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거목(巨木)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동초(忍冬草)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제 오후 1시43분 영면했습니다.
향년 85세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모두에게 착잡한 심정과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이제 평화롭게 그 생이 막을 내렸으니 가히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장세력이 부국강병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면 민주세력은 인권과 가치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지요.
“조선시대 주전파와 주화파 중 누가 옳으니 말이 많은데 주화파만 있었다면 의리와 염치가 없는 민족으로 지탄받았을 거고, 주전파만 있었다면 우리 민족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 저희 은사 고 김충렬 고려대 교수의 말씀을 현대에 적용하면 두 세력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후광이 민주세력의 큰 버팀목이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조차 없지요.
오늘 수많은 언론에서 후광의 업적을 다룰 것이기에 저는 건강 측면의 얘기만 하렵니다. 고인은 1997년 15대 대선 기간에 건강악화설에 시달렸습니다. 여당에서 모종의 발표를 한다는 소문이 확산되자 국민회의 쪽은 연세대 의대 허갑범 교수에게 진료를 의뢰합니다. 허 교수는 “고관절 변형, 왼쪽 귀의 귀울림을 제외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성인병은 없다”고 발표해 논란을 잠재웠습니다.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은 허 교수는 당시 저와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각하의 뇌 CT사진을 보니까 30대의 뇌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허 교수에 따르면 고인은 늘 메모하고 공부했습니다. ‘행복한 워커홀릭’이 뇌건강을 유지한 지름길이었던 셈입니다.
많은 의사들은 후광이 대통령 시절 당뇨병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퇴임 이듬해 당뇨병 합병증인 심장동맥 협착과 신장염이 함께 와서 시술을 받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교통사고, 감옥살이, 피랍 등으로 심신이 크게 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이로 86세까지 명정한 정신으로 정정하게 활동한 것은 건강에 A학점을 유지한 것이 아닐까요? 그것은 큰 그릇으로서 절제된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고인은 평소 의사의 말에 따라 ‘과학적 건강법’에 충실했다고 합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고 술도 멀리 했습니다. 음식은 골고루 소식했고 종합비타민을 복용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영을 했으며 1971년 교통사고 이후 다리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걷는 것을 즐겼습니다.
서거 직전까지 고인을 돌봤던 세브란스병원 정남식 교수는 “필요 없는 약, 증명되지 없는 약은 전혀 복용하지 않았고 의사의 말을 100% 따른 환자”였다고 회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