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상인 서울대 교수·사회학
초고층 아파트 거주가 한국 사회 성공의 징표
높은 곳서 내려다보면 地上의 고통과 절망 못느껴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져… 공동체·이웃 잊지 말아야
얼마 전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씨 일가가 월남하여 서울에서 처음 말뚝을 박은 곳은 인왕산 기슭의 현저동 달동네였다. 아닌 게 아니라 1980년에 나온 작가의 작품 〈엄마의 말뚝〉은 '달동네'라는 말을 널리 유포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산동네에 비해 달동네의 어감이 훨씬 정겹고 따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 주변의 고지대 영세민 마을을 뜻한다는 점에서 실상은 그게 그거다.
1970년대 초 미국 인류학자 빈센트 브란트는 한국의 달동네에서 '빈곤(貧困)의 등고선'을 발견했다. 당시 서울지역 극빈자들의 집단 거주지를 연결해보니 대부분 높은 산등성이더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산 아래 낮은 곳은 부자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은 빈부의 등고선이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요새는 가난할수록 낮은 곳에, 부유할수록 높은 곳에 산다.
서민들의 대표적인 삶의 터전인 달동네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알려진 노원구 중계동 백사마을도 조만간 재개발에 밀려난다.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것은 고층 아파트로 원주민들이 그곳에 입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옛날 관악구 봉천동이나 신림동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마도 지하 혹은 반(半)지하 전·월세 집에 들어갈 것이다. 주거 난민(難民)이 되어 저지대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만화방, PC방, 고시원, 찜질방, 다방, 여관, 여인숙 등을 전전할지도 모른다. 하긴 대다수 노숙인들에게는 지하도가 집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자들의 집은 나날이 '고고익선(高高益善)'이다. 우선 이는 우리나라 도시들의 전반적인 고층화 탓이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는 평균 18층 이상이 되었는데, 1980년대에 비해 두 배쯤 높아졌다. 게다가 최상류층일수록 초고층을 찾는 것이 작금의 주거문화다. 지난 2002년 강남구 도곡동에 66층짜리 초고층 고급 아파트가 등장하더니 이젠 100층 가까이 높은 빌딩에도 아파트가 속속 들어선다. 언제부턴가 로열층이 맨 꼭대기로 올라갔고, 이른바 '펜트하우스'의 인기 또한 식을 줄 모른다.
거주 공간이 계층별로 구분되는 것 자체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유난스레 경험하고 있는 것은 거주지역의 수직적 양극화다. 하긴 좁은 면적에 인구는 많은 우리나라 형편에 서양의 도시처럼 거주지의 수평적 분화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것이 집의 빈부 고도(高度) 격차를 이처럼 크게 벌린 유일한 이유는 아닐 성싶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다른 요인들이 숨어 있는 듯하다.
먼저 그것은 부자들의 과시적 주택 소비와 무관하지 않다. 압축적 고도 성장 과정에서 전통적 상류사회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는 초고층 아파트 거주를 성공의 징표로 삼는 측면이 있다. 내면의 문화자본 미숙(未熟)에 대한 일종의 보상 심리 같아 보인다.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처럼 '시선(視線)은 권력' 아니겠는가. 조망과 전망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주변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뜻하기도 한다. 높은 지위나 공간을 차지한 사람들이 디자인 개념을 강조하면서 도시의 가독적(可讀的) 질서와 미학적 경관을 중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고층족(高層族)'으로 살게 되면 지상(地上)의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효과도 있다.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경제적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그곳에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비행기에서 멀리 내려다보는 세상이 항상 평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착시(錯視)현상과 같은 이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물론 주거의 프라이버시 자체는 높은 데 사는 부자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들의 남모를 선행이나 자선, 기부, 봉사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살 만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나 사회 통합의 진정한 의미는 여전히 요원하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지금처럼 주거 공간의 수직적 양극화 추세가 심화된다면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기가 점점 더 어렵기 때문이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도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오히려 쉬운 세태가 되어 간다. 하지만 그게 서민들의 달동네가 없어져야 할 명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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