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요령
문상(조문)시 지켜야 할 예법
영정 앞에 절할 때는 남자는 오른손, 여자는 왼손을 위로
경사와 달리 애사 때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최대한 격식을 차려야 한다.
상가집에 가면 빈소에 들어가 먼저 상주와 목례를 한 다음,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성냥이나
라이터로 향불을 붙이고 손바닥으로 바람을 일으켜 불을 끈 후 향로에 꽂는다.
간혹 입으로 불을 끄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례이다.
향로에 향을 꽂은 후에는 영정을 향해 두 번 절을 해야 하는데 남자는 오른손이,
여자는 왼손이 올라가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세배할 때는 정반대로, 남자는 왼손을,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절을 할 때 여자는 원래 음양의 원리에 따라 4배를 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성별에 관계없이
* 재배로 바뀌고 있다.
고인에게 예를 다했다면 상주와 맞절을 한 번 하고
"삼가 고인을 명복을 빕니다",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라고 애도의 뜻을 전한다.
고인이 편하게 떠났거나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호상이라 다행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문상객의 자세가 아니다.
* 재 배
▽선절(남녀)=한걸음 물러서 45도이상 깊숙이 숙이고 7초 정도 머무른다.
▽앉은절△남:한걸음 물러서 재배한다.
△여:4배가 원칙이지만 재배도 무방하다.
상가의 문상예절을 따르는게 예의
상가의 종교가 자신의 종교와 달라 난처할 때가 있다.
종교마다 문상예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는 자신의 종교보다는 상가의 종교에 맞는 예법을
따르는 게 좋다.
예컨대 영정 앞에 향 대신 흰 국화가 놓여 있다면
꽃을 제단 위에 놓고 묵념이나 기도를 올리면 된다.
사람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 바로 꽃의 방향.
문상은 떠나간 고인에게 예를 다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 물건을 받기 편하게 드린다는
생각으로, 꽃의 줄기가 고인을 향하게 해야 한다.
여러 명이 문상을 할 때, 분향은 대표 한 사람만
문상을 여럿이 갔을 때 모든 사람이 다 분향해야 하는지,
아니면 한 사람만 해야 되는 것인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가 있다.
두세 명 정도라면 한 사람 한 사람 분향해도 되지만,
그 이상의 숫자일 때는
대표 한 사람만 분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한국고전번역원의 조언이다.
또 여럿이 한꺼번에 고인이나 상주에게 절을 할 때
고개를 언제 들어야 할지 눈치를 보는 수가 있다.
먼저 고개를 들었다가 다른 사람이 아직 들지 않은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런 경우이다.
이것은 꼭 통일해야 할 필요는 없고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다만 상주와 맞절을 할 때는 상주보다 먼저 고개를 들어 주는 것이 좋다.
향불은 세 개를 피우는 것이 원칙
향은 원래 세 개를 분향하는 것이 원칙이다.
세 개의 향불은 천신과 지신,
그리고 조상에게 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 개를 붙여도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홀수가 길한 숫자를 뜻하기 때문에 반드시 한 개나 세 개를 해야 한다.
영정 앞에서 올리는 절은, 한 번은 천신에게 잘 받아 달라는 의미,
두 번째는 지신에게 잘 떠나게 해 달라는 의미이다.
# 음양사상에 따르면 1은양, 2는 음을 뜻한다.
즉 살아 있는 사람이 양이고 죽은 사람은 음이기 때문에 고인에게는 절을 2번 한다.
상주와 하는 맞절은 상주의 조상들에게 상주를 잘 보살펴 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조의금 봉투엔 '賻儀'
조의금은 봉투 겉에 '賻儀'(부의)로 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謹弔(근조), 弔儀(조의), 香燭臺(향촉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도 무난하다.
문상예절
문상1 |
문상2 | |
①외투는 대문 밖에서 벗어 든다. ②상제에게 목례 ③영정 앞에 무릎꿇고 분향한다 (향을 한개나 세개를 집어 성냥불이나 촛불에 붙인 다음 손가락으로 가만히 잡아서 끄던가 왼손을 가볍게 흔들어 끈 다음 두손으로 향로에 꽂는다-절대로 입으로 끄지 말 것). | ||
문상3 |
문상4 | |
④영정에 재배하고 한 걸음 물러선다. ⑤상제에게 절을 하며, 인사말을 한다. 상제의 부모인 경우 : "상사에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상제의 아내인 경우 : "위로할 말씀이 없습니다" 상제의 형제인 경우 : "상을 당하셔서 얼마나 비감하십니까" |
조문(弔問)과 조상(弔喪)
상가에서 가서 상주에게 인사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을 '조문'이라 하고,
반면 죽은 이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조상'이라고 한다.
'문상'은 조문과 조상을 합한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 말들을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 가까운 친지가 상을 당하였을 경우 -
가까운 친척, 친지 가운데서 상을 당한 연락이 오면 가급적 빨리 상가에 가서
상제를 도와 장의준비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상가에 가면 우선 상제들을 위로하고 장의 절차,
예산관계 등을 상의하고 할 일을 서로 분담하여 책임감있게 수행해 준다.
그러나 내용도 잘 모르면서 이일 저일에 참견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또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복장을 바르게 하고 영위에 분향재배하며,
상주에게 정중한 태도로 예절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조문객의 옷차림(남성)
검정색 양복이 원칙이다.
갑자기 통지를 받았거나 미처 검정색 양복이 준비되지 못한 경우
감색이나 회색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
와이셔츠는 반드시 흰색으로 하고 넥타이, 양말, 구두는 검정색으로 한다..
- 조문객의 옷차림(여성)
검정색 상의에 검정색 스커트를 입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주름치마는 폭이 넓어서 앉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아 편리하다.
검정색 구두에 무늬가 없는 검정색 스타킹이 좋다.
그밖에 장갑이나 핸드백도 검정색으로 통일시키고,
또한 되도록 색채화장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조문절차
(1) 외투는 대문 밖에서 벗어 든다.
(2) 상제에게 목례
(3) 영정 앞에 무릎꿇고 분향
(4) 향나무를 깎은 나무향이면 왼손을 오른손목에 바치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향을 집어 향로불 위에 놓는다.
(5) 만수향과 같이 만들어진 향(선향 : 線香)이면 한개,
세개 집어 성냥불이나 촛불에 붙인 다음 손가락으로 가만히 잡아서 끄던가
왼손을 가볍게 흔들어 끈 다음 두손으로 향로에 꽂는다.
(입으로 불어 끄지 않도록 한다.)
선향은 하나로 충분하며,
여러개일 경우 모아서 불을 끄더라도 꽂을 때는 하나씩 꽂아야 한다.
(6) 영정에 재배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상제에게 절을 하며,
인사말을 한다.
(7) 인사말
고인에게 재배하고,
상주에게 절한 후 아무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며 또는 예의에 맞다.
상을 당한 사람을 가장 극진히 위로해야 할 자리이지만,
그 어떤말도 상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이 더욱 더 깊은 조의를 표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굳이 말을 해야 할 상황이라면, '삼가조의를 표합니다.',
'얼마나 슬프십니까?'
또는 '뭐라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정도로 간략하게 하는 것이 좋다.
(8) 조장(弔狀)·조전(弔電)
불가피한 사정으로 문상을 갈 수 없을 때에는 편지(弔狀)나 조전(弔電)을 보낸다.
부고(訃告)를 냈는데도 문상을 오지 않았거나 조장 또는 조전조차 보내오지 않은
사람과는 평생동안 말도 않고 대면도 하지 않는 것이 예전의 풍습이다.
(9) 조위금(弔慰金) 전달
- 조위금 봉투에는 초상의 경우 '부의(賻儀)'라 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그밖에 '근조(謹弔)', '조의(弔 儀)', '전의(奠儀)', '향촉대(香燭臺)'라고 쓰기도 한다.
- 조위금 봉투 안에는 단자(單子)를 쓴다.
단자란 부조하는 물건의 수량이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단자는 흰종이에 쓰는데 단자를 접을 때 세로로 세 번 정도 접고
아래에 1cm정도를 가로로 접어 올리며 가능하면
조의(弔儀) 문구나 이름 등이 접히지 않도록 한다.
- 부조하는 물품이 돈일 경우에는 단자에 '금 ○○원'이라 쓴다.
영수증을 쓰듯이 '일금 ○○원정'으로 쓰지 않도록 한다.
부조하는 사람의 이름 뒤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되지만
'근정(謹呈), 또는 '근상(謹上)'이라고 쓰기도 한다.
단자의 마지막 부분에 '○○댁(宅) 호상소 입납(護喪所入納)'이나
'○상가(喪家) 호상소 귀중'과 같이 쓰기도 하나
요즘은 호상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쓰지 않아도 무방하다.
(10) 자기가 집안 풍습이나 신봉하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조상을 갔을 경우 해당 상가의 가풍에 따라 주는 것이 좋다.
(11) 망인이 연로하셔서 돌아가셨을 때 일반에서는
호상(好喪)이라 하여 웃고 떠드는 일이 있으나 이는 예의가 아니며,
돌아가신 분을 앞에 두고 호상이란 있을 수 없다.
* 상주 서는 위치
신위 쪽에서 볼 때 왼편으로 상주가 늘어선다.
안상주들은 오른편으로 서는데 장소가 좁다면 상주의 뒤쪽에 서 있어도 무방하다.
* 조문 받는 예절
상주들 사이에 종교 때문에 논란을 벌이는 일이 있는데 고인 중심으로 생각한다.
공수(拱手·손을 앞으로 모으는 것)는 흉사이므로 남자는 오른손이,
여자는 왼손이 위로 가도록 포개 잡는다.
상주는 조문객이 하는 절차에 맞춰 응접한다.
맞절할 때 조문객이 자신보다 윗사람이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중에 고개를 든다.
조문객의 인사말에는
‘고맙습니다’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고 답한다.
* 호상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거나 조객록에 서명한다.
휴대전화를 끄고 재배할 때 담뱃갑이나 펜이 떨어지지 않도록 살핀다.
* 분향
상주에게 목례하고 영정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분향한다.
나무향이면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로 향을 집어 향로 속에 세 번 넣는다.
긴 향은 한두 개 집어 불을 붙인 다음 향로에 정중히 꽂고 일어선다.
출처 : http://blog.daum.net/yescheers
*분향 예절*
홀수의 향을 집어 두 손에 맞잡고 가슴부위까지 들어 올린 후
故人을 향해 목례를 올린 후 향에 불을 지펴서 향로에 꼽은 후
목례를 올린후 한발 뒤로 물러서서 절을 올린다.
*헌화 예절*
두 손으로 꽃송이를 들고 가슴부위까지 들어 올린 후
故人을 향해 목례를 올린 후 영좌 앞에 꽃송이(꽃봉우리)가
자신 쪽(꽃대가 故人쪽)으로 되게 하여 헌화하고
목례를 다시 올린 후 한발 뒤로 물러서서 목례(기도) 또는 절을 올린다.
한국인의 죽음의 이해
죽음, 또 다름 삶
현재 한국사회에서 죽음은 삶의 자리에서 처리되지 않는다.
삶이 이뤄지던 집과 마을에서 병원이나 장례식장으로 옮겨 죽음을 처리하는 것은
이미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죽음은 점점 삶의 현실에서 물러나는 중이다.
한국사회의 전통적인 죽음은 달랐다.
죽음을 삶의 자리에서 맞이하였으며, 삶고 죽음은
단절되지 않았다.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또 다름 삶의 시작으로 여겨졌다.
죽은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산사람과 교류하며 관계를 유지하였다.
준비하고 맞이하는 죽음
흔히들 죽음이란 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두려운 일로서,
죽음과 함께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산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고 여긴다.
이런 점에서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며,
이른바 상장례는 죽음을 확인하고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의 세계에서 분리,
처리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죽음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관행이나 상장례를 보면 이와는 다른 태도가 발견된다.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준비하고 맞이할 것으로 여긴다.
한국사회의 죽음 관련 관행의 하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나 그들의 가족이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들은 결혼식을 앞둔 젊은 남녀처럼 죽음을 준비한다.
묏자리를 미리 구해놓기도 하며, 수의도 미리 마련한다.
자식들 역시 나이가 많은 부모를 위해 그러한 준비를 해드리는 것을 효도로 여긴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인들은 자손들과 죽은 뒤의 일처리 등에 대해 상의하기도 한다.
가족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돌아가시면 제사상에 제일 좋아하시던 음식을 놓아 드리겠다?는 말이 오고 가기도 한다.
이런 말에 노인들은 흐뭇해한다.
이러한 관행은 한국사회에서 죽음을 앞둔
노인이나 그 자식들에게 죽음은 금기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축제의 자리인 상갓집
죽음을 단순히 회피와 금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한국 사회의 상갓집 풍경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한국의 상갓집은 어두움과 슬픔이 짓누르는 무겁고 엄숙하기만 한 자리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호상好喪의 경우, 상갓집은 축제의 자리였다.
가족과 친지, 마을사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기고 춤과 놀이가 행해졌다.
심지어는 ?상주를 웃겨야 잘 하는 문상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상장례 공간의 변화,
살아가는 일의 분주함으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한국문화를 전혀 모르는 어떤 외국인이 그런 상갓집에 들어섰을 때
상갓집인지 잔칫집인지를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상갓집의 축제적 분위기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긴 역사를 갖는다.
멀게는 이미 고구려 때부터 장송葬送에 가무歌舞를 행하였으며,
조선시대에도 부모의 장례 때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피리를 불면서
애통해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풍경은 각 지방에서 발인 전날에 행해졌던
손모듬, 대도름, 댓도리, 생여도듬, 다시래기 등의 상여놀이를 통해서 이어져왔다.
상여놀이는 출상 전날에 상여꾼들이 운구준비를 위해 발과 호흡을 맞출 겸
빈 상여를 메고 노는 놀이인데,
상갓집을 흥겨운 놀이판 분위기로 바꿔 버린다.
한국의 전통적 상장례에서는 축제적 분위기가 자연스러웠음을 말해준다.
그것이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전승되어 왔다는 사실은 죽음이 존재의 끝이나
소멸이 아닌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라는 이해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죽음 : 새로운 존재의 시작
한국인이면 누구나 거치는 전통적인 상장례는 죽음을 확인한 뒤 죽은 사람을
산 사람들에게서 분리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죽은 자의 존재를 변화시켜 조상의 세계에 좌정시킨다.
그리고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후손들과 교류한다.
전통 상장례에서(육체적) 죽음은 혼(넋)과 육체가 분리됨을 의미하며,
이는 보통 호흡 즉 숨의 끊김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이해는 상장례 전 절차에서 고르게 나타난다.
상장례 전 과정은 주검을 처리하는 절차(이른바 장례식)와 혼을 처리하는
절차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하면, 혼과 육체의 분리 즉 죽음을 확인하고,
주검을 처리한 다음에 영을 모시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발인 때의 장례행렬 역시 혼을 모시는 영여靈輿와
혼이 빠져나간 육체를 모시는 상여喪輿로 구분한다.
이는 요즘의 장례행렬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요즘의 장례행렬은 영정을 실은 승용차와 시신을 실은 장의차로 이뤄지는데,
승용차는 영여, 장의차는 상여 역할을 한다.
주목할 것은,
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육체는 장지에 매장되어 집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데,
영여에 실린 죽은 사람의 혼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매장 이후 탈상까지의 상장례 절차는 육신을 장지에 묻고
집으로 돌아온 죽은 자의 혼에 대한 절차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한국의 전통 상장례는 죽은 사람을 조상으로 새롭게 위치 짓는다.
즉 살아있는 존재(혼과 육체의 소유자)에서 과도기를 거쳐 몸 없이
영혼만을 가진 죽은 사람의 세계(조상의 세계)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상장례를 통해 조상으로 자리 잡은 죽은 자는 죽음 이후에도
살아있는 가족들과 여전히 관계를 유지한다.
돌아가신 조상의 신주를 모신 유교식 사당이 이를 잘 보여준다.
집안에 조상을 모시는 공간인 사당이 있고 그것이 가정생활의 중심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집이란 조상과 후손이 함께 사는 장소이며,
조상 역시 살아있는 후손과 함께 가족의 성원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준다.
조상은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았을 때처럼 가족공동체의 성원으로 남아있다.
민간의 가정신앙에서도 조상은 집안 신의 하나로서 조상단지나
그 외 다른 형태로 집안에서 모셔진다.
또한 기제忌祭, 시제時祭, 차례茶禮를 비롯한 다양한
유교제사를 통해 끊임없이 살아있는 후손들과 만난다.
이런 점에서 죽은 조상은 살아있는 후손들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후손들과 공존하며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죽은 사람은 그저 죽어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
죽었지만 살아있는 존재(a living dead)?이다.
삶과 분리되지 않는 죽음
전통적인 한국사회에서 죽음은 삶과 구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았다.
유교식 사당이나 가정신앙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집은 산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죽은 사람도 같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또한 죽은 사람은 사후에도 여전히 산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전통 상장례의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죽음의 처리는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이뤄진다.
한 사람의 죽음을 판단하고 상장례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죽은 사람의 삶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병원의 의사나
장례식장의 장례 예식사, 각 종교의 사제들이다.
반면에 한국 전통사회에서 죽음의 처리는 죽은 자의 생전의 삶의 공간인 집에서,
함께 삶을 살아왔던 가족이나 마을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다.
망자는 자신이 기거하던 방에서 숨을 거두고,
자신의 삶의 공간이었던 집과 마을에서 진행되는 상장례를 거쳐
조상이 된 후 다시 가족들과 통합된다.
이처럼 삶의 자리에서 죽음을 처리하는 전통 상장례는
자연스럽게 죽음과 삶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상을 당한 가족만이 아니라 온 마을사람들이 참여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진행되었던 상장례 과정 역시 죽음이 누구나 거치는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전 한국사회에서 한 개인의 죽음은 당사자와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속해 있는 마을과 같은 지역공동체 전체의 일이었다.
이처럼 죽은 자가 살았던 삶의 공간인 집과 마을에서 공동체적 방식으로 이뤄지던
한국의 전통상장례는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죽음이 삶의 자연스런 한 과정이라는 인식을 전제한다.
반면에 병원이나 장례식장 같은, 일상의 삶의 공간이 아닌
죽음의 처리를 위해 설정된 별도의 기능적 공간에서 망자의 삶과는 무관한,
장례 업무를 전담하는 기능적 인물에 의해 처리되는 오늘날의 상장례 방식은
삶과 죽음의 분리를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든다.
이렇듯 전통적인 죽음문화의 기저에는 죽음이 존재의 소멸이나 무화武火가 아닌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라는 이해가 놓여 있다.
죽음과 함께한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양태가 변화할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로서 그 관계를 지속해 간다.
죽음은 완전한 떠나감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즉
조상으로 다시 가족에게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죽음은 두려운 것도, 외로운 것도 아니다.
글 : 이용범 전북대학교 HK연구교수
사진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민속박물관,
연합콘텐츠
旺生(왕생)을 축원하는 이승의 마지막 길
사람의 죽음은 세가지가 있다.
죽음이 있어서 인간의 형이 상학이 시작되었다
심각한 의미의 죽음 철학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3인칭네 죽음이 있다
이는 아무나 겪는 무의미한 그와 그녀의 죽음이다
2인칭에 죽음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너나 당신의 죽음이니 죽음의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
1인칭의 죽음은 있다.
나의 죽음이니 새삼스럽고 일련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새로운 차원의 죽음 철학이 마련된다
죽음의 발명, 인간의 위대한 창조
우리의 전통적 문화재에서 창안한 죽음은
복수의 1인칭이라고 하는 것이므로 차원과 양상이 달라진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놀이이자 신명이 시작된다.
우리의 죽음이므로 서로 애달파하고 슬퍼하면서 벌이는
잔치와 놀이의 창조가 죽음에서 시작된다.
죽음의 소중한 완성을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서
공동체적 신명으로 전환되는 것이 죽음의 신명난 마무리 놀이가 된다.
죽음에 대한 철학과 예술은 인간의 탁월한 발명품이다.
특히 죽음에 대한 신명난 놀이와 축제는
인간의 최고 발명적 고안이자 창조적 설계이다.
불교에서 이를 두고 생자필멸이라고 하는 명제로 간명직절하게 정리한 바 있는데,
이 말은 항구적 진리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어가며,
그러한 죽음이 저마다의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한다.
진도 다시래기는 엄숙한 철학, 신명나는 축제 등의 다면적 면모를 가지고 있어
죽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가 있다.
우리네 선인들의 죽음은 항상 이러한 충만한 철학적 자세와
신명나는 놀이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진도 다시래기는 일견 산만한 놀이 같지만 죽음의 철학과 신명을
극단적으로 예각화한 실례가 된다.
죽음의 신명, 놀면서 슬퍼하면서
다시래기는 전라남도 해안의 섬을 중심으로 전파된 특정한 놀이이다.
장례풍속에서 빈 상여놀이를 하는 전통이 특징적인데
이를 전남 진도와 같은 고장에서는
여러 가지 내용을 첨가하면서 다양한 구경거리로 전환하였다.
그래서 상을 당한 상주를 위로하고,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동 놀이로 새롭게 창안했다.
그러므로 빈 상여놀이를 하는 전통이 다면적으로 창안된 것이 바로 진도의 다시래기이다.
다시래기의 근간은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빈 상여놀이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타민족의 기록인
『수서隋書』 동이전 고구려조에서 우리네 장례 풍속을 두고서 말한
“초종을 치를 때는 모두 곡하고 울지만,
장사를 치르게 되면 북을 치고 춤추면서 죽은 이를 보낸다
初終哭泣 葬則鼓舞 作樂以送之.”는 기록은
우리네 장례 행위가 그들의 관점에서 특징적인
놀이의 형태로 부각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전통은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점을 볼 수가 있으니,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를 대도둠이라 하고,
강원도나 경기도에서는 손모둠•걸걸이 등으로 지칭하고,
황해도에서는 생여도둠•영천도둠이라고 하며,
전라도에서는 상여 흐른다고 하거나
섬 지방에서는 밤달애•대울림 등으로 지칭한다.
이들은 일정한 상례 시에 이룩된 특정한 조직과 연관되고
이들의 계가 활성화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그 계꾼들이 모여서 일정한 놀이를 벌이는
전통이 일정하게 작동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상두계•향두계가 특히 중요하며,
이들이 일정한 조직으로 일정하게 놀이를 하는,
전통을 잇는 집단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래기가 창안된 전례는 단순하지 않다.
자체의 전통 속에서 우러난 것이지만 외지에서 들어온
특정한 놀이와 일정 부분 관련되어 있으며,
유력한 증거로 흔히 떠돌이 유랑예인집단인 남사당패 놀이와 유사함을 들어서
남사당패를 지적한 견해도 있다.
그러나 과연 남사당패였는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와 동일한 성격의 집단은 오히려 사당패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든 다시래기에서 다양한 놀이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자체의 전통과 외래의 전통을 융합하면서
새로운 놀이로 정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시래기는 몇 가지 구체적인 놀이로 구성된다.
놀이의 바탕은 서로 유기적인 것은 아니고,
각각의 놀이 바탕이 자체적으로 완결되면서 삽화적 전개를 보인다.
주된 놀이 과정은
가상제놀이•거사와 사당놀이•상여놀이•가래놀이•뒤풀이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가상제놀이는 다시래기의 연희 목적을 해명하는 서장에 해당한다.
거사와 사당놀이는 장례의 근본 취지와 어긋나는 것으로 봉사•봉사처•중이
삼각관계를 벌이고 삼각관계 끝에 봉사처가 아이를 낳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죽음 끝에 성적인 탄생을 알리는 기이한 설정이 가장 특별한 내용이다.
상여놀이는 빈상여놀이의 전통 골격이 들어있는 대목이다.
이와 달리 가래놀이는 시신을 묻으면서 소리하는 전통을 재현한 것이다.
마지막에는 뒤풀이 여흥이 있다.
사람의 죽음이 발생하였는데 외설적인 성의 소재를 떠올리는 것은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의의가 있는 것임을 절감하게 한다.
죽음과 성은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에서 기사회생하면서
죽음이 삶이게 하고 주검에서 생명의 환희로
전환하는 깊은 고민의 흔적이 반영되어 있다.
죽음은 사람의 갈등을 봉합하고 흩어진 사람을 모이게 한다.
화합의 극치가 갈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지점과 바로 연결된다.
아이를 낳아놓고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탈춤에서도 이와 유사한 설정이 있다.
외설적 성이 소재가 아니라 외설적 성을 통해서 산 사람들의
새로운 길찾기가 시작되었음을 환기한다.
상여놀이는 상여를 두고 벌이는 놀이인데,
상두꾼들이 서로 발을 맞추고 상주를 태우면서 자신들이 진행해야 할
상여를 메는 놀이의 예행연습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상여놀이를 통해서 일련의 협화심을 발휘하고 놀이의 진행을 통해서
화합된 단결심을 구사하고 이 대목에서 상두꾼계의 위력이 발휘된다.
가래놀이 역시 매장 연습의 반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하늘에 두둥실 올라가 구름을 타고 극락왕생을 위해서
저승길을 나서는데 치장을 아끼지 않는다.
삼색의 예단으로 상여를 장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죽은 인물에 대한 극진한 예우를 위해,
혼인식 가마를 꾸미듯 상여의 치장과 차비를 아끼지 않는다.
상여놀이의 전통을 상여와 관련지어서 보게 되면
상여놀이와 소리는 한바탕 그 자체로 축제이다.
상여소리의 형식은 진양장단•중머리장단•중중몰이장단•자진몰이장단의 놀라운
형식적 창조를 거듭해서 전국적으로 가장 특별한 소리를 창안하였으며,
그 점에서 가래소리 역시 같은 양상임을 알 수 있다.
죽음의 길, 새로운 시
다시래기는 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전통적인 연희이다.
삶의 목표가 죽음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지만,
죽음이 또 다른 시작임을 알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놀이임을 명시한다.
다시래기는 ‘다시 낳기’에서 왔다는 점이 매우 중요한 근거일 성 싶다.
다른 수식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네 삶의 근본적 양상이 바로 이와 관련된다.
근심과 즐거움, 신명과 슬픔은 서로 반대로 뒤집으면 된다.
그러므로 감정의 중도가 요구된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 핵심적 공통점에서
바로 극단을 넘어서는 중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다시래기에서 말한 슬픔과 신명은 서로 뒤집을 수 있는 근간이 된다.
슬픔이 신명이고,
즐거움이 근심이므로 망자의 극락왕생이 산 사람들의 기쁨이 된다.
가뭇없이 사라지는 길이 인생의 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 너머에 깊은 다시래기가 존재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 이 세상에 길이 남기 위해
인간의 환생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에 순종하는 일이 필요하다.
무덤에 묻히는 주검은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시래기의 근본 사상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영원 너머에 새로운 시작이 있다는 세계관적 믿음이 바로 다시래기의 미학이다.
글 : 사진·김헌선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사진 : 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날의 장례식 모습
① 3일 동안 치르는 집이 많으며,
검은 색 양복을 입고 팔에 삼베 헝겊을 두릅니다.
② 장의 차를 이용하여 묘지로 갑니다.
장례식 복장(남자)
검정색 양복이 원칙이지만
미처 준비 하지 못한 경우 감색이나 회색 양복도 무방하다.
와이셔츠는 흰색으로 하고 넥타이, 양말, 구두는 검정색으로 한다.
장례식 복장(여자)
검정색 상의에 검정색 스커트 차림이 가장 무난하다.
구두, 양말(스타킹)도 검정색이 좋다.
화장도 연하게 하고 특히 핑크나 레 드 색상의 짙은 입술화장은 하지 않는다.
옛날의 장례식 모습
옛날 장례식에서는 힘을 모아 장례식을 도와주고
상여를 함께 메고 묘소까지 옮겨 주기도 하였습니다.
자식은 산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산소를 돌보며 살았습니다.
옛날 장례식 모습을 그려보면
① 5일이나 7일 동안 치르며,
삼베로 지은 상복과 두건을 쓰고 짚신을 신었습니다.
② 온 마을 사람들이 와서 장례 일을 도와 주며
상여를 메고 묘지까지 같이 갔습니다.
조문은 글자 그대로 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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