼈에 사무쳐[怨入骨髓]' 반드시 이 나라를 칠 것이오. 그러나 저들을 살려 보내는 게 좋겠소."
태자는 모후의 말을 옳게 여겨 세 장군을 모두 풀어 주었다.
원형리정 元亨利貞
사물의 근본 원리. 만물이 처음 생겨나서 자라고 삶을 이루고 완성함. 또는 인(仁)·의(義)·예(禮)·지(智). |
월단평 月旦評
인물의 비평. 월조평(月朝評). |
고사 : 조조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의 이야기로 하남성 여남(汝南)에 허소(許昭)와 그 종형 허정(許靖)이라는 명사가 살았다. 두 사람은 매월 초하루면 향리의 인물을 골라서 비평하였는데 아주 정확하게「여남(汝南)의 월단평」이라 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다. 조조가 이 평판을 듣고 허소에게 찾아가 부탁하였다. 조조가 워낙 난폭한 자로 소문 난지라 두려워 입을 열지 못하니 조조가 재촉하였다.“그대는 태평지세에는 유능한 정치가 이로되 난세에는 간웅(姦雄)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오.”이 말을 듣고 조조는 기뻐하였다.(後漢書, 許昭傳)
월하빙인 月下氷人
결혼을 중매해 주는 사람. |
고사 : 唐에 위고(韋固)라는 총각이 있었다. 한 번은 송성(宋城)에 갔었다. 달밤이었는데, 길 모퉁이에 웬 노인이 자루를 옆에 놓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무슨 책인지 뒤적거리고 있었다.“무엇을 하고 계십니까?”“음, 지금 세상 사람들의 혼사(婚事)에 관하여 살펴보고 있지.”“저 자루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여기엔 빨간 끈이 있는데 부부를 맺어 주는 끈이다. 이 끈으로 한 번 매어 놓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졌거나 원수간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맺어지느니라.”위고는 신기해서, 그러면 내 색시감은 어디 있겄느냐고 물었다.“음, 이 송성에 있지. 저 북쪽에서 채소를 팔고 있는 진(陳)이라는 노파가 안고 있는 갓난애라네.”세월이 흘러 14년 후, 위고는 상주(相州)의 관리가 되어 그 고을 태수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런데, 규수는 누구인가?“저는 실은 태수의 딸이 아니옵니다. 아버지는 제가 갓난애 때 송성에서 벼슬하시다 돌아가셨고, 저는 유모가 있어서 채소를 팔아가며 길러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송성 북쪽에 계신 진(陳)할머니를 가끔 생각한답니다. ”(續幽怪錄)
☞중국『周禮』속에 매씨(媒氏)라는 관직이 있다. 매씨란 남녀의 결혼을 주관하는 관직이었다. 주나라시대에는 아이가 태어나 3개월이 지나면 그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서 매씨에게 제출하게 되어 있고, 매씨는 그 명부에 기초해 남자는 삼십이면 장가를 보내고, 여자는 이십이면 시집을 보내게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매는 대개 노파(老婆)가 하였으므로 매씨와 노파가 합쳐져 매파(媒婆)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중매(仲媒)란 중간에서 혼인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위기일발 危機一髮
조금도 여유가 없는 코 앞에 닥친 위기의 순간. 매우급한 순간. |
一觸卽發(일촉즉발)
百尺竿頭(백척간두)
風前燈火(풍전등화)
累卵之勢(누란지세)
위편삼절 韋編三絶
책을 많이 읽는 것. 가죽으로 엮어 만든 책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많이 읽음. |
고사 :「공자가 주역(周易)을 읽음에 가죽으로 엮은 책의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니 가로되,“내가 수년 동안 틈을 얻어서 이와 같이 되었으니, 내가 주역에 있어서는 곧 환하니라.”(孔子獨易에 韋編이 三絶曰 假我數年하여 若是인대 我於易에 則彬彬矣니라.)」
위풍당당 威風堂堂
풍채가 위엄이 있어 당당함. |
유구무언 有口無言
입은 있으나 말이 없다. 변명할 말이 없음. |
유능제강 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이김이니 너그럽고 부드럽게 하는 것이 딱딱하고 매섭게 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
유만부동 類萬不同
모든 것이 도무지 같지 않다. |
유방백세 流芳百世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름.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 |
유비무환 有備無患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 대비하다. |
유아독존 唯我獨尊
이 세상에는 나보다 더 높은 것이 없다. |
유야무야 有耶無耶
있는지 없는지 흐리멍텅한 모양. |
유어부중 游於釜中
가마솥 속에서 논다. 생명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
釜中之魚(부중지어) : 가마솥 속의 고기.
轍부之急(철부지급) :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 속에 사는 붕어.
不免鼎俎(불면정조) : 솥에 삶아지고 도마에 오른 것을 면치 못함.
☞이제 두 부인의 편지를 위조하야 행장을 차려 오라 하면 사씨 일정 조차 가리니 냉진이 다려다가 협박하면 사씨 아무리 절개 있은들 제 어찌 벗어 나리오. 이는 독 속에 든 쥐라. 저 사씨 냉진에게 한 번 몸을 허하면 유가로 더불어 아조 끊어지리니 어찌 기이한 꾀가 아니리오.(謝氏南征記)
유언비어 流言蜚語
근거없이 널리 퍼진 소문. |
유유상종 類類相從
사물은 같은 무리끼리 따르고, 같은 사람은 서로 찾아 모인다. |
유필유방 遊必有方
나가서 놀 때에는 반드시 행방을 부모에게 알려야 한다. |
유취만년 遺臭萬年
냄새가 만 년에까지 남겨진다. 더러운 이름을 영원히 장래에까지 남김. |
은감불원殷鑑不遠
은(殷)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멸망의 선례는 먼데 있지 않다는 뜻으로, 남의 실패를 자신의 거울로 삼으라는 말. |
고사:고대 중국 하(夏) 은(殷) 주(周)의 3왕조 중 은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를 폭군 음주(淫主)로 치닫게 한 것은 정복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달기( 己)라는 희대의 요녀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국고를 기울여 시설한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주야장천(晝夜長川) 음주음락(飮酒淫樂)으로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그는 가렴주구와, 충간자(忠諫者)를 처형하기 위한 포락지형( 烙之刑)을 일삼는 악왕(惡王)의 으뜸으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그간 주왕의 포학을 간하다가 많은 충신이 목숨을 잃는 가운데 왕의 보좌역인 삼공(三公) 중 구후(九侯)와 악후(鄂侯)는 처형당하고 서백[西伯:훗날 주문왕(周文王)이 됨]은 유폐되었다. 서백은 그때 '600여 년 전에 은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주왕의 28대 선조)에게 주벌당한 하왕조의 걸왕(桀王:주왕과 대동 소이한 폭군음주)을 거울 삼아 그 같은 멸망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간하다가 화를 당했는데 그 간언(諫言)이《시경(詩經)》〈대아편(大雅篇)〉'탕시(湯詩)'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은나라 왕이 거울로 삼아야 할 선례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 걸왕 때에 있네.
[殷鑑不遠 在夏侯之世(은감불원 재하후지세)]
삼공에 이어 삼인(三仁)으로 불리던 미자(微子:주왕의 친형, 망명) 기자(箕子:왕족, 망명) 비간(比干:왕자, 처형당함) 등 세 충신도 간했으나 주색에 빠져 이성을 잃은 주왕은 걸왕의 비극적인 말로를 되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마침내 원성이 하늘에 닿은 백성과 제후들로부터 이반당한 주왕은 서백의 아들 발[發:주왕조의 시조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은인자중 隱忍自重
괴로움을 감추어 참고 몸가짐을 신중히 함. |
음덕양보 陰德陽報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좋은 일을 베풀면 반드시 그 일이 드러나서 갚음을 받는다. |
고사 :「周나라 때 손숙오(孫叔敖)가 어렸을 때 밖에 나가 놀다가 집에 와서는 밥을 먹지 않고 걱정에 빠져 눈물이 글썽하거늘, 그 어머니가 물으니“제가 오늘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보았습니다. 옛날부터 이런 뱀을 보면 죽는다고 했으니 곧 저는 죽을 것입니다.”했다. 그 어머니가“그 머리가 둘 달린 뱀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손숙오는“그 뱀을 또 다른 사람이 보면 죽을까 걱정이 되어서 죽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여“너는 죽지 않는다.”하고 예말을 인용하여 말하였다. 곧“음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양보가 있고 隱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照明이 있도다.”그 후 손숙오는 공부를 해서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孫叔敖之영兒也에 出遊而還하여 憂而不食이어늘 其母가 問其故한대 泣而對曰“今日에 吾가 見兩頭蛇하니 恐去死無日矣로소이다.”其母가 曰“今蛇安在오”曰“吾가 聞한대 見兩頭蛇者는 死라하니 恐他人이 又見이라 吾己埋之也니이다.”其母가 曰“無憂라 汝는 不死리라 吾가 聞之호니 有陰德者는 必有陽報하고 有隱行者는 必有昭明이라”하니라.)」
음풍롱월 吟風弄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보며 시를 짓고 읊으며 즐기다. |
읍참마속 泣斬馬謖
눈물을 흘리면서 마속을 베었다.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신하를 법으로 처벌한다. |
一罰百戒(일벌백계) : 하나의 처벌로 배이 경계한다. 본보기로 하는 처벌.
고사: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만큼 군량 수송로의 가정(街亭:한중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을 잃으면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중책을 맡길 만한 장수가 없어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리다.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 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는가?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적을 유인해서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 진을 쳤다. 그러나 위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한 채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식수가 끊겼다. 마속은 전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용장인 장합(張 )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전군을 한중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28) 5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에서 연락관으로 와 있던 장완(張 )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의문지망 依門之望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림. |
고사 : 齊나라 때「왕손가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기를“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나는 곧 집문에 의지하여 네가 오는가 바라보고, 저물어서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 문에 의지하여 네가 오는가 바라보고 서 있다.”고 하니라.(王孫賈之母가 謂賈曰“汝朝出而晩來면 吾則依門而望이요 暮出而不還이면 吾則依閭之望이라.”)」
의기소침 意氣銷沈
의기가 쇠하여 사그러짐. |
의기양양 意氣揚揚
의기가 드높아 매우 자랑스럽게 행동하는 모양. |
意氣衝天(의기충천). 得意揚揚(득의양양). 得意滿滿(득의만만)
의기투합 意氣投合
서로 마음이 맞다. |
의미심장 意味深長
말이나 글의 뜻이 매우 깊음. |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있지도 않은 귀신이 나오는 듯이 느껴진다는 뜻. 곧 ①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짐. ② 선입관은 판단을 빗나가게 함. |
고사:① 어떤 사람이 소중히 아끼던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 맞은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무래도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다. 길에서 마주쳤을 때에도 슬금슬금 도망갈 듯한 자세였고 안색이나 말투도 어색하기만 했다.
'내 도끼를 훔쳐 간 놈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이렇게 믿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저번에 나무하러 갔다가 도끼를 놓고 온 일이 생각났다. 당장 달려가 보니 도끼는 산에 그대로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웃집 아이를 보자 이번에는 그 아이의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별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② 마당에 말라죽은 오동나무를 본 이웃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집안에 말라죽은 오동나무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네."
주인이 막 오동나무를 베어 버리자 그 사람이 또 나타나서 땔감이 필요하다며 달라고 했다. 주인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
"이제 보니 땔감이 필요해서 날 속였군. 이웃에 살면서 어떻게 그런 엉큼한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란투석 以卵投石
계란을 바위에 던지다.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당해 내려는 어리석은 짓. |
이만융적 夷蠻戎狄
동쪽·남쪽·서쪽·북쪽 오랑캐. 즉 사방의 오랑캐. |
이목지신移木之信
위성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들을 믿게 한다는 뜻. 곧 ① 남을 속이지 아니한 것을 밝힘. ② 약속을 실행함. |
고사: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상앙(商 :?∼B.C. 338)이란 명재상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으로 법률에 밝았는데 특히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펴 천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가로 유명했다.
한 번은 상앙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포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 줄지 그것이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앙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약 9m)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약속대로 오십 금을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공포하자 백성들은 조정을 믿고 법을 잘 지켰다고 한다.
[주] 상앙 : 전국 시대, 진나라의 명재상. 제자 백가(諸子白家)의 한 사람. 별명은 공손앙(公孫 ). 상군(商君). 위(衛)나라의 공족(公族) 출신. 일찍이 형명학(刑名學)을 공부하고 진나라 효공(孝公)을 섬김. 법치주의(法治主義)에 입각한 부국 강병책(富國强兵策)을 단행하여 진나라의 국세(國勢)를 신장시킴. 효공이 죽자 그간 반감이 쌓인 귀족들의 참소(讒訴)로 사형 당함. (?∼B.C. 338).
이발지시 已發之矢
이미 떠난 화살. 이미 시작한 일을 중지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 상태. |
이심전심 以心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 글이나 말에 의하지 않고 서로 마음이 통하다. |
拈華微笑(염화미소). 拈華示衆(염화시중) : 석가께서 꽃을 드신 뜻을 알고 미소를 지음.
不立文字(불립문자). 敎外別傳(교외별전) : 경전이나 언어 등에 의하지 않고 마음으로 통하는 것.
고사:송(宋)나라의 중 도언(道彦)이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法語)를 기록한《전등록(傳燈錄)》에서 보면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중 보제(普濟)의《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靈山)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 華].'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微笑].'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덕(妙德-매우 뛰어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煩惱)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아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 불립문자(不立文字 敎外別傳:모두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뜻. 곧, 진리는 마음에 의해서만 전해지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함)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주]《오등회원》:《전등록》외 4부의 '등록'을 합친《오등록(五燈錄)의 초본》
이열치열 以熱治熱
열은 열로 다스려야 한다. |
이용후생 利用厚生
이용은 장인(匠人)이 그릇을 만들고 장사가 재물을 운반하는 것 등이고 후생 은 옷을 입고 고기를 먹어 추위에 떨지 않고 굶주리지 않는 것. |
☞이제 천릿길을 오면서 날마다 수없이 많은 수레를 보았으나, 앞 수레와 뒷수레가 언제나 한 자국을 도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쓰지 않고도 같이 되는 것을 '일철(一轍)'이라 하고, 뒤에서 앞을 가리켜 전철(前轍)이라 한다. 성문턱 수레바퀴 자국이 움푹 패여서 홈통을 이루니, 이는 이른바 '상문지궤(城門之軌)'라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전혀 수레가 없음은 아니나 그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가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하는 말에 "우리 나라는 길이 험해서 수레를 쓸 수 없다."하니, 이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을 뿐이다. 만일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이게 될 테니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을 걱정하리오?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배와 수레가 이르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이라 하였으니, 이는 수레가 어떠한 먼 곳이라도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말이다. 이제 육진(六鎭)의 마포(麻布)와 관서의 명주, 양남(兩南)의 딱종이와 해서(海西)의 솜·쇠, 내포(內浦)의 생선·소금 등은 모두 인민들의 살림살이에서 어느 하나 없지 못할 물건들이며, 청산·보은의 천 그루 대추와 황주·봉산의 천 그루 배와 흥양·남해의 천 그루 귤, 임천·한산의 천 이장 모시와 천 통 벌꿀들은 모두 우리 일상 생활에서 서로 바꾸어 써야 할 것이거늘, 이제 이 곳에서 천한 물건이 저 곳에서는 귀할뿐더러 그 이름은 들어도 실지로 보지 못함은 어찌된 까닭인가?<朴趾源, 車制>
이전투구 泥田鬪狗
진탕에서 싸우는 개. 강인한 성격의 함경도 사람을 평한 말.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몰골 사납게 싸움. |
참고 ☞조선 태조는 즉위 초에 정도전에게 명하여 팔도(八道) 사람을 평하라고 한 일이 있다. 이에 정도전은“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경상도는 송죽대절(松竹大節),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라고 평하였다. 그러나 태조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평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태조는 아무 말도 좋으니 어서 말하라고 거듭 재촉하였다. 이에 정도전은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라고 말했다. 태조는 이 말을 듣고 이내 얼굴이 벌개졌는데, 눈치 빠른 정도전이 이어 말하길“그러하오나 함경도는 또한 석전경우(石田耕牛)올시다”하니 그제야 용안(容顔)에 희색이 만연해지면서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중환은『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산세와 위치를 논하고 있으며, 팔도의 위치와 그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즉, 경상도는 변한 진한의 땅이고 함경 평안 황해도는 고조선 고구려, 강원도는 예맥의 땅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팔도라고는 하지만 원래 경기에는 도(道)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정칙이고 경기도에는 이칭이 없다. 나머지 7도에 대한 이칭과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서(湖西)는 충청도로서 충북 제천 의림지호(義林池湖)의 서쪽이라는 뜻이고, 호남(湖南)은 전라도로서 전북 김제 벽골제호(碧骨堤湖)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영남(嶺南)은 경상도로서 조령(鳥嶺) 죽령(竹嶺)의 남쪽을 말함이요, 강원도를 영동(嶺東) 관동(關東)이라 함은 대관령 동쪽이라는 뜻이고, 해서(海西)는 황해도로서 경기해의 서쪽이라는 뜻이요, 관북(關北)은 함경도로서 철령관(鐵嶺關)의 북쪽을 말함이요, 관서(關西)는 평안도로서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이현령비현령 耳懸鈴鼻懸鈴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될 수 있음을 비유한 말. |
鹿皮曰字(녹피왈자)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
인과응보 因果應報
사람이 짓는 선악의 인업(因業)에 응하여 과보가 있음. |
인면수심 人面獸心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짐승과 다름이 없다. 은혜를 모르고행동이흉악하며 인정을 모르는 사람. |
인명재천 人命在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어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
인사불성 人事不省
의식을 잃어서 사람의 일을 알아 차리지 못함. |
인생조로人生朝露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덧없다는 말. |
고사:전한 무제(武帝) 때(B.C.100)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는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들의 내란에 말려 잡히고 말았다.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는 한사코 항복을 거부하는 소무를 '숫양이 새끼를 낳으면 귀국을 허락하겠다'며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했다. 소무가 들쥐와 풀뿌리로 연명하던 어느 날, 고국의 친구인 이릉(李陵) 장군이 찾아왔다.
이릉은 소무가 고국을 떠난 그 이듬해 5000여의 보병으로 5만이 넘는 훙노의 기병과 혈전을 벌이다가 중과 부적(衆寡不敵)으로 참패한 뒤 부상, 혼절(昏絶)중에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후 이릉은 선우의 빈객으로 후대를 받았으나 항장(降將)이 된 것이 부끄러워 감히 소무를 찾지 못하다가 이번에 선우의 특청으로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이릉은 주연을 베풀어 소무를 위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우는 자네가 내 친구라는 것을 알고, 꼭 데려오라며 나를 보냈네. 그러니 자네도 이제 고생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도록 하세.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다[人生如朝露]'고 하지 않는가."
이릉은 끝내 소무의 절조를 꺾지 못하고 혼자 돌아갔다. 그러나 소무는 그 후(B.C.81) 소제(昭帝:무제의 아들)가 파견한 특사의 기지(機智)로 풀려나 19년 만에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인순고식 因徇姑息
사람은 습관이나 폐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취하다. |
일거수일투족 一擧手一投足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긴다. 아주 조그만 동작. |
고사 : 한유(韓愈)가 과거를 보게 되었을 때 조정의 높은 벼슬자리에 있는 이에게「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라는 편지에 나온다.“큰 바다와 강가에는 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흔히 보는 고기나 조개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물을 얻게 되면 비바람을 일으키며 하늘을 오르내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을 얻기 전에는 그런 힘을 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물과의 거리는 겨우 한 발, 두 발, 한 자, 한 치 사이밖에 안 됩니다. 높은 산과 언덕이 가로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넓은 길과 험한 곳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른 땅에 있으면서 제 힘으로 물에까지 가지 못한다면 수달피의 웃음거리가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만일 힘이 있는 사람이 그 딱한 모습을 가엽게 여기어 물까지 끌어다 줄 생각을 한다면 아마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겨 놓는 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그는 이 편지로 은근히 자기를 밀어주기 바라는 뜻을 전하였다.
일거양득 一擧兩得
한 번 들어 둘을 얻는다.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 |
一擧兩全(일거양전) : 한가지를 들어 두 가지의 일을 이루다.
一石二鳥(일석이조) : 하나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잡음.
一箭雙조(일전쌍조) :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리다.
一擧兩失(일거양실) : 한 가지를 들어 두 가지를 잃다.
고사 :「장자가 범을 찔러 죽이고자 한대 관(관리의 집)을 지키는 심부름꾼이 이를 그치게 하여 말하되“두 범이 방금 막 소를 잡아서 먹느니라(는데) 먹는 것이 맛이 있어 마음이 서로 경쟁심이 있으리니 다투면 곧 반드시 싸우리라.(싸우리니) 싸우면 곧 큰 것은 다치고 작은 것은 죽으리니, 다친(상한) 것을 좇아서 이를 찔러 죽이면 한 번 들어서 반드시 두 범을 잡은 이름이 있으리라.” 장자가 써 그렇게 한다 하고 서서 이를 기다리더니, 조금 있으매 두 범이 과연 싸워서 큰 놈은 상하고 작은 놈은 죽으니, 장자가 상한 놈을 좇아서 이를 찔러 죽이어 한 번에 과연 두 마리 범을 잡은 공이 있느니라.(莊子가 欲刺虎한대 관수子가 止之曰“兩虎가 方且食牛하니 食甘心爭이라 爭則必鬪니 鬪則大者傷하고 小者死하리니 從傷而刺之면 一擧에 必有雙虎之名하리라.”莊子가 以爲然하여 立須之러니 有頃에 兩虎가 果鬪하여 大者가 傷하고 小者가 死하니 莊子가 從傷者而刺之하여 一擧에 果有雙虎之功하니라.)」
** 刺(찌를 척,자) 관(집 관) 수(심부름아이 수) 鬪(싸울 투) 須(기다릴 수) 頃(아까 경,밭두덕 경)
일구월심 日久月心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다. |
일기당천 一騎當千
한 사람이 천을 당해낸다. 무예가 뛰어나다. 또는 기술이 남보다 월등하다. |
일도양단 一刀兩斷
한 칼로 쳐서 둘로 나눈다. 일이나 행동을 머뭇거리지 않고 선뜻 결정하다. |
일망타진 一網打盡
한 번의 그물로 몽땅 때려 잡는다. 한 무리를 한꺼번에 모두 잡음. |
고사:북송(北宋) 4대 황제인 인종(仁宗) 때의 일이다. 당시 북방에는 거란[契丹:요(遼)]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남쪽에서는 중국의 일부였던 안남(安南)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인종은 연약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내치(內治)에는 괄목할 만한 치적이 적지 않았다.
전한(前漢) 5대 황제인 문제(文帝)와 더불어 어진 임금으로 이름난 인종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장려했다. 그리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여 문치(文治)를 폄으로써 이른바 '경력(慶曆:인종의 연호)의 치'로 불리는 군주 정치의 모범적 성세(聖世)를 이룩했다.
이 때의 역사적인 명신으로는 한기(韓琦) 범중엄(范仲淹) 구양수(歐陽脩) 사마광(司馬光) 주돈이(周敦 )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 )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조의(朝議)를 같이하다 보니 명론탁설(名論卓說)이 백출(百出)했고 따라서 충돌도 잦았다. 결국 조신(朝臣)이 양 당으로 나뉘어 교대로 정권을 잡게 되자 20년간에 내각이 17회나 바뀌었는데, 후세의 역사가는 이 단명 내각의 시대를 가리켜 '경력의 당의(黨議)'라 일컫고 있다.
이 무렵, 청렴 강직하기로 이름난 두연(杜衍)이 재상이 되었다. 당시의 관행으로는 황제가 상신(相臣)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으로 조서를 내리는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내강(內降)이라 했다. 그러나 두연은 이 같은 관행은 올바른 정도(政道)를 어지럽히는 것이라하여 내강이 있어도 이를 묵살, 보류했다가 10여 통쯤 쌓이면 그대로 황제에게 돌려보태곤 했다. 이러한 두연의 소행은 성지(聖旨)를 함부로 굽히는 짓이라하여 조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때 공교롭게도 관직에 있는 두연의 사위인 소순흠(蘇舜欽)이 공금을 유용하는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자 평소 두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어사(御史:검찰총장) 왕공진(王拱辰)은 쾌재를 부르고 소순흠을 엄히 문초했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몰아 잡아 가둔 뒤 재상 두연에게 이렇게 모고했다.
"범인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했습나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 유명한 두연도 재임 70일 만에 재상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주] 안남 : 인도차이나 동쪽의 한 지방, 당나라의 안남 도호부(安南都護府)에서 유래한 명칭이어서 베트남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함.
일모도궁 日暮途窮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힘.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 |
일모도원 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몸은 쇠약한데 뜻은 커 앞으로 할 일이 까마득하게 많다. |
일목요연 一目瞭然
한 번 보고 곧 환하게 알 수 있음. |
일면여구 一面如舊
단 한 번 만나 사귀어 옛 친구처럼 친해짐. |
일사불란 一絲不亂
한 줄의 실을 늘어 놓은 것처럼 질서나 체계가 헝클어지지 않고 정연하게 바 로잡히다. |
일사천리 一瀉千里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감. 신속하게 진행되다. 문장이나 글이 명쾌하다. |
일어탁수 一魚濁水
한 마리의 고기가 물을 흐리듯 한 사람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다. |
☞사람은 하나하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가 의식을 하건 안 하건, 둘레의 대기(大氣)에 파장을 일으켜 영향을 끼친다. 착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착한 파장으로 밝은 영향을 끼치고, 착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또한 착하지 못한 파장으로 어두운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순간순간 내게 주어진 그 생명력을 값있게 쓰고 있는지, 아니면 부질없이 탕진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삶의 양(量)을 따지려면 밤낮없이 채우는 일에만 급급해야겠지만, 삶의 질(質)을 생각한다면 비우는 일에 보다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일언반구 一言半句
극히 짧은 말. |
일언이폐지 一言而蔽之
한 마디의 말로써 능히 그 전체를 대변하다. |
일엽지추 一葉知秋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안다. 한가지 일을 보고 장차 오게 될 일을 미리 짐작함. |
고사 : 문록(文錄)에 당나라 사람의 시라고 하여“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라고 소개하였다. 곧“산의 중은 여러 갑자년을 풀지 못하나, 나뭇잎 하나가 지는 것으로 가을이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회남자(淮南子)에는“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밝히고, 한 잎이 지는 것을 보고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안다. 병 속의 얼음을 보고서 세상이 추워졌음을 알 수 있노라.(以小明大 見一葉落 而知歲之將暮, 覩甁中之氷, 而天下之寒)”
일엽편주 一葉片舟
한 조각 작은 배. |
일의대수一衣帶水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이라는 뜻. 곧 ① 간격이 매우 좁음. ② 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
고사:서진(西晉:265∼317)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 갈( ) 선비(鮮卑) 강(羌) 저( )등 5개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에서는 송(宋) 제(齊) 양(梁) 진(陳:557∼589)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577∼580)를 물려받아 수(隋:581∼618)나라를 세운 문제(文帝:581∼604)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의 요해(要害)로서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후 남안(南岸)의 건강(建康:南京)에 역대 남조의 도읍이 있었다. 문제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일이관지 一以貫之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다. 또는 막힘없이 끝까지 밀고 나간다. |
初志一貫(초지일관). 始終一貫(시종일관). 初志不變(초지불변).
고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느냐?”자공이“예.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니“아니다. 나는 하나를 가지고 그것을 관철하고 있는 것이다.”(子曰“賜也아 女는 以予爲多學而識女與아.”對曰“然니이다. 非與니까.”曰“非也라 予는 一以貫之니라.”」라고 하셨다. 다만 曾子만이 정확히 이해하였는데 그 증거로 이인편(里仁篇)에 보면 공자께서“증삼(曾參)아. 나의도는 일이관지하는 것이다.”증자가“예”하고 대답했다. 공자가 나가자 문인들이“무슨 뜻입니까?”증자가“선생님의 도는 자기의 정성을 다하며 자기를 용서하는 것처럼 남을 용서할 줄 아는 데 있을 뿐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일일삼추 一日三秋
하루가 가을의 석 달 같다. 그리워하여 몹씨 애태우며 기다림. |
一刻如三秋(일각여삼추)
일자천금 一字千金
한 글자의 값어치가 천금이다. 지극히 가치있는 문장. |
一字百金(일자백금) : 백(百), 천(千), 만(萬)은 개수(個數)를 나타내지만 여기서는‘많다의 뜻으로 쓰여‘百 = 千’의 관계이다.
고사 : 秦의 태자 정(政)이 즉위하여 진시황(秦始皇)이 되자 여불위(呂不韋)는 활살자재(活殺自在:살리고 죽이는 것이 자기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 즉 권력을 쥐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의 권세를 누렸다. 그 당시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여불위는 강한 진나라가 그들에게 못미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재주있는 선비들을 불러 모아 견문을 쓰게 하여 팔람(八覽)과 육론(六論), 십이기(十二紀) 등의 책으로 편집하고 천지만물(天地萬物)과 고금(古今)의 일 등을 다 갖추었다고 생각하여『여씨춘추(呂氏春秋)』라 하고,「함양 시문에 널리 알려서 그 위에 천금을 걸어두고 제후 유사 빈객들을 끌어 들여‘한 글자라도 첨삭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布咸陽市門하여 懸千金其上하고 延諸侯游士賓客하여 有能增損一字면 予千金하리라.)」고 하였다.
일장춘몽 一場春夢
한 바탕의 봄 꿈. 인생의 덧없는 부귀영화. |
일점홍 一點紅(紅一點)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있다. 여럿 속에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또는 많은 남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오직 하나뿐인 여자. |
일조일석 一朝一夕
하루 낮과 하루 밤. 대단히 짧은 시간. |
일취월장 日就月將
날로 나아가고 달로 나아가다. 날로 달로 끊임없이 진보하고 발전하다. |
日進月步(일진월보). 進步(진보). 發展(발전). 進前(진전).
일파만파 一波萬波
한 사건이 그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잇달아 많은 사건으로 번짐. |
一波재動萬波隨(일파재동만파수)
일패도지 一敗塗地
한 번 싸우다가 여지없이 패하여 다시 일어나지 못함. |
일편단심 一片丹心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충성된 마음. |
忠誠心(충성심). 精誠(정성).
일필취지 一筆揮之
글씨를 단숨에 힘차고 시원하게 써 내려가다. |
일확천금 一攫千金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다. |
임갈굴정 臨渴掘井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팜. 준비없이 일을 당하여 허둥지둥하고 애씀. |
임기응변 臨機應變
기회에 임해 변화에 순응함. 그때 그때의 형편에 따라 그에 알맞게 일을 처리하다. |
임난주병 臨難鑄兵
난리가 난 뒤에 무기를 만든다. 이미 때가 늦었음. |
입신양명 立身揚名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리다. |
입이저심 入耳著心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 속에 붙인다. 들은 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는다. |
고사 :“「군자의 학문은 그 배운 것이 귀로 들어가 마음에 붙어 온몸에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근소근 말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니 한결같이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 정도이니 어찌 칠 척의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君子之學은 入乎耳著乎心하여 布乎四體하여 形乎動靜이라. 端而言하고 연而動하니 一可以爲法則이라. 小人之學也는 入乎耳하여 出乎口라. 口耳之間은 則四寸이니 曷足以美七尺之軀哉인저.)」옛날의 성현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학문을 하였으나 오늘날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 군자는 자신을 윤택하게 하려는 것이고 소인은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지행일치(知行一致)를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荀子, 勸學篇)
입추지지 立錐之地
송곳 하나 세울 만한 땅. 매우 좁아서 조금도 여유가 없다. |
자가당착 自家撞着
자기의 언행이 전후(前後) 모순(矛盾)되어 일치하지 않음. |
矛盾(모순). 二律背反(이율배반).
자강불식 自强不息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함. |
자격지심 自激之心
자기가 일을 해놓고 그 일에 대하여 스스로 미흡하게 여기는 마음. |
자급자족 自給自足
자기의 수요를 자기가 생산하여 충당함. |
자수성가 自手成家
물려 받은 재산없이 제 손으로 재산을 모아 한 살림을 이룸. |
자두연기 煮豆燃기 (삶을 자·콩 두·불탈 연·콩깍지 기)
콩을 �는 데 콩깍지를 태운다. 형제끼리 서로 미워하고 들볶는 것. |
煎豆燃豆기(전두연두기)
骨肉相爭(골육상쟁) :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다툼.(?? 骨肉相殘)
兄弟혁墻(형제혁장) : 형제가 담 안에서 서로 다툼.
자승자박 自繩自縛
자기의 줄로 자기를 묶다. 즉 자기의 언행으로 인하여 자신이 꼼짝 못하게 되는 일. |
⑤ ㉮ : 맹신(盲信) ㉯ : 응용(應用)
자아도취 自我陶醉
자기가 어떤 것에 끄려 취하다시피 함. |
자업자득 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果報)를 자기가 받음. |
자중지란 自中之亂
자기네 한 동아리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 |
자포자기 自暴自棄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지 않음. |
고사 :전국 시대를 살다간 아성(亞聖) 맹자(孟子)는 '자포''자기'에 대해《맹자》〈이루편(離婁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포(自暴: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자기(自棄:스스로를 버림)하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입만 열면 예의 도덕을 헐뜯는 것을 자포라고 한다. 한편 도덕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인(仁)이나 의(義)라는 것은 자기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원래 선(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도덕의 근본 이념인 '인'은 편안한 집[安 ]과 같은 것이며, 올바른 길인 '의'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정로(正路:正道)이다. 편안한 집을 비운 채 들어가 살려 하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버린 채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로다."
[주] '자포자기'란 말은 맹자가 어느 때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학대(虐待)하고 돌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
자행자지 自行自止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음. |
자화자찬 自畵自讚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기가 칭찬하다.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스스로 칭찬하다. |
작수성례 酌水成禮
물을 떠 놓고 혼례를 행한다. 형세가 가난하여 혼례를 간략하게 지냄. |
작심삼일 作心三日
마음 먹은 지 삼일이 못간다. 결심이 얼마 되지 않아 흐지부지 되다. |
高麗公事三日(고려공사삼일). 朝令暮改(조령모개). 朝變夕改(조변석개).
장삼이사 張三李四
장씨네 셋째아들과 이씨네 넷째아들. 지극히 평범한 사람. |
장중보옥 掌中寶玉
손에 쥔 옥. 사랑하는 자식이나 매우 귀중한 물건. |
적반하장 賊反荷杖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 잘못한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을 윽박지르다. |
적소성대 積小成大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 |
띠끌 모아 태산.
적수공권 赤手空拳
맨손, 맨주먹.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 |
적자생존 適者生存
환경에 적합한 것만이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멸망한다. |
전광석화 電光石火
일이 매우 빠름. |
전복후계 前覆後戒
앞 수레가 뒤집힌 자국은 뒷 수레의 좋은 경계가 된다. 앞의 실수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 |
不踏覆轍(부답복철) : 覆鐵을 밟지 말라.
前車可鑑(전거가감). 覆車之戒(복거지계) : 앞서 간 수레를 거울로 삼다.
전전긍긍 戰戰兢兢
두려워서 매우 조심함. |
고사 :전전(戰戰)이란 몹시 두려워서 벌벌 떠는 모양이고, 긍긍(兢兢)이란 몸을 움추리고 조심하는 모양을 말한다.
이 말은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詩集)인《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의 '소민(小旻)'이라는 시(詩)의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데 그 시의 내용은 모신(謀臣)이 군주의 측근에 있으면서 옛 법을 무시한 정치를 하고 있음을 개탄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감히 맨손으로 범을 잡지 못하고 [不敢暴虎(불감포호)]
감히 걸어서 강을 건너지 못한다 [不敢憑河(불감빙하)]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人知其一(인지기일)]
그 밖의 것은 전혀 알지 못하네 [莫知其他(막지기타)]
두려워서 벌벌 떨며 조심하기를 [戰戰兢兢(전전긍긍)]
마치 깊은 연못에 임하듯 하고 [如臨深淵(여림심연)]
살얼음을 밟고 가듯 하네 [如履薄氷(여리박빙)]
[주] 요즈음에는 '죄를 짓거나 잘못을 저지르고 적발당할까봐 쩔쩔매는 경우'에 이 말이 흔히 쓰이고 있음.
전전반측 輾轉反側
누워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
輾轉不寐(전전불매)
고사 : 孔子가 엮은 시경(詩經) 국풍(國風)편에 나오는 관관저구(關關雎鳩)라는 한 시구(詩句)로 이 시는 성인으로 이름높은 周 文王과 그의 아내 태사(太사)를 높이 칭송한 것이라 한다. 내용은 강기슭에서 울고 있는 저구(雎鳩)라는 물새를 아름다운 숙녀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參差荇菜를 左右流之로다. 들쭉날쭉한 마름 풀을 이리저리 헤치면서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요조숙녀를 자나깨나 찾는도다.
求之不得하니 寤寐思服이라. 이를 구하여 얻을 수 없어 늘 마음에 그리고 생각한 지.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도다. 오래고 오랜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도다.
즉 강가에서 마름을 따고 있는 아름다운 처녀, 물새는 그 주변에서 또한 맑은 소리로 울고 있고 그런 정황 가운데서 요조숙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전차복철前車覆轍
앞 수레가 엎어진 바퀴 자국이란 뜻. 곧 ① 앞사람의 실패. 실패의 전례. ② 앞사람의 실패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 |
고사: ① 전한 5대 황제인 문제(文帝)때 가의(賈誼:B.C. 168∼210)라는 명신이 있었다. 그는 문제가 여러 제도를 개혁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어 역사에 인군(仁君)으로 이름을 남기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인데, 당시 그가 상주한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속담에 '앞 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前車覆轍]'은 뒷수레를 위한 교훈[後車之戒]이란 말이 있사옵니다. 전 왕조인 진(秦)나라가 일찍 멸망한 까닭은 잘 알려진 일이 온데, 만약 진나라가 범한 과오를 피하지 않는다면 그 전철(前轍)을 밟게 될 뿐이옵니다. 국가 존망, 치란(治亂)의 열쇠가 실로 여기에 있사오니 통촉하시오소서."
문제는 이후 국정 쇄신(國政刷新)에 힘써 마침내 태평 성대를 이룩했다고 한다.
② 이 말은《설원(說苑)》〈선설(善說)〉에도 실려 있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문후(文侯)가 어느 날 중신들을 불러 주연을 베풀었다. 취흥(醉興)이 도도한 문후가 말했다.
"술맛을 보지 않고 그냥 마시는 사람에게는 벌주를 한 잔 안기는 것이 어떻겠소?"
모두들 찬동했다. 그런데 문후가 맨 먼저 그 규약을 어겼다. 그러자 주연을 주관하는 관리인 공손불인(公孫不仁)이 술을 가득 채운 큰잔을 문후에게 바쳤다. 문후가 계속 그 잔을 받지 않자 공손불인은 이렇게 말했다.
"'전차 복철은 후차지계'란 속담이 있사온데, 이는 전례를 거울삼아 주의하라는 교훈이옵니다. 지금 전하께서 규약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 규약을 지키지 않는 전례를 남기신다면 누가 그 규약을 지키려 하겠나이까? 하오니, 이 잔을 받으시오소서."
문후는 곧 수긍하고 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 후 공손불인을 중용했다고 한다.
전화위복 轉禍爲福
화가 바뀌어 복이 되다. |
고사: 전국시대 합종책(合從策)으로 6국, 곧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재상을 겸임했던 종횡가(縱橫家:모사) 소진(蘇秦)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옛날에 일을 잘 처리했던 사람은 '화를 바꾸어 복을 만들었고[轉禍爲福]' 실패한 것을 바꾸어 공(功)으로 만들었다[因敗爲功]."
어떤 불행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주] 소진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주(周)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산서성(山西省) 내] 사람. 근처의 귀곡(鬼谷)에 은거하던 수수께끼의 종횡가 귀곡 선생[鬼谷先生:제반 지식에 통달한 인물로서 종횡설을 논한《귀곡자(鬼谷子)》3권을 지었다고 함]에게 배웠음. 따라서 소진이 죽은 뒤 연횡책(連橫策)을 펴 합종책을 깨뜨린 장의(張儀:?∼B.C. 309)와는 동문이 되는 셈. 제(齊)나라에서 살해됨.(?∼B.C. 317).
절대가인 絶代佳人
이 세상에 비할 데 없는 미인. |
絶代(世)佳(美)人〔절대(세)미(가)인〕
傾國之色(경국지색). 羞花閉月(수화폐월). 國香(국향). 國色(국색).
절장보단 節長補短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보탠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완하다. |
절차탁마 切磋琢磨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다. |
切磋(절차). 切磨(절마).
고사: 언변과 재기가 뛰어난 자공(子貢)이 어느 날 스승인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가난하더라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으며[貧而無諂] 부자가 되더라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富而無驕]. 그건 어떤 사람일까요?"
"좋긴 하지만,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貧而樂道] 부자가 되더라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느니라[富而好禮]."
공자의 대답에 이어 자공은 또 이렇게 물었다.
"《시경(詩經)》에 '선명하고 아름다운 군자는 뼈나 상아(象牙)를 잘라서 줄로 간 것[切磋]처럼 또한 옥이나 돌을 쪼아서 모래로 닦은 것[硏磨]처럼 밝게 빛나는 것 같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선생님이 말씀하긴 '수양에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일까요?"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賜:자공의 이름)야, 이제 너와 함께《시경》을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 수 있는 인물이로다."
절치부심 切齒腐心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이다. |
점입가경 漸入佳境
점점 재미있는 경지로 들어감. |
정문일침 頂門一針
정수리에 침을 놓다. 남의 잘못을 따끔하게 비판하거나 충고하다. |
정정당당 正正堂堂
태도나 처지가 바르고 떳떳하다. |
정저지와 井底之蛙
우물 밑의 개구리. 소견이나 견문이 몹시 좁은 것. |
井底不可以語於海(정저불가이어어해). 坐井觀天(좌정관천).
尺澤之예(척택지예) : 작은 못 속의 암고래. 식견이 매우 좁은 사람.
遼東豕(요동시) : 요동의 어떤 사람의 집에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머리가 흰색이었다. 신 기하여 임금께 바치려고 하동(河東)에 갔는데 그곳의 돼지들이 모두 머리가 희므로 부끄러워 되돌아 왔다는 故事.
고사 :『莊子』추수편에 보면“황하(黃河)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강물을 따라 처음으로 북해(北海)에 와 동해를 바라보았다. 매우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 약(若)에게 물으니「‘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사는 곳에 구속된 까닭이며 여름 벌레가 얼음을 말할 수 없는 것은 한 계절에 고정되어 산 까닭이며 정직하지 못한 선비는 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으니 세속적인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井蛙가 不加以語於海者는 拘於虛也이며 夏蟲이 不可以語於氷者는 篤於時也이며 曲士는 不可以語於道者니 束於敎也니라.)」그러나 당신은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자기가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에 이젠 당신과 함께 천하의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대답했다.”했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인생의 덧없음. 또는 우리가 거처하는 우주의 만물은 항상 돌고 변하여서 같은 모습으로 꽉 정돈하여 있지 아니함. |
조강지처 糟糠之妻
술 지게미나 쌀겨와 같은 험한 음식을 함께 먹은 아내. 가난할 때부터 함께 고생해 온 아내. |
고사 :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는 누이이며 미망인(未亡人)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는데 그녀는 대사공(大司公)인 송홍(宋弘)을 마음에 두고 좋아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이것을 눈치채고 어느 날 송홍을 불러 마음을 떠 보았다.「홍에게 일러 말하기를“속언에 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인정인가.”송홍이 대답하여 말하기를“가난하고 미천할 때의 사귐은 잊을 수 없고 술지게미와 쌀겨를 함께 먹던 아내는 집에서 내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謂弘曰 諺言에 貴易交하고 富易妻하다라하니 人情乎아. 弘對曰 貧賤之交는 不可忘이요 糟糠之妻는 不下堂이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령모개 朝令暮改
아침에 명령을 내렸다가 저녁에 고친다. 법령이나 착수한 일을 자주 뒤바꾸다. |
조명시리朝名市利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
고사: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 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 業)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 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주] 장의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위(魏)나라 사람. 합종책(合縱策)으로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과 함께 수수께끼의 종횡가인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종횡의 술책을 배움.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아 진나라의 재상이 됨. 소진이 제(齊)나라에서 살해되자(B.C. 317) 6국을 순방, 유세(遊說)하여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연횡책(連◈策)을 성사시켜 6국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함. 혜문왕이 죽은 후 참소(讒訴)를 당하여 위나라에서 객사(客死)함. (?∼B.C. 309).
조문석사 朝聞夕死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짧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야 한다. |
조반석죽 朝飯夕粥
아침에는 밥, 저녁에는 죽. 가까스로 살아 가는 가난한 삶. |
조불려석 朝不慮夕
아침에 저녁 일을 헤아리지 못함. 당장을 걱정할 뿐 다음을 돌아볼 겨를이 없음. |
조삼모사 朝三暮四
도토리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 준다. 똑같은 것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를 우롱하는 임시변통의 사기술. |
어린 중 젓국 먹이듯 : 도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를 속여서 나쁜 것 을 하라고 권함.
고사 :「宋나라 때 저공이 있어, 워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앞으로 그 먹이를 줄이고자 하나 여러 원숭이가 앞으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이를 속이어 말하기를“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내거늘 바로 말하기를“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하였다.(宋有狙公者愛狙하여 養之成群이라. 能解狙之意하고 狙亦得公之心이라. 損其家口하여 充狙之欲이러니 俄而궤焉이라. 將限其食이나 恐衆狙之不馴於己也하여 先광之曰“與若서호대 朝三而暮四면 足乎아.”衆狙皆起而怒어늘 俄而曰“與若서호대 朝四而暮三이면 足乎아.”衆狙가 皆伏而喜하니라.)」(列子, 黃帝篇)
** 狙(원숭이 저) 俄(잠시 아) 궤(다할 궤) 馴(길들일 순) 서(상수리 서) 與(줄 여) 若(너 약)
조상육 俎上肉
아무리 애써도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할 수 없는 처지. |
도마위에 오른 고기.
독 안에 든 쥐.
산 밖에 난 범이요 물 밖에 난 고기.
그물에 든 고기.
조장 助長
일을 도와서 두드러지게 만듦. 또는 일을 도와서 나쁜 방향으로 이끎. |
고사 :「宋나라 사람이 그 싹이 크지 않은 것을 슬프게 여겨 이를 뽑아 올리는 사람이 있거늘 피로한 모습으로 돌아가서 집 사람 보고 일러 말하기를“내가 오늘 피곤하다. 내가 벼의 싹을 도와서 크게 했다.”하거늘 그 사람이 가서 이를 보니 그 싹은 곧 말라서 죽었다. 온 누리의 사람들이 싹을 뽑아 올리지 않은 사람이 적으니 아무 이익이 없다고 버리는 사람은 싹을 기르지 않는 사람이요, 이를 도와서 크게 하는 사람은 억지로 싹을 뽑아 올리는 것이니 한갖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이를 해치는 것이다.(宋人이 有閔其苗之不長而알之者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今日에 病矣와라 余가 助苗長矣로다”하거늘 其子往視之하니 苗則枯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니 以爲無益而舍之者는 不耘苗者也요 助之長者는 알苗者也니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 閔(슬플 민) 苗(싹 묘) 알(뽑을 알) 芒(어두울 망) 枯(마를 고) 耘(김맬 운) 徒(한갖 도)
조족지혈 鳥足之血
새발의 피. 분량이 매우 적은 것. |
종무소식 終無消息
끝내 소식이 없다. |
종횡무진 縱橫無盡
행동이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自由自在)로 하다. |
좌고우면 左顧右眄
여기저기 돌아다 봄. 이것저것 생각하며 결정을 짓지 못함. |
좌단 左袒
웃옷의 왼쪽 어깨를 벗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편들어 동의함을 이르는 말. |
고사: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황후인 여태후(呂太后)가 죽자(B.C. 180) 이제까지 그녀의 위세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던 유씨(劉氏) 일족과 진평(陳平) 주발(周勃) 등 고조의 유신(遺臣)들은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북군(北軍)을 장악한 조왕(趙王) 여록(呂祿), 남군(南軍)을 장악한 여왕(呂王) 여산(呂産)을 비롯한 외척 여씨(呂氏) 타도에 나섰다.
그간 주색에 빠진 양 가장했던 우승상(右丞相) 진평은 태위(太尉) 주발과 상의하여 우선 여록으로부터 상장군의 인수(印綬)를 회수하기로 했다. 마침 어린 황제를 보필하는 역기( 寄)가 여록과 친한 사이임을 안 진평은 그를 여록에게 보냈다. 역기는 여록을 찾아가 황제의 뜻이라 속이고 상장군의 인수를 회수해 왔다. 그러자 주발은 즉시 북군의 병사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원래 한실(漢室)의 주인은 유씨이다. 그런데 무엄하게도 여씨가 유씨를 누르고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니 이는 한실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나 상장군 주발은 천하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여기서 여씨에게 충성하려는 자는 우단(右袒)하고, 나와 함께 유씨에게 충성하려는 자는 좌단(左袒)하라."
그러자 전군(全軍)은 모두 좌단하고 유씨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다시 유씨에게로 돌아갔다.
좌불안석 坐不安席
앉기는 앉았으나 편안한 자리가 되지 못하다. 마음이 불안하여 가만히 있지 못함. |
좌정관천 坐井觀天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면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일에 어두운 것. |
좌충우돌 左衝右突
이리저리 닥치는대로 부딪치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맞딱뜨리다. |
주객전도 主客顚倒
주인과 손님, 앞뒤의 순서가 서로 뒤바뀌다. |
주경야독 晝耕夜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다. 바쁜 중에서도 책을 읽어 어렵게 공부하다. |
주마가편 走馬加鞭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더 부추기거나 몰아치다. |
주마간산 走馬看山
달리는 말을 타고 산천을 구경하다. 자세히 살피지 못하고 대충대충 보고 지나가다. |
주지육림 酒池肉林
술이 못을 이루고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 매우 호화스럽고 방탕한 생활. |
肉山脯林(육산포림) : 고기가 산을 이루고 말린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
고사 :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과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원래 지용(智勇)을 겸비한 현주(賢主)였으나 그들은 각기 말희( 喜), 달기( 己)라는 희대의 요녀독부(妖女毒婦)에게 빠져 사치와 주색에 탐닉하다가 결국 폭군음주(暴君淫主)라는 낙인이 찍힌 채 나라를 망치 말았다.
하나라 걸왕은 자신이 정복한 오랑캐의 유시씨국(有施氏國)에서 공물로 바친 희대의 요녀 말희에게 반해서 보석과 상아로 장식한 궁전을 짓고 옥으로 만든 침대에서 밤마다 일락(逸樂)에 빠졌다. 걸왕은 그녀의 소망에 따라 전국에서 선발한 3000명의 미소녀(美少女)들에게 오색 찬란한 옷을 입혀 날마다 무악(舞樂)을 베풀기도 했다.
또 무악에 싫증이 난 말희의 요구에 따라 궁정(宮庭) 한 모퉁이에 큰 못을 판 다음 바닥에 새하얀 모래를 깔고 향기로운 미주(美酒)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뭇 둘레에는 고기로 동산을 쌓고 포육(脯肉)으로 숲을 만들었다. 걸왕과 말희는 그 못에 호화선은 띄우고, 못 둘레에서 춤을 추던 3000명의 미소녀들이 신호의 북이 울리면 일제히 못의 미주를 마시고 숲의 포육을 탐식(貪食)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이 같은 사치음일(奢侈淫佚)의 나날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력은 피폐하고 백성의 원성은 하늘에 닿았다. 이리하여 걸왕은 하나라에 복속(服屬)했던 은나라 탕왕(湯王)에게 주벌(誅伐)당하고 말았다.
또한 은나라 마지막 군주인 주왕(탕왕으로부터 28대째)의 마음을 사로잡은 달기는 주왕이 정벌한 오랑캐의 유소씨국(有蘇氏國)에서 공물로 보내 온 희대의 독부였다. 주왕은 그녀의 끝없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의해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그래서 창고에는 백성들로부터 수탈한 전백(錢帛)과 곡식이 산처럼 쌓였고, 국내의 온갖 진수기물(珍獸奇物)은 속속 궁중으로 징발되었다. 또 국력을 기울여 호화 찬란한 궁정을 짓고 미주와 포육으로 '주지육림'을 만들었다.
그 못 둘레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한 무리가 음란한 북리무악(北里舞樂)에 맞추어 광란의 춤을 추면 주왕의 가슴에 안긴 달기는 몰아(沒我)의 황홀경( 惚境)에서 음탕한 미소를 짓곤 했다. 또 때로는 낮에도 장막을 드리운 방에서 촛불을 밝히고 벌이는 광연(狂宴)이 주야장천(晝夜長川) 120일간이나 계속되기도 했는데 은나라 사람들은 이를 장야지음(長夜之飮)이라 일컬었다.
이같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광태(狂態)를 보다못해 충신들이 간하면 주왕은 도리어 그들을 제왕의 행동을 비방하는 불충자로 몰아 가차없이 포락지형( 烙之刑)에 처하곤 했다. 포락지형이란 기름칠한 구리 기둥[銅柱]을 숯불 위에 걸쳐놓고 죄인을 그 위로 건너가게 하는 일종의 잔인 무도한 사형 방법인데, 미끄러운 구리 기둥에서 숯불 속으로 떨어져 타 죽은 희생자들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모습까지도 잔인한 달기의 음욕(淫慾)을 돋우는 재료가 되었다. 이렇듯 폭군 음주로 악명을 떨치던 주왕도 결국 걸왕의 전철을 밟아 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죽림칠현 竹林七賢
중국 魏나라 말엽 晉나라 초기에 허무를 주장하여 죽림에서 술을 마시며 청담(淸談)을 하고 지내던 일곱 선비. |
죽마고우 竹馬故友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함께 놀던 옛 친구. 젊을 때부터 함께 놀며 자란 오래된 친구. |
고사: 진(晉:東晉)나라 12대 황제인 간문제(簡文帝:371∼372) 때의 일이다. 촉(蜀)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桓溫)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殷浩)라는 은사(隱士)를 건무장군(建武將軍) 양주자사(揚州刺史)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反目)했다. 왕희지(王羲之)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하나인 후조(後趙)의 왕 석계룡(石季龍)이 죽고 호족(胡族)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上疏)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竹馬故友]'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준조절충 樽俎折衝
'술자리[樽俎(間)]에서 유연한 담소(談笑)로 적의 창끝을 꺾어 막는다[折衝]는 뜻으로, 외교를 비롯하여 그 밖의 교섭에서 유리하게 담판하거나 흥정함을 이르는 말. |
고사:춘추 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신하인 최저(崔 )에게 시해되자 동생이 뒤를 잇고 경공(景公)이라 일컬었다. 경공은 최저를 좌상(左相)에 임명하고 그를 반대하는 자는 죽이기로 맹세까지 했다. 이어 모든 신하가 맹세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안영(晏 :晏子)만은 맹세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고 한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이윽고 최저가 살해되자 경공은 안영을 상국(相國)에 임명했다. 안영은 온후박식(溫厚博識)한 인물로서 '한 벌의 호구(狐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으로 만든 갖옷)를 30년이나 입었을[一狐 三十年]'정도로 검소한 청백리이기도 했다. 한 번은 경공이 큰 식읍(食邑)을 하사하려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사양했다고 한다.
"욕심이 충족되면 망할 날이 가까워지나이다."
당시 중국에는 대국만 해도 12개국이나 있었고 소국까지 세면 100개국이 넘었다. 안영은 이들 나라를 상대로 빈틈없이 외교 수완을 발휘하여 제나라의 지위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안영의 외교 수완에 대해 그의 언행을 수록한《안자 춘추(晏子春秋)》는 이렇게 쓰고 있다.
"술통과 도마 사이[樽俎間:술자리]를 나가지 아니하고 1000리(里) 밖에서 절충한다 함은, 그것은 안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주] 준조 사이 : '술통과 도마 사이'란 뜻으로, 술자리(연회석)를 가리키는 말.
중과부적 衆寡不敵
많은 것에 적은 것은 적이 되지 못한다. |
고사: 전국 시대, 제국을 순방하며 왕도론(王道論)을 역설하던 맹자가 제(齊)나라 선왕(宣王)에게 말했다.
"전하 스스로는 방일(放逸)한 생활을 하시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천하의 패권(覇權)을 잡으려 드시는 것은 그야말로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사옵니다."
"아니, 과인의 행동이 그토록 나쁘단 말이오?"
"가령, 지금 소국인 추(鄒)나라와 대국인 초(楚)나라가 싸운다면 어느 쪽이 이기겠나이까?"
"그야, 물론 초나라가 이길 것이오."
"그렇다면 소국은 결코 대국을 이길 수 없고 '소수는 다수를 대적하지 못하며[衆寡不敵]' 약자는 강자에게 패하기 마련이옵니다. 지금 천하에는 1000리(里) 사방(四方)의 나라가 아홉 개 있사온데 제나라도 그중 하나이옵니다. 한 나라가 여덟 나라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결코 소국인 초나라가 대국인 초나라를 이기려 하는 것과 같지 않사옵니까?"
이렇게 몰아세운 다음 맹자는 예의 왕도론을 설파했다.
"왕도로써 백성을 열복(悅服)시킨다면 그들은 모두 전하의 덕에 기꺼이 굴복할 것이오며 또한 천하는 전하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이옵니다…‥."
중구난방 衆口難防
많은 사람의 입은 막기가 어렵다. 여러 의견을 하나하나 받아 넘기기 어렵다. |
중상모략 中傷謀略
터무니없는 말로 헐뜯거나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써서 일을 꾸미다. |
중석몰촉 中石沒鏃
쏜 화살이 돌에 깊이 박혔다는 뜻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전력을 다하면 어떤 일에도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
고사:① 전한(前漢)의 이광(李廣)은 영맹한 흉노족의 땅에 인접한 농서[ 西:감숙성(甘肅省)] 지방의 무장 대가(武將大家) 출신으로, 특히 궁술(弓術)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 문제(文帝) 14년(B.C. 166), 이광은 숙관(肅關)을 침범한 흉노를 크게 무찌를 공으로 시종 무관이 되었다. 또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때려잡아 천하에 용명(勇名)을 떨치기도 했다. 그 후 이광은 숙원이었던 수비 대장으로 전임되자 변경의 성새(城塞)를 전전하면서 흉노를 토벌했는데 그때도 늘 이겨 상승(常勝) 장군으로 통했다. 그래서 흉노는 그를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 부르며 감히 성해를 넘보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황혼 녘에 초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고 일발필살(一發必殺)의 신념으로 활을 당겼다. 화살은 명중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꼼짝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화살이 깊이 박혀 있는 큰돌이었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시 쏘았으나 화살은 돌에 명중하는 순간 튀어 올랐다. 정신을 한데 모으지 않았기 때문이다.
②《한시외전(韓詩外專)》에도 초(楚)나라의 웅거자(熊渠子)란 사람이 역시 호랑이인 줄 알고 쏜 화살이 화살 깃까지 묻힐 정도로 돌에 깊이 박혔다[射石飮羽]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언부언 重言復言
한 말을 또 함. |
중원축록 中原逐鹿
중원[天下]의 사슴[帝位]을 쫓는다는 뜻. 곧 ① 제위(帝位)를 다툼. ② 정권을 다툼. ③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함. |
고사:한(漢)나라 고조(高祖) 11년(B.C. 196), 조(趙)나라 재상이었던 진희(陳 )가 대(代:산서성)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그 틈에 진희와 내통하고 있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도읍 장안(長安)에서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여후(呂后:고조의 황후)와 재상 소하(蕭何)에게 모살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난을 평정하고 돌아온 고조는 여후에게 물었다.
"한신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괴통( 通)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하더이다."
괴통은 제(齊)나라의 언변가로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 제왕(齊王)이었던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람이다. 그 후 고조 앞에 끌려 나온 괴통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그때 한신이 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날 폐하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고조는 크게 노했다.
"저놈을 당장 삶아 죽여라!"
그러자 괴통은 이렇게 항변했다.
"폐하, 신은 전혀 삶겨 죽을 만한 죄를 진 적이 없나이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각지에 영웅 호걸들이 일어 났사옵고, 진나라가 사슴[鹿:帝位]을 잃음으로 해서 천하는 모두 이것을 쫓았던[逐] 것이오며, 그중 키 크고 발빠른 걸물(傑物:고조 유방을 가리킴)이 이것을 잡았던 것이옵니다. 그 옛날 대악당인 '도척(盜 )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었다[ 狗吠堯]'고 해서 요 임금이 악인이라 짖은 것은 아니옵니다. 개란 원래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온데 당시 신은 오직 한신만 알고 폐하를 몰랐기 때문에 짖었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천하가 평정된 지금 난세에 폐하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노렸다 해서 삶아 죽이려 하신다면 이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기를…‥."
빈틈없는 항변에 할 말을 잃은 고조는 괴통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요 : 중국 고대의 이상적 성군(聖君).
도척 : 춘추 시대, 성인(聖人)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같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큰 도둑. 도당 9000여 명과 늘 전국을 휩쓸며 같은 악행(惡行)을 일삼음으로 해서 대악당(大惡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함.
지기지우 知己之友
자기의 속마음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 |
지어지앙 池魚之殃
연못 속 물고기의 재앙이란 뜻. 곧 ① 화(禍)가 엉뚱한 곳에 미침. ② 상관없는 일의 재난에 휩쓸려 듦의 비유. 언걸 먹음. |
고사:춘추 시대 송(宋)나라에 있었던 일이다. 사마(司馬:大臣) 벼슬에 있는 환퇴(桓 )라는 사람이 천하에 진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지어 처벌을 받게 되자 보석을 가지고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러자 환퇴의 보석 이야기를 듣고 탐이 난 왕은 어떻게든 그 보석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은 측근 환관에게 속히 환퇴를 찾아내어 보석을 감춰 둔 장소를 알아보라고 명했다. 환관이 어렵사리 찾아가자 환퇴는 서슴없이 말했다.
"아, 그 보석 말인가? 그건 내가 도망칠 때 궁궐 앞 연못 속에 던져 버렸네."
환관이 그대로 보고하자 왕은 당장 신하에게 그물로 연못 바닥을 훑어보라고 명했다. 그러나 보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못의 물을 다 쳐낸 다음 바닥을 샅샅이 뒤졌으나 보석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연못의 물을 퍼 없애는 바람에 결국 애꿎은 물고기들만 다 말라죽고 말았다.
지록위마 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된다. |
고사 : 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죽자 환관(宦官) 조고(趙高)가 음모를 꾸며 시황제의 장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둘째 아들 호해(胡亥)를 즉위시켜 권력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였다. 어느 날 그가 야심을 품고「사슴을 가지고 와서 이세에게 바치며 말하기를“말입니다.”하니 이세가 웃으며 말하기를“승상이 잘못 안 것이냐? 사슴을 일러 말이라니.”하고 좌우에게 물으니 좌우에서 어떤 자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떤 자는 말이라고 하여 조고에게 아첨하고 순종하였다.(指鹿獻於二世하며 曰 “馬也니이다.”二世笑曰“丞相誤耶아.”謂鹿爲馬라니하고 問左右하니 左右或默고 或言馬하여 以阿順趙高하다.)」(史記, 秦二世記)
지리멸렬 支離滅裂
이리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 |
지성감천 至誠感天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 무엇이든 정성껏 하면 하늘이 움직여 좋은 결과를 맺는다. |
지어지앙 池魚之殃
연못에 사는 물고기의 재앙.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재앙을 입었다. |
殃及池魚(앙급지어).
鯨戰蝦死(경전하사) : 고래 싸움에 새우가 죽는다. 즉 아무 관계없는 것이 피해를 입는다.
惡傍逢雷(악방봉래) : 죄 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았다.
지피지기 知彼知己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 적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자세히 알다. |
고사: 춘추 시대, 오왕(吳王) 합려(闔閭)의 패업( 業)을 도운 손무(孫武)는 전국 시대에 초(楚)나라의 병법가로서《오자(吳子)》를 쓴 오기(吳起)와 더불어 병법의 시조라 불리는데 그가 쓴《손자(孫子)》〈모공편(謀攻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 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롭지 아니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그리고 적의 실정은 모른 채 아군의 실정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 또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실정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만 번에 한 번도 이길 가망이 없다."
[주] 여기서 말하는 '백(百)'이란 단순한 숫자상의 '100'이 아니라 '삼(三)''칠(七)''구(九)''천(千)''만(萬)'등과 같이 '많은 횟수'를 가리키는 것임.
지호지간 指呼之間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 |
진수성찬 珍羞盛饌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풍성하게 잘 차린 것. |
진천동지 震天動地
하늘이 진동하고 땅이 흔들리다. 위엄이 천하에 떨치다. |
진충보국 盡忠報國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함. |
진퇴유곡 進退維谷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 궁지에 빠진 상태. |
집소성대 集小成大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 |
징갱취제 懲羹吹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채를 후후 불고 먹는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 한 데 데어서 모든 일에 지나치게 조심함의 비유. |
고사:전국 시대 말엽, 진(秦)나라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초(楚) 제(齊) 두 나라뿐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재상 장의(張儀)는 초 제 동맹의 강화론자(强化論者)인 초나라의 삼려 대부[三閭大夫:소(昭) 굴(屈) 경(景) 세 왕족의 족장(族長)] 굴원[屈原:이름은 평(平), B.C. 343?∼277?]을 제거하기로 작정하고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초나라 회왕(懷王)의 총회(寵姬) 정수(鄭袖)와 영신( 臣) 근상(勤尙) 등이 굴원을 증오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장의는 곧 그들을 매수하여 굴원의 실각 공작을 폈다. 드디어 굴원이 조정으로부터 축출되자 장의는 회왕에게 제나라와 단교하면 진나라의 국토 600리를 할양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래서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했으나 장의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해 진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대패하고 도리어 접경 지역의 국토까지 빼앗겼다. 회왕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굴원을 다시 등용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B.C.299) 어느 날 진나라로부터 우호 증진이란 미명 아래 회왕을 초청하는 사신이 왔다. 굴원은 믿을 수 없는 진나라의 초청에 응해서는 안 된다며 극구 방대했다. 그러나 회왕은 왕자 자란(子蘭)의 강권에 따라 진나라에 갔다가 포로가 되어 그 이듬해 객사하고 말았다.
초나라에서는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동생인 자란이 재상이 되었다. 굴원은 회왕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자란에게 책임을 물었으나 이는 도리어 참소(讒訴)를 초래하는 결과가 되어 또다시 추방당하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그 후 10년간 오직 조국애에 불타는 굴원은 망명도 하지 않고 한결같이 동정호(洞庭湖) 주변을 방랑하다가 마침내 울분이 복받친 나머지 멱라(汨羅:동정호 남쪽을 흐르는 강)에 몸을 던져 수중 고혼(水中孤魂)이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굴원의 넋을 '멱라의 귀[汨羅之鬼]'이라 일컫고 있다.
《초사(楚辭)》에 실려 있는 굴원의 작품 중 대부분은 이 방랑 시절에 씌어진 것들이다. 그는 늘 위기에 처한 조국을 걱정하고 나라를 그르치는 영신을 미워하며 그의 고고한 심정을 정열적으로 노래했는데 '징갱취제'는《초사》〈9장〉중 '석송(惜誦)'이란 시의 첫 구절이다.
뜨거운 국에 데어서 냉체까지 불고 먹는데 [懲於羹者 而吹 兮(징어갱자 이취제혜)]
어찌하여 그 뜻(나약함)을 바꾸지 못하는가 [何不變此志也(하불변차지야)] ‥‥‥‥‥‥
'석송'은 굴원이 자기 이상으로 주군(主君)을 생각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선비가 없음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뭇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것을 분노하며 더욱이 어쩔 수 없는 고독을 한탄하면서도 그 절조만은 변절하지 않겠다는 강개지심(慷慨之心)을 토로한 시이다.
차일피일 此日彼日
이날 저날 하고 미루기만 한다. |
차청차규 借廳借閨
마루를 빌리다가 방으로 들어오다. 남에게 의지하다가 차차 그 권리를 침범하다. |
창업수성 創業守成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
고사: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 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창해일속 滄海一粟
넓은 바다에 좁쌀알 하나. 광대하고 드넓은 속에 들어 있는 보잘 것 없이 미미한 존재. |
책인즉명 責人則明
남을 꾸짖는 데에는 밝다. 자기의 잘못을 덮어두고 남만 나무라다. |
척사위정 斥邪衛正
사악한 것을 배척하고 정의를 지키다. |
천고마비 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하늘이 맑고 먹을 것이 풍성한 가을철. |
고사 : 천고마비(天高馬肥)란 말은 본래 흉노족(匈奴族)의 침입을 경계하고자 나온 말이다. 흉노족이 사는 곳은 중국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광활한 초원에서 방목과 수렵을 업으로 하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풀을 먹은 말은 가을에는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그들은 식량을 찾아 살찐 말을 타고 중국 변방을 쳐들어 와 곡식이며 가축을 노략질해 갔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병사들은 활줄을 갈아 매고 활촉과 칼을 벼르며 경계를 강화 시켰다. 또한 두보(杜甫)의 조부 두심언(杜審言)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변방으로 떠나는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맑은 눈발이 아름답게 별 떨어지듯 하고, 가을 하늘은 드높고 변방의 말은 살이 찌네.(雪淨妖星落하고, 秋高塞馬肥하네.)」라고 한 오언율시(五言律詩)의 한편의 시를 적어 위로한 데에서 비롯되었다.(杜審言의 詩)
천고불후 千古不朽
영원히 썩지 않다. |
천려일실 千慮一失
많은 생각 속에 한 가지 실수가 있다. 현명한 사람이라도 많은 일을 하는 중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다. |
고사: 한나라 고조의 명에 따라 대군을 이끌고 조(趙)나라로 쳐들어간 한신(韓信)은 결전을 앞두고 '적장 이좌거(李左車)를 사로잡는 장병에게는 천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지덕(知德)을 겸비한 그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전 결과 조나라는 괴멸했고, 이좌거는 포로가 되어 한신 앞에 끌려 나왔다.
한신은 손수 포박을 풀어 준 뒤 상석에 앉히고 주연을 베풀어 위로했다. 그리고 한나라의 천하 통일에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는 연(燕) 제(齊)에 대한 공략책을 물었다. 그러나 이좌거는 '패한 장수는 병법을 논하지 않는 법[敗軍將 兵不語]'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신이 재삼 정중히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패장이 듣기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반드시 하나쯤은 실책이 있고[智者千慮 必有一得]고 했습니다. 그러니, 패장의 생각 가운데 하나라도 득책이 있으면 이만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
그 후 이좌거는 한신의 참모가 되어 크게 공헌했다고 한다.
천리안 千里眼
먼 곳의 것을 볼 수 있는 안력(眼力). 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 |
고사 : 북위(北魏)의 양일(楊逸)이라는 젊은이가 29세의 나이에 하남성 황천의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백성들을 위해 충심으로 봉사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당시 일부 관리들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에 혈안이 돼 있었던 때인지라, 그의 엄정한 공무 집행은 단연 돋보였다. 그는 법 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정탐꾼을 운용하여 민심의세세한 상황까지 꿰뚫고 있었는데, 워낙 사정에 밝았으므로 사람들은“양군수는 천리안을 가졌다.”고 수군거렸다. 천리안은 본디 천리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을 말하는데, 후에는 미래의 일이나 남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도 뜻한다.
천방지축 天方地軸
하늘 모서리와 땅의 축.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대는 모습.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날뛰는 모습. |
천부당만부당 千不當萬不當
천번 만번 부당하다. 아주 부당하다. |
천사만고 千思萬考
천번 만번 생각한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
천석고황 泉石膏황
자연으로 인해 명치에 기름이 낌.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 |
烟霞痼疾(연하고질) : 깊이 산수(山水)를 사랑함이 고질이 되었음.
천신만고 千辛萬苦
마음과 몸을 온가지로 수고롭게 하고 애쓰다. |
천양지차 天壤之差
하늘과 땅 차이. 매우 큰 차이. |
천의무봉 天衣無縫
하늘의 선녀들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 시나 글 등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잘된 것. |
고사 : 태원(太原)에 사는 곽한(郭翰)은 시문(詩文)과 서예(書藝)에 능한 청년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혼자 살았는데,「곽한이 여름날 밤 정원에 누워 있는데 어떤 사람이 하늘하늘 허공에서 내려와 말하기를“나는 직녀입니다.”라고 하였다. 천천히 그 옷을 엿보니 아울러 꿰맨 곳이 없었고 푸른빛이어서 그것을 물으니“하늘의 옷은 본래 바늘로 꿰매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郭翰이 暑月에 臥庭中하니 有人이 염염自空而下曰 吾織女也라. 徐사其衣하니 竝無縫하고 翠하여 問之하니 謂曰 天衣는 本非針線爲也라.)」라고 대답하였다.(靈怪錄)
** 翰(날개 한) 暑(더울 서) 臥(누울 와) 織염(짤 직) (나아갈 염) 사(엿볼 사) 翠(푸를 취)
천인공노 天人共怒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하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누구나 참을 수 없는 분노. |
천재일우 千載一遇
천 년에 한 번 온 기회. 다시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 |
고사: 동진(東晉)으 학자로서 동양태수(東陽太守)를 역임한 원굉(袁宏)은 여러 문집에 시문 300여 편을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거슨《문선》에 수록된〈삼국 명신서찬(三國名臣序贊)〉이다. 이것은《삼국지》에 실려 있는 건국 명신 20명에 대한 행장기(行狀記)인데, 그중 위(魏)나라의 순문약(荀文若)을 찬양한 글에서 원굉은 '대저 백락(伯樂)을 만나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 천리마[驥] 한 필을 찾아내지 못한다[夫末遇伯樂則 千載無一驥]'고 적고, 현군과 명신의 만남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대저 만 년에 한 번의 기회는 이 세상의 통칙이며
[夫萬歲一期 有生之通途(부만세일기 우생지통도)]
천 년에 한 번의 만남은 현군과 명신의 진귀한 해후다
[千載一遇, 賢智之嘉會(천재일우 현지지가회)]
[주] 순문약 : 후한(後漢) 말, 조조(曹操)의 참모로 활약했으나 조조에게 역심이 있음을 알고 반대하다가 배척당한 강직한 인물.
백락 : 주(周)나라 시대에 준마(駿馬)를 잘 가려냈다는 명인.
천차만별 千差萬別
여러 가지 사물이 모두 차이가 있고 구별이 있음. |
천편일률 千篇一律
시문의 작법(作法)이 모두 똑같아 변화가 없음. |
천학비재 淺學菲才
학문이 얕고 재주가 변변치 않음. 자신의 학식을 겸사하는 말. |
철두철미 徹頭徹尾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다. 전혀 빼놓지 않고 샅샅이. |
철면피 鐵面皮
무쇠 같은 낯가죽. 뻔뻔스럽고 염치 없는 사람. |
고사: 왕광원(王光遠)이란 사람이 있었다. 학재가 뛰어나 진사(進士)시험에도 합격했으나 출세욕이 지나쳐 그는 고관의 습작시를 보고도 '이태백(李太白)도 감히 미치지 못할 신운(神韻:신비롭고 고상한 운치)이 감도는 시'라고 극찬할 정도로 뻔뻔한 아첨꾼이 되었다.
아첨할 때 그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았고 상대가 무식한 짓을 해도 웃곤 했다. 한 번은 고관이 취중에 매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때려 주고 싶은데, 맞아 볼 텐가?"
"대감의 매라면 기꺼이 맞겠습니다. 자 어서…‥."
고관은 사정없이 왕광원을 매질했다. 그래도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동석했던 친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질책하듯 말했다.
"자네는 쓸개도 없나? 만좌(滿座) 중에 그런 모욕을 당하고서도 어쩌면 그토록 태연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잘 보이면 나쁠 게 없니."
친구는 기가 막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광원의 낯가죽은 두껍기가 열 겹의 철갑(鐵甲)과 같다."
철석간장 鐵石肝腸
철이나 돌 같은 간과 창자. 굳고 단단한 마음. |
철중쟁쟁 鐵中錚錚
같은 쇠붙이 가운데서도 유난히 맑게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난다. 같은 또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
철천지한 徹天之恨
하늘에 사무치는 그지없는 원한. |
청산유수 靑山流水
푸른 산에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말을 거침 없이 잘하다. |
청담 淸談
① 명리(名利) 명문(名聞)을 떠난 청아(淸雅)한 이야기. 고상한 이야기. ② 위진 시대에 유행한 노장(老莊)을 조술(祖述)하고 속세를 떠난 청정무위(淸淨無爲)의 공리공론(空理空論). |
고사:위진 시대(魏晉時代:3세기 후반)는 정치가 불안정하고 사회가 혼란해서 자칫하면 목숨을 잃는 난세였다. 게다가 정치적 권력자와 그에 추종하는 세속적 관료들의 횡포도 극심했다. 그래서 당시 사대부(士大夫) 간에는 오탁(汚濁)한 속세를 등지고 산림에 은거(隱居)하여 노장(老莊)의 철학이라든가 문예 등 고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그 중에서도 죽림 칠현(竹林七賢), 곧 산도(山濤) 완적(阮籍) 혜강( 康) 완함(阮咸) 유령(劉伶) 상수(尙秀) 왕융(王戎)은 도읍 낙양(洛陽) 근처의 대나무 숲에 은거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술에 취한 채 '청담'-청신기경(淸新奇警:산뜻하고 기발함)한 이야기, 곧 세속의 명리(名利) 명문(名聞) 희비(喜悲)를 초월한, 고매한 정신의 자유 세계를 주제로 한 노장(老莊)의 철학-을 논하며 명교(名敎:儒敎) 도덕에 저항했다.
청운지지 靑雲之志
푸른 구름의 뜻을 품었다. 남보다 출세할 뜻을 가지고 있다. |
陵雲之志(능운지지). 桑蓬之志(상봉지지)
고사 : 청운(靑雲)이란 푸른 구름을 말한다. 푸른 구름은 보기가 힘든 희귀한 구름으로 신선이 있는 곳이나 천자(天子)가 될 사람이 있는 곳에 떠있다고 전해진다. 청운지지란 말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재상을 지내고 간신 이임보(李林甫)의 참언으로 초야에 묻혀 살았던 시인 장구령(張九齡)의 시(詩)‘거울에 비춰 백발을 본다〈조경견백발(照鏡見白髮)〉에「옛날에는 청운의 뜻을 품었는데, 시기를 잃고 백발의 나이로다. 밝은 거울 속을 누가 알겠는가? 나의 모습이 가련한 것을.(宿昔靑雲志한데, 嗟駝白髮年이로다. 誰知明鏡裏인고, 形影自相憐을.) 」
蓬(더부룩할 봉) 嗟(슬플 차) 駝(낙타 타) 髮(터럭 발) 鏡(거울 경) 裏(속 리) 影(그림자 영)
청천백일 靑天白日
푸른 하늘에 밝은 해. 밝은 대낮. 밝은 세상. 죄의 혐의가 풀리다. |
고사: 당나라 중기의 시인 정치가인 한유[韓愈:자는 퇴지(退之), 768∼824]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굴지의 명문장가로 꼽혔던 사람인데 그에게는 최군(崔群)이라는 인품이 훌륭한 벗이 있었다. 한유는 외직(外職)에 있는 그 벗의 인품을 기리며 〈최군에게 주는 글[與崔群書]〉을 써 보냈는데 명문(名文)으로 유명한 그 글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좋고 싫은 감정이 있을 터인데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모두 자네를 흠모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봉황(鳳凰)과 지초[芝草:영지(靈芝)]가 상서로운 조짐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며 '청천 백일'이 맑고 밝다는 것은 노예인들 모를 리 있겠는가?"
[주] 여기서 '청천백일'이란 말은 최군의 인품이 청명(淸明)하다는 것이 아니라 최군처럼 훌륭한 인물은 누구든지 알아본다는 뜻임.
당송팔대가 : 당(唐:618∼906)나라와 송(宋:北宋, 960∼1127)나라 시대의 여덟 명의 저명한 문장 대가(大家). 곧 당나라의 한유(韓愈:韓退之) 유종원(柳宗元:柳子厚),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歐永叔) 왕안석(王安石:王介甫) 증공(曾鞏:會子固) 소순(蘇洵:蘇明允) 소식(蘇軾:蘇東坡) 소철(蘇轍:蘇子由). 당송 팔가, 팔대가라고도 일컬음.
청천벽력 靑天霹靂
푸른 하늘에 날벼락. 뜻밖의 큰 일을 만나다. |
고사:이 말은 남송(南宋)의 대시인 육유[陸游:호(號)는 방옹(放翁)]의《검남시고(劍南詩稿)》〈9월4일 계미명기작(九月四日鷄未鳴起作)〉에 나오는 오언절구(五言絶句)의 끝 구절이다.
방옹이 병으로 가을을 지내고 [放翁病過秋(방옹병과추)]
홀연히 일어나 취하여 글을 쓰니 [忽起作醉墨(홀기작취묵)]
정히 오래 움츠렸던 용과 같이 [正如久蟄龍(정여구칩룡)]
푸른 하늘에 벼락을 치네 [靑天飛霹靂(청천비벽력)]
청출어람 靑出於藍
푸른 것은 쪽풀에서 나온다. 스승보다 제자가 뛰어남. |
고사 :「군자가 말하기를 학문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청색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쪽풀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그것이 되었으나 물보다 차다. 군자가 널리 배우고 자신을 세 번씩 반성한다면 곧 아는 것이 분명해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하늘의 높음을 모르고, 선왕의 남긴 말을 듣지 아니하면 학문의 큼을 알지 못한다.(君子曰 學不可以已니 靑取之於藍이나 而靑於藍하고 氷水爲之나 而寒於水니라. 君子博學而參省乎己면 則知明而行無過矣니라. 故로 不登高山이면 不知天之高也하고 不臨深谿면 不知地之厚也하며 不聞先王之遺言이면 不知學問之大也니라.)」(荀子, 勸學篇)
** 藍(쪽 람) 博(넓을 박) 參(석 삼) 省(반성할 성)
청풍명월 淸風明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사를 비판하는 것. |
초근목피 草根木皮
풀 뿌리와 나무 껍질. 곡식이 없어 산나물 따위로 만든 거친 음식. |
초동급부 樵童汲婦
나무하는 아이와 물긷는 여인.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반 사람. |
초록동색 草綠同色
풀과 푸름은 같은 색. 같은 처지나 경우의 사람들 끼리 어울려 행동함. |
초미지급 焦眉之急
눈섶에 불이 붙음과 같이 일각의 여유도 둘 사이없이 매우 다급함. |
촌철살인 寸鐵殺人
한 치의 쇠로 사람을 죽인다. 한 마디의 말이나 글로 상대의 급소를 찔러 당황 또는 감동시키다. |
고사 : 주자(朱子)의 제자 나대경(羅大經)의『학림옥로(鶴林玉露)』는 천(天)·지(地)·인(人),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시어(詩語)를 풀이한 것부터 일화, 전설에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촌철살인이란 말은 지부(地部) 7권‘살인수단(殺人手段)’편에 종고(宗고)가 선을 논하며이르되「비유컨데 사람이 한 수레의 병기를 싣고 와서 하나를 가지고 놀다가 마치면 또 하나를 취하여 와 가지고 노는데 곧 이것을 살인수단이라고 하지 못한다 나는 곧 다만 촌철이 있어서 문득 사람을 죽일 수 있다.(譬如人載一車兵器하여 弄了一件하면 又取一件來弄이니 便不是殺人手段이라. 我則只有寸鐵하여 便可殺人이라.)」
** 譬(비유할 비) 載(실을 재) 弄(희롱할 롱) 件(일 건) 取(취할 취) 段(구분 단)
축록자불견산逐鹿者不見山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한다는 뜻. 곧 ① 명예와 이욕(利慾)에 미혹(迷惑)된 사람은 도리도 저버림. ② 이욕에 눈이 먼 사람은 눈앞의 위험도 돌보지 않음. 또는 보지 못함. ③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음. |
고사: 전한(前漢)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중앙 정권에 대항적인 입장을 취했던 왕족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 ? ∼ B.C.122)은 문하(門下) 식객(食客)의 도움을 받아 많은 서책을 저술했는데, 그중 특히 도가(道家)사상을 중심으로 엮은《회남자(淮南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고
[逐鹿者 不見山(축록자 불견산)]
돈을 움키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
[攫金者 不見人(확금자 불견인)]
춘추필법 春秋筆法
역사를 기록하는 필법.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혀 세우는 논조. |
출장입상 出將入相
나가서는 장수 들어오면 재상. 문무를 겸비한 대신. |
충언역이 忠言逆耳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 정성스럽고 바른 말은 듣기 싫어한다. |
취사선택 取捨選擇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골라 잡음. |
취생몽사 醉生夢死
술에 취한 듯 꿈을 꾸는 듯 살아감. 아무 의미없이 한 평생을 흐리멍텅하게 살아가는 것. |
치인설몽 癡人說夢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해준다는 뜻. 곧 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의 비유. ② 종작없이 지껄이는 짓의 비유. ③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이해되지 않음의 비유. |
고사: 남송(南宋:1127∼1279)의 석혜홍(釋惠洪)이 쓴《냉재야화(冷齋夜話)》〈권9(卷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시대, 서역(西域)의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자강과 회하(淮河)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지방을 행각(行脚: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할 때의 일이다. 승가는 한 마을에 이르러 어떤 사람과 이런 문답을 했다.
"당신은 성이 무엇이오[汝何姓]?"
"성은 하가요[姓何哥]."
"어느 나라 사람이오[何國人]?"
"하나라 사람이오[何國人]."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書道家) 이옹(李邕)에게 승가의 비문을 맡겼는데 그는 '대사의 성은 하 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이옹은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이 어리석음에 대해《냉재야화》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주] '치인설몽'이란 말은 요즈음에는 본뜻과는 반대로 바보(치인)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이옹 : 일명 이북해(李北海), 678∼747. 특히 행서(行書)에 능하여 생전에 쓴 비서(碑書)가 800여에 이른다고 함.
칠보지재 七步之才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라는 뜻으로, 아주 뛰어난 글재주를 이르는 말. |
고사:삼국 시대의 영웅이었던 위와(魏王) 조조(曹操)는 문장 출신이었지만 건안(建安) 문학의 융성을 가져왔을 정도로 시문을 애호하여 우수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맏아들인 비(丕:186∼226)와 셋째 아들인 식(植)도 글재주가 출중했다. 특히 식의 시재(詩才)는 당대의 대가들로부터도 칭송이 자자했다. 그래서 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비를 제쳐놓고 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비는 어릴 때부터 식의 글재주를 늘 시기해 오던 차에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돌아간 적도 있고 해서 식에 대한 증오심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어느 날, 문제는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이렇게 하명했다.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짓지 못할 땐 중벌을 번치 못할 것이니라."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煮豆燃豆 (자두연두기)]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삶아 대는가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부모를 같이하는 친형제간인데 어째서 이다지도 심히 핍박(逼迫)하는가'라는 뜻의 칠보시(七步詩)를 듣자 문제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주] 이후 '자두연두기' 약하여 '자두연기(煮豆燃 )'는 '형제 혹은 동족간의 싸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음.
칠전팔기 七顚八起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일어섬. 여러 번의 실패에도 또다시 일어나 분투하다. |
칠전팔도 七顚八倒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 넘어진다. 어려운 고비를 여러번 겪음. |
칠종칠금 七縱七擒
상대를 마음대로 함. |
침소봉대 針小棒大
작은 바늘을 큰 몽둥이 하다. 작은 일을 가지고 크게 허풍을 떨다. |
쾌도난마 快刀亂麻
잘 드는 칼로 어지럽게 엉클어진 삼을 벤다. 어지러운 일을 시원스럽게 처리함. |
쾌독파차 快犢破車
성질이 거센 송아지는 이따금 제가 끄는 수레를 파괴하나 자라서는 반드시 장쾌한 소가 된다. |
쾌인쾌사 快人快事
쾌활한 사람의 시원스러운 행동. |
타산지석 他山之石
남의 산에 있는 돌도 나의 구슬을 다듬는 데 쓰이듯 남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의 지덕(知德)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 |
고사: 이 말은《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학명(鶴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일부)의 한 구절이다.
‥‥‥‥‥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 [爰有樹檀(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가이공옥(可以攻玉)]
[주] '타산지석 가이공옥(他山之石 可以攻玉)'-돌[石]을 소인(小人)에 비유하고 옥(玉)을 군자(君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손가락 끝을 팅길동안 세월의 흐름이 매우 빠름을 이름 |
탁상공론 卓上空論
전혀 실현성이 없는 헛된 의논. |
탄탄대로 坦坦大路
편편하고 아주 편한 길. |
탐관오리 貪官汚吏
재물을 탐내고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 |
태산북두 泰山北斗
태산과 북두칠성. 사람들이 우러러 존경할 만한 뛰어난 인물. |
泰斗(태두). 山斗(산두) : 泰山北斗의 준말.
德爲人表(덕위인표) : 덕망이 높아 사람들의 사표가 되다.
萬夫之望(만부지망) :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다.
百世之師(백세지사) : 후세에까지 사표가 되어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인물.
고사 : 당송(唐宋) 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당나라에서 성행했던 이른바 병문(騈文), 내용 없이 수식만 일삼던 문장을 타파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때문에 그의 문장은 맹자(孟子)에 버금갈 정도라고 했다. 중국의 고금(古今)을 통해서도 손꼽히는 명문장가로「한유가 육경의 글로써 모든 학자의 스승이 되었다. 한유가 죽음에 그의 학문이 성행하여 배우는 자들이 그를 우러러보며 태산북두와 같다고 말했다.(愈가 以六經之文으로 爲諸儒倡하다. 自愈沒에 其學盛行하여 學者仰之하며 如泰山北斗云하다.)」라고 평했다. 태산(泰山)은 중국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높은 산이며 북두(北斗)는 북두성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별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 經(경서 경) 儒(선비 유) 倡(창도할 창) 沒(빠질 몰) 仰(우러러볼 앙)
☞태산(泰山)은 중국 오악 중의 하나인 산동성 태안현(泰安縣) 북쪽에 있는 산으로서, 중국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영산(靈山)이다. 옛날 중국 천자가 천하의 제후와 회동하던 곳이기도 했다. 흔히 큰 것을 비유할 때‘태산만 하다’고 말하므로 무척 높은 산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높이는 1,450m로 백두산 보다 낮다. 북두는 북두성(北斗星)을 이른다. 태두라는 말은 천자의 제사 의식에서 유래된 말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거나 태평성대를 누렸을 때는 그 감사함을 천지신명께 고하는 풍습이 있었다. 제사는 태산의 정상에서 북두칠성을 향해 올렸다. 북두칠성을 뭇 별의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 지신을 올리는 제사는 양보산에서 지냈는데, 반드시 태산을 향해 올렸다. 지신(地神)이 깃든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중요한 존재를 일러 태두라 했으며, 훗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그 뜻이 바뀌었다.
태산압란 泰山壓卵
큰 산이 알을 누른다. 큰 위력으로 내리 누름. 아주 손쉬운 것. |
태연자약 泰然自若
마음에 충동을 받아도 동요하지 않고 천연덕스러운 것. |
태평연월 太平煙月
세상이 평화롭고 안락한 때. |
토사구팽 兎死狗烹
토끼가 죽으니 사냥개가 삶아진다. 필요가 없게 되면 죽임을 당하거나 버림을 받게 된다. |
狡兎死 良狗烹(교토사 양구팽)의 준말.
狡兎已死(교토이사) : 교활한 토끼가 이미 죽었다.
得魚忘筌(득어망전) : 고기를 잡고 나서 통발을 잊는다.
고사 : 한신(韓信)은 漢나라가 천하통일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워 그 공로로 초왕(楚王)이 되었는데 항우의 신하로 있을 때 사귄 친구 종리매(鍾離昧)가 그에게 의탁하고 있었다. 유방은 종리매가 한신 밑에서 숨어지낸다는 것을 알고 체포명령(逮捕命令)을 내렸으나 한신은 차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유방이 화가 나 한신을 체포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종리매는 자결하였다. 한신은 죽은 그의 목을 바쳤으나 체포당하자「한신이 말하기를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니 달리던 개가 삶아지고 높이 나는 새가 다하니 좋은 활이 사장된다. 적국이 파괴되니 지혜로운 신하가 죽고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진실로 삶아지는 것이 당연하다.(韓信曰 果若人言하다. 狡兎死하니 走狗烹이요 高鳥盡하니 良弓藏이라.敵國破하니 謀臣亡이라하고 天下가 已定하니 我固當烹이라.)」(史記, 淮陰侯傳)
** 狡(교활할 교) 筌(통발 전) 藏(감출 장) 謀(꾀할 모) 當(마땅 당)
토포악발 吐哺握髮
손님에 대한 극진한 대우. 군주가 어진 인재를 예의를 갖추어 맞이함. |
퇴고 推敲
글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다. |
고사 :「유공가화(劉公嘉話)에 이르기를 가도가 처음에 과거를 보러 서울에 가다가 하루는 나귀의 위에서 글귀를 얻으니 “새는 못가에 있는 나무에 보금자리를 찾아서 자고, 중은 달 아래 비치는 문을 두드린다.”라고 지었다. 처음에는‘推’자를 놓고자 하다가 또‘敲’자를 붙이고자 하여 마음으로 골똘하게 생각하였으나 결정을 짓지 못햇다. 드디어 나귀의 위에서 흥얼거리며 때때로 손짓을 하여‘推’자와‘敲’자의 형용을 짓기도 하여 거기에만 열중하엿다. 때마침 한유가 이부(吏部)로서 경윤(京尹)이란 벼슬에 있었는데, 가도는 자기가 탄 나귀가 경윤의 집에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좌우사람들이 가도를 붙들고 경윤인 한유의 앞에 이르게 하니 가도가 얻은 바 시귀로 인하여 그렇게 된 것을 자세히 말하니, 한유가 말 위에서 한참 동안 그 시귀를 읊어 보다가 가도에게 일러 말하기를‘고 자가 좋다.’하고 드디어 함께 고삐를 나란히 하여 돌아갔다.(劉公嘉話에 云 賈島가 初赴擧京師할새 一日 於로上에 得句云“鳥宿池邊樹하고 僧敲月下門이라”始欲着推字라가 又欲着敲字하여 煉之未定이라 遂於로上에 吟아하고 時時로 引手하여 作推敲之勢라 時에 韓愈가 吏部로 權京尹이러니 島不覺衝至第三節이라 左右擁至尹前하니 島가 具對所得詩句云云이라 韓이 立馬良久에 謂島之曰‘作敲字佳矣라’하고 遂與竝비而歸하니라.) 」(湘素雜記)
** 嘉(아름다울 가) 島(섬 도) 赴(다다를 부) 擧(과거 거) 로(나귀노) 敲(두드릴 고) 推(밀 퇴) 着(붙일 착) 煉(달굴 련) 아(읊을 아) 衝(부딪칠 충) 擁(낄 옹) 비(고삐 비) 湘(물이름 상)
특립독행 特立獨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하여 홀로 행한다. 남에게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행동함. |
파경 破鏡
부부가 인연을 끊음. |
☞陳의 궁중 관리였던 서덕언(徐德言)은 隨나라의 대군이 쳐들어오자‘당신은 노예가 되어 수나라의 귀족에게 잡혀갈 것이니, 우리 증표로 이것을 나눠 가집시다. 당신은 내년 정월 대보름날, 장안의 길거리에서 팔도록 하시오.’하고는 거울을 꺼내 두쪽으로 깨뜨린(破)다음 나누어 가졌다. 과연 진나라가 망하고 아내는 장안으로 잡혀가 수나라 귀족 양소의 노예가 되었다. 이듬해 정월 대보름날, 서덕언은 장안의 길거리에서 노파가 깨어진 거울을 팔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슬그머니 다가가 맞추어 보았더니 영락없는 아내의 거울이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했다. 이상히 여긴 양소(楊素)가 사연을 듣고 감동하여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으며, 마침내 옛날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오늘날 파경(破鏡)은 본래 고사의 뜻과는 달리 부부간의 갈라섬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귀감(龜鑑)이란 말은 처신과 관련하여 생겼다. 옛날 중국에서는 거북의 등을 불에 구워 갈라지는 금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 그것을‘귀(龜)’라 했는데, 귀는 거북의 모습을 위에서 본 그림이다.‘감(鑑)’은 거울이 없던 시절 거울 역할을 했던 물그릇에 비춰진 모습이다. 그러므로 귀감이란 말은 거북과 거울에 나타난 조짐이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이에 유래하여 오늘날 귀감은‘거울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파경중원 破鏡重圓
깨진 거울이 다시 둥근 모습을 되찾았다. 생이별한 부부가 다시 결합한 것. |
파란곡절 波瀾曲折
생활이나 일을 진행함에 있어 많은 곤란과 변화를 겪다. |
파란만장 波瀾萬丈
물결의 기복이 심한 것처럼 사업이나 생활에 곡절과 변화가 심하다. |
파사현정 破邪顯正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잡음. |
파죽지세 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는 듯한 형세. 감히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막힘없이 밀고 쳐들어가는 형세. |
勢如破竹(세여파죽) : 세력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士氣衝天(사기충천) :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사기.
席卷之勢(석권지세) : 자리를 말아가는 듯한 형세. 무서운 힘으로 세력을 펼치거나 휩쓸 기 세.
乘勝長驅(승승장구) : 싸움을 이긴 김에 계속 휘몰아 가다.
旭日昇天(욱일승천) : 아침 해가 떠오르는 듯한 기세
고사 : 晉나라 장수 두예(杜預)는 왕준(王濬)이 �는 군대와 함께 무창(武昌)을 점령하고 吳나라를 정벌하고자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한 장수가“지금은 봄도 반이 넘었고 강물이 불어나는 것도 눈 앞에 닥쳤으므로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가.”하였다.「두예가 말하기를“지금 병사들의 위엄이 이미 떨쳐서 비유컨대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으니 두어 마디의 후에는 무두 칼날을 맞아서 쪼개지는 것이다.”(預曰 今兵威가 已振하여 譬如破竹이니 數節之後에 皆迎刃而解라.)」고 말하고 출정명령(出征命令)을 내려 오나라를 정벌하였다.(晉書, 杜預傳)
** 預(미리 예) 威(위엄 위) 振(떨칠 진) 迎(맞이할 영) 刃(칼날 인)
팔방미인 八方美人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 누구에게나 잘보이려고 처세하는 사람. 어느모로 보나 아름다운 미인. |
팔불출 八不出
몹시 어리석은 사람. |
패가망신 敗家亡身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몸을 망치다. |
평사낙안 平沙落雁
평탄한 모래 사장에 내려 앉은 기러기. 단정하고 맵씨 있게 쓴 글씨. |
평지돌출 平地突出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뛰어난 인물이 나옴. |
평지풍파 平地風波
평지에서 풍파가 인다. 뜻밖에 일어나는 분쟁. |
포복절도 抱腹絶倒
배를 안고 넘어진다. 몹시 웃는 것을 형용. |
포호빙하 暴虎馮河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고 걸어서 황하를 건넌다는 뜻. 곧 무모한 행동.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한 용기의 비유. |
고사: 공자의 3000여 제자 중 특히 안회(顔回)는 학재(學才)가 뛰어나고 덕행이 높아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라고 한다. 그는 가난하고 불우했지만 이를 전혀 괴로워하지 않았으며 또한 32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노하거나 실수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 안회에게 어느 날,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후(王侯)에게 등용되면 포부를 펴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를 가슴 깊이 간직해 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는 나와 너 두 사람 정도일 것이다."
이 때 곁에서 듣고 있던 자로(子路)가 은근히 샘이 나서 공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만약 대군을 이끌고 전쟁에 임할 때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무용(武勇)에 관한 한 자신 있는 자로는 '그야 물론 너지'라는 말이 떨어지기를 기대했으나 공자는 굳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범에게 덤비거나 황하를 걸어서 건너는 것[暴虎馮河]과 같은 헛된 죽음을 후회하지 않을 자와는, 나는 행동을 같이하지 않을 것이다."
표리부동 表裏不同
겉과 속이 다름. |
풍성학려 風聲鶴려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에도 놀란다. 한 번 크게 놀라면 비슷한 것에 겁을 먹고 놀란다. |
草木皆兵(초목개병) : 적을 두려워한 나머지 초목이 모두 적병으로 보이다.
吳牛喘月(오우천월) : 물소가 더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밤에 달을 보고 해가 아닌가 의심하여 헐떡거린다. 고연한 일에 지레 겁부터 먹고 허둥거리는 사 람. 傷 弓 之 鳥 (상궁 지조) : 한 번 활에 혼이 난 새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겁부터 먹고 허둥거리 는 사람.
고사:동진(東晉:317∼420)의 9대 효무제(孝武帝) 때인 태원(太元) 8년(383)의 일이다.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 堅:338∼385)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효무제는 재상 사안(謝安)의 동생인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 사석(謝石)과 조카인 전봉도독(前鋒都督) 사현(謝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우선 참모인 유로지(劉 之)가 5000의 군사로 적의 선봉을 격파하여 서전을 장식했다.
이 때 중군을 이끌고 비수( 水) 강변에 진을 치고 있던 부견은 휘하 제장(諸將)에게 이렇게 명했다.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하라."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前秦軍)은 반격은커녕 멈춰 설 수도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쳤다.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서로 밟고 밟혀 죽는 군사가 들을 덮고 강을 메웠다. 겨우 목숨을 건진 군사들은 겁을 먹은 나머지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風聲鶴 ]' 소리만 들어도 동진의 추격군이 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주] 부견 : 전진(前秦)의 3대 임금. 이름은 문옥(文玉), 자는 영고(永固). 시호(諡號)는 세조(世祖). 저족( 族) 출신. 2대 임금을 시해하고 즉위한 후 농경(農耕)을 장려하고 법제(法制)를 정비 확립하는 등 내치(內治)에 힘씀. 376년 화북(華北:황하 중 하류 지방)을 평정하고 전진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었음. 국력이 신장되자 천하 통일의 야망을 품고 383년 동진을 쳤으나 비수의 싸움에서 대패함. 나라가 분열된 가운데 38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음. (338∼385, 재위 357∼385).
풍수지탄 風樹之嘆
바람 부는 나무를 잡고 내뱉는 탄식. 부모를 잃어 효도할 수 없는 것을 한탄하다. |
풍운아 風雲兒
좋은 기회를 타고 활약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낸 사람. |
풍월주인 風月主人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벗하여 노는 한가한 사람. 자연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 |
풍찬노숙 風餐露宿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밖에서 먹고 자다. 큰 뜻을 이루려는 사람의 모진 고초. |
피골상접 皮骨相接
살가죽과 뼈가 맞붙을 정도로 몹시 마르다. |
필부지용 匹夫之勇
소인이 깊은 생각 없이 혈기만 믿고 냅다 치는 용기. |
하갈동구 夏葛冬구
여름에는 베옷과 겨울에는 가죽옷. 일이 격에 맞음. |
하로동선 夏爐冬扇
여름에는 화로와 겨울에는 부채. 일이 격에 맞지 않음. |
☞부채란‘부치는 채’라는 말인데, 한자 선(扇)은 새의 깃털(羽)로 집(戶)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의문자다. 부채는 고대부터 더위를 식히거나 공기를 순환시키거나 의식을 거행할 때 쓰였다. 가장 오래된 부채는 새의 깃털로 만들어졌으며, 나뭇잎 모양에서 유래했다.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쥘부채는 고려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발명한 것이다. 대나무를 얇게 깍아 빗살 모양으로 대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발라 만든 합죽선은 휴대의 편리성과‘탁’펼치는 멋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고려선이라고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하마평 下馬評
임관될 후보자에 관하여 민간에 떠돌아 다니는 풍설. |
☞하마평(下馬評)이란 말의 유래는 옛날 가마 또는 말의 상류층 사람들이 이용하던 대표적 교통 수단이었는데, 교통 표지는 그때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하마비(下馬碑)이다. 하마비에는‘모두 말에서 내리시오.(大小人員皆下馬)’라고 적혀 있었다. 가마나 말에서 내린 주인이 볼일을 보러 가고 없는 동안 가마꾼이나 마부는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끼리 잡담을 나누게 되었고 별의별 애기가 다 나왔다. 그들의 주인은 고급 관리가 대부분인지라 이야기의 중심도 자연히 출세 진급 따위의‘자리’에 관계된 것이 많았다.
하우불이 下愚不移
어리섞고 못난 사람의 버릇은 고치지 못함. |
학수고대 鶴首苦待
학이 목을 길게 늘어뜨리고 기다림. 몹시 기다림. |
학철부어 轍 魚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란 뜻으로,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의 비유. |
고사:전국 시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던 장자(莊子)의 이야기이다. 그는 왕후(王侯)에게 무릎을 굽혀 안정된 생활을 하기보다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그는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장자는 굶다 못해 감하후(監河侯)를 찾아가 약간의 식대를 꾸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친구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핑계를 댔다.
"빌려주지. 2,3일만 있으면 식읍(食邑)에서 세금이 올라오는데 그때 삼백 금(三百金)쯤 융통해 줄 테니 기다리게."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2,3일 뒤에 거금(巨金) 삼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체면 불고하고 찾아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장자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그땐 아무 소용없네."
그리고 이어 장자 특유의 비아냥조(調)로 이렇게 부연했다.
"내가 여기 오느라고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더군[ 轍 魚].''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달라'는 겨야. 그래서 나는 귀찮은 나머지 이렇게 말해 주었지. '그래. 나는 2,3일 안으로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유세를 떠나는데 가는 길에 서강(西江)의 맑은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나서 '나는 지금 물 몇 잔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이젠 틀렸소. 나중에 건어물전(乾魚物廛)으로 내 시체나 찾으러 와 달라'고 하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더군. 자, 그럼 실례했네."
[주] ' '이란 글자는 원래 '학'자인데 이 경우 '확'으로 읽어 '확철부어'라고도 함.
한단지몽 邯鄲之夢
한단의 꿈. 부귀와 공명이 꿈처럼 덧없다. |
盧生之夢(노생지몽). 邯鄲之枕(한단지침).
黃梁一炊之夢(황량일취지몽) : 노생이 잠들기 전에 짓던 기장밥이 꿈에서 깨어보니 아직 익 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음
고사 : 唐나라 현종(玄宗) 때 도사(道士) 여옹(呂翁)이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여관 앞에서 쉬고 있을 때, 노생(盧生)이라는 청년을 만나 담소하다가 노생이 자신의 비천함을 한탄했다. 여옹이 그에게 소원을 묻고 청자(靑磁)로 만든 베개를 주니, 그것을 베고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노생이 꿈 속에서 청하의 최씨딸과 결혼하고 진사갑과에 급제하여 여러 번 옮겨서 중서시랑 겸 중서문하평장사에 임관되었다. 30여 년 조정을 출입하다 보니 높고 성함이 비길 데가 없었다. 늙어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벼슬을 마치고 하품과 기지개를 켜다가 잠에서 깨어났다.(生이 于寢中에 娶淸河崔氏女하고 擧進士登甲科하여 累遷하여 拜中書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하다. 三十餘年出入中外하니 崇盛無比라. 老乞骸骨하니 不許하다. 卒于官하고 欠伸而寤하다.) 」여옹이“인생이란 모두 이것과 같다네.”노생이“이것을 경험한 것은 선생께서 제 욕심을 막아 주신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라 하고 공손히 절한 뒤 길을 떠났다.(枕中記)
** 枕(베개 침) 梁(기장 량) 炊(불땔 취) 寢(잠잘 침) 娶(장가갈 취) 欠(하품 흠) 寤(잠깰 오)
한단지보 邯鄲之步
본분을 잊고 억지로 남의 흉내를 내면 실패함 |
고사 : 연나라의 소년이 한단에 가서 한단 사람의 걸음걸이를 배우다가 고향에 돌아오니 한단의 걸음걸이도
되지않고 원래 자기 걸음걸이도 잊어버렸다는 고사에서 유래.
한우충동 汗牛充棟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뻘뻘 흘리고 방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을 만큼 책이 많다. |
한운야학 閑雲野鶴
한가로운 구름 아래 노니는 들의 학. 벼슬과 어지러운 세상을 버리고 강호에 묻혀 사는 사람. |
한출첨배 汗出沾背
땀이 등에 밴다. 몹시 민망하고 창피함. |
함구무언 緘口無言
입을 다물고 말이 없음. |
함포고복 含哺鼓腹
음식을 먹으며 배를 두드린다. 천하가 태평하여 즐거운 모양. |
함흥차사 咸興差使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더디 오다. 감감 무소식. |
終無消息(종무소식)
고사 : 태조 이성계가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에 은거하고 있었다. 그 후 형제를 무참히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차지한 태종의 행위에 분노한 태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그 차사들을 죽이거나 가두어 돌려보내지 않은 데서 유래한 말.
☞差使員(차사원) : 조선시대 때 각종 특수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임시로 차출, 임명된 관리.‘差’는‘시키다’‘파견하다’‘심부름하다’‘使’는‘명을 받고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차사란 일정한 용무를 주어 딴곳으로 파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해로동혈 偕老同穴
부부가 화목하여,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힘. 부부사이의 화목함. |
고사 : 시경(詩經)에 실린, 하남성 황하 유역에 있던 나라들의 민요에서 유래한 말이다.격고(擊鼓)라는 시에,「죽으나 사나 만나나 헤어지나, 그대와 함께 하자 언약하였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겠노라.(死生契闊에 與子成說호라, 執子之手하여 與子偕老라호라.)」즉 전선에 출장한 병사가 고향에 돌아갈 날이 언젤런지...... 애마(愛馬)와도 사별하고 싸움터를 방황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다. 그러나,“아, 멀리 떠나 우리의 언약을 어기다니로 끝맺은 병사의 슬픈 노래다.”
해의추식 解衣推食
옷을 벗어주고 음식을 밀어준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
행운유수 行雲流水
일정한 본질 없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함. |
행장진퇴 行藏進退
지식인이 시세(時勢)에 응하여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처신의 신중함. |
☞『孟子』에서 지식인(君子)이 시세(時勢)에 응하여 벼슬에 나아가기도 하고 물러설 줄도 아는 처신의 신중함을 경고하는 말이었는데, 굴원(屈原)의‘어부사(漁父辭)’에「흐르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으로 씻고. 흐르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滄浪之水淸兮이어든可以濯我纓이요. 滄浪之水濁兮이어든可以濯我足이라.)」는 한 구절로 끌어들여 탁영탁족(濯纓濯足)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러한 탁족을 晉나라 때 글을 잘 써서‘낙양의 종잇값을 올려놓았다’는 고사의 주인공인 좌사(左思)는‘영사시(詠史詩)’를 지으면서 세상사로부터 유연히 물러나 있는 탈속(脫俗)의 자세로 표현하였다.「천길 벼랑에 옷을 걸고 만리로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다.(振衣千인崗 濯足萬里流)」
허심탄회 虛心坦懷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 명랑하고 거리낌이나 숨김이 없는 마음. |
허장성세 虛張聲勢
헛되이 목소리의 기세만 높인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로만 떠벌리다. |
혁명 革命
천명이 바뀌다. 하늘의 뜻에 따라 포악한 통치자를 몰아내고 백성을 구제하다. |
고사 :『주역(周易)』의 혁괘편(革掛篇)에“은(殷)의 탕왕이 하(夏)의 걸왕을 내쫓고 주(周)의 주왕을 치고 혁명을 일으켜서 하늘에 순하고 사람에 응했다.”라고 하였다.
☞혁명의‘革’은 갓 벗겨낸 가죽인‘피(皮)’를 무두질하여 새롭게 만든 가죽(革)이므로‘면모를 일신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주역(周易)의 괘(掛)이름이기도 하다. 연못 바닥에 불덩이가 앉아 있는 상극(相剋)의 형상이다. 무엇인가 뒤집어 놓아야 할 괘가 곧 혁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폭군이 출현하면 하늘도 명(命)을 거두워 들인다고 보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종래의 명을 뒤집는 것이 혁명이다. 천명을 완전히 뜯어고친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혁명이라는 개념(槪念)은 매우 파괴적인 힘으로 간주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사회의 기본 도덕과 종교적 신조가 타락한 뒤에야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화의 기본 가치 체계가 허약해지면 그 사회에서는 혁명이 일어나기 쉽다고 결론지었다. 중세시대에는 종교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혁명을 불순한 개념으로 강조했으나, 르네상스 시대에 인문주의가 등장하면서 혁명을 신성 모독의 한 원인으로만 여기던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17세기 영국의 작가 존 밀턴은 사회로 하여금 자체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혁명의 고유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밀턴에 따르면 혁명은 자유를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18세기에 일어난 프랑스와 미국의 혁명은 압제적인 지도자로부터 자유를 쟁취하려는 시도였다.
쿠데타(coup d'?tat)란 프랑스어로‘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이다. 혁명이 피지배 계급에 의한 반란인 데 비해 쿠데타는 일부 지배권력이 자기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수행되며, 권력 이동은 지배 계급 내부의 수평이동에 불과하다. 쿠데타는 군대, 경찰 등에 의해 은밀하게 계획되고 기습적으로 감해되며 정권 탈취 후에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계엄령 선포, 반대파 숙청, 의회 정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
혁명이든 쿠데타든 반골 정신이 강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다. 반골(反骨)이란 말은 중국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삼국시대 때 제갈량의 부하였던 위연(魏延)은 전공을 많이 세웠지만 너무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깔보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제갈량은 그의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대성할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연은 이 점이 늘 불만이어서 반역의 뜻을 품었다. 마침내 제갈량이 죽고, 기회가 온 듯 싶었다. 그날 밤 위연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기 머리에 뿔(角) 두 개가 거꾸로(反) 뻗어나 있는 꿈이었다. 부하 조직(趙直)에게 해몽을 부탁하니“기린의 머리에도 뿔이 있고 청룡의 머리에도 뿔이 나 있습니다. 천하에 보기 드문 길몽입니다.”라고 거짓 꿈풀이를 해주었다. 기고만장한 위연은 모반을 결심했다. 한편 제갈량은 생전에 위연이 모반할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고 있었으므로 임종(臨終) 때 마대(馬岱)와 양의(楊儀)에게 비책을 일러주었다. 드디어 위연이 반기를 들었으나 양의의 계략에 말려 마대의 칼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角은 칼(刀)을 사용한다(用)는 흉몽이었던 것이며, 생전 제갈량의 눈에는 위연의 목덜미 뒤에 뼈(骨)가 거꾸로(反) 솟은 것이 보였기에 모반을 짐작했던 것이었다. 이에 연유하여 반골이란 말은‘어떤 세력이나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저항하는 기개 또는 그런 기개를 가진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현두자고 懸頭刺股
머리를 끈으로 묶어 높이 매달고 허벅다리를 찔러 잠을 깨우다. 학업에 매우 힘쓰다. |
현하지변 懸河之辨
흐르는 물과 같은 연설. 매우 유창한 말솜씨. |
혈혈단신 孑孑單身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홀몸. |
형설지공 螢雪之功
반딧불에 비춰 공부한 방의 창문과 눈에 비춰 공부한 책상. 쉬지 않고 부지런히 면학에 힘쓰는 것. |
螢窓雪案(형창설안). 車螢孫雪(차형손설). 映雪讀書(영설독서).
고사 :「진나라의 차륜이 어려서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기름을 항상 얻지는 못했다. 여름철에 명주 주머니에 수십 개의 반딧불을 담아 책을 비추어 그것을 읽어 밤낮으로 계속하더니, 뒤에 벼슬이 상서랑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들이 공부방의 창을 형창이라 함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진나라의 손강이 젊었을 때 마음이 맑고 꿋꿋하여 사귐이 잡스럽지 않았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기름이 없어 일찍이 눈에 비추어 책을 읽더니, 뒤에 벼슬이 어사대부에 이르렀다. 지금 사람들이 책상을 설안이라 함은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晉 車胤이 幼에 恭勤博覽할새 不常得油라. 夏日에 以練囊으로 盛數十螢火하여 照書讀之하여 以夜繼日이러니, 後에 官至尙書郞하니라. 今人이 以書窓으로 爲螢窓은 由此也니라. 晉 孫康이 少에 靑介하여 交不雜이나 家貧無油하여 嘗映雪讀書러니, 後에 官至御史大夫하니라. 今人이 以書案으로 爲雪案은 由此也니라.)」(晉書)
** 螢(반딧불 형) 胤(잇다, 자식 윤) 練(비단 련) 囊(주머니 낭) 照(비출 조) 康(편안할 강)
호가호위 狐假虎威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리다. 남의 권세에 붙어 위세를 부리는 사람. |
借虎爲狐(차호위호). 假虎威狐(가호위호).
고사 :「호랑이가 온갖 짐승을 구하여 그것을 먹으려다가 여우를 얻으니, 여우가 말하기를“그대는 감히 나를 잡아먹지 못하리라. 천제께서 나로 하여금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으니 이제 그대가 나를 잡아 먹으면 이는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대가 나를 못 믿겠다 생각하거든 내가 그대를 위해 앞서 갈 터이니, 그대는 내 뒤를 따라오면서 온갖 짐승들이 나를 보고 감히 달아나지 않는가를 보아라.”했다. 호랑이는 그렇다고 생각하여 드디어 그와 더불어 가자, 짐승들이 이것을 보고 모두 달아나거늘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한다고 여겼다.(虎求百獸而食之라가 得狐하니 狐曰,“子는 無敢食我也리라. 天帝使我長百獸하니 今子食我면 是는 逆天帝命也라. 子以我爲不信이어든 吾爲子先行하리니 子隨我後하여 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하라”하니 虎以爲然하여 故로 遂與之行한대 獸見之하고 皆走어늘, 虎不知獸畏己而走也하고 以爲畏狐也러라.」(戰國策)
** 假(빌릴 가) 威(위엄 위) 敢(감히 감) 獸(짐승 수) 隨(따를 수) 畏(두려워할 외)
호구지책 糊口之策
입에 풀칠하다. 겨우 먹고 살아가는 방책. |
호사다마 好事多魔
좋은 일에는 방해되는 것이 많다. |
호시탐탐 虎視耽耽
호랑이가 먹이를 탐내어 노려보다. 욕망을 채우려고 기회를 노려 정세를 관망하다. |
호연지기 浩然之氣
넓고 큰 기운. 천지간에 가득찬 정기(精氣).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 자유롭고 넓고 큰 기운. 천지간에 가득찬 정기(精氣). 공명정대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도덕적 용기. 자유롭고 느긋한 마음. |
고사 : 맹자가 제(齊)나라에서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나눈 대화다.“선생님이 제의 대신이 되어서 도를 행하신다면 제를 틀림없이 천하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도 아마 동심(動心-책임을 느껴 마음을 움직임)하실 것입니다.”“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네.”“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맹자는 그것을 용(勇)이라 말하였다. 심중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어떠한 것이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용(大勇)이라 하였다.“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告子-맹자의 논적(論敵-맹자의 성선설 부정)〕의 부동심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소극적이다. 나는 알고 있다〔知言〕. 거기에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있다. 지언(知言)이란 피사(피辭-편협한 말), 음사(淫辭-음탕한 말), 사사(邪辭-간사한 말), 둔사(遁辭-피하는 말)를 가려낼 수 있는 명(明)을 갖는 것이다. 또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를 말하며, 기(氣)는 매우 광대하고 강건하며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서 이것을 해치지 않도록 기르면, 천지간에 넘치는 우주 자연과 합일하는 경지다. 기는 의(義)와 도(道)를 따라 길러지며 이것을 잃으면 시들고 만다. 이것은 자신 속에 올바른 것을 쌓아 올림으로써 생겨나는 것이다.”(孟子, 公孫丑篇)
☞옛날 우리나라의 문객들도 낚시를 즐겼는데, 낙향 또는 유배 생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경우가 많았다. 낚시와 관련된 고사도 많아 공자는‘조이불망(釣而不網)’이라 하여 군자는 고기를 잡되 그물질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강태공은 강가에서 낚시로 일하면서 천하의 경륜을 탐구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 파묻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즐겼다고 한다. 강태공이 쓰는 낚시바늘은 미늘이 없이 곧아서 물고기가 낚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강태공이 세월을 낚았다.”라고 말햇다. 이러한 연유로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접지몽 胡蝶之夢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아다닌 꿈. 만물제일이요, 사물은 절대적 경지에서 보아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
고사 : 장자(莊子)의 만물제동(萬物齊同) 사사에는 우리가 대소(大小), 미추(美醜), 선악(善惡), 시비(是非) 등의 대립되는 가치관에 있어서 그 하나는 좋다 하고 그 하나는 나쁘다고 하는데, 장자는 그것은 우리가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무차별임을 주장하였다.“꿈 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사람이 아침에는 슬픈 일이 생겨 통곡하는 수가 있다. 또 꿈 속에서 통곡하던 사람이 아침에는 사냥을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임을 의식하지 못하여 꿈 속에서 꿈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나 깨어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된다.”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꿈이 현실이 아니고, 현실이 꿈이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는 주장이다.“예전에 나는 나비가 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기꺼이 날아 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장주와 나비는 별개의 것이건만 그 구별이 애매함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사물이 변화하기 때문이다.”도(道)의 세계에서 보면 만물이 다 제일(第一)하다. 장주도 호접이고 호접도 장주라. 꿈도 현실이고 현실도 꿈이다.(莊子, 齊物篇)
호천망극 昊天罔極
끝없는 하늘과 같이 부모의 은공이 끝이 없음. |
혹세무민 惑世誣民
세상을 미혹되게 하고 백성들을 속이다. |
혼비백산 魂飛魄散
넋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지다. 몹시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 |
혼연일체 渾然一體
사람들의 행동·의지 따위가 조금도 차이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다. |
홍일점 紅一點
① 여럿 가운데서 오직 하나 이채를 띠는 것. ② 많은 남자들 틈에 오직 하나뿐인 여자. ③ 여러 하찮은 것 가운데 단 하나 우수한 것. |
고사: 북송(北宋) 6대 황제인 신종(神宗) 때 왕안석(王安石:1021∼1086)이란 재상이 있었다. 당시 신법당(新法黨)의 지도인 왕안석은 재상에 임명되자 부국강병을 위한 이른바 '왕안석의 개혁'을 실시했다. 처음에는 구양수(歐陽脩) 사마광(司馬光) 정이[程 :호는 이천(伊川)] 소식(蘇軾) 등 유명한 문신들이 주축이 된 구법당(舊法黨)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쳤으나 신종의 적극적인 지지를 배경으로 중단 없이 실행되었다.
왕안석은 시문(詩文)에도 능하여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혔는데 그의〈영석류시(詠石 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많은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 붉은 꽃
[萬綠叢中 紅一點(만록총중 홍일점)]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 많은들 무엇하리
[動人春色 不須多(동인춘색 불수다)]
홍로점설 紅爐點雪
불로 벌겋게 단 화로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는다. 사욕이나 의욕이 일시에 꺼져 없어짐. |
화룡점정 畵龍點睛
장승요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즉 곧 하늘로 올라갔다.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완성시키다. |
고사 :「唐나라 때 장승요란 사람이 금릉 안락사에 두 마리 용을 그려 놓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매양 말하기를“눈동자를 그려서 넣으면 곧 날아서 가리라.”하니 사람들이 미친 놈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 넣으니 잠깐 사이에 우뢰가 일고 번개가 나더니 벽이 쪼개지면서 한 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가고 한 마리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은 것은 그대로 있더라.(張僧繇가 於金陵安樂寺에 畵兩龍호대 不點睛하고 每云‘點之면 卽飛去라’하더니 人이 以爲妄이어늘 因點其一하니 須臾에 雷電破壁하여 一龍이 上天하고 一龍 不點眼者는 見在하니라.」(水衡記)
** 繇(우거질 요) 畵(그림 화) 睛(눈동자 정) 雷(우뢰 뢰) 電(번개 전) 壁(벽 벽)
화사첨족 畵蛇添足
뱀을 그리고 발을 더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는 일을 하는 것. |
蛇足(사족).
화서지몽 華胥之夢
화서의 꿈이란 뜻으로, 좋은 꿈이나 낮잠을 이르는 말. |
고사:먼 옛날 중국 최초의 성천자(聖天子)로 알려진 황제[黃帝:공손헌원(公孫軒轅)]는 어느 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화서씨(華胥氏)의 나라에 놀러 가 안락하고 평화로운 이상경(理想境)을 보았다.
그곳에는 통치자도 신분의 상하도 연장(年長)의 권위도 없고, 백성들은 욕망도 애증(愛憎)도 이해(利害)의 관념도 없을 뿐 아니라 삶과 죽음에도 초연하다. 또 물 속에 들어가도 빠져 죽지 않고 불 속에 들어가도 타 죽지 않으며, 공중에서 잠을 자도 침대에 누워 자는 것과 같고 걸어도 땅 위를 걷는 것과 같다. 또한 사물의 미추(美醜)도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고 험준한 산골짜기도 보행을 어렵게 하지 않는다. 형체를 초월한 자연 그대로의 자유로 충만한 이상경인 것이다.
이윽고 꿈에서 깨어난 황제는 번뜻 깨닫는 바 있어 중신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꿈 이야기를 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짐은 지난 석 달 동안 방안에 들어앉자 심신 수양에 전념하며 사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려 했으나 끝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소. 그런데 짐은 이번에 꿈속에서 비로소 그 도(道)하는 것을 터득한 듯싶소."
그 후 황제가 '도'의 정치를 베푼 결과 천하는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화씨지벽 和氏之璧
천하 명옥(天下名玉)의 이름. |
고사: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산 속에서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 王)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그러안고 궁궐 문 앞에서 사흘 낮 사흘 밤을 울었다. 문왕이 그 까닭을 묻고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화씨지벽'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렸다.
화중지병 畵中之餠
그림의 떡. 아무리 욕심이 나도 차지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 형체는 쓸모 없는 것. |
화호유구 畵虎類狗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 비슷하게 됨. 소양이 없는 사람이 호걸의 풍도를 모방하다가 경박한 사람이 됨. |
환골탈태 換骨奪胎
① 환골은 옛사람의 시문을 본따서 어구를 만드는 것. 탈태는 고시(고시)의 뜻을 본따서 원시와 다소 뜻을 다르게 짓는 것. 옛 사람이나 타인의 글에서 그 형식이나 내용을 모방하여 자기의 작품으로 꾸미는 일. ② 용모가 환하고 아름다워 딴 사람처럼 됨. |
환과고독 鰥寡孤獨
홀아비, 과부, 고아,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곤궁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 |
황당무계 荒唐無稽
말이나 행동이 터무니 없고 근거가 없음. |
회자인구 膾炙人口
膾는 날고기, 炙는 구운 고기 이니, 맛있는 음식처럼 시문등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찬양을 받는 것. |
회자정리 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임.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횡설수설 橫說竪說
말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하다. 두서가 없이 아무렇게나 떠드는 것. |
효시 嚆矢
전쟁터에서 우는 화살을 쏘아 개전(開戰)의 신호로 삼다. 모든 일의 시초. |
最初(최초).
濫觴(람상) : 큰 강물도 그 근원은 술잔이 넘칠 정도의 작은 물에서 시작한다.
源泉(원천). 源流(원류). 水源(수원) : 물이 흐르는 근원.
破天荒(파천황) : 천지개벽 이전의 혼돈한 상태를 깨뜨린다. 아무도 생각 못한 놀라운 일을
하는 경우.
후생가외 後生可畏
후진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큰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두렵게 여김. |
고사 :「공자가 말씀하시기를“후생을 두려워할 것이니라. 어찌 오는 사람이 지금과 같지 못할 줄을 알겠는가. 그렇지만 만일 그들이 나이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그 이름이 들려오지 않으면 또한 두려워할 것이 없느니라.(子曰 後生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이니라.”)」(論語, 子罕篇)
후안무치 厚顔無恥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
후회막급 後悔莫及
일이 잘못된 뒤라 아무리 뉘우쳐도 어찌할 수 없다. |
흥미진진 興味津津
흥미가 넘칠 만큼 많다. |
흥진비래·고진감래 興盡悲來·苦盡甘來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고 고생이 다하면 즐거음이 온다.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번갈아 온다. |
희노애락 喜怒哀樂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
희생 犧牲
천지(天地), 종묘(宗廟) 제사 때 바치는 동물. ‘희’는 색이 순수한 것,‘생’은 점을 쳐서 길(吉)을 얻었는데, 아직 죽이지 않은 것. |
☞희생(犧牲)이란 짐승을 한 마리 통째 제물로 쓰는 것 또는 제물로 쓰는 그 짐승을 말하며, 영어 sacrifice는 '신성하게 하는 것'을 뜻하는 라틴어 'sacrificium'에서 유래하였다. 희생제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의 분노, 즉 자연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물에 원시시대부터 있어 왔다. 원시인들은 자연의 모든 물질을 하늘이 소유하고 있으며, 그 소유물의 일종인 짐승을 인간이 마음대로 포획하면 하늘이 분노한다고 믿었다. 인간이 사육하는 가축도 하늘의 것이지만 생존을 위해 부득이 잡아 먹어야 하므로 하늘의 이해를 구해야하며, 그 방법으로 가장 큰 짐승을 잡아서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르게 되었다. 희생제의에 있어서 축성된 제물의 생명은 사람과 신 사이의 유대관계를 확립해주는 거룩한 효력으로서 작용하며, 생명은 희생제의를 통해 본래의 신적인 근원으로 돌아가 그 근원의 능력(생명)을 되살린다. 그러므로 로마시대의 제사자는 "이 제물을 먹고 증대하옵소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 올림픽때 희생 제의를 치른후 참가자 전원이 희생제물을 나눠먹으며 즐거워한 풍속이나, 조선시대때 선농단에서 제사 지낸 후 그 고기로 국(설렁탕의 유래)을 만들어 나누어 먹은 사례에서 알수 있듯, 희생 제의는 점차 축제 또는 잔치화하기에 이르렀다.
돼지가 굿이나 제사에 쓰이는 데는 전해 내려오는 무속 신화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옛날 하늘세계의 옥황상제 밑에 업장군과 복장군이 있었다. 두 장군은 서로 시기하는 사이로, 상제는 그들의 시기 싸움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 탑을 쌓게 하여 그들중 먼저 탑을 쌓은 사람을 가까이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업장군이 잔꾀를 부려 복장군에게 이겼다. 상제가 업장군을 가까이 하기로 하였으나 곧 업장군이 잔꾀를 부린 것이 탄로났다. 상제는 복장군을 돼지로 환생하게 하여 네 발 달린 짐승이나 사람들이 상제께 소원을 빌 때 중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때부터 돼지가 제사에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돼지가 자주 소원의 사자로 등장한 실제적 이유는 소와는 달리 비교적 서민들도 구할수 있는 짐승이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쇠머리를 공물로 바치려면 소 한마리를 통째로 잡아야 하는데, 옛날과 같이 소가 귀한 시기에 그것을 구하여 공물로 쓰기는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그보다는 구하기가 쉬운 돼지머리를 자주 쓰게 되었던 것이다.
희색만면 喜色滿面
기쁜 빛이 얼굴에 가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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