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최고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제조업체도, 유통업체도, 금융업체도 역시 고객이 최고다. 이를 위해 신제품을 만들고, 매장을 재배치하고, 온갖 아이디어를 쥐어짜낸다. 그러나 그 많은 신제품과 아이디어 중에 고객을 사로잡는 건 몇 가지 안 된다. 고객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 중 하나가 고객 세분화다. 무턱대고 ‘모든 고객을 잡겠다’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특정 계층을 겨냥한 제품과 아이디어가 성공 확률이 높다. 공략 계층을 먼저 설정한 뒤 그에 걸맞은 제품과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순서다.
그러자면 고객 연구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서 시장조사는 항상 중요하다. 큰 기업이나 작은 기업이나 다를 게 없다.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나이로 나눠 동심(童心)을 잡든지, 성별로 나눠 여심(女心)을 잡든지, 돈으로 나눠 부심(富心)을 잡든지 내 고객을 사로잡는 건 단군 이래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동심(童心)을 잡은 모닝글로리
요즘 미국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선물 중 하나는 강아지 인형이다. 평범하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렇고 그렇다. 그런데도 생일선물로 이 강아지 인형을 받으면 아이들은 펄쩍펄쩍 뛴다.
이유는 이렇다. 강아지가 살아 있어서다. 다름 아닌 웹사이트에서다. 강아지에는 조그만 꼬리표가 붙어 있다. 여기에 적혀 있는 웹사이트(www.webkinz.com)에 들어가 꼬리표의 번호를 등록하면 강아지는 웹사이트에서 살아난다. 사이트는 아이들이 좋아하게끔 구성돼 있다. 각종 게임방에서 게임을
해 돈(점수)을 번다. 이 돈으로 쇼핑몰에 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고른다. 그 다음 강아지가 사는 방을 꾸민다. 침실에 침대도 놓고 화장대도 놓는다. 화장실도 별도로 만들 수 있다. 이 방에서 강아지는 잠도 자고 화장실도 가고 거울도 본다. 어찌나 생생한지 정말 살아 있는 것 같다. 사이트에서 사귄 친구들의 강아지를 서로 소개시킬 수도 있다. 아이들은 강아지 한 마리를 웹사이트에서 키우는 셈이다.
이 사이트는 모두 영어로 돼 있다. 말도 영어로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돈의 단위가 달러가 아니라 ‘₩(원)’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예쁜 베개를 사려면 50₩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물론 이것은 점수 개념이라 아이들은 돈의 단위엔 별 관심이 없다.
왜 돈의 단위가 ₩인가 했더니 이걸 만든 업체가 한국의 모닝글로리다. 미국 내에 몇 개의 매장을 내고 성업 중이다. 매장 내의 물건이 어찌나 아기자기하고 예쁜지 투박한 물건에 익숙한 미국 아이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물론 모닝글로리가 이 강아지 인형과 웹사이트를 통해 얼마나 수익을 올렸는지는 모른다. 또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수익을 얼마나 더 얻는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디어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여심(女心)을 잡은 모토로라와 홀마크
휴대폰은 기능이 최고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합쳐졌다는 애플의 ‘아이폰(iPhone)’이 주목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객이 여성이라면? 기능뿐만 아니라 ‘여성다움’이 또 다른 변수가 된다.
모토로라는 작년에 ‘돌체 & 가바나’라는 V3i 전화기를 내놨다. 금액은 400달러. 웬만한 전화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싸다. 특징은 호사스럽고 날렵하다는 점. 한마디로 기능과 관계없이 여자들이 딱 좋아하게 만들어졌다. 결과는 성공적.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모토로라는 이에 힘입어 여성들이 원하는 게 뭔지 조사에 나섰다. 긴 손톱으로 누르기에 문제없는 키보드, 얼굴의 화장품이 번지거나 묻어나지 않는 표면처리, 핸드백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치 등을 앞으로 만들 제품에 반영할 예정이다.
비단 모토로라만이 아니다. T모빌은 400달러짜리 보석이 장식된 핑크색 ‘주시 쿠투어’ 전화기를 내놓았다. 모조 다이아몬드가 달린 전화기도 불티나
게 팔린다. 시장이 얼마나 되는지는 물론 모른다. 그러나 여성적 감수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고객 세분화에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
각종 카드와 포장지로 유명한 홀마크. 홀마크는 여성다움이 아니라 ‘편리함’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선물 포장지의 구매 고객은 주로 여성이다. 그래서 홀마크는 아름답고 예쁘장한 포장지로 재미를 봤다. 그러다가 최근엔 포장지 대신 기프트 백에 주력하고 있다.
홀마크가 처음으로 기프트 백을 선보인 것은 1987년. 생일파티용 구디 백이 1990년대 들어 히트를 쳤다. 이어 베이비샤워(출산을 앞둔 임부에게 아기용품을 선물하는 파티), 결혼 및 생일선물용 기프트 백이 그 뒤를 따랐다. 품목도 다양해 종류가 1천600여 가지나 된다. 달랑 기프트카드 한 장 들어가는 초미니부터 이불이나 자전거를 넣을 수 있는 점보 사이즈까지 있다. 동그란 것, 사다리꼴 등 모양도 다양하다. 재료도 벨벳에 구슬은 기본이고 술, 새의 깃털로 장식한 것까지 나오고 있다. 결과는 역시 성공적이었다. 포장지는 선물을 포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쇼핑백 같은 기프트백은 그런 수고가 필요 없다. 백에 물건만 담으면 된다. 디자인이 워낙 뛰어나 포장지로 포장한 것과 효과는 같다. 그러다 보니 기프트 백은 이미 생일과 베이비샤워 용품 부문에서 포장지를 앞질렀다. 올해는 4억 달러의 매출로 포장지를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부심(富心)에 도전하는 베스트바이
베스트바이는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체인이다. 전자제품이 없는 게 없다. 너무 많아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고를지가 고민일 정도다. 이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자제품을 잘 모르는 여성들은 더 난감해한다. 베스트바이는 이에 착안해 최근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였다. 돈이 될 만한 여성 손님을 위한 전담 인력을 배치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매장 입구에 나타난다. 그러고는 핸드백에서 종이를 꺼낸다. 구입할 물건을 확인한 뒤 매장 배치도를 본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면 전담 인력이 다가가 손님을 안내해 쇼핑을 도와준다.
베스트바이의 일부 매장은 아예 주차장에서부터 VIP 고객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다. 비라도 올라치면 주차장에서 매장까지 핑크색 우산을 받쳐주고, 물건도 자동차에 직접 실어주는 식이다.
베스트바이가 겨냥하는 여성 VIP 고객의 특징은 간단하다. 매우 영리하고 부유하며 집안의 최고경영자이자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다. 전자제품 매장에는 1년에 두어 번 들를 뿐이지만 한 번에 쓰는 돈은 상당하다. 매사에 자신 있는 그녀지만 전자제품 매장에만 오면 모르는 게 많아 공연히 주눅이 든다. 이들을 타깃으로 눈에 띄지 않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게 베스트바이의 전략이다.
한마디로 부심(富心)을 잡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